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Km 2024-11-06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인로 154
우리나라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전 국민에게 알리고 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설립되었다. 농업의 가치와 잠재력을 널리 알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우리 농업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미래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농업의 가치를 알리는 농업관, 한식문화를 조명하는 식문화관, 연령별 어린이의 특성을 고려한 어린이박물관, 다양한 식물이 공존하는 식물원, 층층이 펼쳐진 다랑이 논밭, 12개의 농가월령 체험공간, 미래농업을 전망하는 수직농장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8.8Km 2024-10-23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인로 154
031-324-9114~5
2024년 국립농업박물관 문화제 <무르익다>가 10월 15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행사는 곡식이 무르익어 풍요로운 가을을 맞이하고, 콩이 발효되어 장이 되듯이 박물관의 전시와 행사도 무르익어 관람객을 맞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전시, 체험, 교육 프로그램으로 구성되며 무료이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하반기 기획전 ‘기다림의 맛, 시_간’ 개막, 시민과 함께하는 전통 벼베기 체험, 기획전과 연계한 심포지엄 <장醬, 가장 맛있는 농업>, 거창의 농촌·농업을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거창데이’ 등이 진행된다.
8.8Km 2024-04-23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인로 154 (서둔동)
031-324-9114~5
2024년 국립농업박물관 어린이날 행사가 5월 3일부터 3일간 진행된다. 이번 행사는 ‘박물관에서 놀고, 보고, 배우며 농촌의 생활을 체험하고 농업과 친구가 되어보자!’는 주제로 열린다.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전시, 체험, 공연 프로그램으로 구성되며 관람비는 무료이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전래동화 공연, 야외 경작지 식물 심기 체험, 농기계 포토존, 우리 농산물 먹거리 부스, 요리 프로그램 등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국립농업박물관 홈페이지 공지사항에서 확인할 수 있다.
8.9Km 2024-01-11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정조로1088번길 11
신사강정육점식당은 장안구 만석공원 앞에 있다. 정육점과 식당을 함께하는 음식점이다. 오래된 주택가 입구에 2층 건물로 규모가 큰 편이다. 1층에는 주방과 식사 테이블, 정육 공간이 있고, 2층에는 넓은 자리가 있어 모임으로 적합하다. 건물 옆에 주차장이 있으며 20대까지만 주차를 할 수 있다. 이 정육식당은 국내산 돼지고기와 한우를 취급한다. 점심 특선메뉴인 생고기 김치찌개 맛집으로 알려졌고 포장도 할 수 있다. 삼겹살과 김치찌개가 인기 메뉴이며 고기 주문 시 서비스인 선짓국이 제공된다. 주문 시 기본 찬은 가져다주고 그 이후에는 셀프로 이용해야 한다.
8.9Km 2024-01-05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로 149
삐에스몽테제빵소는 입구부터 한옥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대형 한옥 베이커리 카페이다. 고즈넉한 한옥 건물의 외관에서 본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정자와 작은 연못이 있다. 이 정자는 6인 이상의 모임 좌석이며 이용 시간은 2시간이다. 본관 앞에는 야외테라스도 있다. 본관 1층은 제빵소로 활용하고 있다. 빵 종류는 매우 다양하며, 식사 대용할 수 있는 샌드위치와 샐러드도 있다. 본관 2층은 통창으로 외부가 시원하게 보이는 모던한 인테리어로 되어있다. 엘리베이터가 있어 층간 이동이 편리하다. 별관 삐몽 카페는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요일은 노키즈존으로 운영된다. 이 제빵소는 유산균 발효사와 종을 이용한 모든 빵을 매일 굽는다. 커피 등 다양한 음료도 주문할 수 있다.
8.9Km 2024-08-19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
독산성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본성의 총연장은 1,100m이며 내성은 350m이 달하는 아담한 산성이다. 독산성의 처음 축조 연대는 분명치 않지만 독산성의 위치적 특성이 용인, 양지 간에 있는 고성과 남한산성이 기각지세를 이루어 왕도의 문호를 굳게 한다는 전략상의 이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매우 중요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원래 백제가 쌓은 고성이었고, 신라통일기나 고려 시대에서도 군사상 요지로 되어 왔다. 독산은 본래 석대산, 향로봉이라고 불려 왔고 조선시대에는 독산성이라 불려 왔으나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폈던 진묘(眞妙)한 병법 전략에 연유해 지금은 ‘세마산’ 또는 ‘세마대’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정상에는 이승만 대통령 친필의 세마대라는 현판이 붙은 누각 건물이 있다.
