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목물 (나주반장 김춘식)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나주목물 (나주반장 김춘식)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나주목물 (나주반장 김춘식)

나주목물 (나주반장 김춘식)

8.6Km    21406     2023-09-05

전라남도 나주시 영산로 5116-12
061-332-2684

나주의 문화재 공방은 전라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나주반 기능보유자(김춘식)며 나주반(소반류), 전통부채, 전통가구(주문 제작)을 취급하고 있다. 나주는 고려부터 구한말까지 행정의 중심지인 목으로서, 서남부의 내륙에 위치하여 각종 문화와 교통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 우리만의 독특한 좌식 온돌문화를 바탕으로 소반 문화가 자연스레 발달하였으며, 나주 소반에는 4각반, 12각반, 단각반 등이 내려오는데, 오늘날은 보통 4각반을 나주 소반이라 칭한다. 나주 소반은 예부터 해주반, 통영반과 함께 한국의 3대 소반의 하나로 꼽힌다.

죽림사(나주)

8.9Km    20176     2023-10-04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풍림죽림길 255

중봉산 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백양사의 말사이다. 사적에 의하면 죽림사는 백제 비유왕 24년(440) 경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는 주장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통일신라 때 것으로 추정되는 사리 16과와 불두가 발견되어 통일신라 이전이나 같은 시대로 추정된다. 1983년 극락보전을 보수할 때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리 16과와 청동불두가 발견되어 죽림사는 적어도 통일신라시대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창건 시의 규모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7전(殿), 3당(堂), 2실(室), 3요(寮), 6암(庵), 1사(寺)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극락보전과 영산전·삼성각 등의 전각과 염화실·청향각·회심당 등의 요사, 수각·부도(5기)·대형맷돌·석조여래좌상 등이 있다. 죽림사에는 다양한 문화재가 있다. 청향각에는 1998년 6월 29일 보물로 지정된 죽림사 세존괘불탱이 있으며, 죽림사 극락보전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영산전 앞뜰에는 전체 높이 141cm의 석조여래좌상이 놓여 있으며, 사찰 입구 축대 앞에 청계당대사 부도와 월하당대사 부도 등 18세기 중엽에 조성된 부도 5개가 일렬로 놓여 있다.

다보사(나주)

다보사(나주)

9.0Km    19953     2023-10-31

전라남도 나주시 금성산길 83

* 아담하지만 문화재가 많은 천년 고찰, 다보사 *

다보사(多寶寺)는 금성산 남쪽 기슭의 깊숙한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다. 마치 산의 일부인 양 자연과 융화된 모습으로 찾는 이를 맞아준다. 아담하지만 여러 전각을 두루 갖추고 있는 천년고찰로, 좁은 골짜기의 지형 속에 적절히 배치된 건물의 단정한 모습이 매우 인상적인 사찰이다.다보사는 661년(신라 태종무열왕 8)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금성산에서 초옥을 짓고 수행하던 스님이 땅에서 솟아난 칠보로 장식된 큰 탑 속에서 다보여래(多寶如來)가 출현하는 꿈을 꾼 뒤 사찰을 창건했다 하여 사명을 다보사(多寶寺)라 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1184년(고려 명종 14) 보조국사 지눌이 중건했고, 1568년(선조 1) 서산대사가 중창했다고 한다. 1879~1881년에 대웅전·명부전·영산전·칠성각 등이 중수되었는데 이 무렵에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된 것으로 여겨진다. 사찰에 남아 있는 여러 유물 중에도 19세기 말을 전후로 하여 조성되거나 다른 곳에서 옮겨 온 것들이 많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선불교의 법맥을 잇는 선방(禪房)으로 널리 알려졌고, 광복 후 구암·금오·도원스님 등이 주석하며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 다보사의 숨어있는 문화재 *

다보사는 대웅전·명부전·영산전·천불보전·칠성각·요사 및 선원·범종각·금강문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다보사 대웅전'이라는 명칭으로 전라남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내부에는 석가여래불을 주불로 하여 약사여래불과 아미타여래불이 협시되어 있는 목조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1901년에 제작된 아미타후불탱과 신중탱 등이 걸려 있다.지장보살과 무독귀왕·도명존자·시왕상 등을 모시고 있는 명부전은 정면 3칸·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3층의 콘크리트 건물 위에 자리 잡은 천불보전은 정면 5칸·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천불을 봉안한다. 대웅전 앞으로는 석등·부도·5층석탑·우화당대선사비·진상화상창적비 등이 세워져 있다. 보물로 지정된 '다보사 괘불탱'은 현재 나주시 향토문화회관으로 옮겨져 있다.

