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낭산 일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경주 낭산 일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경주 낭산 일원

.0M    26889     2023-12-20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경주 낭산은 누에고치처럼 남북으로 길게 누워 높이 108m의 낮은 구릉을 이루는 산이며 신라 실성왕 12년(413)부터 신성하게 여겨져 보존되어 온 곳이다. 예로부터 서라벌의 진산으로 불리며 신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졌다. 신라 실성왕 12년(413) 구름이 일어 누각같이 보이면서 오랫동안 향기가 피어올랐다. 기록에는 왕이 낭산에 상서로운 구름이 서린 것을 보고 신하들에게 신령이 하늘에서 내려와 노는 곳이니 당연 복을 주는 지역이므로 이제부터는 낭산의 나무 한 그루도 베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7세기부터는 불교의 성스러운 산으로 왕실에 복을 주는 장소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선덕여왕의 유언에 따라 만든 여왕의 능을 비롯하여 신라 향가의 현장인 사천왕사지, 문무왕의 화장터로 여겨지는 능지탑, 바위에 부처를 새긴 마애불, 구황리 삼층석탑 등 신라 유적이 많이 있다.

경주 선덕여왕릉

경주 선덕여왕릉

63.3M    33979     2023-11-17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경주 낭산의 정상에 있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릉(재위 632∼647)은 646년경에 조성되었다. 높이 6.8m, 지름 23.6m의 원형 봉토분이며, 자연석을 이용해 봉분 아래에 2단 보호석을 쌓은 것 외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선덕여왕은 아들이 없던 진평왕의 딸로 태어나 성골이라는 특수한 신라 왕족의식에 의해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되었다. 재위 16년간 첨성대와 분황사, 특히 신라 최대의 황룡사 9층목탑을 세웠으며, 훗날 태종 무열왕이 되는 김춘추와 명장 김유신과 함께 신라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선덕여왕이 죽을 날을 예언하며 부처의 나라인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도리천은 불교설화의 수미산 밑을 이야기하는데 어디를 말하는지 몰라 신하들이 묻자 낭산 기슭이라 대답하였고, 이 기슭에서 장사를 지냈다. 이후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한 후 낭산에 사천왕사를 지었다. 사천왕이란 도리천의 호불신으로 선덕여왕의 무덤은 결국 도리천에 있는 셈이 되어 비로소 신하들이 낭산의 정상이 도리천이라 한 여왕의 뜻을 알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경수 선덕여왕릉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변에 신문왕릉, 효공왕릉, 신무왕릉, 효소왕릉 등이 있다.

경주능지탑지

376.3M    19542     2023-11-17

경상북도 경주시 능말길 38-6

중생사터에 있는 능지탑은 경주시 남산에 흐트러져 있던 탑의 재료를 새로 맞추어 놓은 것으로 예로부터 능시탑 또는 연화탑이라고도 한다. 기단 사방에 12지신상을 새긴 돌을 세우고, 그 위에 연꽃무늬가 있는 석재를 쌓아 올린 5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문무왕이 임종 후 10일 안에 왕궁 밖 뜰에서 화장하고 장례를 검소하게 하라고 유언하였으며, 탑 주변에서 문무대왕릉비 조각이 발견되고 사천왕사, 선덕여왕릉, 신문왕릉 등과 가까운 것으로 보아 이곳이 문무대왕의 화장터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 탑이 일부 복원되었는데, 지대석 위에 상하 이중의 연화대석을 배치하여 중층의 형식을 취하였고 상부의 낙수면을 상층으로 하여 잔디로 처리하였다. 각 층의 옥개에 해당하는 부분에 복련을 돌아가며 수매씩 배치하였다. 하층 옥신에 해당하는 각 면은 한 변이 23.3m, 높이 약 1.9m이며 3구의 12지를 배치하였으나 남면 인상, 동면 인상·신상 등 3상이 결실되어 석재로 보충하였다. 높이 60cm의 연화석은 너비가 고르지 않다.

수석정

수석정

523.9M    22833     2023-11-08

경상북도 경주시 내리길 41
054-748-0835

경주 수석정은 경주박물관 근처에 위치한 한정식집이다. 경주의 대표적인 한정식집으로 유기그릇에 담긴 따뜻한 숭늉을 시작으로 전복죽, 떡갈비, 궁중잡채 등 정성 어린 손맛이 가득한 한정식을 맛볼 수 있다. 수석정 내부에는 한국 고유의 미를 살린 액자와 병풍, 수석들로 가득 차 있어 멋을 더한다.

경주 신문왕릉

679.0M    19249     2024-06-18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신라 31대 신문왕(재위 681~692)의 무덤이다. 신문왕(681~692년)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문무왕의 아들로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신라 중대의 전제왕권을 확고히 했다. 또, 국립교육기관인 국학을 설립하고, 지방통치를 위해 9주5소경 제도를 설치하였고, 고구려·백제·말갈인을 포함한 중앙 군사조직인 9서당을 완성하는 등 중앙과 지방의 정치제도를 정비하여 왕권을 강화했다. 당나라를 비롯한 외국과도 빈번히 교류하여 문화의 융성을 도모하는 등 신라 전성 시대의 기틀을 다졌다.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길이 29.3m, 높이 7.6m이며 둘레돌은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5단으로 쌓고 그 위에 갑석을 덮었으며 이 석축을 지탱하기 위해 44개의 삼각형 받침돌을 설치하였다. 이와 같은 구조의 호석은 통일신라 왕릉에 십이지신상을 새긴 호석이 나타나기 전 단계의 것으로, 고신라 고분보다는 한층 발달한 형식이다. 한편, <삼국사기>에 의하면 낭산 동쪽에 신문왕을 장사지냈다고 되어있어, 낭산 동쪽 황복사터 아래쪽 12지신상이 남아있는 무너진 왕릉을 신문왕 무덤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경주 망덕사지

