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도(활목섬)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혈도(활목섬)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혈도(활목섬)

혈도(활목섬)

0m    21926     2023-11-20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길 42-359

섬의 지형이 활모양처럼 생겨서 활목섬이라고도 한다. 대포를 쏘아 뚫린 것처럼 구멍 뚫린 섬이라하여 공도(孔島)라고 불리기도 한다. 혈도는 천년 전 거센 파도에 의해 구멍이 생겼다고 하는데 구멍을 통하여 다도해 전경을 바라보면 더욱 신비롭다.

쉬미항

쉬미항

10.1 Km    1     2023-03-07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서부해안로 411

쉬미항은 봄철 유채꽃과 목련이 아름다운 마을에 위치한다. 한적하고 조용하여 부둣가에서 사색을 하기에도 좋다. 진도의 항구 중 주변 부속 섬으로 정기선이 다니는 곳은 진도항과 쉬미항이 있다. 진도항 다음으로 큰 항구가 바로 쉬미항이다. 쉬미항은 주로 진도의 북서쪽 섬들을 연결하는 포구로, 가까운 섬 중에는 가사도를 중심으로 다수의 섬들이 있다. 특히 최근에는 진도유람선이 출항하면서 이전보다 더 붐비는 포구가 되었다. 진도유람선의 운항 경로는 작도도-광대도-혈도-주지도-양덕도-방고도를 돌아온다. 하루에 4회 운행을 하는데 마지막 타임은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라고 한다.

진도 소포검정쌀마을

진도 소포검정쌀마을

10.8 Km    26399     2023-08-02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소포길 119-4

소포에는 많은 민속놀이와 전통민요가 지금까지 옛 모습 그대로 전승 보전되어 오고 있다. 거지 행세를 하며, 적군의 동태를 파악하여 우군에게 알려주어 승리를 하였다는 걸군농악, 아녀자들이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한풀이를 베를 짜며 노래로 불렀던 베틀노래, 사주팔자에 명이 짧은 어린애의 수명이 길어지도록 기원한 명다리굿, 만선의 꿈을 안고 출항하여 고기잡이를 하면서 부르던 닻뱅노래 등이 있다. 진도의 특산품인 검정쌀을 이곳 소포리에서 최초로 재배하여 전국으로 공급하고 있으며, 오염되지 않은 갯벌에서는 뻘낙지와 청정해역 바다에서 모자반과 김을 비롯하여 친환경 재배로 생산되는 진도 대파, 월동배추 등이 유명한 지역이다.

