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문학기념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농민문학기념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농민문학기념관

농민문학기념관

10.8Km    2726     2024-08-28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노천2길 5-1

농민문학기념관은 우리 농촌 현실과 농민의 애환을 형상하는 농민문학의 자료수집, 정리보관, 전시 그리고 농민문학 작가들의 만남과 나눔의 공간이다. 장편소설 <땅과 흙>으로 제1회 무영문학상을 수상 한 소설가 이동희의 충북 영동군 매곡면 노천리 생가를 복원했으며 소박한 흙벽과 너와지붕을 갖고 있다. 1층에는 창작실과 전시실 사랑이 텃밭을 면하여 있고 2층에는 자료실, 귀경재, 세미나실이 있으며 남쪽 창으로는 핏들과 황악산이 보인다. 2층 귀경재에는 이무영, 유승규, 오유권, 박경수를 비롯한 농민소설가와 김용호, 구상, 권웅, 엄한정 등 향토적 시인의 생애와 작품 자료를 비롯한 농민문학 작가 작품 자료, 충북 영동 지역 작가 작품 자료, 작가 이동희의 문학과 삶을 일람할 수 있는 발표작품, 저서, 원고 교정쇄, 창작노트, 취재답사노트, 사진 테이프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그 외에 강의노트, 교재, 지도, 논문, 그리고 남북한의 문학지, 동인지, 북한 작가 작품 자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농민문학기념관은 2005년 개관했으며 농민의 이상과 농촌 현실을 한국 고유의 정서로 표출한 농민문학을 발전시키며 가장 한국적인 문학이 세계문학이 된다는 신념을 실천하고 있다.

경양서원

11.1Km    975     2023-11-16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3길 105

송오(松烏) 여응구(呂應龜)·감호(鑑湖) 여대로(呂大老) 부자(父子)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으로, 조선 시대 숙종(1675~1720) 때 창건되었다. 1868년 서원 철폐령에 따라 강당 건물은 남겨 둔 채 사당 건물을 철폐하였고, 현판을 ‘경당서당(鏡堂書堂)’으로 바꾸었다. 《송오문집(松烏文集)》·《감호문집(鑑湖文集)》 판본이 이곳에 남아 있다.

영동 화수루

영동 화수루

11.8Km    16589     2024-08-28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하도대3안길 33-18

원래는 조선 중기인 명종 1년(1546)에 옥계서당으로 세워졌던 건물이다. 이것을 순조 4년(1804)에 고성 남 씨의 수일파 문중에서 후손들에게 학문을 전수할 목적으로 지금의 위치에 옮겨 짓고 그 이름도 화수루로 바뀌었다. 앞면 2칸·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앞면 2칸은 우물마루를 깔아 누마루를 만들고 뒷면 2칸은 온돌방을 만들었다. 영동 화수루는 앞면과 옆면의 칸수를 같게 하고 4면에는 난간을 돌리고, 누마루를 만들어 놓은 것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즐겨 이용하던 누각과 정자건축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구불구불 고개 너머 만나는 계곡과 휴양림

구불구불 고개 너머 만나는 계곡과 휴양림

11.9Km    2735     2023-08-08

민주지산은 충북 영동, 경북 김천, 전북 무주가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울창한 숲과 20km에 이르는 물한계곡이 있어 시원한 여름을 나기에 제격이다. 칼을 든 장수가 말을 타고 넘었다는 스물네 굽이 도마령을 넘으면 민주지산자연휴양림이 있다. 민주지산에 기대어 온전히 하루를 쉬어보는 건 어떨까?

영동 사로당

영동 사로당

12.0Km    16421     2024-07-22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민주지산로 3759-13

영동 사로당은 현감 박수근(朴守謹)이 그의 아우들과 학문을 논하던 곳으로, 사로당이라 하였다. 박수근의 아우들은 수인(守認), 수해(守諧), 수원(守源)이다. 이곳은 조선 숙종 36년(1710)에 세워졌고, 영조 43년(1767)에 중수하였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면에서 땅에서 1.2m 높이 위에 마루가 설치된 전형적인 별당 건축이다. 보기 드문 높은 마루를 하고 사면에는 간결한 난간을 돌리고 있는 특징이 보이고 있다. 앞면 3칸 중 왼쪽 끝 1칸과 오른쪽 모퉁이를 온돌방으로 꾸미고 나머지를 대청마루로 하였다. 2단의 받침대 위에 주춧돌을 놓고 둥근기둥을 세웠다. 사방에 간결한 난간이 둘러져 있고 온돌방의 창호가 알맞게 짜여 있다.

