구름포해수욕장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구름포해수욕장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구름포해수욕장

7.0Km    59160     2024-08-16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구름포해수욕장은 길이가 짧고 아담하며 모래사장이 넓은 곳이다. 만리포에서 북쪽으로 직진하여 천리포수목원을 지나 천리포, 백리포를 지나면 구름포해수욕장이 나온다. 물이 맑으며 수심이 얕아 가족단위의 휴양지로 적합하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조용한 편이며, 야영장이 조성되어 있고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구름포해수욕장카라반

구름포해수욕장카라반

7.0Km    0     2024-07-17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구름포길 117

구름포 해수욕장 카라반은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위치했다. 태안군청을 기점으로 서해로, 송의로, 구름포길을 차례로 거치면 닿는다. 도착까지 소요시간은 30분 안팎이다. 이곳은 구름포해변에 자리한 덕분에 해수욕과 캠핑을 겸하려는 캠퍼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캠핑장에는 글램핑, 카라반, 일반캠핑장 시설을 마련했다. 16개 동의 글램핑 객실 내부에는 침대, 냉난방기, 취사 도구, 조리 도구, 아이스박스, 테이블 의자 등을 갖췄다. 카라반은 10대가 마련되어 있으며, 내부는 침대, 냉난방기, TV, 냉장고, 화장실, 샤워장 등을 구비했다. 일반야영장은 파쇄석으로 이뤄진 12면을 운영 중이다. 사이트 크기는 가로 3m 세로 4m이다. 전기와 화로대 사용이 가능하며, 개인 트레일러와 카라반 출입을 허용한다.

글램핑클럽레스피아 in 태안

글램핑클럽레스피아 in 태안

7.0Km    0     2024-07-23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구름포길 117

글램핑클럽레스피아 in 태안(구, 구름포오토캠핑장)은 태안에 위치한 글램핑 겸 오토캠핑장으로, 바로 앞에 구름포 해수욕장이 있어서 인기가 많다. 편리한 카라반과 글램핑은 물론 오토캠핑도 가능하며, 바다낚시와 해루질, 패들보트 등 해양놀거리가 풍부하다. 서해안으로 떨어지는 아름다운 낙조를 조망할 수 있고, 바비큐와 불멍을 즐기면서 감성 캠핑을 하기 좋아, 친구끼리 연인끼리 방문하는 팀이 많다.

이태백캠핑장

이태백캠핑장

7.0Km    0     2024-07-17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송의로 809-68

이태백 야영장은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자리 잡고 있다. 태안군청을 기점으로 소요시간은 35분가량이다. 구름포 해변 근처에 위치해 있어 캠핑장 이용객에 한 해 해변 접근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고 따라서 여유로운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파쇄석으로 이뤄진 일반 야영장 13면을 갖췄으며, 사이트 크기는 가로 5m 세로 6m다. 전기는 물론 화로대 사용이 가능하고 개인 트레일러와 카라반 입장도 허용된다. 이때 카라반의 경우 별도의 추가 요금이 발생할 수 있다. 관리소에서 텐트, 화로대, 난방 기구 등 캠핑 용품을 빌릴 수 있다. 반려동물의 경우 대형견도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 입장이 허용된다.

의항리 해상낚시공원

의항리 해상낚시공원

7.0Km    0     2024-08-28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만리포해수욕장 인근에 있는 어촌리해상낚시공원은 낚시, 숙박, 갯벌 체험이 모두 가능한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낚시가 가능하며 밀물과 썰물이 있어 그날그날 조황이 다를 수 있는 단점이 있지만, 바지락 체험, 선상 낚시 체험, 독살 체험, 굴 따기 체험 등 각종 체험을 즐길 수도 있다. 바다위에 떠 있는 4동의 돔형 구조물은 숙박이 가능한 펜션으로 문 앞 베란다에서도 낚시가 가능하며, 인근 갯바위에서도 낚시를 즐길 수도 있다. 의항리 어촌계는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리아스식 해안으로 형성되어 있는 어촌마을이다. 아울러 조그마한 해수욕장이 여러 곳에 자리하고 있고, 둘레길은 태배길이 만들어져 있어 태배 전망대와 마을 전체를 걸어서 둘러 볼 수 있다. 조그만 항구도 있어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가면 싱싱한 생선도 구매가 가능 하다. 인근에는 만리포 해변 출렁다리, 짚라인, 천리포수목원 등 볼거리가 많다.

