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루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화랑루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화랑루

화랑루

3.8Km    0     2024-07-31

경상북도 경주시 포석로 828-11 (배동)
010-2690-9099

경주 포석로에 위치한 화랑루는 그림같은 전망과 탁 트인 잔디마당, 툇마루가 힐링을 가져다주는 신축 한옥스테이다. 객실은 천마총룸, 안압지룸, 월정교룸, 분황사룸, 불국사룸, 석굴암룸, 첨성대룸 총 7개로, 모든 객실은 방, 파우더룸, 화장실로 구성되어 있고 트인 전망을 자랑한다. 조식으로 토스트와 제철과일, 샐러드, 구운계란, 음료를 제공한다. 주차장이 넓고, 황리단길, 첨성대,동궁과월지 등 주요 명소가 차량 7분 이내 거리에 있다.

경주 동방동 와요지

3.8Km    18438     2024-05-31

경상북도 경주시 동방북1길 14

경주 동방동 와요지는 1977년 택지 조성공사 도중에 우연히 발견된 가마터로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발굴조사하여 9기의 도자기와 기와를 굽던 가마터를 발굴하였다. 그중 1기를 조사한 결과 가마의 전체 길이는 10.5m, 넓이 1.72m인 구릉 경사면을 이용하여 만든 굴가마(등요)로 밝혀졌다. 도자기를 굽던 곳의 천장 부분 벽 일부가 남아있으며, 도자기를 빚던 곳과 굽던 방 사이에는 높은 벽이 있다. 출토된 기왓조각은 고려시대에 성행한 새 깃털 모양 무늬와 연꽃무늬의 장식기와, 그리고 조선시대에 제작된 기와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가마바닥에서 출토된 건륭이 새겨진 암막새는 가마터가 없어질 당시의 것으로 생각되며, 가마터의 제작시기를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로 추정하게 한다. 가마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토기와 기와를 만들 수 있는 양질의 흙과 물, 그리고 구워내기 위한 연료가 필요한데 이곳 동방동 일대는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교통로가 있어 운반도 용이하였기에 오랜 시간 도자기 생산을 담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경주 망덕사지

3.9Km    18435     2024-02-02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망덕사는 679년(문무왕 19) 당나라가 신라의 사천왕사 창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신을 파견하자, 신라 왕실이 이를 속이려고 임시로 지은 절이다. 그 뒤 692년(효소왕 1)에 다시 지어 완공하였으나, 현재는 그 터만 낭산 남쪽의 사천왕사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망덕사지에는 동서 목탑터와 금당터, 강당터, 중문터, 회랑터 등이 남아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쌍탑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다. 또한 남쪽에는 계단 터가 있고, 서쪽에는 망덕사지 당간지주가 자리하고 있는데 원래의 위치는 아닌 듯하다. 1969년∼1971년 3차례에 걸쳐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굴한 결과 현재의 금당 터는 축소된 것으로, 원래의 받침 부분 너비가 동서 방향으로 좀 더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탑이 있던 자리에는 받침돌 아래의 바닥돌과 계단의 바닥돌이 남아 있고 동탑에도 대부분의 주춧돌이 원래의 위치에 남아 있다. 중문 터와 동서 회랑은 받침 부분의 범위가 확인된 정도지만, 회랑은 일부 자연석 또는 벽돌로 된 받침돌만 확인되었다. 특히 금당과 회랑 사이에는 익랑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어, 신라의 쌍탑 가람에서 익랑이 필수적이었음이 알려지게 되었다. 강당 터는 훼손이 심하여 받침 부분의 흔적조차 확인할 수 없으나, 주변에서 발견된 유구로 보아 조선시대까지 작은 암자 등이 자리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중문 앞 경사진 곳에는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거대한 돌계단이 있는데, 이것은 불국사의 경우와 같이 중문 앞에 규모가 큰 계단을 설치하는 방식이 당시 사찰의 일반적인 사례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신라의 불국토 남산에서 부처를 만나다

신라의 불국토 남산에서 부처를 만나다

3.9Km    1775     2023-08-10

경주 동남산 자락에는 탑곡, 미륵곡, 불곡 등 골짜기마다 신라의 부처님들이 새겨져 있다. 남산의 또 다른 코스인 칠불암에서는 국보로 지정된 칠불암 마애불상군과 속세를 굽어보는 듯한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등 신라 최고의 불상을 만날 수 있다. 소나무 숲길이 아름다운 정강왕릉과 헌강왕릉 진입로는 동남산 여행의 덤이다.

경주 나정

경주 나정

3.9Km    30253     2024-05-24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난 전설을 간직한 우물이다. 박혁거세를 기리는 유허비를 비롯해 신궁터로 추정되는 팔각건물지, 우물지, 담장지, 부속건물지, 배수로 등이 남아 있다. 특히 팔각건물지는 한 변의 길이가 8m나 되고 네모난 담장을 두른 것으로 보아 신라의 신궁터로 추정되며 이곳 나정을 박혁거세를 제사 지내는 신전으로 짐작할 수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신라 건국의 주역인 6촌의 촌장들이 모여, 군주를 선출하고 도읍을 정하자고 결정한 뒤 일행이 높은 곳에 올랐다. 그런데 양산 아래 나정이라는 우물 근처에 이상한 기운이 돌며 백마 1마리가 무릎을 꿇고 있어 가보니 백마는 하늘로 올라갔고 붉은색의 커다란 알만 남았는데, 이 알을 쪼개자 어린 사내아이가 나왔다고 한다. 이상히 여겨 동천에서 목욕시키자 몸에서 광채가 났고 새와 짐승들이 춤추듯 노니니 천지가 진동하며 해와 달이 청명해졌다고 한다. 박처럼 생긴 알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성을 박(朴)이라 하고, 세상을 밝게 한다는 뜻에서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고 하였다. 아이가 13살이 되던 해인 BC 57년 왕의 자리에 올라 나를 세우고 서라벌이라고 이름지었다.

