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로에커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이도로에커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이도로에커피

14.1 Km    2     2022-02-22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충절로 (1544, 이도로에커피)

도로가에 있는 천안에 위치한 카페이다.

들꽃

들꽃

14.2 Km    22376     2023-03-13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호서대길 110 은소반
041-522-0280

한정식과 일반 식사 및 고기류 음식 전문점으로 식사와 볼거리를 즐길 수 있는 휴식 공간이다. 아름다운 야외 정원도 잘 가꾸어져 있다.

천안시 태조산청소년수련관

천안시 태조산청소년수련관

14.2 Km    26857     2024-06-10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태조산길 261 태조산청소년수련관

태조산공원 옆에 위치한 청소년 수련시설인 태조산청소년수련관은 자연친화적 체험프로그램, 진로 및 소질 함양 프로그램, 창의적 자치활동 등 맞춤형 프로그램을 통한 청소년 역량개발에 힘쓰고 있다. 또한, 대학 및 학교연계, 지역 특화사업, 청소년 네트워킹 강화 등 법인 및 기관과의 연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태조산청소년수련관 내에는 휴게실, 공방실, 체육관, 다목적실, 예절교실, 자치활동실, 북카페, 댄스연습실, 밴드연습실 등 다양한 내부시설과 태조호, 잔디운동장, 조각공원 등의 외부시설이 함께 있어 청소년 수련 및 다양한 활동을 하기에 좋다. 방과 후 아카데미, 스포츠 클라이밍, 캠핑, 플리마켓, 과학놀이터, 진로체험, 요리 등의 프로그램이 있다.

태조산 공원

태조산 공원

14.2 Km    0     2024-09-03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태조산길 261 (유량동)

유량동 태조산 아래에 자리한 넓고 아름다운 공원이다. 공원 내에는 아담한 태조호를 비롯해 아름다운 조각공원, 농구 배구 배드민턴을 할 수 있는 실내체육관, 태조산 산책로 등이 있어 가족과 함께 도시락을 준비하여 가벼운 차림으로 나들이하기 좋은 곳다. 인공암벽등반센터, 천연 및 인조 잔디 구장도 잘 갖추어져 있다. 공원의 안쪽에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장렬히 순국한 호국영령들을 모신 ‘천안인의 상’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으며, 공원 잔디 광장에는 국군이 사용했던 전투기와 전차, 천안함 용사의 추모비와 천안함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공원 앞에는 충청남도 안전체험관과 천안시태조산청소년수련관이 있다.

고향산장

고향산장

14.3 Km    16546     2023-02-20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충절로 1474-19
041-555-9922

고향산장은 20여 년 전통의 한우구이 전문점이다. 3만 평의 대지에 연못과 폭포, 꽃과 나무 등으로 꾸며진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참숯불에 구워내는 한우 꽃등심과 양념갈비, 버섯 불고기 전골이 인기 메뉴이며 돼지갈비, 목살 등의 돼지고기도 준비되어 있다.

기와52

기와52

14.3 Km    1     2024-01-29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충절로 1474-15

기와 52는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상동리에 있는 한옥카페다. 예스러운 멋을 풍기는 외관과 전통 한옥과 어우러진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잔디가 깔린 외부에도 좌석이 마련되어 있다. 불멍을 할 수 있는 카페로도 유명하다. 팥셰이크, 달고나라테, 콜드브루허니밀크 등의 시그니처 메뉴와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가 준비되어 있다. 곳곳에 사진 찍기 좋은 포토존이 있어 연인들은 물론이고 가족단위 손님들도 많이 방문하고 있다.

이고집만두

14.3 Km    0     2024-07-24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태조산길 258

충남 천안시 유량동 태조산 자락에 있는 이고집만두는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노포 식당이다. 이곳은 오랜 역사만큼 깊은 맛이 일품인 수제만두로 만든 만두전골이 유명하다. 밀푀유나베와 수제만두, 각종 버섯을 넣고 특제 육수를 부어 나오는 전골은 진하고 깊은 맛을 선사한다. 함께 나오는 칼국수면과 만두는 추가로 넣어 보충하면 된다. 매운맛의 얼큰 샤브만두전골과 순한 맛의 맑은 육수가 일품인 만두샤브전골이 시그니처 메뉴다. 인근에 태조산 유원지가 있고 경부고속도로와 두정역이 가깝다. 아산, 당진, 공주, 논산 등 사방으로 사통팔달해 지리적 여건이 좋아 지나는 길에 식사하고 가면 좋다.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

