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일미락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상암일미락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상암일미락

상암일미락

3.5Km    2024-07-05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암로13길 40

디지털미디어시티역 9번 출구에서 도보 3분 정도 걸리는 생고기 전문점이다. 통삼겹살과 통목살이 대표메뉴이다. 그 외에도 발효목살, 고추장삼겹살, 발효양념돼지갈비, 제철모둠쌈, 산더덕구이 등의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연중무휴로 12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영업한다. 전용 주차장이 없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단체석이 있어서 회식이나 모임에 적당하다. 전화 예약할 수 있다. 1km 거리에 난지천공원, 하늘공원 등이 있어 식사 후 산책하기 좋다.

여의샛강도서관

여의샛강도서관

3.5Km    2024-12-23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24 (여의도동)

여의샛강도서관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24에 위치한 공공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다양한 분야의 도서와 전자책을 제공하며, 3D 프린터 등 다양한 메이커 기기를 갖춘 메이커스페이스 공간도 운영하고 있다. 1층은 북카페와 열람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2층은 통창을 통해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열람실이 있다. 또한, 어린이 도서 약 5,000권을 포함하여 총 12,000여 권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어 어린이와 성인 모두에게 다양한 독서 자료를 제공한다.

이봉창 역사울림관

이봉창 역사울림관

3.5Km    2025-03-07

서울특별시 용산구 백범로 281-9 (효창동)

이봉창 역사울림관은 용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봉창 의사의 독립투쟁의 역사와 애국정신을 선양하고자 이봉창 의사 옛 집터 인근에 건립된 기념관이다. 이봉창 의사의 흉상과 함께 한인애국단 선언문이 전시되어 있다. 용산 원효로2가에서 태어나 효창동에서 자라며 용산역 역부로 근무하고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이 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의 이야기와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다. 1932년 1월 18일 의거일 그 날의 풍경을 VR로 관람할 수 있고, 한인애국단 단원 AR체험, 역사울림말 티켓, 스탬프 체험 등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이봉창 역사울림관 인근에 위치한 효창공원, 백범김구 선생 묘역, 삼의사 묘역, 임시정부요인 묘역과 의열사와 함께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둘러볼 수 있다.

제일라아트홀

제일라아트홀

3.5Km    2024-01-17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323 (상암동)

제일라아트홀은 상암동에 위치한 250석 규모의 대관 가능한 지하 공연장이다. 스탠딩 공연이 가능하고 다양한 형태의 공연과 행사가 가능한 다목적 홀이다. 스탠딩 기준 1,000명, 좌석기준 35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 무대에서 1층 맨 뒤까지의 거리를 최소화하고 무대를 스탠딩과 좌석 모두에 적합한 높이로 맞춰 객석 어디에서나 같은 환경으로 관람할 수 있게 만들었다. 2층 관람석은 갤러리처럼 만들 카페처럼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했다. 무대는 이동식으로 제작되어 새로운 연출 및 각종 전시가 가능하다. 음향시설과 장비가 붙박이로 설치되어 있어 최적의 라이브 환경을 제공한다.

손기정체육공원

손기정체육공원

3.5Km    2025-01-08

서울특별시 중구 손기정로 101-4 (만리동2가)

손기정체육공원은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출신학교인 양정 중고등학교를 이전한 후 만든 체육공원이다. 1987년 9월 조성되었는데 2020년에 러닝을 중심으로 하는 다채로운 문화 체육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큰 공간을 차지하며 축구장으로 이용되던 운동장을 마라톤과 보행이 가능한 트랙으로 조성해서 걷고 뛰기가 모두 가능하도록 했다. 이 운동장은 축구만을 위한 공간을 아닌 마라톤 광장, 야외 요가, 플리마켓 장터 등 세부 프로그램이 요일별, 시간별 운영되는 문화, 체육 복합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손기정체육공원에는 러닝트랙, 다목적운동장, 어린이 도서관, 어린이 놀이터, 게이트볼장 등의 시설이 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체육공원 내 신설된 손기정 어린이 도서관은 공원 남측 입구에 자리한 공영주차장 건물 일부를 활용해 조성된 것이다. 이 밖에도 러닝센터와 손기정 기념관이 있다.

