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천마총(대릉원)

천마총(대릉원)

2025-11-17

경상북도 경주시 계림로 9

경주 대릉원 안에 위치한 천마총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 이전 신라의 고분이다. 1973년에 발굴되었으며,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 형태를 하고 있다. 무덤은 높이 12.7m, 지름 50m 규모로 봉토 안에는 냇가의 돌로 쌓은 적석층이 있으며 적석층 내부에는 길이 6.5m, 너비 4.2m, 높이 2.1m의 나무로 만든 방이 있고 그 중앙에 목관을 두어 시신을 안치했다. 천마총은 대릉원 고분군 가운데 유일하게 일반에 공개된 고분으로 인근의 황남대총을 발굴하기 전에 시범적으로 조사되었다. 당시 기술로는 황남대총처럼 거대한 규모의 무덤을 바로 발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출토된 유물은 금관, 금모자, 새날개 모양의 관식, 금허리띠, 금동신발 등 피장자가 착용한 장신구류를 포함해 총 11,526점에 달한다. 이 중 대표 유물인 금관은 전형적인 신라 금관의 형태로 앞면에는 나뭇가지 모양의 세 줄 장식이 솟아 있고 뒷면에는 사슴뿔 모양의 두 줄 장식이 있다. 또한 나뭇가지 장식에는 생명력을 상징하듯 돋아나는 싹 모양과 곡옥 장식들이 달려 있으며, 지금까지 출토된 금관 중 가장 크고 화려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천마총의 이름은 이 무덤에서 발견된 ‘천마도’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이 그려진 말다래(말을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가죽 같은 것을 말의 안장 양쪽에 늘어뜨려 놓은 기구)로 우리나라 고분에서 처음으로 출토된 회화작품이며, 신라 회화의 대표작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아 국보로 지정되었다. 현재 천마총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경주 오릉

경주 오릉

2026-06-10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67-1

경주시 탑동에 위치한 4기의 봉토무덤과 1기의 원형무덤이다. 1969년 8월 2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내부구조는 알 수 없으나 무덤의 겉모습은 경주시내에 있는 다른 삼국시대 신라무덤과 같이 둥글게 흙을 쌓아 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1호 무덤이 높이 10m로 가장 크며, 2호 무덤은 표주박형으로 봉분이 두 개인 2인용 무덤이다. 이러한 대형 원형 봉토무덤은 신라에서는 4세기 이후 등장하는 것으로 박혁거세 당시의 무덤 형식은 아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왕비 알영부인,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신라 초기 4명의 박씨 임금과 왕비 1명의 무덤이라 나와 있다. 한편, 『삼국유사』에는 박혁거세 승하 후 7일 만에 몸이 다섯 개로 흩어지자 왕비도 따라 죽으니, 사람들이 같이 묻으려고 했으나 큰 뱀이 방해해 몸의 다섯 부분을 각각 묻었는데, 그것을 오릉(五陵) 또는 사릉(蛇陵)이라 했다고 한다. 오릉 동편에는 시조왕의 위패를 모시는 숭덕전이 있으며, 그 뒤에는 알영부인의 탄생과 관련한 알영정이 보존되어 있다.

옥산서원(경주)

옥산서원(경주)

2026-06-19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216-27

경주 옥산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이언적의 학문은 퇴계 이황에게 이어져 영남학파 성리설의 선구가 되었다. 이러한 회재 이언적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선조 5년(1572)에 경주부윤 이제민이 처음 세웠고 그다음 해에 임금에게 ‘옥산’이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공부하는 공간 구인당이 앞에 있고 제사를 지내는 체인묘가 뒤에 위치한 전학후묘식의 배치 체계를 따르고 있다. 구인당은 맞배지붕 건물로 헌종 5년(1839)에 화재로 사라졌다가 다시 지어진 건물이다. 그 외에도 정문인 역락문, 2층 건물인 무변루, 학생들의 기숙사로 동재인 민구재, 서재인 암수재 등 여러 건물이 있다. 옥산서원은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속에서도 살아남은 47개 사액서원 중 하나로 그 덕분에 선생의 저서는 물론, 역대 명인들의 글씨와 다양한 문집 등의 귀중한 서적들이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경주 선덕여왕릉