신두리사구센터

7.0Km    4     2023-02-20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신두해변길 201-54

신두리사구센터는 충남 태안군 원북면에 있다. 센터 내부로 들어가면 로비 오른쪽에 신두리사구의 여러 모습을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다. 전시공간에는 신두리사구에 관한 정보를 엿볼 수 있다. 신두리사구 모래놀이, 재미있는 탁본 체험 등의 체험 시설도 있다. 센터와 가까운 거리에 신두리사구가 있어 연계 관광이 손쉽다.

우리나라 최대의 신두리 해안사구 고운 모래를 밟아보자.

우리나라 최대의 신두리 해안사구 고운 모래를 밟아보자.

7.1Km    3023     2023-08-08

우리나라 최대의 해안사구인 신두리 사구는 빙하기 이후 1만 5천년전부터 형성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흙보다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사구의 언덕 위에 오르면 탁 트인 신두리 해수욕장의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모래사막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신두사구 쉼터공원(신두사구 생태공원)

신두사구 쉼터공원(신두사구 생태공원)

7.2Km    3     2024-08-01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신두해변길 201-122

신두리 해안사구는 태안반도 북서부의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규모는 해변을 따라 길이 약 3.4km, 너비 500m~1.3km이다. 사구의 원형이 잘 보존된 북쪽지역 일부가 2001년 11월 30일에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되었다. 독특한 지형과 식생이 잘 보전되어 있고, 모래언덕의 바람자국 등 사막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경관과 해당화 군락, 조류의 산란장소 등으로 경관적·생태학적 가치가 높으며, 규모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 신두리 해안사구 내에 위치한 신두리사구 쉼터공원은 탐방객의 편의를 위한 휴식공간이다. 공원에는 쉼터를 비롯해 잔디광장, 야외무대 등이 갖춰져 있다. 야외무대 뒤로 가면 신두리해수욕장을 조망할 수 있다. 공원은 태안신두리해안사구 여행의 기점으로 삼기 좋다. 공원이 신두리 사구센터와 태안신두리 해안사구로 이어지는 동선에 놓였기 때문이다.

통개 해수욕장

통개 해수욕장

7.3Km    1     2023-11-08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

이곳 통개 해수욕장은 주변의 만리포, 파도리에 감춰져 이름조차도 생소하나 그 나름의 특색이 있어, 한번 찾은 이들은 언제나 이곳을 찾는다. 만리포와 지척의 거리로 매년 200만 명의 인파가 북적거리는 만리포에서 벗어나 한적하고 조용한 해변을 찾으려는 관광객들이 방문하기엔 최적지이다. 또한 만리포 해수욕장 주변에 있는 여러 해수욕장들을 번갈아 방문하여 특이한 매력을 접할 수 있어 관광코스로도 적합하다. 해수욕장에서는 수영뿐만 아니라 서핑, 카약, 스노클링 등의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이벤트와 축제도 열리므로 통개해수욕장에서 다채로운 활동과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이곳은 야영도 적합하지만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조용한 통개해수욕장에서 바다낚시와 해수욕을 즐기는 것도 바람직한 피서가 될 것이다.

이종일선생생가지

이종일선생생가지

7.3Km    17802     2024-05-30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옥파로 199-7

이종일 선생의 생가터는 태안보훈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이종일 선생은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애국지사이다. 선생의 생가는 1979년 3월 1일 원북면 반계리에서 태안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이었던 박춘석에 의해 발견됐고 1986년에 복원되었다. 나무로 지은 초가집과 복원할 때 지은 사당, 낮은 돌담이 있다. 이종일선생생가지 내 주요 시설로는 초가집, 사당, 옥파이종일기념관, 체험관이 있으며 체험관에서는 태극기 만들기 체험을 운영한다. 선생은 1858년 11월 6일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 89번지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총명한 재질과 뛰어난 학구력으로 한학에 전념했고 16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882년 수신사 박영효와 함께 사절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와 그곳의 개화된 문물을 접한 후, 개화의 의지가 불붙었다. 그 뒤 정2품 중추원 의관이 되었으나 쇠퇴기의 국운을 통탄하며 취임 10여개월 만에 관직을 내려놓고 구국운동에 뛰어들었다. 기울어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민중 계몽과 인재 양성이 중요함을 느끼고 신문 발행과 교육 사업에 모든 정열을 쏟았다. 1919년 2월 3.1운동의 계획을 듣고 그 자리에서 민족 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것을 수락하고, 직접 독립선언서 원고를 인쇄하여 국내외에 배포하였다. 대한협회, 자강회, 조선국문연구회 등 구국 단체를 조직하여 정신 개조를 주장하고 근면과 노력을 강조하였으며, 한글 맞춤법 연구에 이바지하다가 1925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