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성지리산콘도&리조트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일성지리산콘도&리조트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일성지리산콘도&리조트

일성지리산콘도&리조트

4.3 Km    36898     2023-03-28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천왕봉로 626-25
063-636-7000

일성 지리산 리조트는 지리산에서 가까우며 차로 1시간만 가면 춘향전의 배경이 된 광한루원, 춘향테마파크, 남원항공우주천문대 등을 볼 수 있다. 남원에 머무는 동안 이 호텔에서 아늑한 객실 및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또한 귀빈층, 카페, 발렛 파킹 등도 이용할 수 있다. 이 호텔에서는 투숙객들을 위한 24시간 리셉션, 회의실, 컨시어지 서비스등을 포함한 다양한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바래봉

바래봉

4.8 Km    36870     2023-11-17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바래봉길 196

바래봉은 스님들의 밥그릇인 바리때를 엎어놓은 모습과 닮아 그렇게 붙여졌다고 한다. 둥그스름하고 순한 산릉인 데다가 여기저기 마치 누군가 일부러 가꾸어 놓기라도 한 듯 초원에 철쭉이 무리 지어 있다. 산행은 운봉읍에서 1.5km 떨어진 용산마을에서 시작한다. 목장 뒤로 나 있는 산판길을 따라 오르기 때문에 산행이 비교적 수월하다. 산판길이 끝나는 바래봉 정상 아래부터 철쭉 군락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철쭉은 사람의 허리나 키 정도 크기로, 4월 하순에 산 아래에서 피기 시작한다. 철쭉제가 열리며, 5월 하순까지 철쭉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바래봉 철쭉의 백미는 정상에서 약 1.5km 거리의 팔랑치 구간이다. 바래봉 정상은 지리산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도 손꼽힌다. 동쪽의 천왕봉에서 서쪽의 노고단에 이르는 지리산 주능선 전체가 파노라마처럼 전개되고 굽이치는 암봉이 공룡등을 연상케 한다. 하산은 남서쪽으로 뻗은 철쭉 군락지를 따라 팔랑치까지 간다. 팔랑치에서 산판길을 따라 산덕리 - 운봉읍으로 내려가는 길과 계속 직진하여 세걸산-정령치까지 가는 종주코스, 내령리 - 뱀사골 입구로 하산하는 코스가 있다.

지리산한옥마을[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지리산한옥마을[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5.0 Km    12944     2023-02-17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대정방천길 43
010-8107-1838

전라북도 남원시에 위치한 지리산한옥마을은 천왕봉과 노고단 아래 명당으로 이름난 고택이다. 뱀사골과 노고단이 차로 20분 이내에 있어 여름철 방문 비중이 높다. 주위의 경관의 워낙 뛰어나 시인, 문학인, 경영인들이 자주 찾고, 특히 2008년 노벨문학상 후보가 이곳에 머물면서 작품활동을 했다고 한다.

달팽이

5.2 Km    3     2021-11-17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산내원천길 71

한옥게스트하우스 달팽이는 지리산 뱀사골 자락에 위치한 주인이 직접 마음담아 설계하고 지은 21평 12평의 조그마한 ㄱ자 한옥 두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홈 스테이 형식으로 방 4칸과 부엌 그리고 마루를 열어놓고 있고요 모든방은 구들난방 방식이므로 겨울에는 따뜻한 구들방에서 편안하게 숙면하기 좋습니다! 여름에는 넓은 마당과 시원한 대청마루에서 편히 쉬다가 밤이되면 마당평상에 누워 별빛 바라보는 지극한 즐거움도 느껴보세요!

토비스콘도 지리산

토비스콘도 지리산

5.2 Km    33530     2023-07-06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산내원천길 4-5
063-636-3663

토비스콘도 지리산은 남원시 산내면 장항리 소재하고 있으며, 17평/23평 크기의 객실이 있다. 부대시설은 가요주점, 식당, 슈퍼마켓, 연회장 등이 있으며, 주변 관광지로는 황산대첩비지, 혼북문학마을, 행글라이딩 & 패러글라이딩, 피바위, 춘향테마파크 지리산, 요천수상 유원지, 승월교, 백장암 계곡, 만복사지, 동편제 판소리 전시관, 남원성, 남원랜드, 남원관광단지, 교룡산성, 광한루원 등이 있다.