하의도 토지항쟁비

10.9 Km    17615     2023-09-15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웅곡리

[하의도 토지항쟁 공적비군] 하의도에는 하의3도(하의도, 상태도, 하태도) 농민들의 역사와 저항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9년에 개관한 하의3도 농민운동 기념관이 있다. 하의3도 농민운동은 간척으로 생긴 토지로 부당이득을 취하려 했던 조선시대 세도가에 대한 항쟁에서부터 일제강점기 소작료 거부 등 오랜 시간 투쟁으로 이어진 역사이다. 기념관 옆 마당에는 토지 운동 과정에서 섬 주민들을 위해 공을 세운 사람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공적비 3기와 하의도 주민들이 어려울 때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의 공적비 2기가 있다. 마을 제사 때 황소를 기증한 문응두를 기리기 위해 1885년에 세운 공적비와 흉년으로 주민들의 생활이 어려울 때 구휼에 힘쓴 권재찬의 영세불망비(1903년), 조선 선조 맏딸 정명공주의 8대손 홍우록 등과 하의도 토지를 두고 법정 공방을 벌일 때 하의 농민들의 편에서 활동했던 당시 군수 김동우, 일본인 변호사 고노오 토라노스케, 사무원 남만웅의 영세불망비(1912년)가 그것이다. 이들 비석은 웅곡선착장에 있었다가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하의도 토지항쟁역사] 예로부터 농사를 주업으로 살아온 하의도 사람들에게 토지는 삶의 원천이고 자부심이었는데, 하의도 사람들은 이 땅에 대한 피와 눈물이 맺힌 삼백년에 걸친 통한의역사를 안고 있다. 하의도 농민운동의 역사는 조선시대 선조때 임진왜란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조는 맏딸 정명공주의 불치병을 치료한 홍계원을 부마로 삼고 하의3도(하의도, 상태도, 하태도)를 그에게 무토사패(나라에서 받을 토지세를 대신 받음)로 준다. 그러나, 정명공주의 증손자인 홍석보가 죽으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정명공주에게 준 면세전 20결이 그 후손들에게 상속되었는데, 그 후손들은 세섬의 모든 토지에대한 절수권(국가 대신 세금을 받을 권리)을 받았다면서 백성들이 경작하는 모든 토지에서 세금을 받아간 것이다. 백성들은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나 무모한 일이 되고, 세월이흘러 홍씨들이 권좌에서 물러나고 1870년 이완용의 아버지 이호준이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자 다시 하의 사람들의 진정이 시작된다. 이 감사는 모든 토지에 대해 1부에 백미 2되씩만 홍씨들에게 주라고 판결해 주었으며, 이에 대해 하의도 사람들은 송변준의 글씨로 옥도에 송덕비를 세웠다. 이 후 하의도는 1901년 토지지권발급으로 인해 토지가옥 증명규칙을 만들어 모든 부동산의 문서화에 착수하는 과정에서 하의도 토지는 모두 궁토로 간주되어 왕실 재산을 관리하는 내장원 토지로 등재된다. 1905년 일본 조선 통감부는 역둔토 조사사업을 벌이면서 모든 궁토도 역둔토로 통합해 국유화 조치를 취하는데, 이 때 홍씨들은 하의 3도의 토지를 국유화에서 탈루시켜 홍우록의 사유지로 지권을 발급받는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하의도 사람들은 같은 해 6월 각계에 진정서를 내고 즉시 경성지방법원 소송을 제기했다. 홍우록은 일본인과 한국인 무리배들을 하의도에 보내소작료를 받도록 했으나, 당시면장 김준열을 비롯한 주민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철수했다. 이 때 김 면장은 목포에서 몰려온 깡패들에게 맞은 여독으로 10일만에 죽고 문경수씨는 총상을 입기도 했다. 이처럼 하의도 소유권행사가 순조롭지 못했던데다 후손간의 분쟁도 있어 홍우록은 지권을 집안의 홍우승에게 양도해 버렸고, 홍우승은 다시 서울갑부 조병택에게 1만 5천원의 값으로 팔아 넘겨 버렸다. 이에 하의도 사람들은 일본인 변호사를 선정해 홍씨들을 상대로 부당 이득반환 및 토지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해서 1심에서는 패하고 2심에서 승소하였다. 하의도 주민들은 이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일본인 변호사 [목미호지조] 와 사무원 남만웅의 송덕비를를 하의도에 세웠다.

하의도

11.0 Km    31477     2023-05-15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곰실길 20

연화부수(蓮花浮水). 물 위에 연꽃이 떠있는 모습이라 하여 ‘하의도'라 부르게 되었으며, 유인도 9개, 무인도 47개로 구성되어 있다. 야산으로 된 지형은 농업용수와 식수에 어려움이 많고 천일염과 수산양식으로 소득을 높이고 있으며, 신도와 대야도는 모래밭과 송림이 좋아 천혜의 해수욕장이 되고 있다. 하의도 웅곡포구에 들어서면 어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깃배조차 눈에 띄지 않고 넓은 들판이 있다. 하의도 마을들은 대부분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고 섬 전체가 논밭으로 가득차 있어 섬처럼 느껴지지 않는 섬이다. 하의도 사람들은 예로부터 농사를 주업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들에게 토지는 삶의 원천이고 자부심이었으나, 하의도 사람들은 이 땅에 대한 피와 눈물이 맺힌 3백년에 걸친 통한의 역사를 안고 있다. 하의도 농민운동의 역사는 지금도 하의도 토지항쟁비가 말해주고 있다. 하의도는 지조 높은 유학자 초암 김련 선생의 고장이기도 하다. 유학자 초암 김련 선생은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서당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기 위해 당시 신간서적이라면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까지 다니면서 2,000여권의 고서(필사본)를 모았던 분이다. 당시 초암의 높은 학문을 배우기 위해 나주, 신안의 모든 지역에서 수 천명의 제자들이 모여 들었고, 제자들은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고자 덕봉강당을 건축하였다. 현재는 초암 선생의 아들인 김춘배 옹(1912년생)이 관리하고 있는데, 대를 이어 책 관리는 물론 5선현의 제사도 지내고 있다. 그러나 '하의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것이다. 신안의 작은 섬 하의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이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대통령을 배출해낸 것은 너무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김 대통령 당선 직전 수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방문한데 이어 요즘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생가는 집터만 남아있던 생가의 구조물을 그대로 이용하여 후광리에 대지 746평, 건평 18평의 6칸 접집으로 60여 년만에 원형대로 복원하였으며, 군에서는 복원된 김대통령 생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주변에 화장실 등 기본시설을 갖춰 찾아오는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하의도 야외 조각미술관