경주한옥

3.9Km    5     2020-03-25

경상북도 경주시 도초길 124-31
010-9558-6718

경주 남산 아래 마을에 자리잡은 경주 한옥 펜션에서는 한옥을 체험하며 경주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육부전

육부전

3.9Km    2     2023-01-25

경상북도 경주시 남간길 37-10

과거 양산재로 불렸던 육부전은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에 있었던 6부 촌장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기원전 57년 알천양산촌, 돌산고허촌, 취산진지촌, 무산대수촌, 금산가리촌, 명활산고야촌의 6부 촌장들이 알천 언덕에 모여 알에서 탄생한 박혁거세를 신라의 첫 임금으로 추대하였다. 이후 신라 3대 왕인 유리왕이 이들의 건국 공로를 기리기 위해 양산촌은 이 씨, 고허촌은 최 씨, 진지촌은 정씨, 대수촌은 손 씨, 가리촌은 배 씨, 고야촌은 설 씨로 각각의 성을 내려 이들이 각 성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한다. 육부전은 외삼문인 대덕문을 지나 동편에 윤적당, 서편에 익익재가 배치되어 있고 이어 내삼문인 홍익문이 자리한다. 홍익문 안에는 주건물인 입덕묘가 세워져 있는데, 이 공간은 제례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일반에 개방하지 않는다.

용산서원(경주)

4.0Km    18345     2024-06-18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포석로 110-34

조선 중기의 무신 정무공 최진립을 제사 지내기 위한 곳으로 숙종 25년(1699)에 경주부윤 이형상이 지방 선비들과 함께 세웠다. 숙종 37년(1711)에 임금으로부터 [숭렬사우]라는 편액을 내려받았으며 후에 서원으로 승격됐다. 고종 7년(1870)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됐다가 1924년 다시 건립됐다. 용산서원에서 서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신도비각이 있다. 최진립은 지금의 경주시 현곡면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동생 최계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정유재란 때는 권율과 함께 울산 서생포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병자호란 때 용인 험천에서 싸우다가 순절하였으며 자헌대부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청백리로 기록되었다.

수리뫼 [한국전통음식체험교육원]

수리뫼 [한국전통음식체험교육원]

4.0Km    21866     2023-11-16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포석로 110-32

수리뫼는 경주시 남쪽에 위치한 유네스코에 등록된 명산인 남산의 순수 우리말이며 최고봉은 고위산, 천룡산이 있다. 전통음식 체험관인 수리뫼는 무형문화재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인 황혜성 선생님으로부터 궁중음식을 전수받은 박미숙 관장(조리기능장)이 설립한 전통음식 체험관이다. 궁중음식 재현 및 보급을 목적으로 주로 회원제 방식으로 운영되며 현재는 일반인, 전문인,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통 체험장과 연중 프로그램에 따라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과정으로 운영된다.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미 일본을 비롯한 많은 국내외 체험객들이 수리뫼를 방문하여 전통음식문화를 체험한 바 있다. 수리뫼는 문화재로 지정된 최부자집 종택과 담장을 같이 하고 있으며, 500여 평의 대지와 100여 년간 보존된 전통한옥 구조물에 활인당, 포회, 별내, 천작도, 가원 등의 이름을 붙인 실습장 및 여러 체험 설비를 갖추고 있다. 숙박은 연간 회원 및 사전예약만 가능하다.

경주 신문왕릉

4.0Km    19249     2024-06-18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신라 31대 신문왕(재위 681~692)의 무덤이다. 신문왕(681~692년)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문무왕의 아들로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신라 중대의 전제왕권을 확고히 했다. 또, 국립교육기관인 국학을 설립하고, 지방통치를 위해 9주5소경 제도를 설치하였고, 고구려·백제·말갈인을 포함한 중앙 군사조직인 9서당을 완성하는 등 중앙과 지방의 정치제도를 정비하여 왕권을 강화했다. 당나라를 비롯한 외국과도 빈번히 교류하여 문화의 융성을 도모하는 등 신라 전성 시대의 기틀을 다졌다.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길이 29.3m, 높이 7.6m이며 둘레돌은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5단으로 쌓고 그 위에 갑석을 덮었으며 이 석축을 지탱하기 위해 44개의 삼각형 받침돌을 설치하였다. 이와 같은 구조의 호석은 통일신라 왕릉에 십이지신상을 새긴 호석이 나타나기 전 단계의 것으로, 고신라 고분보다는 한층 발달한 형식이다. 한편, <삼국사기>에 의하면 낭산 동쪽에 신문왕을 장사지냈다고 되어있어, 낭산 동쪽 황복사터 아래쪽 12지신상이 남아있는 무너진 왕릉을 신문왕 무덤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