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김병순 고택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익산 김병순 고택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익산 김병순 고택

14.0 Km    16649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함라면 수동길 20

익산 김병순 고택의 안채와 사랑채는 1922년 건립되었고, 행랑채는 1930년에 건립되어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나 개화기 전통가옥 형식에 근대의 건축기법이 가미되는 당시의 시대상과 건축적 특징, 건축양식의 시대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익산 둘레길] 함라산길

[익산 둘레길] 함라산길

14.0 Km    19177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함라면 수동길 8
063-859-5438

익산 둘레길은 전라북도 익산시의 함라산, 미륵산 등을 완만히 걸을 수 있게 조성된 저지대의 수평 산책로로, 누구나 익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2009년 함라산 둘레길을 시작으로 2011년까지 총 6개의 둘레길을 조성하였다. 그중 함라산 둘레길은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라산 일원에 있는 도보 여행길이자 익산시의 대표적 둘레길이다. 함라산 둘레길은 익산시에서 2009년 11월 [백제의 숨결! 익산 둘레길 사업]으로 만들었다. 함라면 함라산 일원에 산과 강으로 이어진 도보 여행길로 익산시 함라면에 자리한 함라산 부잣집을 시작으로 골목길과 옛 담장을 따라 조해영 가옥을 지나간다. 담장과 옛 건물이 어우러져 있는 운치를 뒤로하고 산림문화체험관으로 가는 길에선 산림욕 체험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다음으로 야생차 북한계 군락지를 지나 입점리고분전시관, 웅포곰개나루, 그리고 숭림사를 거쳐 다시 함라 삼부잣집으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도보로 약 8시간 소요되고, 총 거리는 약 24㎞이다.

조해영가옥

14.1 Km    16685     2024-05-31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함라면 수동길 8

조해영가옥은 익산 김병순 고택, 이배원 가옥과 함께 ‘함라마을 삼부잣집’이라 불린다. 다른 부잣집과 달리 조해영의 선조들은 예로부터 함라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왔다. 조씨 집안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은 조해영의 고조할아버지인 조한기인데, 고종 때 사천군수와 정읍군수를 역임하였다. 이후 조해영의 아버지인 조용규가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1918년 조해영가옥을 세웠다. 조용규는 1923년 함라마을의 다른 부자들처럼 대규모 농장을 설립하였으며, 대륙호모공업 주식 500주를 소유하면서 대주주로서 기업 운영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조해영가옥은 본래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사랑채 ‘몸채’와 별채 ‘새방채’, 행랑채, 농장 사랑채, 문간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제 강점기 부농 집안의 생활상을 보여 주고 있으며, 한옥의 변화 과정과 함께 외래문화의 유입을 살펴볼 수 있는 문화 유적이다.

소자파묘비

14.1 Km    16025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화곡1길 53-15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소자파의 묘비다. 1526년(중종 21)에 건립되었으며 진주소씨 익산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비신은 대리석으로 높이 165㎝, 너비 93㎝, 두께 23㎝이다. 화강암으로 된 대석은 가로 136㎝, 세로 98㎝, 높이 73㎝이며, 전면과 후면은 2개의 정사각형 안에 용화문을, 윗부분은 연판문으로 장식하였다. 4각의 받침돌은 국화무늬를 조각하였다. 머릿돌은 앞·뒷면에 연꽃과 구름무늬를 새겨 넣었는데 그 조각이 매우 섬세하고 뛰어나다. 비의 전액은 글씨 크기가 약 10㎝로 김희수(1475~1527)가 썼으며 남곤(1471~1527)의 글이다. 비의 뒷면은 이행(1478~1534)의 글이고, 글씨는 크기가 약 10㎝로 성세창(1487~1548)이 썼다. 비의 모습이 완전하고 비문의 글씨도 선명하며 조각 수법도 우수하다. 또한 비의 건립연대가 중종 21년(1526)으로 익산지역에 전해오는 금석문으로서는 가장 빠른 것이어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최호장군유지

14.1 Km    24309     2024-06-13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원발산길 33-2

최호장군유지는 조선 선조 때의 무신 최호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영조 5년(1729)에 최호의 후손 최호선이 세웠으며, 최호의 아버지 최한정과 최호의 아들과 손자인 최몽란, 최효설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있다. 군산시 개정면 발사리에서 태어난 최호 장군은 무장으로서 여러 관직을 거치고 정유재란 때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이곳에는 최호 장군과 관련된 유품과 군산시 향토 문화유산인 삼인보검 등이 보관되어 있다. 최호 장군 유지는 사당, 유물전시관, 묘역으로 조성되어 있다. 사당을 들어서면 전면에 ‘충의사’라는 현판이 걸린 건축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글 뜻 그대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충신의 의로운 발자취를 느끼게 한다. 조선 시대 사당 건축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건축적 가치와 우리나라 및 지역에서 최호 장군이 갖는 중요한 의의를 높이 평가하여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백산서원(김제)

