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암서원 (장성)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봉암서원 (장성)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봉암서원 (장성)

0m    2856     2023-12-07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화차길 159

1697년(숙종 23)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망암 변이중의 덕행과 업적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1707년에 변경윤을, 영조 4년(1728)에 윤진, 변휴를 추가 배향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고종 5년(1868)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가 1974년 전라남도 유림에 의하여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종앙사, 내삼문, 7칸의 성경당, 4칸의 훈덕재, 4칸의 경의재, 외삼문 등이 있다. 1982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 2월 준공 때 변윤중을 추가 배향하였다. 망암 변이중은 임진왜란 때 화차 300대를 자비로 제작하여 그중 40대를 행주산성에 보내 행주대첩의 승리를 이루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으며, 경주 탈환전과 해상에서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봉암서원에 인접하여 변이중 유물전시관이 있다.

평림댐 장미공원

평림댐 장미공원

10.0 Km    3     2023-04-04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수연로 620

한국수자원공사가 장성에 평림댐을 건설하면서 명품 장미공원을 조성, 인근 주민과 관광객들을 위한 관광 명소가 되었다. 평림댐 장미공원에는 벽천폭포, 체육시설, 파고라, 전망대 등도 갖춰져 있으며, 옐로우 시티를 내세운 장성답게 특색 있는 노란장미도 볼 수 있다. 장미공원에는 체리 메이딜란트 장미, 하이브리드 티 장미, 랜드스케이프 장미, 플로리분다 장미, 덩굴장미, 멘티크 터치 장미, 미니어처 장미 등 총 130종 13,780주의 장미가 장관을 이룬다. 아름다운 장미를 보면서 힐링하는 장소가 되어준다.

구르미머무는

구르미머무는

10.1 Km    1     2024-01-17

전라남도 장성군 불태3로 168

전라남도 장성의 구르미머무는은 한옥 감성 카페로 유명하다. 외관부터 내부 인테리어까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간 듯, 시대 감성이 물씬 풍긴다. 특히 밤에 조명이 켜지면 마치 그림 속 한 장면을 보는 듯 야경이 아름답다. 탁 트인 앞뜰은 고풍스러운 정원을 연상케 한다. 특히 앞뜰은 잔디밭으로 꾸며져 있어, 아이들이 뛰놀기에도 좋다. 연중무휴로 운영하며 커피부터 쌍화차까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메뉴들이 갖춰져 있다. 고풍스러운 찻잔에 나오는 쌍화차는 손님들이 즐겨 찾는 메뉴다. 인근에는 고산서원, 진원성, 청계정 등의 문화 유적이 있다.

대치장/대전장 (3, 8일)

대치장/대전장 (3, 8일)

10.1 Km    9278     2023-08-02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대치8길 28-12
061-380-3043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 위치하고 있는 대치장은 각종 농산물과 생필품류를 주로 판매하고 있는 전통재래시장이다. 대치리의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참깨 등이며, 특산물은 동충하초·방울토마토 등이다. 예전에는 성행했으나 현재는 그 명맥만 이어지고 있는 상태로 2,237m 부지에 25개의 점포가 위치해 있다.

다화림식물원&치유정원

10.2 Km    2     2023-10-10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행성리

담양군 삼인산 자락에 위치한 다화림식물원은 3,780평의 자연휴식공간과 야생화, 무늬종, 변이종, 다육식물 등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온실을 비롯하여, 자연과 농촌, 식물을 활용하여 오감만족, 식물치유 체험을 하는 공간이다. 바른 인성을 기를 수 있도록 학교 교과 연계 체험 교육 프로그램과 플로리스트, 생활원예지도사, 압화공예가, 6차 산업운영자 등의 전문가의 꿈과 끼를 키워주는 진로직업체험 등을 진행하고 있다. 다화림식물원에 오면 다양한 야생화와, 식충식물, 다육이 등 다양한 반려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으며 아이들과 가족 그리고 연인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다육식물, 수경재배, 테라리움, 압화, 보존화 체험 등 힐링치유프로그램을 통해 일상에 지친 심신의 회복과 싱그러운 자연 속에서 내일을 위한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다. 다화림은 반려 식물이 주는 편안함과 힐링을 느끼고, 가슴을 설레게 하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쉼터이자 치유정원이다.

