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Km 2024-06-03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63번길 50
봉황동 유적은 가야시대의 대표적인 조개무덤으로, 1907년 우리나라 최초로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졌던 회현리 패총과 금관가야 최대의 생활 유적지인 봉황대를 합쳐 2001년 2월 김해 봉황동 유적으로 확대 지정되었다. 회현리 패총에서는 김해식 토기와 각종 철기, 골각기 등과 함께 중국의 화천이라는 동전이 출토되어 당시의 교역 상황을 나타내 주고 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불에 탄 쌀이 출토되어 쌀농사의 기원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었다. 봉황대는 조선시대 김해 부사를 지낸 정현석이 언덕의 모양이 봉황의 날개를 편 모습과 같다 하여 대를 쌓고 봉황대라 부른 것에서 유래되었다. 구릉 위에는 황세장군과 여의낭자 전설에 관련된 여의각, 황세바위 등이 남아있으며, 봉황대 서쪽에는 가야시대 토성과 대규모 창고형 건물터가 발견되었고, 가야시대 고상가옥, 주거지 등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봉황동 유적지의 주요 시설물에는 금관가야 기마무사상, 고상가옥(창고), 가야의 배, 망루, 황세바위, 여의각, 가야주거군, 패총 전시관 등 유적지가 있다.
16.0Km 2024-08-20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동백로 67
동백섬은 오랜 세월 퇴적작용으로 육지와 연결되었지만 아직도 동백섬이라고 부르고 있어 옛날 지형을 연상시켜 주고 있다. 일찍이 최치원 선생을 비롯한 많은 시인 묵객들은 바다와 숲이 어우러진 이곳의 절경을 찾아 노닐고 그 감흥을 읊어 후세에 전하고 있다. 동백섬을 둘러 산책로가 조성되어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최치원의 해운대 각자, 동상, 시비를 비롯해서 황옥공주 전설의 주인공 인어상과 누리마루 APEC하우스 등 과거와 현재에 걸친 인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또한, 동백섬에서 보는 부산의 전경은 인상적인데 건너편 미포쪽 해안끝선과 달맞이 언덕, 바다와 하늘을 가로지르는 광안대교, 부산바다의 상징 오륙도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름 그대로 예전에 말발굽에 차일 정도로 동백꽃이 지천으로 피고 지던 곳에는 지금도 변함없이 겨울에서 봄 사이에 꽃망울을 맺고 빨간 꽃이 통으로 떨어져 운치를 더하고 있다.
16.0Km 2024-05-21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동백로 99 (우동)
동백공원은 해운대해수욕장 남쪽 끝에 있는 동백섬을 공원으로 조성한 것으로, 1966년 9월 공원 대지로 지정되어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개발되었으며, 동백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한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이다. 2006년 부산에서 APEC 행사가 개최되면서 동백 공원을 정비하고 군부대 초소 철거(16개소), 조경 복구, 전망 데크 설치, 해안 정비, 산정 광장 및 순환 도로 정비, 쉼터 광장 및 주차장 등을 새롭게 조성하여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산책로 외에 배드민턴장, 의자,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동백공원 주요 시설로는 최치원 유적지(최치원 선생 동상, 최치원 선생비, 해운정 등)와 누리마루 APEC 하우스, 해운대 석각, 공원 앞 바닷가에는 무궁(無窮)이라는 나라의 왕과 결혼한 황옥(黃玉) 공주에 얽힌 전설이 있는 동백섬 인어상 등이 있으며, 동백섬 둘레를 따라 조성된 해안산책로는 950m 정도로 산책이나 운동하기 좋은 곳이다.
16.0Km 2024-05-28
부산광역시 금정구 산성로 520
051-517-5288
<중소벤처기업부 2019년도 '백년가게'로 선정> 산성 막걸리를 맛보기 위해 찾은 학생들과 행락객들이 안주거리를 요청하면서 집에서 기르던 닭을 재료로 하는 백숙을 시작으로 1980년대부터 오리와 흑염소 요리를 판매해오고 있는 곳이다. 부산 향토 음식인 흑염소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여 전통 흑염소불고기 조리법을 꾸준히 연구 개발해오고 있다. 국내산 흑염소와 오리만을 사용하며 텃밭에서 재배한 채소류를 제공한다. 또한 한약재를 첨가한 숙성 양념을 자체 개발하여 차별성을 두고 있다. 단체 고객의 야외 여가 활동을 위해 족구장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식사와 함께 맑은 공기 속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인기가 좋다.
16.0Km 2024-06-17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안골동
안골왜성은 일본군들에 의해서 축성된 일본식 성으로 일본 수군의 본거지였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군은 해전에서 우리 수군에게 패전을 거듭하여 막대한 군사적 타격을 입고, 본국으로부터의 보급이 원활하지 못하자 우리 수군을 해상에서 제어하고 장기간 주둔을 위한 최후의 기지로 활용하기 위하여 1593년경 남해안 연안일대의 요지에 웅천안골왜성을 포함한 18개소의 왜성을 축성하였다. 1998년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었으며, 높이 3∼8m, 둘레 594m, 넓이 약 16,529㎡, 안골포 동쪽의 해발 100m의 동망산 위에 있으며 가덕도 왜성과 약 4㎞ 거리에 있다. 동망산의 지형을 3등분으로 나누어 부분적으로 정상부를 깎은 뒤에 본성, 제1 외곽, 제2 외곽으로 나누어 따로 석축하고 외곽으로 각 부분을 연결하였는데 외곽의 일부는 토축성이다. 비록 일본군에 의해서 축성되기는 하였지만, 성을 축성하는 노역을 담당했던 우리 선조들이 흘렸을 눈물과 한을 무심히 간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축성 기술과 일본의 축성 기술을 비교하여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