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진정사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용진정사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용진정사

11.3 Km    22650     2024-04-29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서로 180-48

일제강점기의 용진정사는 한말의 도학자 후석 오준선(1851∼1931)이 일본이 한국을 병탄하자 망국의 한을 달래면서 용진산에 강당을 짓고 후진 양성에 힘쓴 곳으로서 한말 호남 의병활동의 본거지이기도 하였다. 정사는 학문을 가르치거나 정신을 수련하기 위해 마련한 집을 뜻한다. 용진정사는 용진산 남쪽의 산록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원래 용진사가 있던 곳으로 삼봉 정도전, 우암 송시열 등이 다녀갔던 곳으로 전해진다. 절이 허물어진 뒤 청안 이씨들이 그 터를 가지고 있었으나, 후석이 정사를 짓는다는 말을 전해듣고 옛 절터의 상대와 중대를 희사함으로써 정사를 지을 수 있었다. 후석이 별세한 뒤 문인들이 정사 동쪽에 3칸의 용진영당을 세우고 1924년 석지 채용신이 그린 초상화를 모셨다. 영당의 좌우벽에는 큰아들 북파 오헌수와 둘째 아들 도호 오동수의 영정이 함께 걸려있다. * 일제강점기의 의병, 후석 오준선 * 후석은 본관이 나주이며 광산구 도덕동 도림마을에서 오하규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백부 향규에게 입양되었다. 8세 때부터 이웃에 사는 친척 오태규로부터 사서와 근사록을 배웠다. 이어 18세 때부터 노사 기정진에게 배웠으며, 이를 계기로 송사 기우만, 식재 기재, 현와 고광선 등과 사귀었고, 전재 임헌회, 입재 송근수 등에게서 학문의 폭을 넓혔다. 그의 학문 체계는 경학, 성리학, 예학, 의리론 등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 1910년 일제는 명사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은사금이라는 금품을 지급하려 하였는데, 이를 거절하자 헌병대로 끌려 가 갖은 협박을 가했으나 끝내 받기를 거절하였다. 이후 1917년 용진산에 들어가 193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후학을 가르치니, 문하생이 600여명에 이르렀다. 1919년 고종이 승하 하시자 문하생들과 용진정사 앞의 바위에서 통곡하였는데, 그뒤 이 바위를 읍궁암이라 불렀고, 원수를 갚기 전에는 상복을 벗을 수 없다하여 일생동안 백립을 쓰고 지냈다. 명정에 조선 유민이라 쓰도록 유언하였다. 1934년에 그의 학문적 체계를 정리한 문집 25권 12책이 간행되었다.

남평향교

11.4 Km    1760     2024-05-31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남평향교길 45-12

남평 향교는 세종 2년(1420) 남평헌 동문 밖 동쪽 4리에 세워졌다가 중종 29년(1534)에 남문 밖 1리 월연대 아래인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그 후 명종 원년(1546)에 중수하고 다시 임진왜란으로 불탔으나 선조 33년(1600) 재건하였다. 건물의 배치는 전학후묘의 경사지 건축으로 좌향은 남향이며 대성전과 명륜당의 중심축에서 우측으로 약간 벗어나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의 외삼문이 있다. 각 건물을 보면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막들 허튼층 쌓기의 낮은 기단을 놓고 덤벙 주춧돌 위에 원형 기둥을 올려놓았다. 평면은 좌우 툇간을 방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전체는 우물마루로 되어 있다. 홀처마의 맞배지붕으로 북향의 전면을 개방된 상태로 출입하고 있다. 남평은 ‘낮은들’, ‘쪽들’로 물이 풍부한 넓은 들을 뜻하며 고려시대 남평군으로 조선시대에 남평현으로 읍치가 있던 곳이다.

신룡동오층석탑

신룡동오층석탑

11.4 Km    15035     2023-12-06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

광주광역시 광산구 낙암산 남쪽 기슭에 있는 신룡동오층석탑은 고려시대에 건립된 신라계 석탑이다. 이탑은 석불입상 1구와 함께 놓여 있어 이 일대가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탑은 2층 기단 위로 5층 탑신을 올리고 머리 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의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탑신부의 몸돌은 2층에서 갑자기 높이가 낮아져 5층까지 알맞게 줄어들었으며,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3층은 4단씩이다가, 4∼5층은 3단으로 줄었다. 꼭대기에는 돌의 재질이 다른 장식들이 놓여 있는데, 나중에 보충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형식에 치우친 모습이어서, 고려 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층 기단이 손상되고, 일부가 없어져 심하게 갈라진 위층 기단은 거의 무너질 정도였으나 1981년 해체·복원할 때 1층 탑신 상면에서 방형의 사리함, 사리병, 연화편 2점, 소형목탑 7점, 죽편 등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신룡동오층석탑은 (전)광주성거사지오층석탑, 광주장운동오층석탑과 더불어 고려 전기의 석탑으로 추정되나, 이들 석탑에 비해 다소 양식적으로 퇴화된 모습을 보여 준다.

이산정

이산정

1.2 Km    0     2024-05-08

광주광역시 서구 원마륵1길 33

김대중컨벤션센터 맞은편 상무지구에 있는 한정식 전문점이다. 주차 공간이 넉넉하며, 테이블도 널찍하여 모임 장소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한정식 전문점답게 내부 인테리어도 한옥 풍으로 잘 꾸며져 있다. 떡갈비정찬, 돼지갈비정찬, 한우불고기정찬 등의 한식 정찬이 대표메뉴다. 메인 메뉴뿐만 아니라 반찬 하나하나가 정갈하게 차려진다. 푸짐한 한 상을 원하는 손님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식당이다. 마륵근린공원이 주변에 있다.

