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Km 2024-02-15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금곡로73번길 176
우동일번가는 경기 수원시 상촌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일본 수타식 우동 전문점이다. 아담한 가게로 내부에는 테이블이 6개 정도로 유아차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협소한 편이다. 우동면은 고급 밀가루에 물과 천일염만 더하여 1차, 2차 고온과 저온 숙성을 이틀에 걸쳐 준비한 반죽으로 만들어 면발의 식감이 살아 있다. 주문 후 음식이 나오기까지 약 20분 정도 소요되며 추가 반찬은 셀프로 이용해야 하고 대기 손님이 있을 시 추가 주문받지 않는다.
14.3Km 2023-01-17
인천광역시 남동구 하촌로 57
032-435-0505
만수본갈비는 맛과 영양이 우수한 최상급 품질의 갈비만을 엄선해 부드럽고 풍부한 육즙을 끝까지 유지한다. 고기 메뉴도 유명하지만 장터국밥, 뼈해장국, 우거지감자탕 등 감자탕, 해장국 메뉴도 유명하다.
14.3Km 2023-12-26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
장수동 소래산 입구에 있는 수령 약 800년 정도인 오래된 은행나무이다. 나무 높이가 30m, 둘레 8.6m로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푸르고 웅장하며 방사형으로 뻗어 나간 나뭇가지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민속적, 생물학적 가치가 인정되어 1992년 12월 16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후 2021년 2월 8일 천연기념물로 승격되어 정부 차원에서 관리, 보호되고 있다. 장수동 은행나무는 옛날부터 마을을 지켜온 수호신 역할을 해왔다. 마을에 전염병이 돌거나 집안에 나쁜 일이 있으면 은행나무 앞에 제물을 바치고 치성을 올렸다고 전해지며 최근까지 매년 음력 7월 초하루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지냈다. 은행나무와 관련한 전설이 있는데 나무에 깃든 신이 인재가 태어날 수 있는 기운들을 모두 가져간 탓에 마을에 인재가 귀한 대신에 사람들은 장수한다고 한다. 은행나무의 잎이나 가지 등 어떤 것도 집에 들여서는 안 된다는 금기 사항도 전해내려온다.
14.3Km 2024-05-27
경기도 의왕시 부곡시장길 18
부곡 도깨비시장은 경기도 의왕시 삼동에 위치한 전통시장이다. 도깨비시장이라는 이름은 새벽에 장이 섰다가 물건이 다 팔리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습이 도깨비를 닮았다 하여 붙은 것이다. 2014년에 의왕시의 유일한 전통시장으로 지정되었다. 과일, 채소, 고기, 반찬과 잡화 등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으며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도 많다. 의왕역 2번 출구에서 약 300m 떨어져 있어 접근이 용이하다.
14.3Km 2024-07-08
인천광역시 연수구 컨벤시아대로 70 인천송도힐스테이트
미나모토는 인천지하철 1호선 인천대입구역 4번 출구 컨벤시아대로 송도 힐스테이트 3단지 상가 내에 있다. 주차는 매장이 있는 지하 주차장에 할 수 있다. 이곳은 분위기 좋은 심플하면서 고급스러운 초밥, 롤 전문점이다. 건물 외관은 일본 식당을 옮겨놓은 듯하고 매장 내부는 다찌 석으로만 4팀 정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셰프가 요리하는 걸 앞에서 볼 수 있다. 메뉴에는 런치 오마카세, 디너 오마카세가 있다. 식당 인근에 송도센트럴파크,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인천시립박물관, 골프장이 있어 연계 관광을 할 수 있다.
14.3Km 2023-12-22
인천광역시 연수구 인천타워대로132번길 30
010-8062-9584
르 꼬르동 블루 제과 디플로마를 졸업한 전문 파티시에가 매일 매장에서 직접 만든 디저트를 판매하는 디저트 전문점이다. 깔끔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매장에서 신선하고 예쁜 디저트를 맛보면 절로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달달한 디저트가 있는 카페이기 때문에 데이트 장소로도 좋다.
14.3Km 2023-10-24
인천광역시 연수구 인천타워대로132번길 30
인천 송도에 위치한 툴롱은 오리 다리로 만든 떠먹는 파스타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한국판 미슐랭 가이드인 블루리본 서베이에 5년 연속 소개된 레스토랑이자, 17년 경력의 셰프가 자신만의 독특한 레시피를 선보이는 음식점이다. 당일 도축해 염장한 오리고기를 2시간 정도 와인에 숙성하여 구운 야채, 치킨 스톡에 천천히 익혀 라따뚜이를 곁들어 내며, 큼지막한 오리 다리가 통째로 올라간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을 자랑한다.
