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서울 남현동 요지

서울 남현동 요지

2025-03-19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3길 60 (남현동)

서울 남현동 요지는 관악산 끝자락에 위치한 통일신라 토기 가마터이다. 1973년에 처음 발견된 이후 1976년에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하였다. 조사 결과 서울 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백제 토기 가마터로 알려지면서 1976년에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2006년에 실시한 서울대학교 박물관의 시굴 조사에서 통일신라시대 가마터의 폐기장임을 확인하면서 이 시기 토기 가마터로 확정하였다. 사당초등학교를 지으면서 가마터 유적이 상당 부분 파괴되었으나 가마 여러 개가 이곳에 밀집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마는 연소실 - 소성실 - 연기배출구로 구성된 반구형의 터널형 굴 가마로서 가마의 흔적인 불태운 흙과 재의 범위로 보아 길이 4.5m, 너비 0.7m 정도 규모로 추정된다. 가마 벽체와 바닥은 점토를 발라 만들었으며, 바닥은 약 17도 기울어진 경사 가마이다. 가마 내부와 주변에서 완형 토기 4점을 비롯하여 많은 토기 조각이 출토되었다. 토기 조각은 뚜껑과 사발, 항아리 조각이 대부분이며, 도장무늬가 찍힌 토기 조각이 많은 것으로 보아 7~8세기경에 만든 가마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현기촌하지위(縣器村何支爲)’, ‘성음(性音)’, ‘사지작(舍知作)’ 등을 새긴 명문 토기 조각도 출토되어 당시 토기의 생산과 공급체계, 지방행정 체제를 밝히는 데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적상산사고지

적상산사고지

2025-07-30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적상면 산성로 960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에 보관 중이던 실록을 제외하고 나머지가 전소되자 태조부터 명종까지의 실록 3부를 더 인쇄하여 전주본 원본과 교정인쇄본을 합쳐 실록 5부를 만들어 춘추관, 마니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에 각각 보관했다. 1641년(인조 19) 이곳에 선원전을 건립하고 선원록을 보관함으로써 적상산사고는 비로소 완전한 사고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조선왕조실록> 복본 34권(왕조별로 1권씩 27권, 무주에 관한 기록 7권)과 왕실 족보인 <선원록> 복본 5권을 제작해 비치했다. 실록 제작·편찬 과정 및 옮기는 과정 등을 담은 22종의 전시패널을 설치했다. 무주군청 소속의 문화관광해설사가 관람객에게 적상산사고의 역사적 가치와 조선왕조실록에 대해 알기 쉽게 해설을 하고 있어 학생을 낀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 꼭 가볼만한 관광지로 꼽히고 있다.

서울 구 벨기에영사관 (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서울 구 벨기에영사관 (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2026-08-21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2076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이 둥지를 튼 이곳은 대한제국 시절 벨기에 영사관으로 사용된 건물로, 1905년 회현동에 준공되어 1983년 지금의 남현동으로 옮겨졌다. 길게 뻗은 복도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자유롭게 배열된 두 개 층의 방들에서는 다양한 층위의 관람객에 특화된 공공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사적으로 등록된 서울 구 벨기에영사관은 1901년 한국과 벨기에 사이에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세워진 건물이다. 1903년에 착공하여 1905년에 완공되었다. 원래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 2가 78번지(현 우리은행 본점 사옥 위치)에 있었는데 1970년도 도심 재개발 사업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졌다. 이 건물은 1919년 벨기에 영사관이 충무로 1가로 이전한 뒤 요코하마 생명보험사 사옥으로 쓰이다가 일본 해군성 무관부 관저로 쓰였다. 광복 후에는 해군헌병대에서 사용하였다. 1970년 상업은행이 이 건물을 사들여 1983년 이곳으로 옮겨 상업은행(우리은행 전신) 사료관으로 사용하였다. 2004년 9월부터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벽돌조 절충식 건물이다. 일본인 건축가 고다마가 설계하였다. 붉은 벽돌과 화강석을 혼용하여지었고 건물의 와관은 당시 일반적인 건물들과는 달리 비대칭형이다. 현관 앞에 있는 두 개의 돌기둥과 발코니에 길게 늘어서 있는 돌기둥들은 고전주의적이다. 전면의 창부분은 르네상스식 분위기를 띠고 있으며, 1층과 2층에 설치된 베란다의 기둥들은 이오니아 양식으로 되어 있다.