미천서원

9.1Km    23393     2024-02-01

전라남도 나주시 미천서원길 14-11

미천서원은 영산포에서 다시면으로 가는 길목인 전라남도 나주시 안창동의 철로변에 자리 잡고 있다. 서원의 강당 뒤편에는 미천 서원의 유래가 된 ‘미천'이라는 샘이 있다. 허목 선생이 어렸을 때 마을 사람들이 우물이 없어서 팔 생각을 못하자 이에 '내가 일러준 곳을 파보면 물이 나올 것이다'고 이야기하였다. 과연 그 곳에서는 물이 솟아나와 더 이상 고생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샘의 이름을 미천(眉泉)이라 부르고 이에 서원 이름의 연원이 된것이라고 한다. 이 서원은 17세기 조선시대 명현인 문정공 미수 허목의 도학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 16년(1690)에 나주 금강 미천상에 사우로 건립되었다가 1693년 미천서원이라고 사액되었다. 이후 정조 23년(1799)에는 13대 미천서원 원장을 지낸 번암 채제공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채제공은 허목보다 훨씬 후대 인물이지만 허목의 학문을 따르고 미천서원에 많은 공을 세웠기 때문에 추배하게 된 것이다. 1711년 홍명한이 중수하고 1715년에는 강당과 재실을 중수하였다. 그 후 철폐되었다가 영조 47년(1771) 이전에 사우가 중건된 후 고종 5년(1868) 서원 철폐령으로 2차 철폐을 당하였다. 서원이 철폐되자 영당과 장판각은 허목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는 나주시 삼영동 선산 아래의 영당마을로 옮겨졌다. 1893년에 다시 미천서원의 옛 터인 지금의 자리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영당이 복설되어 현재의 자리로 영정을 이안하였으며 정면 6칸, 측면 3칸의 강당도 함께 중건되었다. 1930년 조기중이 강당 일부를 중수하였고 1937년 허영규가 대대적으로 중수하였다. 이곳에서 차량 이동 4분, 약 2.8km거리에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와 나주철도공원이 있다.

태평사

9.1Km    19796     2023-10-04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금성산길 387-83

금성산의 자락에 위치한 태평사는 1956년 금명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대웅전과 요사 2동, 종각으로만 이루어진 단출한 규모이다. 요사채는 서민의 살림집 유형이며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석가모니불 및 보살입상 2구를 봉안하고 있다. 주지승에 의하면 지금의 자리에 고려 시대에 큰 사찰이 있었는데 없어졌다가 6·25 동란이 끝난 후 나주 교도소에서 일하는 불자의 꿈에 지장보살, 관음보살이 연속으로 현몽되어, 지금의 태평사의 위치에 와서 파보니 연좌와 탑파의 상륜부가 나오고 지장보살이 나왔다 한다. 옛날의 절터였다는 증거가 되는 6각주초가 대웅전 앞 화단에 있으며 뒷 암벽에 불상이 양각되어 있다. 봄이 되면 사찰 입구는 철쭉꽃과 겹벚꽃 길로 유명하다. 태평사 입구에서 차량 이동 약 7분, 3.5km 거리에 신숙주 생가터가 있고 멀지 않은 거리에 인접하여 마을 쉼터이자 강학 공간 역할을 이어오고 있는 쌍계정이 있다.

대골제(대골저수지)

대골제(대골저수지)

9.2Km    0     2024-09-05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대골제’는 ‘대골 저수지’라고도 부르며 탁 트인 저수지의 광경과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멋진 곳이다. 저수지를 둘러싼 산책로를 걸으며 한적한 분위기에 일상 속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저절로 힐링이 된다. 저수지 주변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 도시락이나 간식을 먹고 저수지의 물결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산책로 주변 나무데크로 조성된 그네도 있어 아이들이 놀기에도 좋고 포토존으로 인생샷을 남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주차는 공영주차장이 있고 주차장에서 저수지까지 거리가 있어 피크닉 짐은 최대한 간소하게 가는 것을 추천한다.

