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점곡계곡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의성점곡계곡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의성점곡계곡

의성점곡계곡

17.4Km    3     2023-08-07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중리들길 14-33

※장마·소나기 등 폭우 시 출입금지 및 야영객 철수조치 / 코로나로 인해 튜브·구명조끼 대여 중단
의성점곡계곡은 점곡면 사촌리 667번지에 위치한 계곡이다.상·하류, 2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고 모두 안전요원이 배치되어 있다.암석 절벽 앞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계곡 앞에는 캠핑을 할 수 있는 넓은 공터가 있다.주차장, 화장실이 갖추어져 있으며 입장료, 주차장 이용료 등은 모두 무료이다.운영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고 날씨가 맑으면 자유롭게 입장이 가능하다.

진월사(영주)

진월사(영주)

17.6Km    18957     2023-02-16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 1106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 학가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진월사는 천년고찰로 이 고장 절 가운데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해 있으며, 서북으로 멀리 소백산 연봉을 마주하고 절 아래로 내성천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다. 진월(陳月)이라는 이름은 이 곳의 지명과 관련이 깊다. 학가산 진월사는 영주시와 안동시의 접경지역으로 현재 절이 있는 곳은 영주시에 속하나, 안동 월전(月田)동이 본마을이라고 한다. 이 마을 지형이 고지대 분지를 이루고 있고 동산마가 위치한 곳에 반월처럼 생긴 동산이 있으며 그 동산을 중심으로 반월처럼 층계로 밭을 이루고 있어 달밭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마을에서 유래되어 절 이름도 진월사가 되었다고 한다.진월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옛 건물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고 현재는 무량보전, 향로전, 심원루와 가정집처럼 지워진 요사채가 눈길을 끈다. * 창건배경 및 역사* 진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이후부터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으며 1720년(조선 숙종 46) 설신(雪信)과 계원(戒員)이 무량보전(극락전)을 중건하면서 이 절의 주불을 지장보살에서 아미타삼존불로 바꿔 봉안하고 노전도 신축하였다. 1797년(정조 21) 계문(戒文)이 중수하였고, 1807년(순조 7) 시임(時任)과 정신(定信)이 중수하였다. 1891년에 희민(曦玟)이, 1919년 보정(普貞)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건물로 무량보전과 삼성각, 심원루, 향로전, 요사 등이 남아 있다. 특별히 전해지는 유물은 없다.

영주호오토캠핑장

17.6Km    0     2024-06-12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 1031-7

영주호오토캠핑장은 기존의 목적인 캠핑 뿐만 아니라 영주댐과 영주호의 수려한 경관과 즐겁고 재미난 문화공연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캠핑장이다. 이에 더불어 주변 관광지의 접근성이 좋아 경북지역 관광코스의 베이스캠프로도 손색이 없으며 영주 뿐만이 아니라 안동, 봉화, 예천, 문경, 영덕 청송 등 경북지역 관광지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17.7Km    20937     2024-06-14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수곡용계로 493-24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는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있는 은행나무로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175호로 지정되었다. 키가 47미터에 이르며, 가슴 높이 둘레가 14미터로 한국 은행나무 가운데에서는 가장 굵으며 700살이 훨씬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용계초등학교 운동장에 있었으나 임하댐의 건설로 물에 잠길 위치에 있어 노거수의 이식이 불가하여 그 자리에 15m의 높이로 흙을 쌓아 인공섬을 만들고 그 자리에 수직으로 옮겨 심은 것이다. 이 나무에는 조선 선조(재위 1576∼1608) 때 훈련대장이었던 탁순창이 서울에서 내려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은행나무 계를 만들어 이 나무를 보호하고, 매년 7월에 나무 밑에 모여 서로의 친목을 도모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재 이 마을은 사라졌지만, 탁씨의 자손들은 해마다 나무에 제사를 드리며 보호하고 있다. 용계리 은행나무는 주민 단합을 이루게 하는 상징물로서의 역할을 하여 온 나무로서 가치가 크고, 우리 선조들이 나무를 사랑하고 보호한 것을 알 수 있는 자료이며 우리나라에 있는 은행나무 가운데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다음으로 크고 오래된 나무이며 주변 단풍나무가 조성되어 가을 단풍명소로 유명하다. 나무를 보기 위해서는 길가에 주차를 하고 인공섬으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야 한다.

