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Km 2024-05-13
대구광역시 달서구 야외음악당로 180
2000년 9월 29일에 개관한 코오롱야외음악당은 단일 공연장으로서는 국내 최대의 규모로 두류 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리적 여건으로 인하여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명소이다. 1만여 평의 넓은 잔디 광장에 2만 7천 명을 수용할 수 있어 음악회를 비롯하여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어떠한 장르의 무대 공연일지라도 가능할 뿐 아니라 이용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는 개방적인 공간으로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예술인과 초·중·고등학교 및 대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아리 회원 등 여러 단체나 개인에게 열린 공간이다. 탁 트인 야외에서 휴식을 겸하며 공연을 즐길 수 있으므로 또 다른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고, 대구 지방 문화의 창달에도 크게 기여하면서 시민의 곁으로 한 걸음 다가서는 열린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13.1Km 2024-06-13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송금길 113
대적사는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동학산 기슭에 있는 전통사찰이다. 876년에 보조 선사가 토굴로 창건했다고 전하며, 고려 때 보양 스님이 중창했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방화로 불탄 뒤 1689년 서월 성해가 크게 중수했다. 경내를 들어서면 정면에 극락전을 중심으로 향각과 동측당, 서측으로는 지장전이 위치하고 극락전 뒤편 서측으로 산령각이 석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보물로 지정된 극락전과 내부에 봉안된 17∼18세기 전반경의 특징을 갖추고 있는 아미타 삼존불 좌상이 있다. 이 외에도 경내에는 1939년에 조성된 지장시왕도와 칠성도가 남아 있고 풍암 대사 순민탑이라고 음각된 석종형 승탑 1기가 사찰 입구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13.1Km 2024-10-31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길 206
김충선(사야가) 장군을 모시고 있는 녹동서원 옆에 자리한 한, 일 화합의 공간으로 청소년들을 위한 살아있는 역사 공부와 체험 학습장으로 좋은 곳이다. 한, 일 교류 역사를 볼 수 있는 전시관을 비롯해 3D 영상실, 예절교실은 한일우호관을 찾는 국내 관광객과 일본인 관광객을 위한 한, 일 문화교류와 화합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일본식 정원, 전통놀이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13.1Km 2023-12-21
대구광역시 동구 인산로 242
도림사는 대구시 동구 진인동에 자리 잡은 사찰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로 팔공산 동남쪽 감투봉 아래 위치해 있으며 갓바위 약사여래부처님과 동화사, 파계사 등이 줄지어 서있는 팔공산맥을 마주하고 있다. 대구 지역 포교를 목적으로 세워진 힐링 사찰이다. 단층 건물로는 한국 최대 규모인 대웅보전을 비롯해 화엄전, 관음전, 천불루, 지장전, 소원불대탑 등이 있다. 체험형과 휴식형으로 나뉘어 템플스테이도 운영 중이다.
13.1Km 2024-10-11
대구광역시 달성군 우록길 218 녹동서원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삼정산 기슭에 자리한 녹동서원은 모하당 김충선 장군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향도 유림들이 상소하여 정조 15년인 1791년에 건립하였다. 그 후 고종 5년, 1868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14년 다시 복원하였으나 후손이 늘어남에 따라 규모가 협소하여 국고의 지원을 받아 1972년 지금의 장소로 이축과 동시에 증축하였다. 서원경내는 향양문을 비롯한 녹동서원, 녹동사. 충절관을 비롯해 깁공의 묘소도 서원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13.1Km 2024-10-24
대구광역시 달서구 앞산순환로 206
053-656-0467
기존의 일부 부유층들의 전유물로 알려졌던 고급스럽고 낯설던 승마의 개념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국민 스포츠로서의 자리매김을 위해 교육 및 승마장 시설을 한 차원 높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용료는 낮추었다. 가족적인 분위기로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승마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13.2Km 2024-07-23
대구광역시 북구 팔달로37길 11
팔달시장은 대구 3대 시장 중 하나로 팔달신시장이라고도 불린다. 도시철도 3호선 개통으로 더욱 편리하게 갈 수 있게 됐다. 시장은 대구의 관문인 팔달교와 인접하여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신선한 농산물이 유통된다. 시장에는 각종 먹거리를 비롯해 채소류, 생선류, 육류, 의류, 생활용품 등을 파는 상점이 성업 중이다. 그중 새벽 채소시장으로 유명하다. 주차는 팔달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사진 출처: 대구광역시청)
13.3Km 2023-07-26
대구광역시 동구 신숭겸길 17
'올레'란 제주어로 '거릿길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한다. 제주올레와 함께 '느리게 걷는 여행'을 제안하며 대구녹색소비자연대에서는 2008년부터 '대구올레'를 개발 및 운영하고 있다. [대구올레 팔공산 2코스] 한실골 가는 길은 2009년 7월 개장한 코스이다. 아파트 촌 사이에 옛 건물이 숨은 듯 자리해 있다.