무주 적상산성

무주 적상산성

2025-10-31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무주 적상산성은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에 있는 고려 후기 축조된 방어 성곽이다. 무주 적상산성은 삼국 시대 백제와 신라의 국경 지대에 축성되어 한때 방치되기도 하였으나, 고려 시대에는 국란이 있을 때마다 인근 백성의 피난처가 되었다. 조선 광해군 2년(1610년) 이곳에 조선시대 다섯 개의 사고 중의 하나인 적상산사고를 설치하고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를 보관하였다. 이에 실록전, 사각, 선원각, 군기고, 대별관, 호국사를 세웠고 임진왜란 이후 진을 두어 적상산성을 수축하고 운영했다. 순종 3년(1910년) 국권 피탈 이후 사고가 폐지되고 그 기능을 상실함에 따라 방치되었으나, 현재는 성벽은 거의 무너져 안국사 아래의 숲 속 등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백산 안희제 생가

백산 안희제 생가

2025-12-17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입산로2길 37

독립운동의 선봉장 백산 안희제 선생의 생가는 의령군 부림면에 있다.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 2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안채는 팔작지붕 기와 건물로, 정면 6칸, 측면 2칸의 구조로 왼쪽에서부터 마루, 방, 대청 2칸, 방, 부엌의 순으로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남향으로 난 1칸 마루가 사랑채의 역할을 한다. 전후 툇간이 발달하여 겹집 형식으로 발전하여 기능이 다양한 방이 필요하지만, 별동으로 만들지 않고 한 건물 안에서 처리한 조선 후기 주택의 특징을 보인다. 백산 안희제 선생은 1885년 부림면 입산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창남학교를 창설하고 1908년 의신학교를 창설, 1909년 동래구명학교 건립, 대구교남학교 건립 등으로 신학문 보급에 힘썼다. 27세에 만주에서 대동청년단을 조직하고, 소련으로 망명하여 독립순보를 간행하였다. 30세에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독립운동 자본금을 마련하였으며, 기미 육영회를 조직하고 1926년 언론창달을 위해 시대일보를 인수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구금되었고, 1943년 만주대종교단 사건으로 구금되었다가 출옥 4시간 만인 1943년 9월 2일에 사망하였다.

여수 석보

여수 석보

2025-04-03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동

여수반도에 자리하면서 마을 첫 자에 아름다울 ‘려’자를 쓰는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은 1998년 4월에 여수시로 통합됐다. 서쪽으로는 순천만을 사이에 두고 고흥 반도가 있으며 동쪽으로는 광양만을 사이에 두고 경남 남해군과 마주한다. 여천동의 석창성은 백제 시대의 원촌현으로 불릴 때부터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까지의 치소로 밝혀지고 있다. 백제 시대의 원촌현, 신라 시대의 해읍현, 고려 시대의 여수현의 치소였으며, 조선 시대 성종 10년 전라좌수영이 설치되면서 수군절도사가 병을 나누어 관리했으나 중종 때에는 고돌산포로 옮기게 된다. 16세기 말에는 석보창을 만들어 평시에 여수, 삼일포, 소라포구로부터 세미를 거두어 올리다가 17세기 초에 폐지되었는데, 18세기 초에 다시 부활되었다. 이곳에서는 삼국시대 초기의 적갈색, 청와색 토기편과 회색토기 및 13~14세기 경 무문청자, 상감청자 그리고 15세기경의 분청사기, 16세기경의 인화문 분청사기 그리고 수많은 백자와 기와편들이 발견되고 있는 곳으로, 관천의 치소로 추정된다.