14.3 Km    23101     2023-08-17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서리4길 48
041-620-7700

청소년계의 성원과 기대 속에 2001년 8월 15일 개원한 국립 중앙청소년 수련원은 정부가 ‘한국청소년 기본계획(1991년)’에 처음으로 조성계획을 반영한 이래 햇수로 10년 만에 그 결실을 보았다. 국립 중앙청소년 수련원은 청소년 수련활동과 관련하여 국가 중추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게 하기 위하여 정부에서 직접 건립하였으며 청소년 지도자 연수, 청소년 시범 수련활동, 연수 수련 프로그램의 개발 · 보급, 수련 시설 간 네트워크 구축, 정보교류, 국제 교류활동 등 민간부문이 추진하기 어려운 영역을 담당하며 전국의 청소년 수련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국립 중앙청소년 수련원은 애국충절의 고장인 천안의 독립기념관 동곡, 흑성산 기슭의 산림과 구릉으로 어우러진 자연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청소년지도자 및 청소년의 연수 수련을 위한 다양한 문화 · 체육 · 정보시설과 야외 체험시설을 고루 갖추고 있어 모범적, 선도적인 연수 수련활동과 전국 청소년 수련시설의 중심센터로서의 기능을 하게 된다.

아우내장 / 병천5일장 (1, 6일)

아우내장 / 병천5일장 (1, 6일)

14.4 Km    18408     2024-05-28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충절로 1718
천안시 관광안내소 041-521-2038

아우내란 ‘2개의 내를 아우른다’는 뜻으로 경상도와 한양을 이어주는 길목이다.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에 위치한 아우내장터는 조선시대부터 전국의 상인들이 청주, 진천, 조치원, 예산 등에서 지역 특산물과 소를 몰고 와 장을 형성하였으며, 인근 장터 가운데 가장 크게 번성하였다. 아우내장터는 병천 장터라고도 불리며 매월 1, 6, 11, 16, 21, 26일에 열리는데, 돼지 소창에 양배추·파·고추·마늘 등을 선지와 함께 다져 넣은 ‘병천순대’로 유명하여 천안의 맛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평소에는 장이 서지 않다가 장날이면 천막과 파라솔이 장터거리를 가득 메운다. 장이 서는 날은 각종 농수산물과 공산품이 장마당에 그득하다. 요즘 보기 드문 뻥튀기 기계도 등장한다. 마을 사람들은 쌀과 옥수수, 가래떡을 들고 나와 뻥튀기 기계 앞에 줄을 선다. 뻥튀기 장수가 “뻥이요”라고 외치면 ‘뻥’ 소리를 내면서 고소하고 달콤하고 바삭한 뻥튀기가 하얗게 쏟아진다.
장이 서는 주 무대는 아우내 슈퍼 옆 너른 빈터다. 그곳을 중심으로 인근 골목에도 장꾼들이 모여든다. 또한 1919년 유관순 열사가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 주고 만세를 불렀던 곳으로 주변에는 유관순 열사 생가, 조병옥 박사 생가가 있다.

이상설생가

이상설생가

14.4 Km    0     2023-12-05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이상설안길 10

독립운동가 이상설(1870∼1917) 선생이 태어난 생가로 목조초가집으로 안채와 헛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선생은 현 가옥에서 학자이신 이행우의 아들로 태어나 1894년 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 교수, 한성 사범학교 교관 등을 역임하면서 영어, 프랑스어 등 7개국어를 구사하여 신학문을 깨우쳤다.
1904년에는 보안회의 후신으로 대한협동회를 조직하여 민족 운동을 하였으며, 탁지부 재무관 법부협판을 거쳐 1905년에는 의정부 참찬에 발탁되었다.
같은 해인 11월7일에 수옥헌에서 이또 주재하에 대신회의가 강제 개최되어 이완용 박제순등의 찬성을 조약체결을 선언하였는바 선생은 대신회의에 실무 책임자임에도 일본군의 방해로 참석하지 못하고 다음날 새벽에 알게되어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1906년 4월에 국권회복운동에 앞장설 것을 결심하고 이동녕, 정순만과 같이 망명길에 올라 상해를 거쳐 북간도 용정으로 가서 서전서숙을 건립하고 자비로 항일 민족교육을 시켰으며 1907년 6∼7월 헤이그에서 개최하는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라는 고종황제의 위임장을 받고 이준, 이위종과 함께 한국의 실권과 국권의 회복문제를 국제여론에 호소하려다 실패한 후 이준은 현지에서 순사하였다. 선생은 귀국하지않고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여러나라로 다니면서 일본의 침략성을 폭로하고 한국의 독립이 동양평화의 열쇠라고 주장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소련령으로 이주, 한흥동의 한인마을을 건설, 민족교육을 시키다 1917년 47세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