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30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정북동 351-1
청주 정북동 토성은 미호천 평야 중심에 흙으로 쌓은 사각 형태의 성이다. 성벽의 둘레는 675m, 높이는 3.5m가량이다. 4면의 성벽마다 중간에 성문을 두었으며, 특히 남북쪽은 성문을 공격하는 적군을 측·후방에서 공격하기 위해 좌우 성벽을 서로 어긋나게 만들었다. 성벽의 네 모서리에는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한 높은 누각을 세웠으며, 모서리와 성문 사이에는 치성(성벽의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쌓은 방어용 성벽)을 설치하여 방어력을 높였다. 또한 성벽 바깥으로는 해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곽의 둘레를 감싼 도랑)를 파고 물을 채워 적군의 접근을 막았다. 흙으로 쌓아 올린 성벽은 안팎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를 나무판자로 구분하여 흙과 진흙을 교대로 다져 쌓은 판축 기법으로 축조하였다. 청주 정북동 토성이 언제 처음 축조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3~4세기 혹은 6~7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 영조 때 쓰인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후백제의 견훤이 까치내 옆에 토성을 쌓고, 백성들에게 걷어 들인 곡식을 쌓아 두었다가 상당산성 안으로 운반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어, 이를 통해 후삼국 시대(9세기 말~10세기 초)에 정북동 토성이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북동 토성은 국내 토성 중 가장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한국 초기 토성 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2026-05-14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로53번길 9
청주 표충사는 이인좌의 난 때 이들을 막다가 순절한 충청도병마절도사 이봉상과 청주 영장 남연년, 비장 홍림의 3충심을 배향한 곳이다. 1731년(영조 7)에 청주성 북문 안에 사당과 함께 유적비를 세우고 삼충사라고 하였다. 1736년(영조 12)에 사약되었으며, 1939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봉상(1676~1728)의 자는 의숙, 본관은 덕수이며, 이순신의 5대손이다, 1702년(숙종 28)에 무과에 급제한 후 여러 요직을 거쳐 훈련대장을 역임하다가 충청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좌찬성에 추증되고 시호를 충민이라 하였다. 남연년(1653~1728)의 자는 수백, 본관은 의령이다. 1676(숙종 2)에 무과에 급제한 후 여러 고을의 군수를 거쳐 청주 영장이 되어 토포사를 겸하였다. 좌찬성에 추증이 되고 시호는 충장이라 했으며, 숭선군에 추봉 하였다. 홍힘의 자는 춘경, 본관은 남양이다. 이봉상의 비장이 되어 싸우다가 피살되었다. 호조참판에 추증되고 시호를 충강이라 하였다.
2026-04-30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상로18번길 44
청주 충렬사(충청북도 지방기념물)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부사 충렬공 송상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선조 28년(1595)에 동래에서 청주로 묘소를 이장하고 광해군 2년(1610)에 사당을 창건했으며, 그 후 여러 차례 중수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 송상현의 자는 덕구, 호는 천곡, 시호는 충렬이다. 국가의 위난을 죽음으로 지켜 시호를 ‘충렬’이라 하였다. 충렬공은 선조 9년(1576) 문과에 급제해 여러 요직을 거친 후, 선조 24년(1591) 동래부사가 되었다. 이듬해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부산진성을 함락하고 14일에 동래성을 공격하며 항복을 권했으나, 끝까지 항전하다가 15일 순절하였다. 왜장도 송상현의 충절에 탄복하여 동문 밖에 장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충렬사 뒷산에는 송상현의 묘소와 현종 원년(1659)에 세운 신도비가 있고, 사당 입구에 선조 28년(1595)에 건립한 충신문이 있다. 지금의 건물은 1980년에 중수한 것으로 목조기와집과 마당 앞 삼문, 석축담장 등이 있다. 청주시에서는 송상현 선생의 애국충절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1년 인근 부지를 정비하여 전시관과 사당을 신축했으며, 주변을 공원화해 더 많은 시민들이 이곳을 찾고 역사와 함께 호흡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문화관광해설사의 정규해설도 진행하고 있다.