코벤트마켓

코벤트마켓

1.2 Km    3     2023-02-06

광주광역시 서구 마륵로 67

코벤트마켓은 신선함과 자연주의를 바탕으로 낮에는 시골풍의 따뜻한 브런치를, 밤에는 사계절이 담긴 음식을 제공하는 Natural Bistro이다. 농장과 바다에서 공수해 온 신선한 재료들은 정교하게 디자인되어 플레이팅 되며, 많은 테이스팅을 거쳐 완성된 커피와 음료는 음식의 풍미를 한껏 더 한다.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 중 코벤트 가든 샐러드를 찾는 손님들이 특히 많다.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는 만큼 고객들에게 좋은 평을 받고 있다. 반려동물 동반도 가능하다. ※ 반려동물 동반 가능 (단, 개목줄 착용, 배설물 처리를 위한 비닐봉지 등을 구비한 이용객에 한하여 허용)

광주시패밀리랜드 카라반캠핑장

광주시패밀리랜드 카라반캠핑장

11.6 Km    7     2024-06-05

광주광역시 북구 우치로 690

광주 패밀리랜드 카라반 캠핑장은 우치공원 내 잔디광장 7천여㎡ 부지에 조성된 럭셔리 캠핑장으로 도심 속 자연에서 낭만을 즐길 수 있는 힐링 공간이다. 모든 카라반은 최신형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국내에서 볼 수 없는 미국 포레스트리비사의 초대형 카라반을 설치하여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캠핑과 함께 체육, 예술, 놀이, 관람 등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다양한 체험을 경험하실 수 있다.
카라반은 4인용 루비, 6인용 에메랄드 A(입식 테이블), 에메랄드 B(좌식 테이블), 다이아몬드 등 4가지 타입으로 구성되어 있다.

증심사 계곡 안산암질용암 (무등산권 국가지질공원)

증심사 계곡 안산암질용암 (무등산권 국가지질공원)

11.7 Km    1     2024-05-22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71

증심사 계곡에서 발견되는 화성암은 안산암질 응회암 및 안산암과 이를 관입한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크기의 백색의 옥수(Chalcedony) 또는 녹색의 녹니석(Chlorite)이 타원형 모양의 행인으로 안산암에 나타난다. 이 지역의 화성암 형성은 화산 폭발에 의해 화성쇄설물이 쌓여 만들어진 응회암과 액상으로 분출된 용암이 굳어서 형성된 안산암 생성이 여러 차례 반복된 후 미문상 화강암이 관입한 것으로 해석된다.

무등산 인문축제

무등산 인문축제

11.7 Km    2     2024-04-23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71 비지터 센터
062-608-2173

동구 무등산 인문축제는 광주광역시 무등산국립공원 증심사지구 일원에서 펼쳐지는 인문예술축제로, 무등산의 생태‧인문‧예술자원을 토대로 기획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초록의 싱그러운 자연과 인문‧예술이 더해진 색다른 사유의 경험을 제공한다.

도림사(광주)

도림사(광주)

11.8 Km    14973     2023-12-06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림하길 33

도림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림마을 입구에 있으며 노사 기정진(1798~1879), 난와 오계수(1843~1915), 후석 오준선(1851~1931)을 모신 사우이다. 기정진은 고종 3년(1866)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병인소를 올려 외적을 방비하는 대책을 건의하였고, 위정척사사상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오계수는 기정진의 제자로 을미사변 후 일어난 을미의병에 참여하였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가마마을 뒤쪽 산에 있는 영사재에서 은거하면서 학문을 연구하였다. 오준선도 기정진의 제자로, 한일병합 이후 용진산에 들어가 용진정사를 세우고 성리학을 연구하면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1934년 나주오씨 문중과 오계수, 오준선의 후학들이 오계수, 오준선과 기정진을 기리기 위하여 도림사를 세웠다. 도림마을은 오계수와 오준선이 태어난 곳이며, 나주오씨 문중의 집성촌이다.

화순광산이씨승지공비

화순광산이씨승지공비

11.9 Km    17153     2024-05-31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

광산이씨 승지공비는 이달선의 묘갈비로 화순읍 앵남리 앵남역 부근에 있다. 묘갈과 묘비는 본래 묘소 앞에 세우는 비석으로 본래는 구분되었으나 후대에 와서 서로 통용된다. 이달선은 광산이씨 시조 이순백의 6대손으로 승정원 부승지를 지냈다. 고려사 개수와 태종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하고 홍문관 제학을 지낸 이선제의 손자이며 귤정 윤구의 딸 해남윤씨를 부인으로 맞은 전라감사 이중호의 조부이다. 부친인 이형원은 부제학이 되어 일본통신사를 지냈는데 이달선은 그의 둘째 아들이다. 23세에 부친을 여읜 후 30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갔다. 그의 둘째 아들 공충이 선조 7년(1574)에 승지공비를 세웠다. 호패 형의 이 비는 비머리에는 별다른 조각이나 장식이 없고 위가 넓고 아래로 갈수록 좁은 상광하협의 형태이다. 비문은 조맹부체로 비교적 자획이 선명하고 호활한 서체를 그대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