초동순두부

초동순두부

10.2 Km    0     2024-02-20

전라남도 장성군 초동길 1

2018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초동순두부는 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에 있다. 맛집으로 소문난 만큼 웨이팅을 해야 하지만, 회전율이 높은 편이라 오래 기다리지 않는다. 주문과 거의 동시에 상이 차려질 만큼 음식 나오는 속도도 빠르다. 대표 메뉴는 초동정식과 초동순두부이고 메밀전병을 추가로 주문하는 손님들이 많다. 정식엔 통삼겹 수육이 추가되고 순두부엔 소고기, 새우, 바지락 등이 들어 있다. 밑반찬으로 숙주나물, 배추김치, 어묵볶음, 무말랭이가 나오고 공깃밥이 아닌 무쇠솥 밥이다. 셀프바가 준비돼 있어 부족한 반찬은 직접 리필해서 먹을 수 있다. 주변에 고산서원, 진원성, 청계정 등의 문화 유적이 많다.

월봉서원(빙월당)

월봉서원(빙월당)

10.3 Km    3725     2024-03-12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곡길 133
062-611-3636

월봉서원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기대승(1527∼1572)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선조 11년 김계휘를 중심으로 한 지방유림의 공의로 기대승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인조 24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효종 5년에 ‘월봉’이라고 사액되었다. 원래 이곳은 기대승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에 박상, 박순, 김장생, 김집 등 조선의 명신들을 함께 배향하고 있는 ‘월봉서원’의 강당이었다. 월봉서원은 그가 죽은 뒤 그를 추모하기 위해 큰아들인 기효승이 선조 11년에 세운 것으로 정조가 ‘빙월당’이라 이름을 지어 내렸다. 빙월당은 광주광역시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장판각에는『고봉집(高峯集)』 목판 474판이 보관되어 있다.

칠송정

칠송정

10.3 Km    15099     2023-10-31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곡길 73

조선시대 후기 정자인 칠송정은 함재 기효증(1551~1616)의 작은 정자이다. 아버지 고봉 기대승을 3년간 시묘살이 했던 곳으로 원래는 구들이 놓인 움막집 형태로 그의 만년에 지냈던 정자다. 《광주읍지》(1924)에는 주의 북쪽 50리 떨어진 너브실마을에 있다고 했다. 지금 정자는 원래에 위치에서 중건하면서 옮겨지었다. 광산구 임곡동 소재지에서 장성읍으로 향하다 보면 오른편에 광곡(너브실)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 입구에는 고봉 기대승의 도학사상을 잇기 위한 고봉학술원이 있는데, 그 옆에 칠송정이 있다. 이 마을 안쪽에는 고봉을 배향한 월봉서원이 백우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정자 주변에 직접 일곱 주의 소나무를 뜰 앞에 심어 사계절 불변의 지조를 지닌 소나무의 절개를 본받았다는 뜻으로 정자의 이름을 칠송정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일곱 그루의 소나무는 남아 있지 않다. 정자의 정면에 올려져 있는 [칠송정(七松亭)] 현판의 글씨는 한말의 거유 석촌 윤용구(1853∼1939)가 행서로 썼으며 이 당시에 중수 또는 보수를 했을 것으로 여겨지며 칠송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이며 방은 들이지 않은 누각형의 정자로 마루 위에는 현판 외에 두개의 편액을 볼수 있다. 후손으로 8세손 기봉국의 [호산승처필명정(湖山勝處必名亭)]의 편액이 있고 1905년(고종42)에 10대 손 기동준이 쓴 [칠송정중건기(七松亭重建記)]의 기문이 있다. *고봉 기대승 고봉 기대승은 이황과 성리학을 문답하여 「사단칠정」에 관한 편지만도 8년을 계속해서 교환했으며, 뒤의 유학자들 중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성리학 연구의 기초를 마련했다. 나중에는 이황도 그의 이론을 많은 부분 받아들이게 되었고, 후학이긴 하지만 거의 동등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빙월당

빙월당

10.3 Km    21544     2023-06-01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곡길 133

* 성리학자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을 배향하는 곳, 빙월당 *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을 배향하였으며, 백우산 기슭 광곡(너브실) 마을에 있다. 기대승의 장남 기효증이 1607년(선조 40)에 아버지를 추모하여 지었으며 1938년 기대승의 후손에의해 이전·개축되었다. 월봉서원은 당초 고봉을 추모하기 위해 고봉 사후 7년 만인 1578년(선조11)에 낙암(현 신룡동)에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고 동천(현 산월동)으로 옮겨서 건립했는데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가 1941년 현위치에 빙월당을 새로 지었다. 이어 1978년부터 사당과 장판각, 내삼문, 외삼문의 건립에 착수, 1981년 모두 준공을 보았다. 빙월당의 당호는 정조가 고봉의 고결한 학덕을 상징하는「빙월설월(氷月雪月)」의 뜻으로 하사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빙월당이 자리 잡은 곳은 백우산 기슭 광곡(너브실)마을의 원 종가터인데 높다란 대지 위에 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주변은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매우 풍치가 아름답고 경내도 조용하다.