독산성은 군사기지로서의 주요 위치에 놓여있긴 하지만, 샘물의 부족이 흠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때문에 1593년(선조 26) 명나라 원군이 평양을 수복하고 남하함에 전라도 순변사이던 권율 장군이 명군과 호응하여 서울을 수복하고자 2만 명의 군사로 이곳에 진을 치고 대군과 대치한 독산성 전투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때 우키다 히데이에가 이끈 왜군은 이 벌거숭이산에 물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탐정 군사에게 물 한 지게를 산 위로 올려 보냈다. 그러나 권율 장군은 왜군의 의도를 꿰뚫어 보고 백마를 산 위에 끌어올려 흰쌀을 말에 끼얹어 말을 씻는 시늉을 하게 하였다. 이것을 본 왜군은 성내에 물이 많은 것으로 알고 퇴각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샘물의 부족한 단점을 권율 장군이 슬기롭게 극복한 세마대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1957년 민관으로 구성된 ‘세마대중건위원회’에 의해 복원되었다.
※ 1977년 간행된 전국 문화유적 총람에 의하면 「독산성 및 세마대지」의 연혁에 대해 백제 때 축성된 고성이었고 통일신라나 고려 시대에도 군사상 중요한 요지로 되어 왔으며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주둔했고 변이중으로 하여금 화포를 발명, 제작하게 하여 행주대첩에서 승전케 하였다. 또한, 임란 후 조정에서 독산성에 세마대를 장엄하게 세우고 병기창을 두어 무예 연습을 하게 하였으며 정조 16년(1792년)에 독산성과 세마대를 중수하였다.
8.9Km 2023-10-11
경기도 화성시 풀무골로106번길 244
약 2,650,000㎡ 대 자연 속에 자리 잡고 있어 계절에 상관없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36홀 회원제 골프 클럽으로 동남 18홀과 북서 18홀로 조성된 코스는 저마다 독특한 개성과 매력이 있다. 특히, 아기자기하면서 여성적인 6,140m의 동남 코스와 자연 그대로의 지형을 이용한 6,426m의 북서 코스가 있어 골프의 묘미를 만끽하기 충분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 1991년에 개장되었지만 관리가 잘 되어 페어웨이와 그린 상태 좋다. 복장 규정 지켜야 한다.
8.9Km 2024-06-25
경기도 오산시 양산로 186
세마오리농원은 독산성 세마지대가 있는 서오산 IC 근처 아래에 있다. 주변이 자연으로 둘러싸여 공기 좋고, 나들이하기에 좋은 장소다. 식당 내부로 들어서면 양쪽으로 홀이 나뉘어 있는데, 내부가 넓고 좌석도 많이 있어 단체 모임 장소로 좋다. 메뉴는 생오리 한 마리 또는 반 마리로 단일 메뉴이다. 기본 반찬이 제공되며 부족한 반찬은 셀프바에서 가져다 먹을 수 있다. 생오리 한 마리는 숯불로 구워 먹을 수 있는 생오리와 동절기에는 오리 뼈 탕과 가마솥 밥이 나오고, 하절기에는 흑임자 깨죽과 냉면이 제공된다. 샐러드로 양배추 겨자소스가 나와 맛을 돋워준다. 음식점 주변에는 작은 연못 둘레길이 있어 식사 후 산책하기 좋다.
8.9Km 2024-12-23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청마로17번길 3
청덕동 88cc 입구 물푸레 4단지 옆에 위치한다. 질 좋은 한우 고기와 제주산 삼겹살을 먹을 수 있다. 고기류 메뉴뿐만 아니라 육회비빔밥, 갈비탕, 김치찌개 등 다양한 식사 메뉴도 준비되어 있다. 매장에서 직접 담근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양념과 신선한 우리 재료를 사용하여 다양한 밑반찬을 만든다. 야채류는 매장 옆 텃밭에서 직접 키워 무농약으로 재배된다. 한우직판장을 함께 운영한다.
8.9Km 2024-05-10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조선 제 22대 왕 정조는 효심이 각별했던 임금이다. 왕위에 있는 동안 보여준 지극한 효심은 백성에게까지 추앙을 받았다. 그는 비명에 숨져간 부친 사도세자의 묘를 옮겨 묘호를 바로 세우는 등 선친의 원혼을 위로하는 한편 1년에도 수차례 능 참배길에 나섰고 가식없는 효심으로 백성을 감복시켰다. 정조는 사후에도 부친의 능이 있는 지금의 화성시 화산기슭에 묻혔다. 수원시 교외 약 8km쯤에 자리잡은 융건릉(隆健陵 사적)은 부친 사도세자(장헌세자) 장조와 그의 비 혜경궁 홍씨(헌경왕후)를 모신 융릉(隆陵)과 정조대왕과 그의 비 효의왕후 김씨를 모신 건릉(健陵)을 말한다. 융릉은 화산의 서남쪽, 건릉은 서북쪽 기슭에 들어 있어 모두 서향이다.
