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사(서산)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문수사(서산)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문수사(서산)

문수사(서산)

10.5Km    23092     2024-08-30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문수골길 201

문수사의 확실한 창건연대 기록이 전하지 않아 정확한 창건연대를 알 수 없지만 1973년에 극락실전 내에 안치된 금동여래좌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에서 고려제 29대 충목왕 2년(1346)이란 기록이 있어 고려 때 창건된 사찰로 추정된다. 한편 발원문 발견 시에 생모시, 단수포, 쌀, 보리 등 600여 점이 함께 발견되기도 하였다. 조용한 산사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봄철에는 주위의 산과 목장에 벚꽃과 야생화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 문수사 극락보전 극락보전은 주심포식과 다포식을 절충한 아름다운 건물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앞칸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앞면과 뒷면의 기둥 사이마다 2개의 공포를 배치했으며 옆면에는 공포를 두지 않아서 맞배지붕 건물의 일반적인 옆면 설계방식을 따르고 있다. 내부에는 중앙에 불단을 배치하고 그 위에는 화려한 닫집을 달았다.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아서 의식을 행할 때나 도를 닦는데 도움이 되게 하였다. 극락보전은 조각 수법이 매우 수려하고 웅장하며, 여래상을 비롯하여 삼세불상과 나한상·각종탱화 등 많은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 문수사금동여래 좌불상 극락보전 내에 봉안된 금동여래좌불상으로 앉은 높이 70cm, 무릎 폭 50cm이다. 이 좌불상은 고려 제29대 충목왕 2년(1346)에 조성관 단아한 금동불좌상으로 장곡사금동약사불좌상(보물)을 비록산 고려 후기 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계란형의 갸름한 얼굴, 가늘고 적정한 눈, 오뚝한 콧날, 미소를 머금은 단정한 입 등 섬세한 표현이 단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균형 잡힌 체구에 하품중생인의 손모습 등 신체는 현안 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신체의 특징 뿐 아니라 적절하게 가해진 옷주름 왼쪽 팔꿈치의 Ω자형 주름과 가슴의 승각기와 띠매듭 등 모든 점에서 장곡사불상과 동일한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조성연대도 같고 또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같은 조각가의 작품이거나 혹은 동일 유파의 작품일 가능성이 있다.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10.5Km    2     2024-06-18

충청남도 당진시 안틀모시길 11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은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기지시리에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기지시줄다리기의 역사를 배울 수 있다. 기지시줄다리기는 조선시대부터 해상문물의 요충지인 기지시에서 인근지역 사람들까지 모여 제사를 지내고 줄을 당기면 재난을 이겨내고 나라의 평안과 안녕, 풍년을 기원해오고 있는 500년을 면면히 이어오는 전통문화이다.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은 기지시줄다리기뿐만 아니라 한국과 세계의 줄다리기 분포와 특징, 올림픽 종목이었던 스포츠 줄다리기에 대한 전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종 체험 거리도 마련되어 있다. 줄 제작 체험, 줄 꼬기 체험, 줄다리기 체험, 달집 소지 쓰기 등이 영상과 어우러져 체험 학습의 장으로 주목받는 곳이다. 당진IC에서 가깝고, 주변에 한국도량형박물관과 농심테마파크가 있다.

기지시 줄다리기 보존회

기지시 줄다리기 보존회

10.5Km    17947     2024-09-02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안틀모시길 11

기지시 줄다리기 보존회는 당진시 송악읍 줄다리기 박물관에 자리 잡고 있다. 기지시 줄다리기는 풍년과 다산의 의례에서 비롯된 전통 놀이로 공동체의 화합 단결의 상징으로 표현되며 남녀노소, 신분의 구별 없이, 사는 곳의 구별 없이, 누구나 참여하여 즐길 수 있는 전통 놀이이자 무형문화재다. 선조들이 물려준 소중한 무형의 문화유산을 온전하게 보존하여 후손에게 전승함은 물론 이를 잘 활용하여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기 위한 전승자들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하면 박물관에서 기지시 줄다리기에 대한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고, 기지시 줄다리기 축제 때에는 직접 체험할 수도 있다. 기지시 줄다리기 보존회는 국도 32호선과 지방도 619호선을 통해 방문할 수 있으며, 서해안고속도로 당진 IC가 가깝다. 대중교통은 기지시버스정류장을 이용할 수 있다. 주변에는 송악저수지, 기지시공원, 한국도량형박물관 등이 있다.

