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Km 2023-07-19
전라남도 담양군 월산면 용흥사길 442
용흥사는 전라남도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 574번지에 위치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백제 때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절의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본래는 용구사(龍龜寺)라 했는데, 조선 숙종(재위:1674∼1720) 때 숙빈(淑嬪) 최(崔) 씨가 이 절에서 기도한 뒤 영조를 낳자 이후 절 이름을 용흥사로 바꾸었으며, 산 이름도 몽성산으로 고쳐 불리게 되었다. 이때부터 50여 년간 절이 발전하여 한때 산내 암자만도 7개나 있었고 큰스님도 머무르며 불법을 폈다고 한다. 19세기 말에 의병의 본거지로 쓰이다가 불에 탄 것을 박항래(朴恒來)가 중건하였다. 1930년대에 백양사 승려 정신(定信)이 대웅전과 요사채를 세웠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다시 불에 탔다. 1957년에 중창하고 1970년대에 대웅전을 새로 지었으며, 1990년대부터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른다. 용흥사에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요사채 2동이 있다. 이 중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과 산신상·영산후불탱화를 비롯하여 칠성·독성·산신탱화가 모셔져 있으며, 제석천룡 도와동종·소종 등도 놓여 있다. 유물로는 보물로 지정된 용흥사범종이 잘 알려져 있다. 1644년(인조 22) 조성된 것으로 종신에 적힌 명문에 따르면, 당시까지 절 이름은 용구사였음을 알 수 있다. 높이 78cm, 입지름 66cm로서 조각기법이 매우 뛰어나다. 절 입구 극락교 왼편에는 전라남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용흥사부도군이 있다. 7기 모두 팔각원당형 부도로 퇴암(退庵)의 부도가 1717년(숙종 43) 조성되어 가장 오래되었다. 그밖에 희옥(熙玉)과 일옥(一玉)·쌍인(雙忍) 등의 부도가 전한다.
15.0Km 2024-01-31
광주광역시 서구 눌재로 434
한옥 대문과 한옥 건물 그리고 잔디 마당, 범상치 않은 외관부터 손님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입식과 좌식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으며, 각각 공간이 나뉘어 있어 어린아이와 함께 방문하기에도 좋다. 넓은 주차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승용차로 이용하기에도 편리하다. 라테 종류의 음료가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로, 말차, 당고, 초코 등 다양한 종류를 갖추고 있다. 한옥 건축물과 인테리어로 구성된 카페 내부 전체가 포토존으로 활용될 만큼 개성이 넘친다.
15.0Km 2024-11-08
광주광역시 북구 중문로 62 건강복지타운 우산수영장
광주 북구 주민들을 위한 우산수영장은 교육, 문화, 복지, 평생교육을 통한 건강 증진과 국민 행복을 위한 공공스포츠 건강복지타운이다. 지하1, 2층으로 구성되었으며 수영, 헬쓰, 문화강좌(장구 , 판소리, 사물놀이), 건강강좌(아쿠아로빅, 다이어트 댄스, 요가, 밸리 댄스)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부대시설로는 지하 2층에 카페와 수복용 판매점이 있고 수영장 윗쪽으로 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15.0Km 2024-05-30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 예덕리
1988년 12월 21일 전라남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고분군이 입지 해 있는 지형은 저평한 평지성의 구릉으로 이 일대에 많은 고분이 분포해 있다. 남쪽으로는 내부구조가 대형 옹관으로 추정되는 예덕리 만가촌 고분군(전라남도기념물 55)이 있고 서북쪽에는 1990년 발굴 조사되어 백제계의 굴식돌방무덤으로 밝혀진 월계리 석계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 이 고분군은 일명 왕무덤[王陵] 또는 8 장수무덤[將帥墳墓]으로 불리며 이 고분군을 모두 9기로 구분된다. 주민들의 전하는 말에 의하면 대형고분인 1호분과 2호분은 석실의 규모가 커서 석실 내에는 7∼8명이 함께 앉아 놀 수 있을 정도였다 한다. 특히, 1호분과 2호분의 봉토는 서로 연접되어 누에고치 모양의 표형고분으로 되어 주목되고 이 고분은 백제시대에 조성된 석실분으로 추정된다. 1991년 3월 도굴로 인하여 알려지게 되어 1991년 6월에 국립광주박물관의 긴급 수습으로 개배 100여 점, 굽다리접시 3점, 항아리 2점의 토기와 철기류, 철판이 출토되었다. 이 고분군은 전방후원형 고분으로서는 내부 구조가 돌방으로 밝혀진 국내 최초의 고분이다. 