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소정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담소정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담소정

담소정

12.2 Km    20691     2023-09-27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잣정길 133
061-382-7022

담소정은 자연이 그림을 그린 것처럼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얼큰한 매운탕과 토종닭 요리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메기탕이 주메뉴이다. 주차 공간도 넓어 이용이 편리하다.

강의리추어탕

강의리추어탕

12.3 Km    0     2024-01-15

전라남도 담양군 강의길 73

강의리추어탕은 생생정보통, 생방송 오늘 저녁 등 다양한 TV 프로그램에 맛집으로 소개된 추어탕 전문점이다. 시골 고향 집이 떠오르는 건물 외벽에는 담쟁이넝쿨이 빼곡하며 입구로 이어지는 길가에는 꽃과 나무들이 정겹게 피어있다. 대표 메뉴인 추어탕 맛도 일품이지만 전라도 밥상답게 반찬 하나하나 정성 가득한 맛이 더욱더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솥밥과 누룽지가 일품이어서 메뉴의 맛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맛집으로 소문난 만큼 대기할 때가 많지만, 먼 길 마다치 않고 찾는 손님들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백년가게]민들레

[백년가게]민들레

1.2 Km    2     2023-06-05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평화로 137
062-374-8760

[중소벤처기업부 2018년도 '백년가게'로 선정] 살이 꽉 찬 간장게장과 달달하면서도 끝 맛이 매콤한 양념게장이 인기 있는 곳이다. 흰밥에 게장을 올려 김에 싸 먹기 시작하면 밥 두 공기는 거뜬하게 먹게 된다. 좋은 식재료가 음식의 질과 맛을 결정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요리를 만든다. 넓은 매장과 체계적인 서비스로 가족단위나 모임에도 적합한 곳이다.

종가집가마솥설렁탕

종가집가마솥설렁탕

1.2 Km    20926     2023-12-11

광주광역시 서구 시청로20번길 10
062-374-0015

광주에 처음으로 정통 서울식 설렁탕을 선보인 설렁탕 전문음식점으로 모든 음식은 100% 순수 사골로만 조리한다.

금곡동 제철유적

금곡동 제철유적

12.4 Km    33277     2023-12-20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

광주광역시 금곡동제철유적은 금곡(金谷)이라는 지명이 쇳골을 의미하고 있으며, 유적 주위에 건물지의 기단부와 수많은 철재가 남아 있어 일찍부터 유적이 나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금곡동제철유적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1567~1596)의 의병 활동과 관련한 무기 제조창으로 알려졌다. 금곡동제철유적 일대는 산화철이 포함된 미문상 화강암이 넓게 분포하고 있어, 이 암석을 모암으로 생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철을 채취할 수 있는 지역이다. 또한, 무등산 내에서 제철 연료용의 목탄도 풍부하게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 작업장 내에서 제철, 정련, 단조 철기 제작의 전 공정을 보여 주는 유구가 일괄 확인되어 15~16세기 제철 및 철기 제조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또한, 금곡동제철유적의 발굴을 통해 김덕령의 의병 활동 과정에서 무기 제조 장소로 활용된 역사적 사건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유적지에 이르려면 무등산 의병길을 따라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광주호

광주호

12.4 Km    57981     2023-10-31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광주에서 동쪽으로 16km 지점에 있는 광주호는 담양호·나주호·장성호 등과 함께 영산강 유역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영산강의 지류 고서천을 댐으로 막아 1976년 9월 준공된 인공호수이다. 4개 호수 중 가장 규모가 작지만, 댐의 길이는 505m, 높이 25m로 결코 작지 않은 크기를 가지고 있다. 담양군 고서면 분향리의 용대산과 그 건너편을 막아 만든 것인데 1974년에 공사를 시작해 1976년에 완공했다. 광주호는 무등산 아래에 위치하여 주변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룬 호반 휴양지로서, 어족이 풍부해 낚시터로도 각광을 받아 많은 휴양인파가 찾는다. 광주호 상류 충효동 일대에는 송강 정철의 가사문학 유적지인 식영정을 비롯해 환벽당, 소쇄원, 취가정, 독수정 등의 정자가 자리잡고 있어 조선시대 정원문화의 진수를 보여 주고 있다. 광주호 남쪽으로는 2006년 개장한 호수생태원이 있어 시민들의 자연생태학습과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볼튼호텔 [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볼튼호텔 [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1.2 Km    18     2024-06-21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연하로 31
062-714-1003

볼튼호텔은 광주 지하철 1호선 상무역에 가까운 비즈니스 호텔이다. 전 객실에 의류관리를 위해 LG스타일러를 두었고, 일부 객실에는 안마의자와 공기청정기를 비치했다. 1층에 공용 데스크톱PC와 노트북, 프린터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존을 마련했다. 조식은 한식과 양식 뷔페로 무료로 제공된다. KTX․SRT 광주송정역, 유스케어광주버스터미널과도 인접해 교통이 편리하고, 광주 주요 관광지와도 가깝다.