달자캠핑장

달자캠핑장

12.1Km    0     2023-10-06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대해길 239-58

달자 캠핑장은 새들이 지저귀고 풀내음이 묻어나는 곳이다. 미래에 좋은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곳이다. 온갖 야생화가 어우러져 있는 자연 속에서 잠시나마 마음은 옛날 생각에 잠기게 된다. 다정한 성격의 주인장님 덕분에 더욱 행복한 기억이 된다고들 한다.

봉유재

봉유재

12.2Km    15924     2024-07-30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내동1길 40-2

봉유재는 조선 중종 때 안주목사를 지낸 박성량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인조 10년(1632) 3월에 건립한 재실이다.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중수 과정이 있었으며, 2019년에 해체 보수하였다. 건물이 세워진 당시에는 대종재인 흥학당 앞에 세워져 있다는 이유로 현판도 설치하지 않은 채 소종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선조를 받들고 후손에 복을 준다’는 의미로 봉유재라는 현판을 설치하고 재실, 서당으로 사용하였다. 봉유재는 저연석 기단과 초석을 사용하여 건립하였는데, 정면 4칸 및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구성하고 정면 2칸은 큰 대청마루를 이루고 있으며, 높이가 낮은 굴뚝 등은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변을 토석담으로 두르고 전면에는 삼문을 배치하였으나, 이는 후대에 복원된 것으로서 초기에 건물이 어떤 형상으로 건립되었는지는 추정하기 어렵다. 충주 박 씨 종중 세거지인 매곡면 노천리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인 ‘흥학당’, ‘사로당’과 인접 마을에 문화재 자료인 ‘세천재’가 세워져 있어 서당, 사당, 재실이 모두 갖추어진 전형적인 마을로 종중의 지역 정착과 발전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동 흥학당

영동 흥학당

12.2Km    17221     2023-09-01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내동1길 42

이 건물은 충주 박씨 종중에서 후손들의 강학을 위하여 조선 중종 15년(1520)에 건립한 것으로 흥학당기에 의하면 조선 숙종 때 중수한 뒤 영조, 고종 때에도 중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의 오량집으로 활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남향하여 있다. 덤벙 주초 석을 놓고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기둥 위의 공포를 초포를 초익공 양식으로 짜고 안쪽으로는 보아지를 돌출시켜 대들보의 안쪽을 받쳤는데 특히 대청의 중간 기둥 위에 용두를 결구하였다. 중앙 2칸은 우물마루로 깔아 넓은 대청으로 이용하고 양 끝 방은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가구는 전후 평주 위에 대들보를 건 형식이며 동자주 위에도 주두가 짜여 있다.

아미랑가든

아미랑가든

12.5Km    19830     2023-04-28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영남대로 2181-21
054-431-2300

김천 시내에서 칠곡 방향 좌측 도로변에 위치한 아미랑은 조경이 뛰어난 식당이다. 업주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받았을 각종 수려한 나무들과 식물들은 이 집만의 자랑이다. 고풍스럽고 조용한 실내는 다른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게 해주며, 실내의 많은 그림들과 화분들 또한 볼거리다. 남해안에서 직접 배달되는 게와 멸치로 직접 젓갈을 담아서 제공하고 있으며 많지 않고 적당한 수의 반찬들은 질 좋은 한우와 더불어 입맛을 돋군다.  

자동서원

12.7Km    1366     2023-12-05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강곡4길 132

김천시 조마면 강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인 자동서원은 유림이 1804년(순조 4) 12월 6일부터 1806년(순조 6) 9월 3일에 걸쳐 발의하여 서원 건립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여 이후 1811년(순조 11)에 준공하였다. 서원이 자산 아래 동쪽에 앉았다고 해서 강당을 자동서원이라 칭하였으며 사우를 상의사라고 남와 강설과 기재 강여호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서원 일부가 훼철되었으나, 이후 1927년 그 자리에 중수·복원되었다. 복위되면서 강설·강여호뿐 아니라 강석구·강이하도 함께 추향하였다. 자동서원은 일반적인 서원 건축유형인 전학후묘에서 벗어나 좌묘우학의 형식을 취해 강학 공간과 제향 공간을 병렬로 배치하고 담장을 쌓아 구분한 서원으로, 경내에는 강당인 경거당과 대문인 제창문, 사당인 상의사, 외삼문인 헌명문이 남아있는데 외삼문 앞에는 서원 수호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서원이 위치한 곳이 풍수적으로 용이 뒤틀린 형상이라, 사당 옆에 인공 연못을 조성하였는데 이는 동네 냇가와 연결되어 항상 연못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84년 서원 앞에 새로운 길이 개설되고 경지 정리가 됨으로써 냇가가 없어져 연못 터만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