2026-03-09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교동로47번길 33 (수동)
청주에 성공회가 들어온 것은 1922년 영국인 선교사 유신덕(G. E. Hewlett) 신부가 대성동에서 가정 예배를 가짐으로써 시작되었고 현재의 성당은 세실 쿠퍼 (Cecil Cooper) 주교에 의하여 1935년에 32칸 규모로 건축되었다. 이 건물은 낮은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대들보와 종보 위에 사다리꼴의 대공이 종도리를 받치는 목조 한옥으로 팔작지붕에 한식 기와를 얹었다. 내부는 중앙에 2열로 고주를 세우고 고주 양쪽에 퇴보를 걸어 측랑을 두어 삼랑식의 성당내부를 구성하고 있다. 창문은 상부를 아치형으로 꾸몄으며 출입문의 상부는 네모의 교살창으로 되었다. 벽체는 외벽을 벽돌과 콘크리트로 내벽은 석회로 마감하였다. 초기 성공회 신부들의 토착화 의지를 잘 담아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건물은 한옥의 구조를 갖추면서 서구적인 형태로 지어진 성당건축으로 서양건축과 한국건축이 융화되어 나타난 절충형식으로 서양건축의 수용과 전통건축의 근대적 변화를 조명할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2026-03-11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전로175번길 169
이 집은 1926년에 지은 것으로 안채의 종도리 장여에 상량문이 적혀 있다. 일자형의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가 ㄷ자 형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집의 형태를 보면 안채는 3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둥근 주춧돌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고, 기둥 위에 큰 부재로 된 대들보를 걸고, 그 위에 종보를 올렸다. 종보 위에는 파련대공을 세우고 종도리와 뜬창방을 결구하였는데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수법이다. 건물이 세워진 연대는 오래되지 않았으나 안채・사랑채・행랑채가 고루 갖추어져 있는 전통 주거 건축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현재는 소유자가 거주하면서 관리를 하고 있다. (출처 : 청주 문화관광 홈페이지)
2025-09-02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사로 115
청주 중앙공원은 청주시 한가운데에 있는 시민들의 휴식처이다. 그 공간 안에 병마절도사 영문이 있다. 병마절도사란 조선시대에 각 지방에 두어 병마를 지휘하던 종 2품의 무관 벼슬이다. 병마절도사 영문 건물은 청주읍성 안에 있었던 충청도 병마절도사 영(營)의 출입문이다. 영문 앞에는 수령 1천 년가량의 은행나무가 서 있다.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은 당초 충남 해미현에 있었다가 효종 2년(1651)에 이곳으로 옮겼다. 병마절도사는 충청도 관찰사가 겸직하고 따로 전임의 종 2품 절도사를 두었는데 이곳에 전임의 절도사가 있고 충청도의 육군인 기병/보병을 총괄하였다. 건물의 양식은 조선시대 후기 병영이나 수영의 출입문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네모진 높은 주춧돌 위에 세운 2층의 누문으로 아래층의 중앙에 문을 달아 출입하고 위층은 우물마루로 하고 계자난간을 돌렸다. 이 건물은 1988년까지 청녕각으로 오인되어 서원현감 이병정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 병마절도사의 형태 * 병마절도사의 건물은 1955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집이다. 공포형식은 이익공이며, 가구는 5량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구조는 낮은 장대석 기단 위에 사다리꼴의 방형 고주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누하부에 문비시설의 흔적은 보이지 않으나, 누하부 중간에 외부 원기둥과 달리 네모기둥을 나란히 세우고 주초석도 낮게 구성한 상태로 보아 본래 이 부위에 대문을 달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남측 내부에 루마루로 오르는 계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누대는 우물마루로 되어있으며, 사면에는 계자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서쪽면의 양측 귀기둥에는 “節制州郡兵營”, “鎭南千丈銅柱”라고 새긴 주련(柱聯)이 걸려 있다.
