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Km 2023-11-20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5길 36 (성북동1가)
반하당은 한옥을 개조한 카페이다. 한옥의 기둥만 남겨두고 벽체를 없애 공간을 오픈하여 답답한 느낌이 없고 쪽마루 공간에 작은 소반을 놓고 마시는 차 한 잔은 개방감 있는 한옥의 매력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다락공간도 있어서 신발을 벗고 좌식으로 앉아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반하당은 커피뿐만 아니라 반하당에서 직접 만든 수제청(자몽, 레몬, 오미자 등) 음료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여름이면 말린 대추가 올라간 팥을 사용한 팥빙수는 이곳을 방문하면 꼭 먹어봐야 하는 메뉴로 이곳에서 사용하는 대추와 팥은 100% 국내산을 사용한다.
9.0Km 2024-05-17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선유로47길 16 오오1004빌딩
또순이네집은 지하철 9호선 5번 출구 선유고등학교 부근에 있다. 대표 메뉴는 등심, 토시살이며 또순이네 된장찌개도 소문난 메뉴이다. 유명한 맛집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적이 있다. 화로에 얹어서 끓여 먹는 된장찌개는 뚝배기에 내용물을 가득 채워 나온다. 단, 오후 2시까지만 된장찌개 식사가 가능하다. 넓은 주차장을 갖추고 있으며 인근에 당산 먹자골목도 있다. 또한, 인근에 양화한강공원, 선유도, 망원한강공원, 양화진 역사 공원 등 둘러볼 곳도 많다.
9.0Km 2023-09-06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0길 22
02-2274-9548
3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굴보쌈으로 유명한 보쌈 전문점이다. 통영에서 산지직송한 굴을 특제 양념에 버무려 돼지고기 수육과 함께 담아내며, 감자탕과 오징어볶음은 서비스로 제공된다. 오징어볶음은 요리사였던 주인의 손맛으로 탄생한 이 집만의 특별 서비스 메뉴다. 구수한 수육에 맛깔스러운 보쌈김치, 진한 국물의 감자탕, 칼칼한 오징어볶음 삼총사라면 밥과 함께 먹어도 푸짐하고 주당들의 술안주로도 안성맞춤이다.
9.0Km 2024-05-23
서울특별시 중구 삼일대로 362
02-6112-1000
롯데시티호텔명동은 서울 시내 비즈니스와 쇼핑의 중심지인 명동과 서울의 오아시스인 청계천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27층 규모의 탁 트인 전망과 430의 객실과 뷔페 레스토랑, 미팅룸, 피트니스 등을 갖춘 프리미엄 비즈니스호텔이다. 성공적인 비즈니스와 만족스런 여행을 위한 최고의 실용성과 차별화된 서비스, 합리적인 가격으로 비즈니스 고객과 레저여행객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다.
9.0Km 2024-07-18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41-5
02-743-6541
서울특별시 대학로에 있는 한식당이다. 대표메뉴는 삼계탕이다. 한국의 보양식 요리를 판매한다.
9.0Km 2022-12-2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25 대광빌딩
종로3가 대로변에 위치한 테이크아웃전문점으로 작은 카페다. 솜사탕, 붕어빵, 아메리카노라는 뜻에서 [솜붕아] 라는 상호가 탄생했다. 추운 겨울철 미니 붕어빵의 따끈하고 고소한 향기는 서울 길거리를 바쁘게 걸어가던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달콤한 팥 앙금이 가득한 쫀득한 반죽의 미니 붕어빵, 알싸하게 매운 미니 붕어빵, 고구마, 슈크림 등 다양한 맛의 붕어빵이 준비되어 있어 취향 따라 맛 따라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붕어빵 외에 커피 또한 고소하고 향이 좋아 찾는 이들이 많다. 자체 로스팅한 신선한 원두로 내린 커피의 맛은 오랜 세월 로스팅회사에서 사장님이 익힌 경험치가 녹아져 있다. 솜사탕은 천연색소 쌍백당으로 만들어 단맛이 부담스럽지 않아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간식이다. 붕어빵은 그때 그때 만들어 내어 웨이팅 시간이 다소 걸리는 편(3~4분)이지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 쫄깃한 맛에 즐겨 찾는 이들이 많다.
9.0Km 2024-11-14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11길 20
우당 이회영 선생 흉상은 대한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애국지사 이회영 선생을 기억하기 위해 건립된 흉상이다. 이회영은 이조판서 이유승의 4남으로 태어나 성장했다. 1905년에 을사늑약 체결의 음모를 저지하고 무효로 하는 운동을 주도하였고, 고종황제를 설득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 파견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 때, 6형제 전원과 일가족 50여 명이 전 재산을 정리하여 망명을 떠났다.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를 개소하였고, 1912년에는 합니하로 이전하여 본격적인 무관학교 교육을 시작했다.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 폐교할 때까지 독립군 간부 3,500여 명을 양성하는 성과를 이루고 독립전쟁을 주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광복군을 창설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상해 임시정부가 구성됐을 때는 의정위원으로 참여했고, 이후 아나키즘 운동과 의열단 조직을 지원함과 동시에 항일구국연맹을 결성하여 흑색공포단을 산하에 두고 의열투쟁에 매진했다. 중국의 항일부대와 독립군 부대가 연합하여 항일투쟁을 하도록 현지 지도 차 잠입하던 중 대련에서 체포되어 뤼순 감옥으로 이송됐다. 이곳에서 모진 고문과 굶주림으로 순국하는데 이때가 선생의 나이 66세였다. 흉상은 이회영 선생의 공적을 기려 기념사업회에서 건립하였으며, ‘이회영·이시영 6형제 집터’ 표지석이 위치한 서울 YWCA 앞에 함께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