너릿재공원

12.4 Km    21799     2023-09-26

광주광역시 동구 남문로 48-8

광주광역시 동구와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을 연결시키는 너릿재터널 입구의 화순 쪽 도로변에 조성된 작은 공원이다. 1971년 터널이 개통 되기 전까지만 해도 너릿재는 큰 눈이 오면 한 달이 넘게 길이 끊기곤 했고, 그 이전에는 대낮에도 산적이 나오는 험한 고개였다. 또 갑오농민전쟁 때에는 농민군들이 무더기로 처형되고, 한국전쟁 때는 빨치산과 국군들이 대치했던 곳이었다. 『여지도서』(화순)에 "북쪽으로 광주와의 경계에 있는 판치(板峙)까지 가는 길이 9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 "판치는 북쪽 10리에 있으며, 광주와 경계이다"라고 수록되어있다. '판(板)'은 판판하고 넓게 켠 나뭇조각인 널빤지를 의미하는데, 치(峙)는 언덕이나 재(고개)를 를 뜻하는데 널재 또는 널의 재에서 너릿재가 한자로 표기되면서 판치가 된 것으로 보인다. 너릿재 터널을 오가는 이들의 휴식처인 너릿재 공원에는 1951년 4월 너릿재에서 싸우다 산화 한 무명용사들의 묘지와 1950년 10월 북한군의 습격으로 숨진 당시 화순경찰서 소속 경찰관 23위를 모신 순국경찰묘지가 있으며 충혼불망 비도 세워져 있다. 광주 쪽의 너릿재터널 입구에도 시비(詩碑)와 쉼터 등이 설치된 만남의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용진정사

12.4 Km    22650     2024-04-29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서로 180-48

일제강점기의 용진정사는 한말의 도학자 후석 오준선(1851∼1931)이 일본이 한국을 병탄하자 망국의 한을 달래면서 용진산에 강당을 짓고 후진 양성에 힘쓴 곳으로서 한말 호남 의병활동의 본거지이기도 하였다. 정사는 학문을 가르치거나 정신을 수련하기 위해 마련한 집을 뜻한다. 용진정사는 용진산 남쪽의 산록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원래 용진사가 있던 곳으로 삼봉 정도전, 우암 송시열 등이 다녀갔던 곳으로 전해진다. 절이 허물어진 뒤 청안 이씨들이 그 터를 가지고 있었으나, 후석이 정사를 짓는다는 말을 전해듣고 옛 절터의 상대와 중대를 희사함으로써 정사를 지을 수 있었다. 후석이 별세한 뒤 문인들이 정사 동쪽에 3칸의 용진영당을 세우고 1924년 석지 채용신이 그린 초상화를 모셨다. 영당의 좌우벽에는 큰아들 북파 오헌수와 둘째 아들 도호 오동수의 영정이 함께 걸려있다. * 일제강점기의 의병, 후석 오준선 * 후석은 본관이 나주이며 광산구 도덕동 도림마을에서 오하규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백부 향규에게 입양되었다. 8세 때부터 이웃에 사는 친척 오태규로부터 사서와 근사록을 배웠다. 이어 18세 때부터 노사 기정진에게 배웠으며, 이를 계기로 송사 기우만, 식재 기재, 현와 고광선 등과 사귀었고, 전재 임헌회, 입재 송근수 등에게서 학문의 폭을 넓혔다. 그의 학문 체계는 경학, 성리학, 예학, 의리론 등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 1910년 일제는 명사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은사금이라는 금품을 지급하려 하였는데, 이를 거절하자 헌병대로 끌려 가 갖은 협박을 가했으나 끝내 받기를 거절하였다. 이후 1917년 용진산에 들어가 193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후학을 가르치니, 문하생이 600여명에 이르렀다. 1919년 고종이 승하 하시자 문하생들과 용진정사 앞의 바위에서 통곡하였는데, 그뒤 이 바위를 읍궁암이라 불렀고, 원수를 갚기 전에는 상복을 벗을 수 없다하여 일생동안 백립을 쓰고 지냈다. 명정에 조선 유민이라 쓰도록 유언하였다. 1934년에 그의 학문적 체계를 정리한 문집 25권 12책이 간행되었다.

너릿재옛길

너릿재옛길

12.4 Km    1     2023-09-05

광주광역시 동구 남문로 48-8 공중화장실

너릿재 옛길은 광주 동구 선교동에서 화순읍을 잇는 약 4.3Km의 고갯길로, 예로부터 광주와 전남 동남부권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였다. 무등산에서 장불재로 이어져 남쪽 수레 바위산과 소룡봉 사이의 재로 현재 29번 국도가 통과하고 있다. 너릿재는 1971년 터널이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눈이 많이 오면 한 달 넘게 길이 끊기기도 했고, 옛적에는 낮에도 산적이 나오는 험한 고개였다고 한다. 또한 갑오 농민 개혁 때에는 농민군들이 무더기로 처형되었고, 6.25전쟁 때는 빨치산과 국군들이 대치했던 것이기도 하다. 『여지도서』(화순)에 ""북쪽으로 광주와의 경계에 있는 판치(板峙)까지 가는 길이 9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 ""판치는 북쪽 10리에 있으며, 광주와 경계이다.""고 수록되어있다. '판(板)'은 판판하고 넓게 켠 나뭇조각인 널빤지를 의미하는데, 널재 또는 널의 재에서 너릿재가 한자로 표기되면서 판치가 된 것으로 보인다. 1971년 너릿재터널 개통 후에 오랜 세월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걷기 좋은 명품 숲길”로 다시 탄생한 너릿재 옛길은 계절마다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특히, 봄이 되면 산등성이를 따라 놓인 고갯길을 따라, 연분홍빛 벚꽃길이 장관을 이룬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고 자연 그대로 피어난 벚꽃들을 보기위해 많은 시민들이 찾는 인기장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