701.7M    18435     2024-02-02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망덕사는 679년(문무왕 19) 당나라가 신라의 사천왕사 창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신을 파견하자, 신라 왕실이 이를 속이려고 임시로 지은 절이다. 그 뒤 692년(효소왕 1)에 다시 지어 완공하였으나, 현재는 그 터만 낭산 남쪽의 사천왕사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망덕사지에는 동서 목탑터와 금당터, 강당터, 중문터, 회랑터 등이 남아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쌍탑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다. 또한 남쪽에는 계단 터가 있고, 서쪽에는 망덕사지 당간지주가 자리하고 있는데 원래의 위치는 아닌 듯하다. 1969년∼1971년 3차례에 걸쳐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굴한 결과 현재의 금당 터는 축소된 것으로, 원래의 받침 부분 너비가 동서 방향으로 좀 더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탑이 있던 자리에는 받침돌 아래의 바닥돌과 계단의 바닥돌이 남아 있고 동탑에도 대부분의 주춧돌이 원래의 위치에 남아 있다. 중문 터와 동서 회랑은 받침 부분의 범위가 확인된 정도지만, 회랑은 일부 자연석 또는 벽돌로 된 받침돌만 확인되었다. 특히 금당과 회랑 사이에는 익랑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어, 신라의 쌍탑 가람에서 익랑이 필수적이었음이 알려지게 되었다. 강당 터는 훼손이 심하여 받침 부분의 흔적조차 확인할 수 없으나, 주변에서 발견된 유구로 보아 조선시대까지 작은 암자 등이 자리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중문 앞 경사진 곳에는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거대한 돌계단이 있는데, 이것은 불국사의 경우와 같이 중문 앞에 규모가 큰 계단을 설치하는 방식이 당시 사찰의 일반적인 사례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경주 효공왕릉

경주 효공왕릉

773.8M    16593     2024-06-18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신라 제52대 효공왕(재위 897∼912)의 무덤으로 높이 5m, 지름 21.2m이며 둥글게 흙을 쌓아 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무덤 밑부분에는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쌓았던 돌이 몇 개 남아 있으며, 이는 무열왕릉과 같은 성격의 둘레돌의 일부로 추측된다. 그밖에는 아무런 표식물이 없는 매우 단순한 형태의 무덤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912년 왕이 죽자 이름을 효공이라 하고 사자사라는 절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하고, <삼국유사>에는 왕이 죽자 사자사 북쪽에 화장해 그 유골을 구지제의 동산 옆에 묻었다 하여 기록에 차이가 있으나, 현재의 위치가 사자사터로 전하는 지점의 북쪽에 해당하므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현재 이 무덤의 남쪽에 절터가 있어 사자사의 터로 추정하고 있다.

한옥스테이 여여

한옥스테이 여여

1.1Km    0     2024-07-31

경상북도 경주시 갯마을길 53 (배반동)
010-8959-9091

경주 남산국립공원 아래에 자리한 한옥스테이 여여는 소나무 숲이 한옥 뒤에 자리잡고 있어 공기가 맑고 시원하다. 침실, 거실 겸 주방, 화장실로 이루어진 공간에 서까래, 찻자리와 방석, 다도 식기, 조명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감성을 자아낸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바라보는 소나무 숲, 프라이빗한 뒤뜰과 조적욕조에서 즐기는 아름다운 정원, 나만의 빔프로젝트 영화관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며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천년숲정원이 도보 5분 거리에 있다.

신라의 불국토 남산에서 부처를 만나다

신라의 불국토 남산에서 부처를 만나다

1.1Km    1775     2023-08-10

경주 동남산 자락에는 탑곡, 미륵곡, 불곡 등 골짜기마다 신라의 부처님들이 새겨져 있다. 남산의 또 다른 코스인 칠불암에서는 국보로 지정된 칠불암 마애불상군과 속세를 굽어보는 듯한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등 신라 최고의 불상을 만날 수 있다. 소나무 숲길이 아름다운 정강왕릉과 헌강왕릉 진입로는 동남산 여행의 덤이다.

경주 진평왕릉

경주 진평왕릉

1.2Km    0     2024-04-23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608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제26대 진평왕의 능이다. 밑 둘레 약 10m, 높이 약 7m의 원형 토분으로 장식 없이 소박한 모습이다. 겉모습은 소박하지만, 유홍준 교수는 진평왕릉을 두고 ‘꼭 보아야 할 경주의 보물 세 가지 중 하나’라고 평했다.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그는 진평왕릉을 이렇게 표현했다. ‘왕릉으로서의 위용을 잃지 않으면서도 소담하고 온화한 느낌을 주는 고분은 진평왕릉뿐이다.’라고. 다른 왕릉이 무인상, 문인상, 돌사자, 호석과 돌난간, 능을 감싸는 도래솔 등 화려한 장식을 하고 있다면, 진평왕릉은 대신 아담한 숲을 갖고 있다. *사진 출처: 경주문화관광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