그래서 해질녘의 분위기가 더욱 그윽하고 깊은 느낌을 안겨 준다. 이들 능 입구에는 재실이 있고, 능 주변은 하늘을 가린 짙은 송림과 상수리 나무숲이 이루어져 있어 역사교육과 숲길 산책으로 권장할 만한 곳이다. 능을 다 돌아보는 데는 숲속 오솔길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융건릉과 함께 들러 보아야 할 곳으로 기복사인 용주사가 있다. 정조는 능에서 1.5km인 용주사를 증축할 때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목판에 새겨 보존하도록 명을 내리고 당대 제일의 화가 김홍도에게 맡겨 아름답게 꾸미도록 했다. 50여 목판과 함께 대웅전 옆 잔디밭에는 10개 항에 이르는 부모은중경을 새긴 탑비가 우뚝 서 있다. 대웅전 후불탱화는 김홍도의 지휘로 그려진 걸작이고 정조대왕이 심었다는 대웅전앞 회양목은 수령이 무려 200여년이 넘는 천연기념물이다. 범종각의 동종도 상원사 동종, 국립 경주박물관의 에밀레종 등과 더불어 손꼽히는 걸작이다.
* 융릉
융릉은 조선 제22대 정조의 아버지인 장조(1735~1762)와 그의 비인 헌경왕후(獻敬王后)(1735~1815) 홍씨가 묻힌 곳이다. 1749년(영조 25년) 부왕을 대신하여 서정을 하면서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노론들과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숙의 문씨 등의 무고에 의해 영조의 미움을 사 영조 38년 (1762) 뒤주 속에 갇혀 세상을 떠났다. 그후 영조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로 사도라는 시호를 내렸고, 묘호를 수은묘라 하였다. 그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자, 장헌으로 추존되었다가, 1899년 (광무 3년)에 다시 장조로 추존되었다. 장조의 무덤은 경기도 양주 배봉산 (현재의 동대문구 휘경동)아래에 있었는데 정조가 수원화산으로 옮기면서 현륭원이라고 하였고, 장조로 추존된 뒤 능호를 융릉으로 높였다. 헌경왕후는 영의정 홍봉한의 딸로 1744년(영조 20년)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장조가 세상을 떠난 뒤 혜빈 정조 즉위년에 궁호를 혜경으로 올렸고, 뒤에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헌경황후에 추존되었다.
남편의 참사를 중심으로 자신의 한 많은 일생을 자서전적인 사소설체로 적은 [한중록]을 남겨 궁중문학의 효시가되었다. 웅릉은 합장릉으로 동,서, 북 3면에 곡장을 두르고, 봉분은 모란과 연화문을 새긴 병풍석을 둘렀는데 난간석은 생략되었다. 그러나 방위 표시를 위해, 병풍석 위에 꽃 봉오리 모양의 인석에 문자를 새겨 넣었다. 봉분 바깥으로 석호와 석양을 각각 2기씩 배치하여 봉분을 호위하고 있다. 봉분 앞에는 상석, 망주석과 장명등, 문인석과 무인석, 석마들을 배치하였는데, 추존 왕릉임에도 무인석까지 배치한 점이 중요하다. 또한 제향을 지내는 정자모양을 한 정자각, 정자각 뒤로 제향 후 축문을 태워 묻는 사각형의 석함인 예감, 비를 인치하는 비각, 제물을 준비하는 수라간, 제향후 축문을 태워 바라보는 곳인 망료위 등의 부속 시설이 있다. 신문, 정자각까지는 두 사람이 걸을 수있는 폭의 신도와 어도로 구분하였고, 정자각 그 아랫단 왼편까지 넓게 박석을 깔았다. 융릉은 누가 보아도 능 조영에 정성을 들인 정조의 효심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 건릉
건릉은 정조(1776-1800 : 재위, 1752-1800)와 효의왕후(1753-1821) 김씨가 묻힌 곳이다. 정조는 장조의 아들로 1759년 (영조 35년)에 세손에 책봉되었다. 1762년 장헌세자가 비극의 죽음을 당하자 영조의 맏아들 효장 세자(추존)의 후사가 되어 왕통을 이었다. 1775년(영조 51년) 연로한 영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하였고, 영조가 승하하자 1776년에 왕위에 올랐다. 정조는 아버지인 장헌 세자가 당쟁에 희생되었기에 왕권을 강화하고 체제를 재정비하기 위하여 영조 이래의 기본 정책인 탕평책을 계승하였다. 왕실의 도서관인 규장각을 설치하였고 새로운 인물들을 대거 등용하여 새로운 혁신정치를 펼쳤다. 또한 임진자, 정유자 등의 새로운 활자를 만들었으며, [속오례의][국조보감][대전화통][증보동국문헌비고] 등의 많은 서적을 편찬, 간행하였다. 재위기간은 정조의 학문적 소양에 터전한 적극적인 문화 정책의 추진과 선진문화인 중국의 건륭 문화의 영향 등으로 문화적인 황금시대를 이루어 조선후기 문예부흥기를 이루었다.