* 빙월당의 건물 *

빙월당은 후손에 의해 원래의 건물이 이전되거나 개축되었고, 또한 소실된 건물을 복원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후손에 의해 복원된 여러 건물의 규모는 다음과 같다.

[사당](祠堂) - 정면3칸, 측면2칸반의 팔작집, 정면 반칸은 퇴로 개방되어 있다. 41.98m² (건평 12.7평)

[강당](氷月堂) -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집이다. 양측 1칸씩은 모두 퇴간(退間)인데 전면과 우측 반칸에는 툇마루를 설치했다. 안쪽으로는 후면 반칸을 포함 좌측 2칸에 온돌방을 꾸미고, 우측 3칸에는 우물마루를 깐 대청을 꾸몄다. 84.29m²(건평 25.5평)

[장판각](藏板閣) - 빙월당 우측에 있는 원래부터 있던 장판각과 좌측에 있는 새로 만든 장판각 2동이 있다. 본래의 것은 정면, 측면 모두 1칸 규모의 맞배집이며, 새 장판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이다. 2동의 건평은 도합 26.44m²(8평)이다. 새 장판각에 고봉집(高峯集), 논사록(論思錄), 왕복서(往復書), 이기왕복서(理氣往復書)등의 목판(木板) 474매가 보존되어 있다.

[내삼문](內三門) -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 솟을삼문. 13.55m²(건평 4.1평)

[외삼문](外三門) - 내삼문과 같은 솟을삼문. 12.56m²(건평 3.8평) 원래 월봉서원은 1655(효종6)에 사액(賜額)되었고, 사우(祠宇)와 동제(東齊)- 명성제(明誠齊), 서제(西齊) - 존성제(存省齊), 강당(講堂) - 충신당(忠信堂)이 갖추어졌는데 월봉서원의 액호(額號)는 이산로, 나머지 편액은 송준길이 썼던 것인데, 현판들은 현재 장판각에 보존되고 있다.

*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 기대승에 대하여 *

기대승(1527~1572)은 조선중기 성리학의 대가로서 자는 명언, 호는 고봉이며, 시호는 문헌이다. 광주 소고룡리 송현동(현 광산구 신룡동)에서 성리학자인 기진의 2남으로 태어났다. 이퇴계와 김하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선학을 놀라게 하는 새 학설을 제시하여 존경을 받았다. 사단칠정을 주제로 한 왕복서한을 이퇴계와의 사이에 주고받은 이른바 사칠이기론은 너무도 유명하다. 1549년 사마시을 거쳐 1558년 문과에 급제, 1563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받았고, 종사관(從事官), 집의(執義), 전한(典翰), 우부승지(右副承旨)를 역임했다. 1572년 대사간에 올랐으나 병으로 벼슬을 하직하고 귀행중 45세의 나이로 고부에서 별세했다. 종계변중의 진문을 써서 명(明)나라에 보낸 공로로 1590년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추록되고 덕원군(德原君)에 봉해졌으며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贈)되었다.

* 소유자 - 행주 기씨 문중
* 수량 - 일원
* 시대 - 조선시대
* 규모 - 사당, 빙월당, 장판각(2동), 내삼문, 외삼문

신룡동오층석탑

신룡동오층석탑

10.3 Km    15035     2023-12-06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

광주광역시 광산구 낙암산 남쪽 기슭에 있는 신룡동오층석탑은 고려시대에 건립된 신라계 석탑이다. 이탑은 석불입상 1구와 함께 놓여 있어 이 일대가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탑은 2층 기단 위로 5층 탑신을 올리고 머리 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의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탑신부의 몸돌은 2층에서 갑자기 높이가 낮아져 5층까지 알맞게 줄어들었으며,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3층은 4단씩이다가, 4∼5층은 3단으로 줄었다. 꼭대기에는 돌의 재질이 다른 장식들이 놓여 있는데, 나중에 보충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형식에 치우친 모습이어서, 고려 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층 기단이 손상되고, 일부가 없어져 심하게 갈라진 위층 기단은 거의 무너질 정도였으나 1981년 해체·복원할 때 1층 탑신 상면에서 방형의 사리함, 사리병, 연화편 2점, 소형목탑 7점, 죽편 등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신룡동오층석탑은 (전)광주성거사지오층석탑, 광주장운동오층석탑과 더불어 고려 전기의 석탑으로 추정되나, 이들 석탑에 비해 다소 양식적으로 퇴화된 모습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