약계정

17.8Km    20313     2023-12-13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은행나무길 371-15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약계정은 현종 때 영릉 참봉을 지낸 약계 권순기 공이 강학을 하던 정자이다. 약계 권순기는 어려서부터 재기가 특출하고 학문이 뛰어났으나, 과거에 응시할 적령기의 전후 6년에 걸쳐 생가와 양가 부모의 상을 당해 시기를 놓쳤다. 그 후 어버이가 살아 있지 않아 장차 영친할 일이 없다고 하면서 과거 공부를 폐하였으며, 가정을 주간하여 선대의 업을 계술하는 것을 위무로 삼았던 인물이다. 약계정은 원래 반변천 옆에 건립하였으나 수해로 유실되어 1897년(광무2) 마을 안으로 이건하여 보존되어 오다가,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길안면 용계리에서 1989년 현 위치로 다시 이건하였다. 약계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홑처마 집으로 자연석 덤벙 주초 위에 원주 및 각주를 사용하여 건립한 검소한 정자이다. 마룻바닥을 지반에서 5자 정도로 높게 하여 누마루와 같은 느낌을 준다. 측면 2칸 중 앞쪽 열은 뒤쪽 열보다 좁게 하여 퇴칸으로 하였다. 여기에 마루를 두었는데, 6자 정도로 비교적 널찍하게 하고 전면 기둥 앞으로도 마루를 2자 정도 연장하여 툇마루의 기능을 강화하였다. 정면과 양 측면에는 난간을 설치하여 정자로서의 모양을 갖추었다. 뒤쪽 3칸은 어칸이 마루로 전면의 누마루와 연접되어 있으나 네 짝 들문을 달아 마루방으로 꾸몄다. 양 퇴칸은 온돌방을 들였는데 방의 앞부분은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았으나, 마루 쪽으로는 띠살무늬의 네 짝 들문이 설치되어 있다. 기둥은 전면과 배면을 달리하였는데 전면에는 주두, 소로 및 보아지를 사용한 무익공으로 처리하고 배면은 납도리에 장혀를 받친 장혀수장으로하여 간략하게 처리하여 정면을 돋보이게 하였다. 5량가로 대량과 퇴량 위에 판대공을 세워 종량을 놓았으며, 그 위에 제형판 대공을 올렸다. 중도리와 종도리 장혀 하부에는 첨차를 끼워 약간의 격식을 갖추고자 하였다.

길안장 / 천지장 (5, 10일)

길안장 / 천지장 (5, 10일)

17.9Km    10971     2023-04-12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천지길 43
054-822-2005

안동시 길안면 천지리에서는 장으로 매월 5, 10, 15, 20, 25, 30일에 열린다. 주요 판매 품목은 사과, 고추 등 각종 농산물과 생필품 등이다. 예전에는 규모가 있는 장이었으나, 유통산업의 개방과 농촌인구의 격감으로 인해 서서히 퇴조하게 되었다. 지금도 옛 전통을 이어 5일장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규모가 미미한 상태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시골장터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 구수한 인심과 풍물로 외래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다. 1830년대 안동 지역에는 여러 개의 오일장이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부내장과 신당장을 중심으로 2·7일의 풍산장, 5·10일의 영항장과 산하리장, 1·6일의 예안읍내장, 3·9일의 웅천장, 6·10일의 구미장·도동장·우천장 등이 안동 지역의 장권을 이루고 있었다. 이후 1909년에 이르러 2·7일에 개장하는 부내장이 큰 시장으로 번성하여 농산물, 소, 생선, 그리고 특산물인 안동포와 안동소주 등이 활발히 거래되었다.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되면서 부내장과 신당장은 상설시장으로 변화되어갔다. 하지만 1995년 통합 안동시가 출범한 이후의 현재 안동 지역에는 아직까지도 풍산장, 신시장, 구담장, 중리장, 운산장, 길안장, 송사장, 원천장, 녹전장, 서부장 등의 오일장이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그러나 풍산장과 신시장 이외에는 그 규모가 미미한 실정이다.

길풍

길풍

18.0Km    1     2021-03-10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나바우길 8
054-841-9967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깨끗하고 맛있는 집으로 안동의 향토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대표메뉴는 안동찜닭이다.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한식 전문점이다.