경주 선덕여왕릉

2025-12-11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경주 낭산의 정상에 있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릉(재위 632∼647)은 646년경에 조성되었다. 높이 6.8m, 지름 23.6m의 원형 봉토분이며, 자연석을 이용해 봉분 아래에 2단 보호석을 쌓은 것 외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선덕여왕은 아들이 없던 진평왕의 딸로 태어나 성골이라는 특수한 신라 왕족 의식에 의해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되었다. 재위 16년간 첨성대와 분황사, 특히 신라 최대의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으며, 훗날 태종 무열왕이 되는 김춘추와 명장 김유신과 함께 신라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선덕여왕이 죽을 날을 예언하며 부처의 나라인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도리천은 불교 설화의 수미산 밑을 이야기하는데 어디를 말하는지 몰라 신하들이 묻자, 낭산 기슭이라 대답하였고, 이 기슭에서 장사를 지냈다. 이후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한 후 낭산에 사천왕사를 지었다. 사천왕이란 도리천의 호불신으로 선덕여왕의 무덤은 결국 도리천에 있는 셈이 되어 비로소 신하들이 낭산의 정상이 도리천이라 한 여왕의 뜻을 알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경수 선덕여왕릉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변에 신문왕릉, 효공왕릉, 신무왕릉, 효소왕릉 등이 있다.

경주 무열왕릉·태종무열왕릉비

경주 무열왕릉·태종무열왕릉비

2026-05-11

경상북도 경주시 능남길 10-4

경주 무열왕릉은 신라 제29대 태종(太宗) 무열왕(재위 654∼661, 김춘추)의 능이다. 경주 북서쪽에 있는 선도산(仙桃山)에서 남쪽으로 뻗은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해 있다. 김춘추는 신라 중대(中代)의 첫 진골(眞骨) 출신 왕으로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병합하고 통일 대업의 기반을 닦았으나 통일을 완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능은 밑둘레 114m, 높이 8.7m로 비교적 큰 편이며 능 아래쪽은 자연석을 쌓고 드문드문 큰 돌로 받쳤으나 지금은 흙 속에 묻혀 있다. 동쪽에 비석을 세웠던 돌거북 받침돌과 머릿돌이 남아있는데,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金仁問)이 쓴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글씨가 돋을새김 되어 있어 이곳이 무열왕의 능임을 알 수 있다.

금관총

금관총

2025-08-07

경상북도 경주시 봉황로 15 (노서동)

신라의 금관이 출토되어 붙은 이름이다. 1921년 9월 가옥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것인데, 이미 파괴된 고분인 데다 정식으로 발굴조사된 것이 아니어서 묘의 구조나 유물의 정확한 상황은 밝혀지지 않았다. 출토물은 금관을 비롯하여 장신구·무구(武具)·용기 등이며, 특히 구슬 종류만 총 3만 개가 넘게 나왔다. 금관총의 원형은 지름이 50m, 높이 13m 정도이고, 신라 때만 있었던 돌무지무덤[積石塚]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속에 덧널[木槨]을 마련하여 옻칠한 널 [木棺]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이러한 구조와 불교의 영향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통일 신라 이전인 지증왕(智證王) 전후의 6세기에 만들어진 왕릉으로 추정된다.

경주 포석정지

경주 포석정지

2025-12-11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경주 남산 서쪽에 있는 포석정은 왕이 술을 들면서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별궁의 하나였으나, 현재 정자는 없고 풍류를 즐기던 물길만이 남아있다. 조성연대는 신라 제49대 헌강왕(875~886) 때로 본다. 규모는 폭이 약 35㎝, 깊이 평균 26㎝, 전체 길이가 약 10m이다. 포석정은 중국 고대 강가에서 초혼제를 지내고 악귀를 쫓는 행사의 하나인 유상곡수연에서 유래하였다. 353년 중국의 왕희지가 쓴 난정서문에 보면 맑은 시냇물을 아홉 구비로 돌아 흐르게 하여 흐르는 물속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게 하되 술잔이 아홉 구비를 다 지날 때까지 시를 짓지 못하면 벌술 3잔을 마시게 하였다. 유상곡수를 즐기는 주위는 높고 험한 산이 있고, 숲과 대나무숲이 있으며 옆으로는 맑은 시냇물이 흘렀다 한다. 이에 신라에서도 험한 남산 봉우리를 뒤로 하고 죽림과 송림이 울창하고 맑은 시내가 흐르는 계곡에 포석정을 만들었던 것이다. 원래는 남산계곡에서 흘러 들어오는 입구에 거북 모양의 큰 돌이 있었고, 그 입에서 물이 나오도록 만들어졌다고 하나 지금은 없어져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고 삼국유사에 헌강왕이 이곳에 와서 남산 신의 춤을 따라 해 어무상심무를 만들었다 한다. 또한 이곳은 인간의 마음을 수양하고 화랑이 정신을 도야하며 시문을 짓고 속세를 떠나 유정을 느끼던 아름다운 장소였다. 927년 신라 경애왕이 이곳에서 잔치를 베풀며 놀고 있다가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붙잡히게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신라 천 년 역사의 치욕이 담긴 장소이기도 하다. 화랑세기필사본에서 포석정을 포석사(鮑石社)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1998년 남쪽으로 50m 떨어진 곳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면서 이곳에 규모가 큰 건물이 있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제사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제기류도 출토되어 포석정이 연회를 즐기던 곳이 아니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 의식을 거행하던 신성한 장소였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입구 포석정지 방문자센터에서는 포석정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모형과 영상물을 상영한다.