지리산 원천마을(남원)

지리산 원천마을(남원)

5.4 Km    4736     2023-03-06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산내원천길 33

원천마을은 지리산 뱀사골 계곡 인근에 위치한 마을로 뱀사골 꿀 사과의 원산지로 유명하다. 원천마을에서 시작하여 철쭉군락지로 유명한 바래봉까지 개설된 약 8km 구간의 신선둘레길은 울창한 솔 숲길과 산촌마을의 풍경이 어우러진 남원시를 대표하는 숲길로서 해마다 많은 산행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아름다운 휴식 겨울에는 눈썰매, 신선둘레길 걷기, 두부만들기, 메주만들기 등 따뜻하고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체험마을이다.

상황마을

상황마을

5.4 Km    6     2023-08-21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황치길 156

마을 주변의 3개 자연 마을 중 위쪽에 있어 웃황치라 하다가 한자로 바꾸어 상황(上黃)이라 하였다. 마을 뒤로는 삼봉산(三峰山) [1186.7m]이, 동쪽으로는 백운산(白雲山)[902.7m] 줄기인 등구재가 있다. 마을 뒤쪽의 등구재는 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으로 통하는 유일한 고갯길이었다. 이곳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두루뭉술한 봉우리가 백운산이고, 그 왼쪽 아래로 이어지는 잘록이가 등구재인데, 왼쪽으로 오르며 이어지는 산줄기는 삼봉산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바로 이 산줄기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를 경계 짓는데, 도 경계를 이루는 삼봉산과 백운산은 가히 지리산 전망대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주 능선이 잘 조망되는 곳이기도 하다.

남원 실상사 석장생

남원 실상사 석장생

5.4 Km    17656     2023-01-13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길 94-129

이 돌장승들은 실상사를 지키는 상징적인 조각품으로, 원래는 이 곳 냇가에 모두 네 개가 있었다. 절로 가는 도중 내를 건너기 전에 두 개의 장승이 서 있었는데, 그중 오른쪽 것이 1936년 홍수에 쓸려 내려가 현재는 세 개만 남았다. 장승들의 높이는 대략2.5∼2.9m, 너비 40∼50cm 가량이며, 머리에 모자를 쓰고 튀어나온 둥근 눈에 주먹코와 커다란 귀를 갖는 등 비슷한 양식을 보인다. 장승에 새긴 기록으로 보아, 같은 시기인 조선 영조 1년(1725)에 세운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배치해 음양의 조화를 꾀하는데, 이 곳 장승은 모두 남자 형태이다. 귀신을 쫓는 장승들의 표정이 험상궂기는 커녕 오히려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실상사(남원)

실상사(남원)