금성산(전남)

9.4Km    30272     2023-09-14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신광리

나주의 진산인 금성산의 높이는 451m로 낮은 산이지만 평야와 낮은 언덕이 많은 나주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며, 4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 봉우리는 노적봉, 서쪽 봉우리는 오도봉, 남쪽은 다복봉, 북쪽은 정녕봉이라 불린다. 금성산은 고려왕실과 관련이 깊은 신령스러운 산이기도 했다. 고려조정은 전국에 있는 10개의 신령스런 산에서 매년 제사를 올렸는데, 충렬왕은 금성산에는 정녕공이라는 작호를 내려 제사를 지내게 했고 이후 금성산은 전국 8대 명산으로 인정받게 된다. 금성산이 유명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외적을 방어했던 ‘금성산성’이 있기 때문이다. 금성산성은 고려 초에 견훤과 왕건의 싸움터이기도 했고, 삼별초의 나주공략에 맞서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인 치열한 전쟁터였다. 금성산이 유명한 두 번째 이유는 신령스럽고 영험한 금성 산신과 당제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금성산 아래 계곡 등에서는 산신의 영험함을 얻기 위해 정성을 드리는 무속인들이 수 없이 많았다. 금성산이 명당이자 전국의 명산으로 인정받는 데는 이런 이유들이 숨어있다. 금성산에는 국립나주숲체원, 금성산생태숲, 다보사 등이 있다.

경현서원

경현서원

9.5Km    1531     2024-08-12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영평리

경현서원은 나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조선 유학을 대변하는 많은 인물을 배향한 곳으로 나주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이곳은 16~17세기 나주지역의 을미옥사의 발생 원인과 전개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1583년(선조 16) 지방 유림이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금성산 아래에 사당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시고 1589년(선조 22)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4위를 함께 배향하여 오현서원이 되었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목장흠과 지방 유림들이 합력하여 중건하였으며, 이듬해인 1609년(광해군 1)에 김선 등의 상소로 [경현]이라고 사액되었다. 1693년(숙종 19)에는 기대승과 김성일을 추가 배향하여 모두 7위를 모시게 되었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77년 전라남도 유림이 이곳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 신문, 동·서 협문, 4칸의 강당, 외삼문, 4칸의 고사 등이 있다.

고씨삼강문

9.7Km    16189     2024-06-03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길 66

고씨삼강문은 조선시대 고경명과 고경명의 동생인 고경형,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와 고인후, 딸인 영광유생 노상룡의 부인, 고경명의 조카 고거후의 부인인 광산정씨, 고경명의 손자 고부금 총 7명의 충, 효, 열을 기리는 정려문이다. 정려문은 효자, 효부, 열녀, 충신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나 문을 말한다. 현존 건물은 1844년에 세운 것으로 사방에 홍살문을 설치하여 내부를 차단하고 앞 뒤 이열로 정려현판을 걸었다. 정면 네칸, 측면 한칸의 맞배지붕으로 지붕은 부연이 없는 홑처마로 처리했다. 건물 밖에는 담장을 돌리고 외삼문을 세웠으며 삼강문 옆에는 고씨문중의 제각인 추원각이 있다. 장흥고씨 삼강문은 충렬공 고경명의 태생지인 압촌동 마을입구에 있다. 정석7간 측면 1간의 골기와 8작지붕으로서 임진왜란 후 왜병이 철수한 선조28년(1595)에 고경명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선조가 명하여 세웠다. 충렬공 제봉 고경명(1533~1592) 선생은 압촌동에서 태어나 여러 관직을 거쳐 1591년 동래부사를 끝으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선생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금산에서 왜병과 싸우다 두 아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구백가든

구백가든

9.7Km    1     2024-04-03

전라남도 화순군 천태로 1020

구백 가든은 화순중흥골드레이크 cc와 인접한 곳에 있는 맛집으로, 골프장을 방문한 손님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만, 소문난 맛집답게 주차장이 꽉 차 있는 경우가 있으니, 이 점 참고하고 방문해야 한다. 하모 샤부샤부와 키조개+소고기구이가 이 집의 대표 메뉴다. 하모 샤부샤부와 새조개 샤부샤부는 시가에 따라 가격이 변동된다. 소고기와 키조개 그리고 잘 익은 묵은지까지 이 세 가지 재료의 만남을 삼합이라 부르는데, 그 맛이 뛰어나 전국 각지에서도 찾아올 정도다. 단체 방문도 가능하여 회식 장소로도 적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