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Km 2024-10-18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46
정동 교회는 개신교가 이 땅에 보급된 후 가장 먼저 세워진 교회이다. 1885년 미국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우리 나라에 입국하여 배재학당을 세워 한국의 근대교육을 시작하였다. 그는 학교에서 종교 활동을 하였으나 예배만을 위한 건물을 구입하여 베델(Bethel) 예배당이라 하고 1887년 첫 예배를 시작하였다. 교인들이 늘어나면서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 건립이 필요하게 되자 1895년 공사를 시작하여 1897년 12월 26일 봉헌식을 가졌다. 이 건물이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19세기 교회 건물이다. 이 건물은 구조는 단층이지만 층고가 높아 2층으로 보이고 남측 종각은 3층 높이로 지어졌다. 미국식의 단순화된 고딕양식으로 건립 당시의 사진을 보면 이웃한 기와집이나 덕수궁과 잘 어울린다. 이 곳에서는 많은 토론회와 음악회 등이 열려 신문화 수용과 민족 의식 고취에 크게 공헌하였다. 본래는 십자형으로 380.16m²(115평)이었으나 1926년 증축 때 양쪽 날개부분을 넓혀서 현재는 578.5m²(175평)의 네모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원래 건물은 그대로 두고 양 날개 부분만 늘려지었기 때문에 건물의 원래모습에는 손상이 없다. 벽돌쌓기를 하였으며, 곳곳에 아치형의 창문을 내어 고딕양식의 단순화된 교회당 모습을 이루고 있다. 돌을 다듬어 반듯하게 쌓은 기단은 조선시대 목조 건축의 솜씨가 배어있어 주목된다. 이 교회당의 종은 장식없는 내부 기둥들의 겉모습과 함께 소박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소박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북미계통의 단순화된 교회건물이다.
3.2Km 2023-12-10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46
정동교회 이필주 사택 터는 3·1운동에 앞서 제2, 3차 학생단 간부회와 기독교계 대표들이 회합을 가졌던 이필주 목사의 사택이 있던 곳이다. 목사의 사택에서는 2월 25일, 26일 학생 대표들이 모여 독립운동 참여 방안을 논의하였고, 2월 28일에는 학생 대표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기 위한 모임이 열렸다. 또한 이곳에서 기독교계 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에 참여할 기독교측 민족 대표의 인선을 마무리 지었다. 1918년부터 정동교회를 담임하던 이필주 목사는 3·1운동 추진계획을 듣고 그 취지에 동의하여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이로 인해 2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3.2Km 2023-03-21
서울특별시 성북구 선잠로2길 47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이었으나, 의친왕 이강(1877∼1955)이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물이 흐르는 경치에 따라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자연 지형으로 앞뜰, 안뜰, 바깥뜰로 나눌 수 있다. 앞뜰은 두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쌍류동천과 안뜰 앞을 막아 아늑하게 감싸 만든 용두가산이 있다. 물줄기 속 암벽에 행서체로 새긴 ‘쌍류동천’이란 글은 성락원의 자맥을 보호하는 뜻도 있다고 한다. 또한 쌍류동천 주위와 용두가산에는 200∼300년 되는 엄나무를 비롯하여 느티나무,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다래나무, 말채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어 안뜰과 성락원 바깥을 가려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 안뜰은 영벽지와 폭포가 있으며 바깥뜰은 송석과 연못이 있는 지역이다. 서쪽 아래 지역에 늪이 있고, 북쪽에는 물길을 파서 인공폭포를 만들었다. 늪의 서쪽 암벽에 ‘장빙가(檣氷家)’라고 새긴 글씨는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의 것이다.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져 그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고 있는 성락원은 조선시대 서울 도성 밖에 위치한 몇 안되는 별서정원의 하나로 가치가 크다.
3.2Km 2023-08-04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 154
02-741-0021
국화정원은 흙벽과 기와, 그 위에서 자라고 있는 호박넝쿨이 정겨워 보이는 외관을 하고 있다. 내부도 죽부인을 이용한 조명과 천장에 드러난 서까래가 멋스럽다. 한옥을 개조하여 음식점으로 꾸며 더욱 운치가 있는 곳이다. 이 집에서 인기 있는 메뉴는 점심특선, 정 3품이다. 간장게장 특선은 호박죽과 색깔 고운 물김치가 입맛을 돋우고 간단한 샐러드와 전채로 시작된다. 간장게장은 속이 꽉 찬 살이 부드럽고 달짝지근한데 짭조름한 간장과 게딱지에 밥을 비벼 된장찌개와 먹어야 제맛이다.
3.2Km 2024-07-17
서울특별시 용산구 신흥로20길 43 (후암동)
해방촌에 위치한 어반클리프는 1층, 2층, 3층 루프탑까지 겸비한 대형 카페이다. 별관인 글래스룸은 브런치와 와인바로 운영하고 있으며, 카페 공간, 식사 공간이 분리되어 방문 목적에 맞게 이용하면 된다. 통창 밖으로 해방촌의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 뷰 맛집으로 유명하며 밤에는 야경이 아름다워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 많다.