경주 첨성대

경주 첨성대

2026-08-13

경상북도 경주시 첨성로 140-25

첨성대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경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 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 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으로 높이는 약 9m이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도라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 자 모양으로 맞물린 기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첨성대를 이루는 돌들은 저마다의 의미를 가진다.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진 첨성대의 모양은 하늘과 땅을 형상화했다. 첨성대를 만든 365개 내외의 돌은 1년의 날수를 상징하고, 27단의 돌단은 첨성대를 지은 27대 선덕여왕을, 꼭대기 정자석까지 합치면 29단과 30단이 되는 것은 음력 한 달의 날수를 상징한다. 관측자가 드나들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가운데 창문을 기준으로 위쪽 12단과 아래쪽 12단은 1년 12달, 24 절기를 표시한다. 하늘의 움직임을 계산해 농사 시기를 정하고, 나라의 길흉을 점치는 용도로도 첨성대가 활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과거의 특별한 인연으로 묶인 보겸과 지아가 서로를 스쳐 지나갔던 첨성대는 경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다. 유적으로서 관람가치가 뛰어난 것은 물론 계절마다 다양한 꽃과 식물이 피어나 나들이를 즐기려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밀양 영남루

밀양 영남루

2026-06-18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24 (내일동)

밀양 남천강 옆 아동산에 위치한 영남루는 국보로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누각으로 손꼽힌다. 동서 5간, 남북 4간의 팔작지붕에다 좌우로 2개의 딸린 누각을 거느린 이 거대한 2층 누각은 신라의 5대 명사 중의 하나였던 영남사의 부속건물인 소루였으나, 영남사가 폐사되고 난 이후 고려 공민왕 때 그전부터 있던 누각을 철거하고 규모를 크게 하여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의 건물은 1884년에 밀양부사 이인재가 다시 세운 것이다. 부속건물로 능파각, 침류각, 사주문, 일주문, 천진궁이 있으며 영남루 누각에는 역사의 흐름을 조명해 볼 수 있는 당대 명필가들의 작품들이 편액으로 즐비하게 남아 있고 뜰에 깔린 석화 또한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게 한다. 영남루의 침류각과 본 누각 사이를 달월(月) 자형의 계단형 통로로 연결하여 건물의 배치와 구성에 특징을 배가 시켰는데 웅장한 기풍으로 인해 당당하면서도 회화적인 아름다움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밀양강에 임한 절벽 위에 위치하여 웅장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그 경관이 수려하여, 1931년 당시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의 16경을 선정할 때 영남루가 그 16경 중에 하나로 선정되었다.

아랑각

아랑각

2026-05-29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24 (내일동)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에 있는 조선시대 사당으로 밀양 남천강 옆의 영남루 바로 아래 대나무숲 속에 있다. 이 비각은 죽음으로써 처녀의 정절을 지킨 아랑을 기리는 것으로 조선 명종 때 세워진 것이라 한다. 1965년 종래의 건물이 낡아 지역민들과 출향 인사들의 성금과 당국의 보조로 현재의 아랑각을 중건하였다. 사당은 맞배지붕의 3칸 건물이며 삼문으로 이루어진 정문은 정순문이라고 편액 하였다. 사당 안에는 이당 김은호가 그린 아랑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아랑은 조선 명종 때 밀양부사의 딸 윤동옥을 가리키며 재기 있고 자색이 뛰어난 규수로 전해진다. 18세 때 유모의 꾐에 빠져 영남루로 달구경을 갔다가 통인 주기에게 정조를 강요당하자 죽음으로 정절을 지켰다. 이후 밀양 사람들은 아랑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정절을 기리기 위해 영남루 아래 아랑의 시신이 묻혔던 곳에 열녀사라는 사당을 지었다. 매년 음력 4월 16일이면 소복한 처녀들이 제관이 되어 제등을 밝히고 그의 정숙한 넋을 기리는 아랑제가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