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Km 2024-01-26
경기도 파주시 교하로 555
경기도 파주시 동패동에 있는 국수 전문점이다. 천장은 높고 매장이 넓어 식당 내부가 답답하지 않다. 강화도 서리태를 갈아 만든 콩국수, 깔끔하고 담백한 육수의 잔치국수, 매콤 새콤한 맛의 비빔국수가 대표 메뉴지만 지단김밥, 매생이칼국수, 매생이굴떡국도 인기다. 반찬은 김치 한 가지만 나온다. 취향에 따라 테이블 위에 양념장을 넣어 먹을 수 있다. 모든 메뉴는 포장도 가능하다. 건물 앞에 주차장이 있다.
11.5Km 2024-10-24
인천광역시 서구 오류동
아라빛섬은 섬의 긴 축이 200m도 되지 않는 인공으로 만들어진 작은 섬이다. 섬 둘레를 산책해서 둘러볼 수 있고 앞쪽의 서해 바다와는 분리되어 있어, 마치 호수 위의 작은 섬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아라빛섬에는 노을 명소인 정서진 광장부터 홍보관, 인천의 전경을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위치한 경인항 통합운영센터등이 있다. 전망대의 건물 1층에는 홍보관으로 인천 서구 중소기업, 사회적 기업의 우수한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망대는 23층으로 인천의 곳곳을 훤히 볼 수 있는 곳이다.
11.5Km 2024-06-18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충렬사로 232
인천시 문화재로 지정된 충렬사는 병자호란과 신미양요 때 나라를 지키다 순절한 우의정 김상용을 비롯한 충신 28명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1641년(인조 19)에 건립돼 현충사라 불리다 1658년(효종 9)에 국왕으로부터 충렬사란 이름을 받아 강화유수 허휘가 충렬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우의정 김상용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왕실의 신주를 받들고 빈궁, 원손을 수행해 강화도로 피난했다가 이듬해 성이 함락되자 성의 남문루에 있던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순절하였다. 충렬사를 건립할 당시에는 모두 7명을 배향하였으나, 이후 황선신과 강흥업이 추향되어 9명의 위패가 모셔졌다. 그 후 충렬사 비기가 건립되었다. 신미양요 당시 미군에 맞서 싸운 충신까지 배향하게 되면서 현재는 모두 28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충절인의 넋을 달래고, 국가에 대한 충절을 장려한다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충렬사는 국가의 특별한 보호와 지원을 받았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이 서원, 사우를페쇄할 때도 그 대상에서 제외되어 존속되었다. 현재는 충렬사유지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충렬사는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동재, 서재는 없어지고, 지금까지 남은 건물로는 한식 목조 맞배지붕으로 된 14평의 사당과 16평의 수직방, 14평의 전사청, 비각, 외삼문 등이 있으며 1977년 보수하여 지금에 이른다.
11.5Km 2024-05-20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고려왕릉로 209
길정저수지는 강화도 양도면에 위치한 497,000㎡ 규모의 저수지로, 가족 단위 여행의 장소이다. 저수지가 깔끔하고 인근 저수지 주변에 텐트를 치고 여가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수심이 깊어 항상 파란빛의 물을 만날 수 있는 넓은 저수지이다.
11.5Km 2024-02-19
인천광역시 강화군 마니산로 106
드리우니는 강화도 길상면 길상 119 안전센터 맞은편에 있는 디저트 카페다. 매장 앞에 주차장이 있어 차량 이용에 편리하다. 대궐 모양의 큰 한옥으로 대문부터 매장 입구까지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창가 쪽엔 주로 4인 테이블이 있고 중앙에 단체 손님을 위한 긴 테이블이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자리도 있고 외부 테라스도 마련되어 있다. 메뉴는 커피, 핸드메이드 티 앤 에이드, 드리우니 시그니처, 라테류 스무디류, 디저트로 구성되어 있다. 대표 메뉴는 대추차, 카스텔라 수제 찹쌀 경단, 드리우니 눈꽃 팥빙수, 인절미 앙버터 모나카이다.
11.5Km 2024-05-31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파주 오두산성은 파주시 탄현면에 있는 오두산의 정상을 둘러싼 길이 620m의 백제성이다. 이곳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정상부에서 남서쪽으로는 김포 일대, 서북쪽으로는 북한의 개풍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사면이 가파르고 서쪽은 임진강, 남쪽은 한강과 면하고, 동쪽은 농경지로 북쪽은 산록으로 연결되고 있다. 산 정상에는 성벽용 석재가 흩어져 있으며,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계속 수축된 것으로 보인다. 1990~1991년 사이의 발굴조사에서 토기, 백자, 기와, 철촉 등이 다수 발견되었다.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으며, 통일 전망대가 들어서면서 원형을 찾기가 어렵지만 이 유적 일원에 대한 현지 조사 결과, 임진강과 한강의 합류 지점인 서안쪽에 당시의 성벽이 정연하게 남아 있음이 확인되었다. 축조 방법은 기초석 위에 지대석(5~15cm)을 들여쌓기 하여 내측은 전부 돌로만 채운 뒷채움석 형식이다. 큰 암반을 채석으로 이용하고 그 단면을 성벽으로 이용한 성곽 형태를 갖추고 있어 백제시대 성곽 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다. 파주오두산성 일부 지역은 군사지역으로 출입이 통제된다.
