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미지식물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여미지식물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여미지식물원

여미지식물원

17.9Km    2024-10-15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관광로 93

여미지식물원은 중문 관광 단지 북쪽에 위치하며 1132로를 타면 쉽게 갈 수 있다. 아름다운 땅이란 뜻을 지닌 여미지식물원은 커다란의 온실을 지니고 있으며, 대지 11만 2200㎡의 외부 정원과 1만 1361㎡의 실내 식물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부 정원은 야자수와 같은 커다란 나무가 숲을 이루며, 한국,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식 정원을 만들어 놓아 동, 서양의 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총 2,300여 종의 식물이 살고 있으며, 온실 안에서는 약 절반인 1,300여 종의 식물이 살고 있다. 실내 식물원은 중앙홀과 높이가 38m인 중앙 전망탑이 있어 중문관광단지, 천제연폭포가 한눈에 들어오며 한라산과 인근 해안선 일대를 조망할 수 있음은 물론 쾌청한 날에는 국토 최남단 마라도까지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 또한 다양한 테마로 꾸며진 정원을 볼 수 있는데, 신비의 정원, 꽃의 정원, 물의 정원, 선인장 정원, 열대 정원, 열대 과수원으로 이루어져 있다.신비의 정원은 화산 암반석과 양치식물, 자생 식물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꽃의 정원은 열대 및 아열대 식물들로 조성되어있다. 물의 정원은 연못과 습지로 조성되어 있으며, 열대 정원과 열대 과수원은 열대 과수와 식물들로 조성되어있다. 선인장 정원은 어린 왕자에도 나오는 바오밥나무를 볼 수 있다.

관덕정(제주)

관덕정(제주)

18.0Km    2023-12-08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관덕로 19

제주도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의 하나인 보물 관덕정은 조선 시대 세종 30년(1448)에 목사 신숙청이 사졸들을 훈련시키고 상무 정신을 함양할 목적으로 이 건물을 세웠다. 관덕정이란 이름은 [사이관덕]이란 문구에서 나온 것으로 활을 쏘는 것은 평화시에는 심신을 연마하고 유사시에는 나라를 지키는 까닭에 이를 보는 것은 덕행으로 태어난 곳이다. 대들보에는 십장생도, 적벽대첩도, 대수렵도 등의 격조 높은 벽화가 그려져 있고, 편액은 안평대군의 친필로 전해오고 있다.

탐라국입춘굿

탐라국입춘굿

18.0Km    2024-03-15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관덕로 25 제주목관아
064-758-0331

탐라국입춘굿은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굿이면서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한 제주사람들의 신명나는 축제로 조선후기까지 계속되다가 조선왕조의 멸망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사라졌다가 1999년 민속학자 문무병을 중심으로 제주민예총이 복원을 시도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축제이다. 탐라국입춘굿은 명맥이 끓긴 전통사회의 입춘굿을 오늘에 맞게 부활시킨 축제로 제주도 굿 본연의 신앙적인 요소를 살려 제주지역 사회의 화합과 픙요를 기원하는 것은 물론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해 함께 체험하며 즐기는 도시축제이다.

제주시새우리

제주시새우리

18.0Km    2024-07-05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무근성7길 24

제주시 새우리는 제주시에 있는 작은 새우마을 맛집이다. 새우 김밥과 컵밥 전문점으로 딱새우김밥, 양념새우컵밥, 간장새우컵밥, 감귤갈릭새우컵밥, 등 총 9개 테이크아웃 메뉴가 있으며 삼색의 딱새우김밥은 시그니처 메뉴로 사진 찍기에도 좋다. 매장이 아담해 식당 안에서 먹기 보다 포장을 해서 바닷가로 나가는 손님이 많다. 딱새우꼬막무침, 팝새우샐러드, 딱새우모듬튀김, 성게미역국 등도 있지만 재료 소진 시 조기 마감될 수 있다. 한라봉 에이드와 같은 음료도 있다. 주변 여행지로 탑동광장, 용연계곡, 용담해안도로 등이 있다.

법화사

법화사

18.0Km    2024-10-11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북로35번길 15-28 법화사

법화사는 수정사와 함께 제주의 비보사찰(裨補寺刹)로써,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 본사 관음사의 말사이다.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고려 시대, 길게는 통일신라 시대까지도 올라간다는 주장이 있다. 고려 후기 몽골의 제주 지배기에 법화사는 더욱 중시되었다. 제주대학교 박물관 주도로 1992년부터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 발굴된 기와에는 법화사가 원의지원 6년(1269년)에 처음 중창을 시작해 16년(1279년)에 중창을 마쳤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충혜왕 때 제주로 유배된 승려 혜일이 법화사를 들러 시를 지었으며 조선 초기까지 법화사에 배속된 노비가 280명이었을 정도로 큰 절이었으나 조선 후기 이후 법화사는 폐사되었다. 법화사는 천년 사찰의 역사적 가치와 더불어 사찰 경내가 아름다워 제주 도민들에게서 입소문이 나면서 타지에서 온 관광객들도 사찰 내의 구품연지에 우아한 연꽃과 더불어 배롱나무의 아름다운 자태와 더불어 부석사 무량수전 양식의 구화루가 이루어 내는 풍경은 불자가 아니라도 절집의 아름다움에 동의한다니 제주에서 이색 체험지로 추천한다. 법화사는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고요산책

고요산책

18.0Km    2024-07-09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중앙로12길 5

고요산책은 제주시 중앙로 천주교 중앙교회 근처에 있다. 북&코워킹 스페이스, 여행자를 위한 북 라운지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이다. 공간 사용료(5,000원)를 지불하면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며 공정무역 커피, 차, 쿠키 등이 준비되어 있다. 2,000여권이 넘는 책을 보유하고 있고 조용한 공간을 통해 고요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주변 여행지로 제주성지, 삼성혈, 제주 동문시장 등이 있다.