3.2Km 2023-06-12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33-5
지금은 한복 입혀주는 남자, '한복남' 이라는 이름으로 서울까지 진출했지만, 이전에는 전주에서 2012년부터 한복데이를 기획하여 사람들에게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었다. 이처럼 한복의 재발견으로 주목 받은 한복남은 문체부에서 2015년 창조관광기업으로 선정됐고, 2016년 북촌에 한복남 전시실과 대여점을 열었으며, 2017년에는 제주도 지점과 홍대 지점을 오픈한다. 비치된 한복은 감탄이 나올 만큼 화려하고 다양하다. 왕과 왕비 캐릭터에 맞춘 고급 한복부터 거지 한복까지 다양한 테마로 준비되어 있다. 전시된 한복 치마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스태프가 저고리를 추천해주며, 댕기나 비녀 등 다양한 악세사리도 골라볼 수 있다.
1. U20 FIFA 월드컵 - 1000명 기적 한복 응원단
한복남은 전주에서 열린 개막식에 참여하여 전주시 소속 월드컵 추진위원단과 함께 "전주스러운 개막응원전"을 만들어 전국에서 모인 1000명의 시민들과 함께 한복응원전을 펼쳤다.
2. HANBOKNAM 제주도 지점 홍대 지점 오픈
전주한옥마을에서 시작된 한복남은 서울경복궁, 창경궁, 잠실롯데월드, 홍대, 제주도 지점을 오픈했다.
3. HANBOKNAM의 새로운 꿈. 그리고 미션 (기업 존재의 이유)
기존 한복이 어렵고 비싸다는 한복의 개념을 바꾸어 한복은 쉬울 수 있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대한민국 곳곳에서 한복을 입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4. 해외에서 러브콜이 조금씩 들려온다. 세계속에서 한복남의 서비스를 가지고 해외 각지에서 한복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며, 현지 여행사들과 미팅을 통해 "한복체험 패키지 상품"을 구성하고 있다.
3.2Km 2024-10-23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33 (정동)
신아기념관은 서울시 중구 정동에 위치한 역사적 건축물이다. 1930년대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건립되었다. 초기에는 미국의 '싱거미싱' 회사 한국지부로 사용되었으며, 1963년에는 한국 최초의 상업 신문사인 신아일보가 매입하여 1975년에 3층과 4층을 증축하였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의 건축기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민간 건축물로는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갖춘 사례로 평가 받고 있다. 신아기념관은 2008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는 기념관과 함께 카페 및 다양한 상업 시설이 운영되고 있으며, 방문객들은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공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신아기념관은 정동 지역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장소로 한국 언론사에서의 아픔과 역사를 간직한 상징적인 공간이다.
3.2Km 2024-11-12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이 건물은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본관이다. 보성전문학교는 한국인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다.1905년 대한제국 내장원경(內藏院卿)을 지낸 이용익(李容翊)이 교육구국 (敎育救國)의 이념 아래 박동, 지금의 수송동에 있던 러시아어 학교(露語學校)가 있던 자리에 법률과 실업교육을 목적으로 개교하였다. 1910년 천도교에서 인수하여 안국동 자리에 2동의 목조교사를 짓고 법과와 상과의 전문과정을 운영하였다. 그러나 재정난에 빠지자 김성수가 1932년에 이 학교를 인수하였고,1933년 지금의 안암동에 자리잡게 되었다. 1946년 8월에 정법,경상 및 문과의 3개 단과대학에 8개 학과로 편성된 종합대학으로 승격, 개편하여 고려대학교로 교명이 바뀌었다. 본관건물은 도서관과 함께 안암동으로 학교를 옮기면서 세워진 대표적 건물이다. 일제 강점기 시대 중앙고등학교 본관 등의 창의적인 작품을 발표했던 박동진(朴東鎭,1899-1982)이 설계하고, 일본인 후지따고오지로오(藤田幸二郞)가 시공을 맡았다. 1933년 9월에 착공하여 1934년 9월 석조 및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3층 건물로 준공되었다. 평면은 중앙부를 중심으로 좌우의 날개부가 짧게 처리된 ‘H’자형(l-l-l)의 완벽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화강석을 주재료로 하였다. 내부에는 증기 난방과 수세식 위생장치를 갖추었는데,당시로서는 최신식 시설이었다.
3.2Km 2024-09-26
서울특별시 용산구 소월로 323
1994년 철거한 용산구 한남동 외인주택 터에 만들어진 식물원을 1997년 2월 18일에 개원되었다. 면적은 59.241㎡이며 보유식 불은 13개의 주제로 나누어져 있고 서울지방에서 자랄 수 있는 식물 총 269종 117,132주가 심어져 있다. 이중 나무 종류는 소나무 등 129종 60,912주이고 풀 종류는 할미꽃 등 140종 56,220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