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가게]보은집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백년가게]보은집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백년가게]보은집

13.5Km    2024-09-30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감바위로30번길 6
041-741-6960

40여 년 동안 이어온 갈치조림의 참맛과 꽃게장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갈치 요리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최고급 제주갈치만을 사용하여 조리를 하기 때문에 맛이 좋아 오랜 세월 각광받고 있으며 계절에 맞는 한정식 같은 40여 가지 밑반찬 또한 맛을 더해준다.

토배기산장

13.6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동상면 송광수만로 938
063-243-9567

흑돼지를 장작불에 초벌구이하여 불판에 놓아주는 특색있는 토배기산장은 완주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초벌구이시 한번 기름기가 빠지고 불판에서 다시 한 번 기름기가 빠진 흑돼지는 담백하고 장작의 향도 남아있다. 야외에서도 먹을 수 있도록 커다란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어 마치 캠핑 나온 기분으로 즐길 수 있다.

이병기선생 생가

13.8Km    2024-09-09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가람1길 64-8

이 집은 국문학자이며 시조 작가인 가람 이병기 선생이 태어나 살던 곳이다. 조선 말기 선비의 가옥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안채, 사랑채, 헛간, 고방채, 정자 등이 남아 있다. 소박한 안채와 사랑채, 아담한 정자와 연못에서 선비 가옥의 면모를 잘 살필 수 있다. 슬기를 감추고 겉으로 어리석은 체한다는 뜻을 간직한 ‘수우재(守愚齋)’라는 사랑채 이름에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며 평생을 지조 있는 선비로 살아온 그의 풍취가 은은하게 느껴진다. 가람 선생은 우리 한글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여 일찍이 1930년대부터 조선어문연구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1930년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위원과 ‘선어 표준어’ 사정위원이 되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경남도 흥원경찰서로 끌려가 1년간 옥고를 치른 뒤 고향에 내려와 칩거하였다. 한편 해방 후에는 전북대학교,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에서 국문학을 가르쳤다. 주요 저서로 ‘국문학전사’, ‘역대시조선’, ‘가람문선’ 등이 있다. * 이병기선생 생가 탱자나무(전라북도 기념물) * 탱자나무는 낙엽 활엽 소교목으로 4~5월에 꽃이 피고 9~10월에 탱자가 열린다. 호남과 영남지방에 주로 분포하며 강화도가 북한계선이라고 하나 강원도 양양지방에서도 자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탱자나무의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되며 줄기에 가시가 있어 울타리용으로 많이 식재되었다. 이병기선생 생가의 탱자나무는 흉고둘레 60cm, 높이 5m 정도이며, 수형과 수세가 좋은 편이다. 수령을 알 수 있는 기록은 없으나 이병기 선생의 고조부가 이곳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시기를 기준으로 보면 200년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람문학관

가람문학관

13.8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가람1길 76 가람문학관

가람 이병기 선생은 익산 출신으로, 우리의 말글과 문화를 지켜내고 시조를 현대적으로 부흥시킨 시조시인이자 국문학자이다. 가람문학관은 이러한 가람 선생의 현대시조 혁신, 국문학 정립, 한글 및 문화 수호 활동 등 수많은 업적과 정신을 기리고 그 가치를 계승하고자 개관하였다. 가람문학관은 익산시민을 포함한 전국의 관람객들을 위한 힐링 공간이자 문화인의 교양 함양 공간이다. 주요 시설로는 가람과 마주하기(영상실), 가람의 시조 음미하기(가람실), 가람의 생애 되짚기(상설전시실), 가람 기억 가져가기(체험실), 천호산 말길(세미나실), 용화산 능둠(휴게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샤인랜드

13.8Km    2024-07-01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봉황로 102

충남 논산에 위치한 선샤인 랜드는 다양한 체험과 관람을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서바이벌 체험장, 밀리터리 체험관, 선샤인 스튜디오, 1950 스튜디오 4군데로 나눠져 있다. 최신의 VR 기술을 활용한 밀리터리 체험관과 온몸으로 뛰며 즐기는 서바이벌 체험을 통해 다양한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다. 또한 한국전쟁에서 끝난 1950년대를 재현한 세트장은 과거의 추억여행을 할 수 있고 동시에 새로운 세대에 게에는 역사의 현장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비채야영장

