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4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산온천로 183-9
보부상유품전시관(예덕상무사)는 예산 충의사(매헌 윤봉길 의사 유적) 내에 건립된 옛 보부상 관련 유물을 전시하는 곳이다. [예덕상무사]는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조직돼 전해 내려온 내포(예산, 덕산 일대) 지역의 보부상을 관리하던 정부 관서이다. 보부상은 보상과 부상을 총칭하는 명칭으로 보상은 비교적 값이 나가는 상품들을 보따리에 싸서 이거나 들고 다녔기 때문에 [봇짐장수]라 불렸으며, 부상은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일상용품을 지게에 짊어지고 다녀 [등짐장수]라고 하였다. 이러한 보부상은 시장을 중심으로 행상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교환경제를 매개하던 전문적인 시장 상인이었으나, 20세기 들어 일제 침략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쇠퇴하였다. 이곳에서는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총 25건의 유물을 비롯하여 예덕상무사 보부상들이 남긴 유물과 옛 시장 풍경의 사진과 재현된 모형을 디오라마로 볼 수 있다. 주변에는 충의사 및 윤봉길의사기념관 외에 내포보부상촌, 덕산 메타세쿼이아길, 가야산, 덕숭산, 수덕사, 옥계저수지, 남연군묘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그 중 도보 15분,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내포보부상촌은 보부상을 주제로 한 공원으로 연계성이 더욱 크다.
2026-06-08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남연군의 묘는 조선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이자 고종의 할아버지인 남연군(본명 이구, 1788~1836)이 잠든 묘소로, 덕산도립공원 가야산 지구에 위치해 있다. 이 묘소는 원래 경기도 연천에 있었고, 이곳에는 가야사라는 사찰이 있었다. 그러나 이곳이 가야산 아래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좌청룡, 우백호가 웅장하게 뻗어 있어 [이대천자지지], 즉 2대에 걸쳐 황제가 되는 곳이라는 말을 들은 흥선대원군이 가야사를 불태워 폐사시키고 자신의 아버지 묘소를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그리하여 흥선대원군 집안에서는 실제로 고종과 순종 2대에 걸쳐 황제가 배출되었다. 2018년에는 이러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명당]이 개봉되기도 하였다. 묘소 이장 이후엔 1869년에 독일인 오페르트가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남연군의 시신을 볼모로 조선 조정을 협박하기 위해 이 묘소를 도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여파로 조선이 쇄국정책을 시행하고 천주교 박해가 더욱 강화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지금은 다시 단장되고 1989년에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람객을 맞고 있으며, 묘소 이장 당시 사라졌던 가야사지가 발굴되고 있다. 주변에는 가야산 외에 상가리 미륵불, 덕산온천, 충의사(매헌 윤봉길 의사 유적), 윤봉길의사기념관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2025-02-24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
조선후기의 실학자이며 대표적인 서예가였던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생가인 추사고택은 추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사고택은 266.11m²(80.5평)으로 솟을대문의 문간채, ㄱ자형의 사랑채, ㅁ자형의 안채와 추사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는 가옥이다. ㄱ자형의 사랑채는 남쪽에 한 칸, 동쪽에 두 칸의 온돌방과 나머지는 대청과 마루로 되어 있다. 안채에는 6칸 대청과 2 간통의 안방, 건넌방이 있다. 이밖에도 추사 선생의 묘소와 증조부이신 김한신과 부인인 화순옹주의 합장묘 그리고 화순옹주 열녀문 즉, 홍문이 있다. 또한 추사고택에서 북쪽으로 600m쯤 올라가면 천연기념물인 백송을 볼 수 있는데 백송은 중국북부 지방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 몇 그루 없는 희귀한 수종이다. 예산의 백송은 추사선생이 25세 때 청나라 연경에서 돌아올 때 백송의 종자를 붓대 속에 넣어가지고 와서 고조부 김흥경의 묘 입구에 심었던 것으로, 원래는 밑에서 50cm부터 세 줄기로 자라다가 서쪽과 중앙의 두 줄기는 부러져 없어지고 동쪽의 줄기만이 남아서 자라고 있다. 1980년도에 줄기의 피해 부분을 외과 수술하여 치유하였고, 그 후부터는 철저하게 보호, 관리하고 있다.
2026-06-10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은 1983년에 발견된 것으로 돌기둥 4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는 백제시대 유일의 사면불(四面佛)이다. 사면불은 일명 ‘사방불’이라고도 하는데, 동서남북 방위에 따라 사방 정토에 군림하는 신앙의 대상인 약사불, 아미타불, 석가불, 미륵불을 뜻한다. 남면에는 본존불로 생각되는 여래좌상이 있고, 나머지 면에는 여래입상이 각각 1구씩 새겨져 있다. 머리 부분은 많이 훼손된 채 서향과 북향만이 남아있고, 따로 끼울 수 있도록 되어있는 손은 모두 없어졌다. 4구의 불상은 모두 양 어깨에 옷을 걸치고 있으며, 가슴 부분에 띠매듭이 보인다. 옷주름이 매우 깊고 가슴아래에서 U자형으로 겹쳐 있다. 머리광배는 원형으로 불꽃무늬·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백제 특유의 양식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석조 사방불로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과 비교할 수 있어 백제미술사와 불교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2026-08-03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만해로318번길 83
만해 한용운선생의 생가는 초가지붕을 얹었으며 방 두 칸, 부엌 한 칸으로 구성된 일자형 구조로 한용운이란 문패가 걸려있다. 댓돌이며 툇마루가 한없이 정겹고 우물과 장독대를 돌아 집 뒤 야산 언덕배기를 올려보면 적송과 조릿대가 자란다. 부엌 옆은 장작을 쌓아두는 헛간이고 사랑방 옆은 절구통과 맷돌이 보관된 헛간이다. 생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위패와 영정을 모신 만해사라는 사당이 있다. 1879년 이곳 성곡리에서 태어난 한용운 선생은 6세부터 성곡리 서당골에서 한학을 배워 9세에 문리를 통달,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26세에 강원도 백담사에 들어가 불문에 입도하였고 삼일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불교개혁운동에 일생을 바쳤으며 1944년 69세의 나이로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별세했다.
