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Km 2024-10-21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달량진길 52-10
061-533-0981, 533-0865
1945년 직후에 개장한 시장으로 시장일은 매월 2, 7, 12, 17, 22, 27일로, 상인은 북평면 거주 상인이 다수로 평균 100명 내외, 많을 땐 150명까지도 된다. 업종은 여타의 시장과 동일하며 대부분의 시장이 옷가게가 많은 편이나 이곳은 바닷가 바로 옆에 장이 서기 때문에 병어부터 은색갈치, 문어까지 다양한 생선과 해산물을 볼 수 있고 분식이나 간식 같은 먹거리 종류도 많기 때문에 간식류를 먹으며 구경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19.4Km 2024-10-07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앙리
061-470-6071
영암호는 영암 금호방조제가 준공되면서 만들어진 대규모 호수이다. 영암, 금호방조제는 전남 영암군 삼호읍과 해남군 화원면, 산이면을 잇는 방조제로 1985년에 공사를 시작해 1996년에 준공되었다. 영암호는 먹이가 풍부한 개펄과 넓은 수면, 따뜻한 기온 때문에 철새들의 이동통로이자 중간 기착지이다. 영암호 철새 도래지에 도래하는 철새 중 겨울 철새인 오리, 기러기류는 시베리아에서 번식을 마치고 10월부터 우리나라 서해안의 천수만, 금강 하구 등을 거쳐 서남해안 간척지로 남하하여 3월이 되면 다시 북상한다. 여름 철새인 백로류는 동남아시아에서 월동하고 4월이 되면 우리나라로 이동해 번식하고 9월경 다시 남하 이동한다. 환경부에서 1996년 10월부터 실시한 생태조사에서 34종의 겨울철새가 서식하고 있는 철새도래지로 보고되어 이 지역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주변으로 월출산국립공원, 도갑사, 왕인박사 유적지, 전라남도 농업박물관 등 많은 관광지가 있다.
19.5Km 2023-05-17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선사주거로 308
* 선사시대의 집터, 영암 장천리 선사주거지 *
장천리 선사 주거지는 서호면 면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500m 떨어진 장천리 괴음마을 앞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다. 1984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발굴조사를 통해 움집터 11기, 굴립주건물 1기, 고인돌 4기가 조사되었다.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원형내지 지름 4.3∼5.2m의 움집터로 형태는 원형 내지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깊이는 20~30cm 정도로 삭평이 심한 편이다. 바닥은 점토를 깔거나 단단하게 다진 흔적이 있으며, 다른 송국리형 집터와는 달리 집터 시이의 중복도 심한 편이다. 화로터나 출입구가 없는 것이 특색이다. 굴립주건물은 1칸 ·3칸 규모이나 긴변의 칸 사이에는 보조기둥을 설치하고 있다.
* 장천리 선사주거지의 출토 유물 *
집터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항아리형, 사발형의 민무늬 토기, 갈돌, 화살촉, 삼각형돌칼, 가락바퀴, 턱자귀, 끌대패날 등의 석기류가 있다. 이들 출토유물과 움집터는 한반도 서남부지역에서만 보이는 특징을 가진 것으로 독특한 문화를 이루었던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이다.
19.5Km 2023-09-22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한밭등길 20-1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에 제주도 입출항 포구는 전라남도 나주 목포(현재의 나주 영산포 인근 택촌 마을)였다가 1433년 이후 영암(현재의 해남)의 남창으로 이동되었다. 당시 제주도를 왕래하는 사신들이 배를 타기 위해 바람을 기다리는 곳이 남창 마을의 해월루였다. 또한 왜구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설진 되었던 달량진의 책임자 수군만호가 머물렀던 곳으로, 수군의 정박 장소이기도 하다. 해월루가 있는 남창은 다른 이름으로 달량, 고달도, 달도, 이진으로도 불리었다. 기록에 따르면 1821~1850년 사이에 해월루가 세워졌으며 순조 때 개조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저녁에 물이 들어차면 마치 바다에 달이 하나 더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에서 붙여진 이름처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해남의 대표적 명승지이다. 해월루 앞에는 달도라는 섬이 보이고, 해월루에서 해안 산책길을 따라가면 달량진성에 다다르는데 달량진은 조선 전기에 왜구 침탈에 대응할 목적으로 남해안 일대에 만들어진 여러 수군방어진 중 한 곳이다.
19.5Km 2023-12-09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까치내로 261-21
금곡사삼층석탑은 고려시대 삼층석탑으로 기단 중심석의 전후 측면에서 각기 1매씩의 판석이 유실되고 갑석도 부분적으로 파손되어 원형의 모습을 잃은 채 보존되어 왔었다. 1988년 해체 복원공사를 실시할 때 3층 탑신에서 세존 진신사리 32과가 발견되어 이 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 석탑은 3층 석탑으로서는 5m가 넘는 거탑이며, 그 형식면에서는 전형적인 고려양식을 고수하면서도 기단부 구성이나 옥개석의 우동마루 등 일부에서 약간 백제계 석탑의 분위기가 가미되고 있다. 1층 옥개석은 4개의 석재로 결구하였고 비교적 두꺼운 편으로 처마 곡선이 밋밋하여 전각의 반전 또한 완만하다. 2, 3층 옥개석은 모두 두 개의 석재로 결구 되었고 하면의 받침은 2층이 5단, 3층은 4단으로 줄었다. 3층 탑신 역시 각면 모서리에 모서리 기둥 없이 편평하게 처리하였다. 상륜은 모두 유실되고 없다. 또, 1층 탑신이 두 개로 포개진 예는 광주 서오층석탑이나 장성 내계리오층석탑 등에서 볼 수 있어 이 탑의 조성연대는 고려 시대로 추정된다.
19.5Km 2024-10-17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까치내로 261-21
금곡사는 신라 말 밀봉대사가 창건하여 성문사라 칭하다가 이 주위에 금광이 있다 하여 후에 금곡사라 개칭하였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훈련 장소로 쓰였으나 왜구의 침략으로 불에 탔다. 이후 폐사와 중창을 반복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찰 옆 개울가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이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금광이었던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금곡사에는 백제 계통의 고려 양식인 보물 제829호 삼층석탑이 있는데 1985년 복원작업을 하던 중 석가세존 진신사리 32과가 발견되어 세상의 이목을 받기도 했다. 이 탑은 석탑으로서는 5m가 넘는 거탑으로 그 형식 면에서는 전형적인 고려 양식을 고수하면서도 기단부 구성이나 옥개석의 우동마루 등 일부에서는 약간의 백제 계 석탑의 분위기가 가미되어 있다. 조성 연대는 고려 초반기로 추정된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물의 양이 일정한 약수터에서 풀로 만든 대롱으로 물을 빨아먹으면 신경통이 사라진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다. 아마도 임진왜란 때 왜구를 격파한 이 고장 출신 김억추장군의 전설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매년 봄이 되면 금곡사로 가는 군동면 호계리에서 작천면 군자리에 이르는 19km 구간은 연분홍빛 벚꽃터널이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금곡사 벚꽃 길은 1992년부터 2년에 걸쳐 강진군 공무원들이 휴일을 반납해가며 직접 만든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