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Km 2024-06-28
전라남도 무안군 삼일로 613
다목적 문화공간 일로일로는 미술 전시, 음악회, 요가 등 문화와 커피, 디저트가 공존하는 곳이다. 넓은 통창에 하얀 외관이 마치 캘리포니아의 예쁜 저택에 초대받은 느낌을 들게 한다. 두 개의 건물이 이어져 있는데 들어갔을 때 바로 보이는 큰 건물에서 주문하면 된다. 실외에는 어린이와 함께 이용하기 좋은 귀여운 의자와 큰 파라솔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공기 좋고 하늘 맑은 날 티타임을 즐기기 좋다. 잔디와 수변공간, 그리고 카페 외관에도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어 원하는 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다. 주차장은 만차 시 공원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18.0Km 2024-10-25
전라남도 무안군 일로읍 시장길 11-22
061-450-5602
무안 지역은 호남의 젖줄인 영산강의 하류에 속해 있어 농사에 필요한 물과 교역에 필요한 물길이 확보되었고, 예부터 시장이 발달한 곳이었다. 조선시대 전기에 나주와 무안 지방에서 최초로 시장이 개설되었는데, 일반적으로 '남창장'의 전통을 잇고 있는 무안의 일로장이 최초의 지장장시로 인정받고 있다. 안정적인 상권을 형성하던 무안지역 시장은 일제강점기 목포가 개항하면서 크게 성장하지 못했고, 호남선이 지나는 일로시장을 중심으로 상권이 유지되었다. 현재 이곳은 쇠퇴되어가고 있는 여느 재래시장과 달리 아직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데, 소전(가축시장)과 함께 이 지역 시장을 대표하며, 아직도 성시를 이루고 있다. 1980년대 일로시장에서 1인 극 품바가 탄생해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장날에는 인근 지역 주민들을 포함 약 2만 명 가량의 이용자가 이 장을 이용한다.
18.1Km 2024-12-05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15
영랑 김윤식 선생은 1903년 1월 16일 이곳에서 김종호의 2남 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에는 채준으로 불렀으나 윤식으로 개명하였으며 영랑은 아호인데 문단활동시에는 주로 이 아호를 사용했다. 영랑 선생은 1950년 9월 29일 작고하기까지 주옥같은 시 80여편을 발표하였는데 그중 60여편이 광복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이곳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쓴 작품이다. 영랑생가는 1948년 영랑이 서울로 이거한 후 몇 차례 전매 되었으나 1985년 강진군에서 매입하여 관리해 오고 있는데 안채는 일부 변형 되었던 것을 1992년에 원형으로 보수하였고, 문간채는 철거 되었던 것을 영랑 가족들의 고증을 얻어 1993년에 복원하였다.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남아 있으며 모란이 많이 심어져 있다.
규모 : 생가일원(5,083㎡)
18.1Km 2024-12-02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사의재길 27
사의재(四宜齋)는 다산 정약용이 1801년 강진에 유배 와서 처음 묵은 곳이다. 사의재는 이곳 주막집(동문매반가)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은 다산이 몸과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 교육과 학문연구에 헌신키로 다짐하면서 붙인 이름으로 ‘네 가지를 올바로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다산은 생각과 용모와 언어와 행동, 이 네 가지를 바로 하도록 자신을 경계하였던 것이다. ‘생각을 맑게 하되 더욱 맑게, 용모를 단정히 하되 더욱 단정히, 말을 적게 하되 더욱 적게, 행동을 무겁게 하되 더욱 무겁게’ 할 것을 스스로 주문하였다. 사의재는 창조와 희망의 공간이다. 사려 깊은 주막 할머니의 ‘어찌 그냥 헛되이 사시려 하는가?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얘기에 자신 스스로 편찬한 「아학편」을 주 교재로 교육을 베풀고, 「경세유표」와 「애절양」 등을 이곳에서 집필하였다. 다산은 주막 할머니와 그 외동딸의 보살핌을 받으며 1801년 겨울부터 1805년 겨울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강진군은 오랜 고증을 거쳐 동문 안쪽 우물가 주막터를 원형 그대로 2007년에 복원하였다. 현재는 동문매반가(주막)와 한옥체험관을 운영 중에 있다.
18.1Km 2024-04-04
전라남도 무안군 시장길 17-12 일로장터백반
일로장터백반은 전라남도의 맛과 인심이 오롯이 전해지는 백반집이다. 조선시대 최초의 장터가 시작되었다는 일로는 백반 가게들이 몇 군데 있지만, 그중에서도 일로장터백반은 한 상 가득 차려지는 맛깔난 반찬을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메뉴는 백반 단일메뉴로, 완두콩을 넣은 밥은 꼬들꼬들 맛있고, 전라도 음식답게 장아찌, 파김치, 김치류, 모두 한식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 TV 방송 ‘생방송 오늘 저녁’에 소개된 바 있는 백반 맛집이다.