세심사(아산)

세심사(아산)

2025-10-23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길 180

세심사는 아산시 북부에 솟은 영인산 서쪽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 중산골 계곡을 따라 이어진 임도로 이어져 있다. 이 사찰은 깊은 골짜기에 자연을 벗 삼아 자리한 절이지만 제법 규모가 있다. 백제시대인 645년에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치 않다. 그러나 고려 시대에 세워진 다층탑의 존재를 통해 늦어도 고려 시대에는 이 사찰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원래는 신심사라 부르다가 1968년에 세심사라고 개명하였다. 건물은 대웅전, 영산전, 산령당, 요사, 범종각이 있다. 경내에 보존된 문화유산으로는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세심사 다층탑 외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신중도, 보물로 지정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목판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부모은중경 목판은 현존하는 부모은중경 언해본 목판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그 가치가 높다.

가리산자연휴양림

2026-02-06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두촌면 가리산길 426

홍천 가리산(해발 1,051m) 기슭의 우거진 숲과 노송들이 기암괴석과 조화를 이루는 곳에 있는 자연휴양림이다. 정상에는 3개의 봉우리가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소양호로 갈 수 있는 가삽고개가 있으며 그 형태는 계단식 분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국적 향취를 느낄 수 있다. 휴양림 내에는 예로부터 구전으로 전해오는 큰 바위얼굴, 석간수, 한천자의 묘, 무쇠 말재, 등골산, 산삼 등에 관한 전설이 있는 곳이다. 휴양림 내 시원한 계곡물을 맛보면서 등산할 수 있는 작은 장구실 골짜기와 큰 장구실 골짜기, 용수간 등 폭포가 3곳이 있어서 여름철에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 산 정상 및 산 복부와 계곡 부위에는 향토 수종인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하층에는 두릅나무, 철쭉, 싸리나무, 산초나무 등 수많은 관목류와 약용으로 사용되는 피나물, 애기똥풀, 양지꽃 등 수많은 야생화가 산재하여 자연학습 관찰원으로 좋은 곳이다. 이곳에는 휴양림 숙박시설 외에도 텐트장, 취사장 등도 있어 단체야영지로 적당하다. 또한 피톤치드 성분이 함유된 통나무집과 산림욕장, 산책로 등이 잘 갖춰져 있다. 풋살경기장 등 체육시설도 있다. 등산코스는 블루코스와 레드코스가 있다.

계방산(홍천)

2026-02-06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내면 대한동길 363-8

평창군 용평면과 홍천군 내면에 걸쳐 있는 계방산(1579.1 m)은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에 이어 남한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산이며,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으로 지정되었다. 계방산은 울창한 산림 태백산맥의 한 줄기이며, 남한에서 자동차로 넘는 고개 중 제일 높은 운두령(해발 1,089m)이 산자락을 휘감고 있고 주목, 철쭉이 군락을 이루며 특히 겨울에는 눈 덮인 소나무 숲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산세가 설악산 대청봉과 비슷하며, 최근 들어 이 일대가 생태계 보호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환경이 잘 보호된 곳이다. 이 산의 일부는 오대산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으며, 희귀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산약초·야생화 등이 많이 자라며 희귀수목인 주목·철쭉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계방산에 있는 방아다리약수는 몸에 좋은 성분이 많아 위장병, 피부병에 특효라고 알려져서 많은 사람이 찾는다. 계방산에는 여러 등산코스가 있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코스는 운두령에서 출발하여 정상까지 4.5km 거리를 걷는 코스로 5시간 정도 소요된다. 수타사에서 출발하는 코스는 6.9km 거리로 험하고 경사가 높아서 힘든 편이다. 군업리나 굴운리에서 출발하는 코스도 있으나 거리가 멀고 인적이 드문 편이다. 인근에 계방산오토캠핑장이 있어 자연을 즐길 수 있으며, 이승복 생가도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봉곡사

2025-03-12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도송로632번길 138

충남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에 자리하고 있는 봉곡사는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년)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고찰로 옛 이름은 석암사라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6개의 암자모두 소실 되고 그 이후 인조 24년(1646년)에 중창했으며 정조 18년(1794년)에 경헌과 각준이 중수하고 지금의 이름인 봉곡사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현재 봉곡사는 향각전과 대웅전,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인 고방이 남아 있으며 주차장에서 사찰에 이르는 700m의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아름답고 ‘천년의 숲길’등 자연 산책로가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특히, 이 숲길은 산림청에서 주최한 ‘아름다운 거리숲 부분’에서 장려상을 수상할 정도로 아름다운 숲길이기도 하다.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