제주목관아

제주목관아

18.0Km    2023-09-22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관덕로 25

조선시대 제주지방 통치의 중심지였던 제주목 관아(濟州牧 官衙)는 지금의 관덕정을 포함하는 주변일대에 분포해 있었으며, 이미 탐라국시대부터 성주청 등 주요 관아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아시설은 1434년 관부의 화재로 건물이 모두 불 타 없어진 뒤 바로 역사를 시작하여 그다음 해인 1435년에 골격이 이루어졌으며, 조선시대 내내 중. 개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제주목 관아는 일제강점기 때 집중적으로 훼철되어 관덕정을 빼고는 그 흔적을 볼 수가 없었다. 제주시에서는 탐라국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던 제주목 관아를 원래의 양식으로 복구하고자, 1991년부터 1998년까지 4차례 발굴조사를 마친 결과, 탐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문화층과 함께 문헌상에 나타난 중심 건물인 홍화각(弘化閣), 연희각(延曦閣), 우연당(友蓮堂), 귤림당(橘林堂)등의 건물터와 유구(遺構)가 확인되고 유물(遺物)도 출토되었다. 1993년 3월 30일에 제주목 관아지 일대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발굴과정에서 확인된 초단. 기단석 등을 토대로 하고,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와 『탐라방영총람(耽羅防營總覽)』 등 당대(當代)의 문헌(文獻) 및 중앙문화재위원·향토사학가·전문가 등의 고증과 자문을 거쳐 관아지 복원 기본설계를 완료, 2002년 12월에 복원(復元)을 완료하였다.

순아커피

순아커피

18.0Km    2024-01-17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관덕로 32-1

순아커피는 제주목관아 관덕정 앞에 있다. 옛 일본식 건물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 건물의 소유자였던 제주할망의 이야기가 있는 카페이다. 할머니는 일본에 취업하여 재산을 쌓았지만, 고향인 제주를 그리워하여 제주에 방문할 때 자신이 머물기 위해 매입하였던 건물이다. 현재는 할망의 이름 ‘순아’를 그대로 써서 순아커피 상호가 되었다. 장소 자체가 제주 원도심 여행의 주요 장소이며 근처 여행지로 관덕정, 동문시장 등이 있다.

오현단

오현단

18.0Km    2023-05-02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현길 61

조선시대에 이 곳 제주도에 유배되거나 방어사로 부임하여 이 지방의 교학 발전에 공헌한 다섯 분(5현)을 기리고 있는 제단으로, 이들의 위패를 모시던 귤림서원의 옛 터에 마련되어 있다. 5현은 중종 15년(1520)에 유배된 충암 김정 선생, 중종 29년(1534)에 제주목사로 부임해 온 규암 송인수선생, 선조 34(1601)에 안무사로 왔던 청음 김상헌선생, 광해군 6년(1614)에 유배된 동계 정온 선생, 숙종 15년(1689)에 유배된 우암 송시열 선생 등 다섯 분이다. 고종 29년(1892) 제주사람 김의정이 중심이 되어 비를 세우고 제단을 쌓아놓았는데, 원래는 선조 11년(1578) 임진이 목사로 있을 때, 판관 조인준이 가락천 동쪽에 충암 김정을 모시기 위한 충암묘를 지은 것이 그 시초이다. 현종 6년(1665) 판관 최진남이 이 묘를 장수당 남쪽인 지금의 자리로 옮겨놓은 뒤, 숙종 8년(1682) 예조정랑 안건지를 제주도에 파견하여 ‘귤림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여 김정 선생·송인수 선생·김상헌 선생·정온 선생 등 네 분의 위패를 모시도록 하였다. 숙종 21년(1695) 송시열 선생도 함께 모시면서 5현을 배향하게 되었으나, 고종 8년(1871)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 때 서원이 헐리게 되어, 그 터에 이 제단을 설치하게 되었다. 단내에 있는 5현의 자취로는 철종 7년(1856) 송시열 선생의 글씨로 하여 판관 홍경섭이 바위에 새긴 ‘증주벽립’이라는 글씨와, 김정 선생과 송시열 선생의 ‘적려유허비’가 남아있다.

제주성지

제주성지

18.0Km    2024-09-12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현길 61

제주성지는 제주목의 치소를 둘러쌓았던 성터로, 오현단 남쪽에 일부가 복원되었고, 곳곳에 잔해가 남아있다. 제주성의 축성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탐라국 당시 쌓았던 것을 고려 때 왜구 방어용으로 보수하여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일부인 남수각 부분이 150여 미터 정도 복원되어 있다. 역사가 깊고 제주도의 중심지역을 지켰던 이곳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부터 1928년 사이에 건입동 포구 앞바다를 매립할 때 성곽의 돌을 매립골재로 사용하면서 크게 훼손되었다고 전해진다. 성곽 주위에는 귤과 유자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가을철 귤이 익을 무렵이면 성 주위는 가을색으로 절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튼튼한 성을 쌓으며 왜침의 [바람]을 잠재우려 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71년 8월 26일 제주특별차지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