기지시줄다리기 축제

기지시줄다리기 축제

10.5Km    35587     2024-03-11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안틀모시길 11
041-358-4646

기지시줄다리기는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과 함께 201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문화유산이다.
기지시줄다리기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무게 40t, 길이 200m, 직경 1m의 엄청난 줄을 1km 이상 끌어와 줄다리기 한판을 벌이는 대화합의 퍼포먼스다.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함께 힘을 합쳐 줄을 옮긴다. 매년 기지시줄다리기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당진 기지시를 방문한다.

단호박올리고마을

단호박올리고마을

10.7Km    18624     2023-11-03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동산절길 39

충남 북부 해안에 접해있는 단호박올리고마을은 서해안 고속도로 충남의 관문에 위치하고 있다. 장엄한 서해대교를 건너 우측으로 삽교호 관광지를 거쳐 당진 방면으로 가다 보면 신평면 소재지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 특산품인 단호박은 토심 깊은 황토에서 해풍을 맞으며 커서 당도가 높으며 국내시장은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당진천 벚꽃길

당진천 벚꽃길

10.8Km    0     2024-08-16

충청남도 당진시 대덕1로2길 41 (수청동)

매년 봄철 화사하게 만개한 벚꽃을 감상하며 산책할 수 있는 곳으로 가족, 연인, 반려견 등과 함께 나들이 하기에 좋다. 축제 기간에 방문하면 다양한 볼거리가 있으며 프로그램을 체험하며 즐길 수도 있다.

당진시티호텔(CITY HOTEL)

당진시티호텔(CITY HOTEL)

10.8Km    1     2024-01-18

충청남도 당진시 수청동

시티호텔은 당진시청 소재지인 수청동에 위치한 총 9층 규모의 비즈니스 호텔이다. 객실은 침대가 1개 있는 스탠다드, 2개 있는 트윈, 3인 이상 가족이 묵을 수 있는 디럭스로 구성되어 있다. 객실에서는 넷플릭스 시청도 가능하다. 주변에는 영화관, 편의점이 바로 인접해 있어 숙박하는 동안 보다 편히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시청 소재지인 만큼 주변에 시가지가 조성되어 있다. 시티호텔은 국도 32호선과 지방도 615호선 등을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서해안고속도로 당진IC가 가깝다. 대중교통은 당진버스터미널을 이용할 수 있다. 주변에는 당진향교, 당진문예의전당 등의 관광지가 있다.

신평양조장 백련 양조문화원

신평양조장 백련 양조문화원

11.0Km    3376     2024-09-20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로 813

신평양조장은 3대째 이어가는 100년의 가업, 시간이 익어가는 양조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근대문화유산 복원 프로젝트 ‘찾아가는 양조장’에 최초로 선정되었다. 오래된 술도가의 장인정신으로 술을 빚어 제조하고 대한민국 근현대 양조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전통 양조 문화기업이다. 신평의 좋은 쌀로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서 3대째 술을 빚어온 전통주의 명가 신평양조장에서는 오늘도 인생의 향기를 담은 아름다운 술이 익어가고 있다.

보덕사(예산)

보덕사(예산)

11.1Km    21628     2024-07-30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가야산로 400-74

예산에 위치한 보덕사는 흥선대원군이 현 남연군묘 자리에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고, 이 절의 중심이자 금탑이 있던 자리가 이대천자지(二代天子地)라 하여 2대에 걸쳐 왕이 나오는 명당자리라는 풍수설에 현혹되어 마곡사의 두 스님을 시켜 가야사를 불사르게 했다. 이후 고려 때 나옹화상이 건립한 금탑을 허물고 부친의 묘를 경기도 연천땅 남송정에서 이장했다. 가야사를 불태워 버린 죄책감에 사로잡혔던 대원군도 그의 아들인 조선 26대 고종왕이 즉위하자 가야사를 승계하여 1871년(고종 8년) 불살라버린 가야사의 동쪽 산중턱 서운산 남쪽기슭에 새 절을 창건하였는데 이 절은 부처님께 속죄한다는 뜻으로 보덕사라 명하였다. 보덕사에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인 보덕사극락전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인 보덕사석등이 있다. 극락전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굴도리, 이익 공의 5량 집으로 맛배지붕 겹처마로 되어 있다. 극락전을 중심으로 좌측에 2층으로 된 서별당, 정면에 주지실, 주시사 우측으로 동별당이 있으며, 그 우측에 연못이 있다. 석등은 높이가 1.2m인 8각형 석등으로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한 면 걸러 있고 창이 뚫리지 않은 면에는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화암사(예산)

11.1Km    19381     2023-03-13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1길 21-29