18.1Km 2024-12-23
전라남도 나주시 공산면 공산로 120
061-339-3691
공산면은 나주 시청에서 서남쪽으로 12km 지점이며, 동쪽으로는 왕곡면 반남면과 연접하여 있다. 남쪽으로는 영암군 서쪽으로는 동강면 북쪽으로는 함평군과 접하며, 구수봉과 고 문산이 솟아있으며, 북으로는 영산강이 남쪽으로는 삼포강이 흐르고 있어 수리(水利)가 편리(便利) 하여 농업이 발달한 고장이다. 예전보다 규모는 작아졌지만, 여전히 5일장이 서고 있으며, 곡류와 잡화류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예전에는 나주시 공산면 남창리에 있어 ‘남창장’이라 불렸다. 일제강점기에 덕음 광산 개발 때문에 공산면 가송리 와룡마을 부근으로 옮겼었다. 그러던 중 일제강점기 말기에 광산이 폐쇄되고 장터가 면 소재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현 장터로 자리를 옮겨 장을 세웠다.
18.2Km 2024-06-17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지천길 52-227
정남진 장흥에서 한 숨 쉬어가기 좋은 곳
동그란 원통형 전망대가 이색적인 장흥댐 물 문화관에서는 수자원의 중요성과 슬기로운 이용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워터리움의 시원한 물벽과 물의 원리를 살펴보는 과학놀이 등이 흥미롭고 이곳에서 보는 탐진호, 어우러진 산세가 아름답다.
18.2Km 2024-07-02
전라남도 강진군 탑동길 5
모란 추어탕은 전라남도 강진군 남성리에 있는 추어탕 전문점이다. 강진은 탐진강의 지류들이 실처럼 엉켜 있어 미꾸라지들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뛰어나고, 비옥한 토지에서 자라는 토란대, 무 시래기, 고사리 등을 쉽게 구할 수 있어 오래전부터 추어탕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중 모란 추어탕은 제6호 강진 맛집으로 산정된 곳으로 국물이 걸쭉하고 맛이 깊다. 주차도 편하고 매장 입구에는 인증기관 표시도 붙어있어 믿음이 가는 집이다. 추어탕 외에도 부드러운 돼지고기 수육의 보쌈과 홍어삼합이 있다. 제철 재료로 직접 만든 밑반찬들은 정갈하면서도 입맛을 돋운다. 식당 인근에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김영랑 시인의 영랑생가, 시문학파 기념관, 세계 모란공원 등 주변에 볼거리도 넘쳐난다. ※ 반려동물 동반불가
18.3Km 2025-02-21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종합운동장길 106-11
061-433-1100
강진의 청자골종가집은 남도 최고의 한정식집을 만들겠다는 취지에 맞게 음식 맛은 물론이고 전통한옥으로 된 고풍스러운 건물, 수려한 주변 경관, 넓은 주차공간까지 명가의 호칭이 오히려 부족할 정도이다. 건물을 신축하는 데만 4년이 걸렸다는 고풍스러운 전통한옥에 앉아 잘 꾸며진 정원을 바라보며 큰 상을 받으니 마치 사대부 양반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절로 마음이 흐뭇해진다. 돼지고기 편육, 산낙지, 장어구이, 참숭어알, 홍어찜, 굴전, 매생이국 등 각종 요리에 강진의 갯내음을 더하는 돈배, 토하, 밴댕이, 바지락 젓갈, 그리고 매실과 무장아찌 등 맛깔진 음식들이 강진 한정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18.3Km 2024-06-18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대한 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 백양사의 말사이다. 과거 운흥사와 관련된 문수암이 위치하였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곳에 1987년 다정스님이 문성암을 창건하였다. 2층 건물의 구조로 1층은 종무소로 사용하며 2층은 참회전이라 하여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외 백호선원, 지장전, 문수선원 등의 건물이 있으며 지어진지 오래되지 않았고 다른 사찰과는 달리 단청을 칠하지 않아 정갈하고 고요한 느낌을 준다. 문성암이라는 이름대로 글을 매우 잘 하는 사람이 출현할 것이라는 꿈을 꾸고 사찰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문수는 문수대성(文殊大成)이며 여기에서 문성(文成)을 따서 암자의 이름을 지었고, 문수가 지혜를 의미하기 때문에 선원 터로 적합하다고 여겼다고 하며, 문수보살이 화현한 터라고도 한다. 문성암을 세운 다정스님은 죽림사와 운흥사를 오가며 수행할 때 문성암 앞의 커다란 소나무를 보고 사찰이 있을 만한 곳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또 운흥사 초가에서 기거할 때 스님이 문성암 쪽에서 빛이 찬란하게 비치는 꿈을 꾸고 절을 짓고자 결심하였다. 처음 터를 닦을 때 같이 일을 하던 보살이 꿈을 꾸었는데 불이 나서 그 불길이 하늘을 태웠다고 하는 길몽을 꾸었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