11.5Km 2024-09-13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가좌로 62 (가좌동)
와니엘배팅센터는 야구용품 브랜드인 와니엘이 운영하는 야구 연습장이다. 도심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도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며 주차장이 넓어 차를 가지고 가도 된다. 와이엘에서 자체 개발한 최신 피칭머신과 최신식 장비들로 준비되어 있고 센터 내부 전 구역이 잔디로 시공되어 있는 배팅장이다. 야구 레슨 전문 연습장처럼 높은 층고와 넓이를 자랑한다. 센터 전구역을 사용할 수 있어 타격 연습뿐만 아니라 투구와 송구, 수비 캐칭 등도 연습할 수 있고 코치가 상주하고 있어서 레슨도 가능하며 저렴한 가격으로 즐겁게 야구게임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거나 친구들, 동호회 모임에서 함께 야구를 즐기기에 적당한 곳이다. 단체 대관 시 팀 레슨도 가능해서 배우며 즐기기에도 좋다.
11.5Km 2024-06-14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삼랑성은 고려시대 이후 개경과 한양을 방어하는 성곽이었다. 둘레는 2.3km 정도이며, 성곽은 산 정상부에서 남문쪽 해발 75m 능선까지 산의 지형을 따라 쌓아서 북쪽과 남쪽의 고도 차가 크다. 단군의 세 아들이 세 봉우리로 이루어진 정족산의 한 봉우리씩 맡아서 쌓게 되었고, 이를 본 사람들이 이 산성의 이름을 사내 랑(郞)을 써서 삼랑성이라 불렀으며, 강화도 남쪽 해발 222m의 정족산에 있어 정족산성으로도 불린다. 마니산 참성단과 더불어 단군과 관련된 역사 유적이다. 성을 쌓은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거친 자연 활석을 이용한 삼국시대 축성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시기를 추정할 뿐이다. 1739년(영조 15)에 중수하면서 남문에 문루를 건립하고 종해루라 하였고, 1764년(영조 40)에 다시 성을 중수했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양헌수 부대가 프랑스군을 물리친 승전지이다. 삼랑성 안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자 강화에서 제일 큰 절인 전등사가 있다.
11.5Km 2024-09-04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032-937-0125
전등사를 둘러싼 삼랑성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단군의 세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있다. 고려때 몽골의 침략을 피해 강화도로 천도한 뒤 삼랑성 가궐에서 항몽의지를 불태우며 120일 동안 대불정오설도량을 펼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을 250년 동안 보관했던 곳이기도 하며, 프랑스 군을 격퇴한 병인양요의 승전지다. 뿐 만 아니라 구한말 일제에 항거하며 1주일 동안 의병전투에서 승리한 곳이기도 하다. 5,000년 간 우리역사와 끊임없이 교류하고, 우리 역사를 품은 민족자존의 현장이다.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의 자긍심을 느끼고, 널리 알리기 위해 삼랑성역사문화축제를 매년 10월 첫 주 토요일부터 개최하여 올해 24회를 맞는다.
11.5Km 2024-06-12
인천광역시 강화군 전등사로 37-41 전등사
종해루는 전등사 삼랑성의 남문에 있다. 전등사 삼랑성 남문인 종해루는 영조 15년(1739)에 유수 권교가 수축하고 종해루라는 현판을 걸었으며, 영조 40년(1764)에 중수하고 정조 7년(1783)에 유수 김노진이 기문을 지었다고 한다. 1976년 남문을 중수하고 문루도 건립하였다. 고려사 지리지에 의하면 전등산을 삼랑성이라고 부르며, 단군이 세 아들인 부여(夫餘)·부우(夫虞)·부소(夫蘇)을 시켜 쌓았다고 전해온다. 고려 고종 46년(1259) 이 성내에 궁궐을 지었으며, 조선 현종 원년(1660)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할 사고를 설치했다.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때에는 양헌수 장군이 이 성을 침입하는 프랑스 군을 격멸한 전승지이기도 하다. 성내에는 양헌수 장군의 전승비가 있다. 이성에는 원래 동, 서, 남, 북에 성문이 있었으나 문루가 없었던 것을 영조 15년(1739)에 남문에 무루를 건립하였다. 그간에 성곽과 문루가 무너졌던 것을 1976년에 다시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