비채야영장

13.8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동상면 동상로 1260-13

완주에 위치한 비채야영장은 펜션 겸 캠핑장이다. 규모가 꽤 크다. 캠핑 사이트는 총 54개가 있고, 파쇄석, 데크석, 노지가 섞여 있다. 크게 4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S 구역은 저렴한 편이지만 사이트가 작은 편이다. 이곳은 전용 계곡과 함께 대형 수영장이 있어 아이들과 물놀이하기에 좋다. 수영장에서 당일 평상만 대여하는 것도 가능하고 가을부터는 장박도 가능하다. 인근에 대둔산 도립공원, 고산자연휴양림, 모악산 도립공원 등 관광지가 많다.

한마음캠핑플레이스

한마음캠핑플레이스

13.9Km    2024-06-20

충청남도 금산군 대둔산로 206 대둔산자연휴양림

한마음캠핑플레이스는 충남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에 자리 잡았다. 금산군청을 기점으로 15km가량 떨어졌다. 자동차를 타고 읍내로와 대둔산로를 번갈아 달리면 닿는다.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25분 안팎이다. 캠핑장에는 카라반 24대와 글램핑 8개 동이 마련돼 있다. 카라반과 글램핑 내부에는 침대, TV, 테이블, 개수대, 취사도구, 조리도구, 화장실, 샤워실 등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시설이 완비돼 있다. 수영장, 매점, 산책로 등 부대시설도 알차다. 주변에는 대둔산도립공원이 있어 연계 여행이 수월하다. ※ 반려견 동반 불가능

여산동헌

13.9Km    2024-09-09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동헌길 13

이 건물은 3단의 계단식 건물 터 제일 상단부에 들어서 있는데, 조선시대 말기에 건축한 것으로 보인다. 벽과 방의 구조는 근래 일부 개조하여 본 모습은 잃었지만,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추녀와 대청마루에서 한식 목조 건물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다. 여산 동헌은 전국적으로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은, 옛 모습을 간직한 조선시대 지방관청 건물의 하나이다. 『여산 동헌 느티나무』전라북도 기념물 (2002.08.02)이 느티나무의 유래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여산 동헌과 주변에 7주의 대형 느티나무가 집중 분포되어 있음에 따라 동헌의 설치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여산은 전주에 속해 있다가 공양왕 3년(1391) 감무를 두고 낭산과 공촌, 파제 두 부곡의 권농사까지 겸임하였고, 조선 태종 2년(1402)에 여산현이라 하고, 세종 18년(1436)에는 원경왕후의 외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다고 함으로 조선 태종대에서 세종대에 동헌이 설치되는 과정에서 식재되었을 것으로 보여 수령은 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나무의 휴고 둘레는 4.5m, 높이는 22m이다.

여산척화비

13.9Km    2024-10-31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동헌길 13

여산척화비는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동헌 뜰에 있다. 1866년 병인양요 이후 서양 제국이 개항을 요구하는 가운데 1871년 신미양요가 일어나자, 흥선대원군이 서양 제국에 대한 항전 의식을 고양하기 위하여 전국 여러 곳에 세운 석비 중 하나이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흥선대원군이 실각하자 일본공사관의 요구로 철거되었다가 1915년 여산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발굴되어 여산동헌으로 옮겨 세워졌다. 여산척화비의 뒤에는 여산군에서 선정을 베푼 역대 관리들의 선정비 8기가 서 있다. 여산척화비는 화강암의 단면 석비로, 규모는 높이 114㎝, 너비 46㎝, 두께 9㎝이며 정면에 비제를 겸한 비문이 있다.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하는 것이니, 화해를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라고 새겨져 있다. 척화비는 전국 각지에 건립되었으나 남아 있는 척화비는 여산척화비를 비롯해 10여 기로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

백지사터

백지사터

13.9Km    2024-09-27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백지사터는 여산 동헌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대원군 집정 때인 1866년 병인박해가 계속 진행되어 대학살이 감행되는 동안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한 곳이다. 얼굴에 물을 뿜고 백지 붙이기를 여러 번 거듭하여 질식사시키는 방법으로 일명 ‘도모지사(塗貌紙死)’라고도 하며, 쇄국 정책의 분노와 증오에 양심과 신앙 자유가 질식한 곳이다. 옛 동헌 뜰에는 박해 사실을 증명하듯이 대원군의 척화비가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