예산의 화암사에 가면 추사 김정희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조선후기 대표적인 문인인 추사는 예산 사람으로서, 이 사찰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색창연한 그의 생가, 추사고택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야트막한 오석산 아랫자락에 위치한 화암사는 추사나 그의 일가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절이다. 이 사찰을 중건한 김한신이 김정희의 증조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한신은 영조의 부마로서, 영조 임금의 둘째 딸이자 사도세자의 누이동생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로 봉해졌는데, 이들 부부는 죽은 후에 용산 아래에 위치한 앵무봉에 합장되었다. 이처럼 살아 생전에 사찰과 맺은 인연이 죽어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화암사는 가까이 가 보아도 사찰 입구에 위치한 정갈한 요사채에 의해 사찰이란 느낌이 잘 들지 않는 그런 곳이다. 아주 오래된 고택의 편안함을 주는 요사채를 지나야 비로소 사찰에 들어서게 되는 데 곳곳에 추사와의 인연을 보여주는 여러 유물이 산재해 있다. 게다가 요즘은 비구니 스님의 수도도량으로서 시골 사찰이 갖는 고즈넉함과 단정함까지 느낄 수 있다. 추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한번쯤 찾아가 보았으면 하는 그런 곳이다.

* 역사

옛 유래는 알 수 없고, 다만 삼국시대 절이었다고 전할 뿐이다. 절 뒤에 병풍바위가 있는데, 옛 절은 이 병풍바위 아래에 있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에 절이 없어지고,그 들에 조그만 탑이 남아 있었는데, 근래 현위치로 옮겨졌다. 화암사의 역사는 문헌을 전래되는 것이 거의 없어,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절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다 현재는 수덕사 유물전시관에서 소장 중인 「화암사중수건기(華巖寺重修建記)」현판에 절의 연혁이 기록 되어 있어 많은 참고가 된다. 이 중건기는 1848년(헌종 14)에 김명희(金命喜, 1788~?)가 짓고 김상희(金相喜)가 쓴 뒤 조석신(曹錫臣)이 새긴 것이다. 김명희는 서예가이자 금석학자, 실학자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동생인데, 학문이 깊고 글과 시문에 뛰어났다. 이 현판문의 내용으로 절의 역사를 알아보면, 처음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고, 1752년(영조 28) 본관이 경주인 김한신(金漢藎, 1720~1758)이 그의 아버지 김흥경(金興慶, 1667~1750)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하여 절을 중건하였다. 김한신은 영조 임금의 둘째 딸 화순옹주(和順翁主)의 남편으로서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졌는데, 사후에 부부가 용산 아래 앵무봉에 합장되면서 김한신 일가가 화암사와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 뒤 1846년(헌종 12) 절이 허물어지며 퇴락되자 김명희가 여러 친지와 더불어 무량수각ㆍ요사ㆍ선실(禪室)ㆍ시경루(詩境樓)ㆍ창고 등을 지었다. 또한 옛 법당터에 약사암을 중건하고 삼존상을 봉안하였다.

이처럼 화암사는 조선 후기에 경주 김씨, 특히 김정희 일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 유적지, 화순옹주홍문(和順翁主紅門,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45호) 등 예산에는 본래 김정희 및 그의 일가와 관련된 유적이 많은데, 화암사 역시 그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화암사의 북서쪽으로 약2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약 100여평에 걸친 평평한 지대가 있는데 스님의 전언에 의하면 원 화엄사의 사역이 이 곳이었다고 한다. 약 100여평에 걸친 사지는 산사면을 깍아서 동남향으로 사찰을 조영했던 것으로 추저되나 사지의 가람을 추정할 만한 유구는 확인되지 않는다. 화암사의 원 창건 연대는 알 수 없고 원래 절 뒤에 병풍바위 앞에 있던 절이 폐사되고 탑만 남아 있던 것을 화순옹주의 부군인 월성위 김한신이 중건하고 영조가 화암사라 명명했다 한다. 즉 영조 임신년(A.D 1752) 영조의 부마인 월성위 김한신이 이절을 중건하였다.

『화암사』라는 절 이름은 영조가 명명한 것이고, 이 현판은 월성위가 쓴 것이다. 월성위는 화순옹주의 부군이고,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이니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가 된다. 화순옹주는 영조의 따님이니, 비운의 왕자 사도세자의 누이동생이다. 이러한 가계관계가 후일, 김추사 일문이 왕권투쟁에 말려들어, 죄없이 파멸을 당하게 되는 연유가 된다. 월성위가 이 절을 중건한 95년 후, 헌종 병오년에 절이 또다시 훼손되어, 승려들이 기거할 수 없게 되자 김추사 일족이 출자하여 다시 중건하였다. 그 건물이 현재의 화암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