바로 신숭겸장군유적지이다. 이 일대는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이 목숨을 걸고 '공산전투'를 벌인 곳이다. 문화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바퀴 둘러봄직하다. 유적지 오른편으로 한실골 가는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의 백미는 만디(언덕)쉼터. 하늘과 땅이 닿아 만드는 풍경을 바라보며 걷는다. 그 끝에 올라서면 저멀리 팔공산의 정상이 내다보인다.
13.3Km 2024-03-22
대구광역시 동구 신숭겸길 17
신숭겸(?∼927)은 평산 신 씨의 시조로서, 918년 배현경, 홍유, 복지겸 등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의 건국에 이바지한 인물이다. 고려개국의 1등 공신인 신숭겸 장군은 궁예가 세운 나라인 태봉의 기병장수였다. 그런데 궁예가 왕위에 즉위한 지 몇 년 만에 처자식을 살해하고 백성을 혹사하는 등 폭정이 심해지자 동료 기장들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하였다. 고려 태조 10년(927) 신라를 침공한 후백제 견훤의 군사를 물리치기 위해 왕건과 함께 출전하였다. 왕건이 이곳 공산싸움에서 후백제군에 포위되어 위기에 빠지자, 왕건의 옷을 입고 변장하여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으며, 왕건을 그 틈을 이용하여 홀로 탈출하였다고 한다. 왕건은 장군의 죽음을 애통히 여겨 그의 시신을 거두어 지금의 춘천인 광해주에서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웠다. 그리고 신숭겸이 순절한 이곳에 순절단과 지묘사(미리사)를 세워 그의 명복을 빌게 하고, 토지를 내려 이곳을 지키게 하였다고 한다. 1607년(선조 40)에 없어진 지묘사 자리에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이 서원인 충렬사를 세워 장군을 모셨으며, 1672년(현종 13)에 표충사는 사액서원이 되었다. 1871년(고종 8)에 서원철폐령으로 표충사가 없어진 뒤에 후손들이 재사를 지어 이곳을 지켜오던 중 1993년에 표충사를 복원하였다. 고려태사 장절공 신숭겸 장군의 유적은 지난 74년 대구광역시 기념물로 지정, 장절공의 충절을 기리는 위패(位牌)와 영정(影幀)이 모셔져 있으며, 순절단(殉節壇)과 충렬비(忠烈碑)등이 있다. [장절공] 신숭겸장군을 ‘장절공’이라고 하는데 ‘장절’은 태조 왕건이 신숭겸 장군의 죽음을 슬퍼하며 장군에게 내린 시호이다. 시호란 큰일을 한 인물이 죽은 뒤에 그 공덕을 칭송하여 국가가 내려주거나 다음 임금이 그 앞 임금에게 내려준 이름을 말한다. 장절(壯節)이란 뜻은 ‘절의가 굳세다.’, 곧 ‘마음이 아주 곧고 꿋꿋하며 의리가 있다’는 뜻이며, 여기서 ‘공(公)’은 신숭겸 장군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충절비] 신승겸 장군의 충절을 기리는 비석으로, 표충재 동편 석축 위에 있다. 1607년(선조40)에 경상도 관찰사로 있던 외손 유영순이 영남 유림, 후손들과 의논하여 장절공 사우를 지을 때 같이 세웠으며, 예조판서 신흠은 글을 짓고, 여주목사 김현성을 글씨를 쓰고, 안변도호부사 김상용이 전자를 썼다. 1781년에 비각이 허물어지고 비가 넘어진 것을 관민이 힘을 모아 다음해 8월에 바로 세웠으며, 같은 해에 비각도 고쳐 세웠다. 지금있는 비각은 1979년 대구시에서 고쳤다. 용머리에 거북 받침이 인상적이다. [표충재와 동재 서재] 표충재는 뒤로 높다랗게 사당을 업고, 순절단이 내려다보이는 왕산 중턱에 있다. 표충재라는 편액이 걸려있는 중심 건물과 동재와 서재가 있다. 표충사는 일명 표충서원으로 불리면서 유림에서 지켜오다가 1871년 (고종 8)에 훼철된 뒤에는 순절단을 단소로 후손들이 향사를 받들었다. 여러해 동안 영남 족친들이 건축비를 모아서 1888년(고종 25)에 표충사 옛터에 완공했다. 표충재 현판은 충익공 신정희가 썼다. 표충재 왼쪽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신숭겸 장군의 높은 절개를 추모하여 건립된 강당인 ‘상절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