효의 왕후는 청원부원군 김시묵의 딸로 1762년 (영조 38년) 세손빈으로 책봉 되었으며, 정조가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다. 1821년 (순조 21년) 창경궁에서 승하하였다. 건릉은 합장릉으로 동,서,북 삼면의 곡장에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다른 상설내용은 융릉의 예를 따랐다. 석물은 난간석 바깥으로 석호와 석양을 각각 4기씩 배치하여 봉분을 호위하고 있다. 봉분 앞에는 상석, 망주석과 장명등, 문인석과 무인석, 석마들을 배치 하였다. 또한 제향을 지내는 정자 모양을 한 정자각, 정자각 뒤로 제향 후, 축문을 태워 묻는 사각형의 석함인 예감, 비를 안치하는 비각, 제물을 준비하는 수라간, 제향 후 축문을 태워 바라보는 곳인 망료위 등의 부속 시설이 있다. 신문, 홍전문에서 정자각까지는 신도와 어도로 구분 하였고, 정자각 그 아랫단 왼편까지 넓게 박석을 깔았다. 신문 밖으로 능의 수호, 관리를 위한 재실이 있다.
* 장조 (사도세자)
1) 조선조 21대 영조의 둘째 아들로 이름이 선으로 영빈 이씨의 소생이며 영조 11년(1735)1월 21일 창경궁에서 탄생
2) 영조 12년(1736년) 2세에 왕세자로 책봉되고 영조 25년(1749년)에 수렴청정
3) 영조 38년(1762년)윤 5월 21일 뒤주에 갇혀 28세로 승하
4) 시호를 사도라 하고 7월 23일 경기도 양주군 남면 중량포(현 동대문구 답십리) 배봉산에 장사 지내여 원호를 영우원이라 하였다가 27년 후인 정조 13년(1789년) 10월 7일 이곳 화산으로 천장하고 원호를 현륭원이라고 고침
5) 광무 3년 10월에 왕으로 추존하여 묘호를 장종이라 하고, 능호를 융릉이라 하였다가 같은해 11월에 시호를 의황제라 추존하고 묘호를 장조로 고침
* 헌경왕후 (혜경궁 홍씨)
1) 풍산 홍씨로 영의정 홍봉한의 딸로 영조 11년 (1735년) 6월 18일 탄생
2) 영조 20년 (1744년) 10세때 세자빈으로 책봉
3) 순조 15년 (1815년) 12월 15일 81세로 승하하여 3월 3일 현륭원에 합장
4) 정조 즉위해 (1776년)에 궁호를 혜경궁이라 하고 광무 3년 (1899년) 경의왕후로 추존하고 같은 해 11월에 황후로 추존함
* 정조 (조선 22대 임금)
1) 정조는 장조(사도세자)의 아들로 재위 24년(1776-1800년)동안 탕평정치를 실시하고 선정을 베풀고 규장각을 두어 학문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2) 장조(사도세자)의 둘째 아들로 이름이 산으로 어머니는 현경의황후(혜경궁 홍씨)이며 영조 28년(1752년) 9월 22일 탄생
3) 영조 35년(1759년)왕세손으로 책봉되고 영조 51년 (1775년)에 수렴청정하고 이듬해(1776년) 3월 10일 경희궁에서 즉위
4) 정조 24년(1800년) 6월 28일창경궁에서 49세로 승하
5) 묘호를 정종이라 하고 11월 6일 융릉 동쪽 2째 능선에 장례하였다가 22년 후인 순조21년(1821년) 9월 13일 현 위치로 천장
6) 광무 3년 11월 선 황제로 추존하고 묘 호를 정조로 고침
* 효의선황후
1) 청풍김씨 청원 부원군 김시묵의 딸이며 영조 29년 (1753년) 12월 13일 탄생
2) 영조 38년 (1762년) 2월에 왕세손 빈으로 책봉됐다가 정조가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
3) 순조 21년 (1821년) 3월 9일 창경궁에서 69세로 승하하여 9월 13일 건릉에 합장
4) 광무 3년 11월 효의선왕후로 추존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