5.6 Km    27829     2023-05-12

전라북도 남원시 입석길 94-129 실상사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3년 (828년)에 증각대사님이 9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을 개산하면서 창건했다. 이 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 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가 버린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절을 세웠다고 전한다. 정유재란 때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조선 숙종 26년(1700년)에 다시 지었으나, 고종 19년(1882년)에 거의 불타 버려 일부만 남게 되었다. 현재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국보인 높이 약 5m의 백장암 3층석탑과 보물 11여점을 포함 단일사찰로는 가장 많은 17점의 지방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진입로는 논 가운데 있고, 절은 산속이 아닌 들판에, 수목들에 둘러싸여 있다. 절 입구에서 반달모양의 돌다리인 해탈교를 지나면 보이는 돌장승이 인상적이다. * 수철화상의 사리탑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실상사 경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수철화상(秀澈和尙)의 승탑으로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3m, 재료는 화강석이다. 스님들이 입적한 후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사리탑으로 흔히 부도(浮屠)라고 한다. 이 승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승려인 수철화상의 것인데, 수철화상은 홍척국사의 제자이고 실상산문의 제2조사(第2祖師)로 원래 심원사(深源寺)에 머물다가 후에 실상사에 들어와 이 절의 두 번째 창건주가 되었다고 한다. 893년(진성여왕 7)에 수철화상이 77세로 입적함에 따라 진성여왕은 ‘수철화상(秀澈和尙)’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명(塔名)을 ‘능가보월(楞伽寶月)’이라 하였다. 현재 실상사 극락전을 향해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남원 실상사 수철화상탑 (수철화상능가보월탑)] 보물(1963년 1월 21일 지정) * 목조건물의 건축양식을 충실하게 묘사 * 이 승탑은 지대석에서 옥개석에 이르기까지 모두 8각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승탑이다. 기단부는 모두 3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대에는 구름과 용, 사자 등의 무늬가 조각되어 있으나 마멸이 심하여 잘 알아볼 수 없으며, 중대에는 각 모퉁이에 기둥이 새겨져 있다. 상대는 여러 겹의 복련(覆蓮)을 조각하였는데 꽃잎이 넓고 중앙 부분이 약간 솟아 있다. 상대 위에는 8각으로 된 받침을 두고 그 위에 탑신과 옥개석을 두었는데, 탑신은 각 면에 문비(門扉)와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조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두툼한 편으로 추녀 밑에는 연목(椽木)을, 지붕의 경사면에는 기와골을 섬세하게 조각하는 등 목조 건축의 세부 양식을 충실하게 묘사하였다. 상륜부는 몇 층의 단이 남아 있을 뿐 나머지는 없어졌다. 승탑 옆에 ‘실상사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實相寺秀澈和尙楞伽寶月塔碑)’가 있어 수철화상의 생몰 연대와 행적 및 생애를 알 수 있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팔각원당형 승탑 양식을 기본으로 했으며, 특히 목조 건축의 세부 양식을 충실하게 묘사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 통일신라 홍척대사의 사리탑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성리 실상사 경내에 있는 통일신라 승려 홍척대사(洪陟大師)의 승탑으로 높이 2.42m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승탑은 스님들이 입적한 후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사리탑으로 부도(浮屠)라고 한다. 이 승탑은 홍척 대사의 사리탑(舍利塔)이다. 홍척 대사는 통일신라 헌강왕 때에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826년(흥덕왕 1)에 귀국하였다. 그는 신라 하대 구산선문 중 최초의 산문인 지리산 실상산문의 개산조(開山祖)이다. 홍척 대사의 입적 연대는 알 수 없지만 9세기 중반으로 추정되며, 승탑 또한 이때를 즈음하여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홍척 대사의 시호는 증각(證覺)이며, 탑명(塔名)은 응료탑(凝寥塔)이다.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 (증각대사 응료탑)] 보물 (1963년 1월 21일 지정) * 비천상과 보살좌상의 모습 조각 * 증각대사 응료탑은 지대석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팔각형으로 이루어진 팔각원당형 사리탑이다. 지대석은 평면이 사각형으로 넓게 마련되어 있으며, 그 위로는 팔각형의 기단과 탑신, 옥개석이 올려 있다. 하대는 2매의 돌로 되어 있는데 하단석에는 구름무늬가 장식되어 있고, 상단석에는 아무런 문양이 없으며, 중대를 받는 1단의 받침이 마련되었다. 중대는 각 면이 두 개의 사각형으로 구획된 받침대 위에 놓여 있는데, 각 면에는 안상(眼象) 내에 비천상과 보살좌상이 각 1구씩 얕게 조각되어 있다. 상대는 16엽의 앙련(仰蓮)이 삼중으로 화려하게 배치되었으며, 그 위로 고복형(鼓腹形) 기둥 사이에 안상이 조각된 탑신 받침대가 놓여 있다. 탑신은 2면에는 문비(門扉)와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 통일신라의 팔각원당형 승탑 형식의 자료 * 옥개석은 추녀 밑에 연목(椽木)을, 지붕의 경사면에는 기와골을 섬세하게 조각하는 등 목조 건축의 세부 양식을 충실하게 묘사하였으며, 추녀 끝에는 풍탁(風鐸)을 달았던 작은 구멍이 나 있다. 옥개석 정상부에는 각형 2단의 상륜받침이 마련되어 있으며, 상륜부는 현재 단판 8엽의 앙련문이 장식된 앙화석과 연화문이 장식된 보륜(寶輪), 원형의 보주(寶珠)만 남아 있다. 승탑 옆에‘실상사증각대사응료탑비(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碑)’가 세워져 있어 홍척 대사의 행적과 생애를 알 수 있다. 이 탑은 실상사 수철화상 능가보월탑과 함께 9세기 중엽 통일신라의 팔각원당형 승탑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신기마을

신기마을

5.6 Km    0     2023-11-08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운봉신기길 103

신기마을은 선조 28년(1595) 임진왜란 후 인동 장씨 장덕복이 이곳에 터를 잡아 마을이 형성되었다. 전란에 고통을 받다가 지리산의 기운이 이어지는 명당자리로 새 삶을 시작하는 터전이란 뜻으로 ‘새터(신기,新基)’라 하였다. 신기마을은 지형학적으로 와우형, 즉 소가 누워 있는 평화로운 정경이라고 한다. 초봉에는 운봉의 갑부 박희옥이 만든 별장이 있었다. 이곳에서 많은 명창 소리꾼들을 불러 판소리를 감상하고, 또 그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판소리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