도산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18.1Km    43964     2024-05-13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

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면으로 볼 때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선생이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건립되어 추증된 사당과 서원이다.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에 설립되었다. 퇴계선생이 낙향 후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지었으며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퇴계선생이 직접 설계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와 부전교당 속시설인 하고 직사(下庫直舍)도 함께 지어졌다.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에 완공되었다. 1570년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자 1572년에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에 모실 것을 결정하였다. 2년 뒤 지방 유림의 공의로 사당을 지어 위패를 봉안하였고, 전교당과 동 · 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다. 1575년(선조 8)에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의 편액을 하사 받음으로써 사액(賜額) 서원으로서 영남유학의 총본산이 되었다. 1615년(광해군 7) 사림이 조목(趙穆)을 종향(從享)했다. 1792년(정조 16) 정조 임금이 치제(致祭)를 내리고 도산별과(陶山別科)를 시행하였다. 1796년(정조 20) 시사단 (試士壇)을 세우고, 1819년(순조 19) 장서고(藏書庫)인 동광명실(東光明室) 건립하였다. 1870년(고종 7)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서 제외되었으며, 1930년(경오년) 서광명실(西光明室) 중건(增建)하였고 1932년(임신년) 하고 직사(下庫直舍) 이건 하였다. 1969년 본 서원을 중심으로 임야 및 전답 19 필 324.945㎡이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70년부터 대통령령으로 보수 · 증축 사업을 진행하였으며 우리나라 유학사상의 정신적 고향으로 성역화되었다. 1977년 도산서원관리사무소가 설치되고 관리운영조례를 제정 공포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동 퇴계 오솔길 (녀던길)

안동 퇴계 오솔길 (녀던길)

18.1Km    28003     2024-05-27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

퇴계 오솔길은 ‘퇴계 녀던길’이라 전해오는데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이 즐겨 찾던 길이다. 녀던길 혹은 예던길이란 옛 선비가 다니던 옛길을 뜻한다. 1534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간 퇴계는 여러 관직을 거친 뒤 쉰아홉살이 되던 해(1560)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와 도산서당을 짓고 학문에 열중하는 한편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때 퇴계는 이웃한 봉화 청량산을 즐겨 찾았는데, 도산서당에서 낙동강 따라 청량산을 오갔던 이 길을 퇴계가 걷던 옛길이라고 해서 '퇴계 녀던길'이라고 부른다. 도산9곡 가운데 7의 단사곡, 8곡의 가송곡, 9곡의 청량곡이 몰려있는 곳으로, 청량산의 비경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어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 길을 걸어가며 글을 쓰고 시를 지은 유서 깊은 길이다. 첩첩산중 유장하게 흘러가는 낙동강 물줄기 따라서 길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이 오솔길은 낙동강 상류의 비경 지대로 강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길로 솔향기 그윽한 오솔길을 지나 시원한 학소대에서 청량산을 오가던 퇴계 선생의 발자취를 만나볼 수 있는 퇴계오솔길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도산서원을 출발하여 퇴계종택-이육사문학관-농암종택-구하도-고산정까지 약 3.5km이다. 또한 청량산까지 이어지는 퇴계오솔길생태탐방로는 농암종택-옹달샘-삽재-학소대-올미재-약수터 코스와 농암종택-옹달샘-삽재-건지산-전망대 코스로 수변탐방로와 수림탐방로로 나뉘며 8.4km로 약 3시간 30분 소요된다. 퇴계 이황 선생은 이 길을 '그림 속'이라고 했고, 자신은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을 정도로 비경이 아름다운 길이다.

도산별과대전

도산별과대전

18.1Km    2     2024-09-24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서원길 154 도산서원
054-859-0825

도산별과란 정조임금께서 퇴계선생 사후 222년 되던 해인 1792년(정조 16)에 각신 이만수를 보내서 도산서원에서 치제하게 한 뒤에 선생을 추모하는 뜻에서 그곳에서 과거시험을 치르게 했던 역사적 사실을 말한다.
퇴계선생의 학덕과 유업을 기리고 영남의 인재선발을 위해 실시된 영남 유일의 특별과거시험인 '도산별과'의 가치를 조명하고, 도산별과 행사를 통해 세대 간의 소통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