14.2 Km    2059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백산면 하서3길 84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백산서원은 1928년 일제강점기에 창건된 이후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청곡 윤찬을 비롯하여 구봉 윤여임, 죽계 백선남, 죽음 윤자선, 담재 윤자민 등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백산사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무인 및 무관들이 모여서 강의를 하던 강당은 정면 5칸이다. 내삼문과 외삼문은 모두 3칸이다. 사당의 기둥은 백두산에서 베어 낸 나무를 바다를 통하여 옮겨 왔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색이 바랬으나, 상당히 큰 규모의 사원이다. 파평 윤씨 백산사 종중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함라한옥체험단지

함라한옥체험단지

14.2 Km    0     2024-03-29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함라면 함라교동길 25
010-2763-1012

전라북도 익산 함라면에 위치한 함라한옥체험단지는 전통주거문화체험과 한옥에서의 고풍스럽고 안락한 쉼을 통해 힐링의 시간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안채, 사랑채, 별관채에 총 11개의 객실이 준비되어 있고, 객실에 따라 누마루가 있기도 하며, 온돌방과 침대방이 있어 니즈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화전만들기, 플로깅, 한국무용, 판소리/민요, 장구 등 다양한 예술 체험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자연과 더불어 전통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다.

만경낙조전망대

만경낙조전망대

14.3 Km    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

김제에 위치한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곳 중 첫손에 꼽히는 만경 낙조 전망대는 새만금 광역 탐방로에 있는 너른 평야 지대 한가운데 솟은 작은 언덕이다. 언덕 위의 팔각형 정자의 전망대에 오르면 주변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유유히 흐르는 만경강의 물줄기,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탁 트인 평야와 지평선 너머로 보이는 금빛 노을이 환상적인 풍경을 그려낸다. 눈부신 붉은 해가 신비롭게 하늘을 물들이며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움이 그림같다. 새만금 광역탐방로는 새만금 바람길과 심포항을 찾는 관광객들의 이용이 용이하도록 탐방로를 조성하였고 새만금 생태환경을 체험할 수 있으며 가족형 관광객에게 좋은 인프라를 갖춘 관광지이다. 간척지와 들판, 바람, 갈대가 있는 자연적인 생태환경을 조망할 수 있다. 투어버스가 운행하지 않는 외진 곳이라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꼭 들러보길 권하는 김제 여행의 필수 코스이다.

낙양사

14.3 Km    1608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청운4길 87-3

낙양사는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 여산송씨 집성촌인 불로마을에 있는 송정기, 송정구, 송정모 삼형제를 모신 사당이다. 죽계 송정기는 인자하고 효성스러우며 지조가 단결하여 1797년(정조 21) 정려를 받았다. 벽계 송정구는 송정기의 가운데 동생으로 형을 엄부와 같이 섬기며 효로 집안을 다스리고 예로 가르치니 향인이 흠모하여 송정기와 함께 육송사에 배향하다가 정조 때 정려를 받았다. 송정모는 송정기의 막내 동생으로 나서부터 성품이 순화하고 학문에 힘썼으며, 송시열이 덕원으로 귀양 가자 항소한 뒤로는 두문분출하고 과정에 나아갈 뜻을 끊음에 향리 사람들이 감복하여 사림들이 사당에 배향하였다. 1675년(숙종 1) 금구현 동도면 상학리(현재의 금구면 금구리)에 학천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금구현 수류면 거야(현재의 금구면 삼봉리 거야마을)에 있는 육송사로 옮겨 모셨다. 그런데 1869년(고종 6) 육송사가 철폐됨에 따라 1910년(순조 4) 지금의 자리에 사당을 세우고 낙양사라 하여 송정기 삼형제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함열향교

함열향교

14.4 Km    18158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함라면 함라교동길 27-4

함열향교는 1437년(세종 19) 훌륭한 학자의 위패를 봉안한 이래 매월 음력 초하루(1일)와 보름(15일)에 봉심을 올리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던 곳이었다. 현존 건물로는 대성전·영소전·명륜당·동재·서재·난심재·교직사 등이 있다. 함열향교는 여느 향교와 달리 공자의 영정을 별도로 봉안하는 영소전이라는 건물이 있다. 일반 향교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하기에 반드시 대성전보다 아래쪽에 건물을 세워야 해서 동재와 서재는 대성전 아래쪽에 세워져 있으나 함열향교 대성전 동쪽에는 대성전과 거의 나란한 위치에 영소전이 있다. 영소전은 함열 출신 남궁경이 1626년(인조 4)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구하여 가져온 공자의 영정을 보관한 곳으로 1717년(숙종 43) 도제조 김창집이 함열 유림들로부터 전해 듣고 숙종에게 공자의 영정을 봉안할 사당을 세워 줄 것을 상소하여 숙종 임금의 윤허로 대성전 곁에 세운 건물이라고 한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일반 향교는 향교 담장 안에 우물이 없으나 함열향교 담장 안에는 우물이 있다는 점이다. 우물에 대한 기록이 없으므로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지만 교직사가 향교 담장 안에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모든 향교의 교직사는 외삼문 밖이나 향교 담장과 연결되어 있어 향교 안으로 출입이 편리하게 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