2025-06-11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읍 백천리
우산성은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백제시대 축성한 산성이다. 대개 가로모양의 자연석을 모쌓기로 하였으며, 잘 남아 있는 곳의 성벽은 높이 7m, 폭 6m가량 된다. 남벽과 동벽이 만나는 곳, 북벽과 동벽이 만나는 부분은 다른 곳보다 높은데 아마도 전투 시 장수가 올라서 지휘하던 장대가 있던 곳으로 보인다. 성 안에서는 몇 개의 건물터와 저장용 구덩이가 확인되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우물이 있다고 한다. 성에서 보이는 유물은 백제 토기조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기와조각도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이 성은 백제 때 쌓아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산성을 따라 우산의 정상에 이르다 보면 칼바위 광장을 만나는데 보기 드문 기이한 모습의 바위들을 볼 수 있다. 정상에 위치한 청룡정 누각에 걸터앉아 청양의 전경을 내려다보면 산행 끝에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2026-06-08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북리
성북리 오층석탑은 높이 6.2m로 고려시대에 세워졌으면서도 백제 영토였던 서천 지역의 특색을 살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닮은 백제계 양식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이 탑은 단층 기단에 5층의 탑신을 갖추는 등 백제계 석탑 양식을 가장 충실히 따르고 있다. 특히 각 면의 모습이 위는 좁고 아래는 넓어 사다리꼴을 하고 있는 것이 영락없는 백제의 탑이다. 그러므로 백제계 석탑 양식의 분포에 따른 그 전파 경로를 알아내는 데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가치가 있는 국가유산이다. 1963년에는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주변에 비인읍성, 비인향교, 비인해수욕장, 월명산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하기 좋다.
2026-04-15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종단길 71
조선 후기 사회 운동가인 이상재(1850∼1927) 선생의 생가가 있던 자리이다. 이상재는 종교가·정치가로 일찍이 기독교에 입교하여 신앙운동을 통해 민족정신을 일깨우고자 노력했다. 고종 18년(1881) 신사유람단의 수행원으로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와 고종 25년(1888) 전권대신 박정양을 수행하여 주미공사 서기로 부임했다. 미국에 다녀온 뒤, 신문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광무 2년(1898) 서재필과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민중 계몽에 앞장섰다. 1927년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단일 전선을 결성하여 일본과 투쟁할 것을 목표로 신간회를 조직할 때, 창립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저서로 논문집 『청년이여』, 『청년위국가지기초』 등이 있다. 선생의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초가집으로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대문은 솟을대문을 두었다. 안채는 1800년경에, 사랑채는 1926년경에 지었다고 하나 원래 건물은 1955년에 없어지고 지금 있는 건물은 1972년, 1980년 두 차례에 걸쳐 복원한 것이다. 생가 옆에는 유물전시관이 있어 선생이 생전에 남긴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2025-07-18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아문길 27
안회당은 조선시대 충남 서북부 지역의 중심지였던 홍주의 지방관이 근무하던 관청이다. 1678년에 처음 세웠고, 1870년 한응필 목사가 다시 크게 지었다. ‘안회당’이라는 이름은 논어의 ‘노자안지 붕우신지 소자회지’에서 인용한 것으로, ‘노인은 평안하게 모시고 벗은 믿음으로 대하고 아랫사람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라는 의미이다. 현판의 글씨는 홍선대원군이 썼다고 전하는데, 광복 이후 분실되어 1991년에 새로 제작하였다. 여하정은 안회당의 뒤뜰에 있는 작은 연못에 세워진 정자이다. 19896년에 이승우 관찰사가 옛 청수정 자리에 세운 것이다. 이곳에서 역대 홍주목사들이 관아 일을 돌보다가 휴식을 취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정자는 육각형의 나무기둥으로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데, 기둥에는 오언시가 주련으로 각 2개씩 총 12개가 걸려있다. 작은 규모의 정자이지만 고목과 연못의 연꽃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2025-07-18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백야로546번길 12
김좌진장군생가지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백야 김좌진이 출생하고 성장한 곳으로 충남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생가는 안채, 사랑채, 곳간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채는 김좌진 장군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으로, 사랑채는 김좌진 장군의 부친인 김두영 선생이 거주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곳간채는 김좌진 장군의 가족들이 사용하던 창고로 사용되었다. 생가 주변에는 김좌진 장군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사당, 기념관, 백야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사당은 김좌진 장군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기념관은 김좌진 장군의 독립운동 활동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백야공원은 김좌진 장군의 생가와 사당을 둘러싸고 있는 공원으로, 김좌진 장군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