11.2 Km    0     2023-12-11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웅곡리

[천사(1004)의 섬]으로 불리는 신안군은 1도 1뮤지엄 프로젝트로 문화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섬 지역에 예술의 옷을 입히겠다는 취지로 설립된 개방형 미술관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서 농민봉기 등 인권과 민주, 평화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섬인 하의도가 천사들의 안식처처럼 느껴진 것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미술관에서는 조각상 318점과 조형물 3점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하의도 일주 도로에 다양한 천사상들이 자리 잡고 있어, 누구나 언제든 찾아와 머물 수 있는 [울타리가 없는 미술관]으로 조성되었다. 설치된 천사상 318점은 파리 아트 저널에서 1999년 [21세기를 이끌어가는 예술인]에 선정된 대표 작가 최바오로를 비롯하여 크리스티나 델라로사, 왕첸, 영월종교미술 박물관 소속 작가 일동 등이 만든 조각상들로 구성되어 있다. 미술관의 수많은 조각상 중 같은 표정과 행동을 하고 있는 천사는 단 한 개도 없는 점이 관람의 포인트이다.

청용어촌체험마을

청용어촌체험마을

11.4 Km    19825     2023-07-27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청룡안길 130-12

오독오독 씹히는 간재미회에 인정까지 버무려 주는 사람들 간재미가 맛있는 고장이라면 단연 진도를 꼽는데, 그중에서도 간재미가 많이 나는 곳이 바로 청룡마을이다. 이 조그마한 포구는 간재미며 각종 생선을 낚아올리는 전형적인 어촌으로 간조시 노출되는 넓은 간석지에서 바지락 및 고둥 캐기와 진도만의 개매기 체험을 통해 각종 어류를 잡는 체험을 즐길 수 있다.

급치산전망대

급치산전망대

11.6 Km    0     2023-12-26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지산로 160-60

한반도 최서남단 진도군 지산면에 위치한 급치산 전망대는 가장 늦은 해넘이를 볼 수 있는 곳 중 한 곳이다.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바다 위를 수놓은 다도해의 섬들 사이로 떨어지는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일몰 명소이다. 360도 탁 트인 전망대 옥상에서 바라보는 동석산 암골맥(巖骨脈)의 수려한 바위 능선과 높은 고도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진도 해안은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해, 그림 같은 풍경에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급치산 전망대에서 세방낙조전망대에 이르는 해안 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될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어, 진도에 가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율도

율도

11.8 Km    23346     2023-09-26

전라남도 신안군 장산면 율도길 17-3

지도읍 태천리에서 뱃길로 5분 거리에 위치한 섬으로 섬의 모양이 밤처럼 생겼다 해서 율도라고 하며, 설화에 의하면 원래 이 마을을 유평이라 했는데 섬주민 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려면 마을 이름을 바꾸라는 꿈을 꾸고 나서 꿈속에서 보았던 밤이 먼저 생각나 율도라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최근 비파나무와 동백꽃을 식재하면서 비파섬으로도 불린다. 율도는 치과의사 이지형 씨가 소유하고 개발한 섬으로, 휴양형 생태수목원으로 조성하고 있다. 다양한 온대와 열대 수종들이 자라고, 사슴, 염소, 토끼 등이 방사되어 자유롭게 살고 있으며 통발을 이용한 고기 잡기 갯벌 체험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섬 정상에는 화이트하우스 숙소 2동과 식당이 있어 숙식도 가능하다. 섬까지는 여객선이 운항하지 않고 증도의 버지 선착장이나 지도 송도 선착장에서 낚싯배를 이용해 섬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무단 입도는 금지되어 있다. 간조 때면 지도 태천리까지 갯벌을 걸어서 왕래가 가능하다.

소앵무마을

소앵무마을

12.4 Km    0     2023-11-07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소앵무길 41-1

이 마을의 독특한 지명은 마을의 뒷산이 앵무새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지어진 앵무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소앵무 마을은 ​이 마을 출신의 한 가수의 인기 덕에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2019년 한 종편의 트로트 오디션 경연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며 트롯 열풍을 일으킨 송가인의 고향마을이다. 한마디로 트로트 열풍의 큰 영향을 끼친 가수라 할 수 있는데, 얼마 전까지 "송가인 이~어~라~" 그의 독특한 인사법으로 많은 팬들로부터 열광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최고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송가인의 시골집은 연일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여 진도의 새로운 관광코스가 되었다. 2021년 초에는 동네 어귀에 제법 큰 규모의 송가인공원도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