14.3Km 2024-01-23
인천광역시 연수구 인천타워대로132번길 30 휴먼빌파크
청담은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동에 있는 한식 전문점으로 인천 지하철 1호선 인천대입구역 4번 출구와 가깝다. 대표 메뉴는 보리굴비지만 소갈비찜, 도가니 수육, 버섯 백숙, 수제 돈가스도 있다. 고급스러운 테이블 세팅에 정갈한 반찬을 올려 가족 기념일이나 귀한 손님과 식사하기 좋고 어르신들 입맛에도 잘 맞아 부모님을 모시고 외식하기에도 좋다.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이 멋지고 식사가 끝난 뒤 테라스에 앉아 후식으로 제공되는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다. ※ 반려동물 동반 불가
14.3Km 2023-11-08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의골로 204
식당 이름처럼 이곳은 초원에서 식사하는 곳이다. 주차장을 지나 식당 입구로 들어서면 도로 옆으로 울창한 나무들과 꽃밭이 펼쳐진다. 그 사이사이로 나무 데크와 테이블이 놓여 있어 야외에서 식사하는 기분을 충분히 낼 수 있는 곳이다. 폴딩도어가 설치되어 있는 실내 공간도 있어 한여름에는 에어컨을 켜고 겨울에는 따뜻한 곳에서 야외를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다.
14.3Km 2024-05-24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성지로 112
남양 성모 순례지는 병인년(1866년) 대박해 때 많은 순교자들이 피 흘리며 죽어간 무명 순교지이다. 이곳에서는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는데 치명일기(致命日記)와 증언록에 기록이 전해지는 남양의 순교자는 충청도 내포 사람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 용인 덧옥돌 사람 정 필립보, 수원 걸매리 사람 김홍서 토마 네 사람뿐이다. 남양 순교지는 다른 순교지와는 달리 무명 순교자들의 치명터였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오다가, 1983년부터 성역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로 많은 어려움 속에서 작은 정성들을 모아 가꾸어져 오던 남양 순교지는 1991년 10월 7일 로사리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에 성모께 봉헌되고 한국 천주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순례지로 공식 선포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화성시에서 화성 8경 중의 하나로 지정하여 홍보하고 있을 만큼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남양순교성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강암의 대형묵주알, 그리스도왕상, 성모동굴, 오솔길 소자상, 요셉성인상 등이 있으며, 아늑하고 성스러운 분위기 조성을 위한 성지 조성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 성모님 품 같이 아늑하고 포근한 경관을 지닌 곳으로 시민은 물론 전국의 천주교 신도들의 순례지 겸 휴식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 순교지로서의 남양 조선조 때 남양은 서해안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행정과 사법권을 부여받은 종삼품의 도호부사가 부임했던 곳이다. 남양부사는 경기도 관찰사의 감독 아래 이반행정에 관한 권한 외에도 민사소송과 형사범을 다루는 사법권까지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남양은 물론 그 인근에서 붙잡은 천주교인들을 도호부사가 있던 남양으로 끌어다가 처형했다. 그리고 남양은 지리적으로도 신앙 활동이 자유로웠던 중국과의 연락이 용이한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조 당시 이곳에는 많은 천주교인들이 찾아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남양과 이웃해서 백학 교우촌이 있던 것도 이곳이 순교지가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 기록에 나타난 순교자들 - 김 필립보(1818~1868) 충청도 내포사람으로 조모의 가르침에 따라 입교하려 했으나, 부친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은 후 후일 반대하던 부친과 함께 교리를 배워 영세했다. 전교도 열심히 했고 사제의 공소 방문 때는 사제의 성무를 도왔으며 교우들이 바른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병인년 대박해 때 피신하여 살다가 1868년 남양 감영 포졸에게 아내 박 마리아와 함께 붙잡혀 남양으로 끌려왔다. 이 부부는 온갖 형벌에도 배교치 않았으며 한달 동안의 옥고 끝에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나이 50세였다. - 박 마리아(1818~1868) 순교자 김 필립보의 아내로 1868년 남편과 같이 남양 감영 포졸에게 잡혀서 남편과 함께 남양으로 끌려와 한달 동안의 옥고와 가혹한 형벌을 이겨내고 남편 김필립보와 같이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나이 50세였다. - 정 필립보(?~1867) 경기도 용인의 것옥골에서 살았는데, 1866년 11월 남양 감영의 포졸에게 붙잡혀 가옥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다음 해 1867년 1월에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 김홍서 토마(1830~1868) 수원 갈매리 사람으로 1868년 남양 감영의 포졸에게 아내와 함께 감옥에 끌려왔다. 아내는 배교하여 풀려났으나, 김홍서 토마는 끝내 배교치 않고 김 필립보 부부와 함께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배교한 아내는 김홍서 토마가 순교하자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렀다. 순교자 김홍서의 나이는 38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