2026-02-03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길 119
도명산은 괴산군에 있는 청천면 화양리에 있으며, 속리산 국립공원에 속해있는 천혜의 계곡 화양동을 안고 있는 명산이다. 낙영산에서 북쪽으로 갈라진 산줄기가 화양천에 그 맥을 가라앉히기 전 바위로 불끈 일으켜 세운 산으로 이름처럼 삼체불 부근에서 도를 닦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지성을 드리고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정상까지는 10분 정도 걸리며, 통나무 계단과 철사다리 등 안전시설이 잘 되어 있어 쉽게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정상은 크고 작은 바위 다섯 개가 하나를 이뤄 정상을 형성하고 있다. 동으로는 백악산에서 뻗은 줄기, 서로는 그 넘어 금단산, 남으로는 낙영산 넘어 톱날같이 늘어선 속리산 연봉들, 북으로는 화양천 너머 군자산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2025-11-13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의 야산 정상부와 구릉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으로, 고려 공민왕 23년(1374)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최영 장군이 병사와 많은 백성을 이끌고 성을 쌓아 왜구를 물리친 곳이라 전한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해 당포성이 점령당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에 의해 다시 탈환되었는데, 이것이 유명한 당포승첩이다. 당포성은 2중 기단을 형성하고 있는 고려·조선시대 전형적인 석축진성(국경·해안지대 등 국방상 중요한 곳에 대부분 돌을 쌓아 만든 성)이다. 남·북쪽으로 정문 터를 두고 사방에는 대포를 쏠 수 있도록 성벽을 돌출시켰다. 지금 남아 있는 석축의 길이는 752m, 최고 높이 2.7m, 폭 4.5m이며 동·서·북쪽에는 망을 보기 위해 높은 곳에 지은 망루 터가 남아 있고, 성문 터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밖으로 쌓은 작은 옹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
2025-03-27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
청담근린공원은 지극히 도시적인 청담동에 위치한 작고 아담한 공원이다. 대부분의 근린공원이 평지에 조성된 것과 달리 야산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산책길과 쉼터 등 인공 설치물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도록 조성되었다. 낮은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간단한 운동기구가 비치된 놀이터가 있는데 아침이면 운동하는 사람들로 제법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공원에는 체육시설, 배드민턴장, 농구장, 산책로, 정자, 실개천, 약수터 등이 있으며, 공원 지역에 청소년수련관과 청담지구대도 있다. 청담근린공원은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로 도시에서는 드물게 맑은 공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2025-09-04
경상남도 거제시 동부면 가배리
거제 가배량진성은 성종 21년(1490)에 쌓은 성으로서 조선시대 전기 서부 경남 해안을 방어하였던 경상우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였으며, 거제 수군 7진 중의 하나이다. 이 지역은 한산도를 중앙에 두고 통영과 거제로 갈라지는 두 갈래 바닷길 중 거제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세종 7년(1425)부터 선조 24년(1601)까지 경상우수영 및 삼도수군통제영으로 이용되어 역사적인 의미가 큰 곳이다. 선조 16년(1593)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후 한산도에 삼도수군통제영 본영을 구축하고 이곳에는 기존보다 큰 규모로 연장 개축했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이후 이곳 거제의 경상우수영성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옮겼다가, 선조 24년(1601) 다시 거제에서 고성으로 옮겼으며, 3년 뒤 현재의 통영으로 옮겨졌다. 이때 고성에 있던 ‘가배량진’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부터 ‘가배량진성’이라 불렀으며, 고종 31년(1894) 갑오개혁의 과정에서 진이 없어질 때까지 해안 방어의 요충지로 역할을 하였다. 성의 바깥은 돌로 쌓고 안쪽은 흙으로 둑을 쌓아 만들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성의 둘레는 794m, 높이는 4m이며, 현재 남아있는 성의 둘레는 146m이다. 성을 둘러싼 물길인 해자의 흔적과 남쪽에는 조망할 수 있는 망대 터가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