일제 때 모두 도굴되었는데 어떤 유물이 나왔는지 알 수 없으나 1호분에서 놓치고 간 금귀걸이, 옥목걸이를 취득하여 팔았다는 전언이 있다. 2000년 10월 ‘전남지역 고분측량 보고서’(책임조사원 임영진 전남대교수)에 의하면 지금까지 2기의 고분으로 알려진 표산 1호분이 1기의 장고형 고분(전방후원형 고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신덕고분군의 구조와 형태 * 전방후원형 고분의 형태는 남북 장축이며 전방부가 북쪽을 향하고 있다. 크기는 전체길이 51m이며 후원부 직경은 30m, 전방부의 앞부분은 25m이다. 허리 너비는 폭은 19m이다. 높이는 후원부가 가장 높은데 자락에서 5m이며 전방부 정상은 4m, 허리부는 3.25m이다. 전방부는 앞이 팔자형으로 약간 벌어져 있으며 고분의 봉토상에는 40기의 민묘가 있다. 봉토의 축조상태는 완전한 성토분이다. 도굴 구덩이는 후원부의 서쪽 경사면에 있고 봉토 자락 가장자리로는 희미하게 도랑의 흔적이 남아 있는 듯한데 전방부의 정면과 서쪽자락 끝에는 도랑의 흔적을 볼 수 있다.돌방은 봉토의 장축방향과 직교하는 동서장축이며 널길을 서쪽에 두고 있다. 구조는 직사각형의 무덤방과 짧은 널길, 그리고 묘도(墓道)로 구성된 모자형의 돌방이다. 무덤방은 중앙에서 약간 북쪽에 치우쳐서 널받침[棺臺]이 마련되어 있고 이 위에는 관재의 일부가 남아 있다. 무덤방 4벽은 맞조림식으로 쌓았는데 아래에는 넓은 판석을 세우고 위에는 네모진 깬돌로 촘촘하게 쌓고 사이에는 작은 깬돌을 끼웠다. 천장은 2매의 판석으로 덮었으며 입구는 좌우 각 1매의 두꺼운 판석으로 세우고 그 위에 판석형의 괴석을 얹어 이마돌로 하였다. 입구를 문비석으로 막고 그 바깥으로는 막음돌을 쌓아 놓았다. 묘도는 팔자형으로 벌려서 쌓았으나 정연하지 않다. 막음돌(폐쇄석) 끝에는 다량의 토기를 두었고 묘도의 남벽 끝에 항아리 2점과 약간의 철기와 칠기의 흔적이 있다. 널방[玄室]은 북벽쪽이 약간 길다. 바닥은 깬돌로 고르게 깔아 편평하게 하였으며 천장과 4벽은 붉은 칠을 하였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지정연도 : 1992년 3월 9일 종류 : 고분군 크기 : 면적 13,413㎡
15.1Km 2024-08-01
광주광역시 북구 경양로165번길 23
062-528-0012
아늑함과 청결함을 갖춘 광주헤이파티는 광주역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조식으로 한식과 브런치를 무료 제공하고, 열쇠가 달린 개인 사물함, 여성 여행자를 위한 파우더룸도 제공하고 있다. 인근에 무등산이 있어 관광하기 좋고, 남도의 맛과 인심이 담긴 남도한정식과 떡갈비를 맛볼 수 있다.
15.1Km 2023-12-26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로140번길 19 (중흥동)
062-514-1988
호텔 여기 어때 광주역점은 광주 북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광주역 도보 3분 거리, NC백화점 도보 1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전 객실에 스타일러 비치(좋은 방 제외), 전 객실 고데기 및 드라이기, 라텍스 매트리스, 최신형 PC 등 광주 북구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신축호텔이다.
15.1Km 2023-03-21
광주광역시 서구 금화로 278
062-380-6800
염주종합체육관 시설 내에 있는 수영장으로 주 1회 정기검사와 수시 검사를 통한 수질 개선으로 이용시민에게 양질의 수질을 제공하며 시민의 건강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5.1Km 2023-11-08
전라남도 담양군 월산면 용흥사길 414
담양 10경 용흥사계곡은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계곡과 단풍나무, 푸른 송림 사이에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있다. 약 2㎞에 이르는 계곡은 물이 맑고 깨끗하여 물고기가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다. 여름에는 계곡을 찾는 피서객이, 가을에는 용흥사 계곡 사이로 붉게 물든 기이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가을 단풍을 보기 위한 단풍 객들이 많이 온다. 담양읍에서 북쪽으로 8㎞쯤 가다 바심재 왼쪽으로 용흥리 마을을 지나 2㎞쯤 올라가면 용흥사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담수하는 월산 저수지가 있으며,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용구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는 용흥사 절이 있다. 용흥사는 현 건물지의 규모로 보아 옛날에는 대규모의 사찰이었던 같으나 임진왜란과 한 말 의병 전쟁, 한국전쟁 당시 모두 소실되었고 근래 대웅전과 요사채를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