정관장 증산역

정관장 증산역

3.5Km    2024-03-24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증가로 259 (북가좌동) 1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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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역사관

3.5Km    2025-03-17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서대문형무소는 대한제국 말에 일제의 강압으로 감옥이 지어져 80여 년 동안 우리 근·현대사 격동기의 수난과 민족의 한이 서려있는 역사의 현장이자 우리 민족의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대표적인 탄압기관이었다. 1908년 10월 21일에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뒤 일제에게 우리의 국권이 빼앗기자 이에 항거하는 민족독립운동이 전국에서 거세게 일어나고 일제는 수많은 우리의 애국지사들을 체포 투옥시켰다. 수용인원이 증가하자 그들은 마포 공덕동에 또 다른 감옥을 지었고, 이 때문에 1912년 9월 3일에 서대문감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름의 변화만큼이나 많은 민족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채 1992년 8월 15일에 현재의 ‘서대문독립공원’으로 개원하였다. 현재는 역사성과 보존가치를 생각해 7개 동만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그중에서 옥사 3개 동과 사형장은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다. 서대문구에서는 1995년부터 서대문독립공원 사적지에 대한 성역화사업을 시작하였다. 조국 독립을 위해 일제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 투옥되어 모진 고문과 탄압을 받고 순국하신 애국선열들의 넋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우리 선열들의 자주독립 정신을 일깨워 주는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삼기 위해 새롭게 단장하여 1998년 11월 5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

세상의모든아침

세상의모든아침

3.5Km    2024-12-18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24

여의도 전경련회관 50층에 위치하여 창가석에서는 한강을 바라보면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카페 레스토랑이다. 창가석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예약이 필요하며, 결혼식, 돌잔치 등 각종 행사 대관이 가능하다. 드라마 펜트하우스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여성 고객들에게 전망 좋은 브런치 식당으로 유명하다.

3.1독립선언기념탑

3.6Km    2025-03-17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손병희 등 민족대표들은 서울 중심지 인사동의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독립만세를 삼창함으로써 거족적인 3.1독립만세운동의 봉화를 올렸다. 3.1독립선언기념탑은 이날로부터 시작된 전 민족적인 항일 독립운동의 숭고한 자주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 8월 15일에 당시 재건국민운동본부 주관으로 온 국민의 성금을 모금하여 3.1독립만세운동 발발의 또 하나의 중심 현장이었던 탑골공원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1979년 탑골공원의 정비사업으로 철거되어 12년간 방치되었다가 각 계에서 복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1992년에 항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탄압과 고귀한 순국의 현장이었던 서대문 감옥 가까운 곳인 서대문 독립공원에 옮겨 세우게 되었다. 탑의 높이는 4.2m이며 탑 뒤에는 3.1독립선언문과 손병희 등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이 판각되어 있다.

송재서재필선생상

송재서재필선생상

3.6Km    2025-01-10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전남 보성 출신 개화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서재필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서대문독립공원 내에 건립된 동상이다. 송재 서재필 선생은 1896년 4월 7일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였다. 윤치호, 이상재 등의 협력을 얻어 독립협회를 창립하여 종래 중국을 사대하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국민의 성금을 모아 한국독립의 상징으로서 독립문을 세웠으며, 종래의 모화관을 개수하여 독립관으로 고치고 독립협회의 집회장소와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또한, 토론회를 통해 시민들을 모아 나라의 독립과 개혁에 대한 토론을 시키고 만민공동회를 조직하여 러시아의 부산 절영도 조차(租借) 요구를 반대하는 등 국민의 독립사상과 민권사상을 크게 신장시켰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워싱턴에 구미위원회를 설치하자 그 위원장을 맡아 독립운동을 위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고 전 재산을 독립운동의 경비에 바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하셨으나 1951년 1월 5일 미국에서 87세의 생을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