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리 남근석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산동리 남근석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산동리 남근석

산동리 남근석

18.5Km    2024-10-15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팔덕면 팔왕길 77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산동리 남근석은 남자 성기 모양으로 자연암석이나 암석을 조각하여 세운 것으로 복을 받거나 다산 풍농, 풍어를 기원하는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산동리마을 앞 당산나무 부근에 자리한 이 남근석은 화강암으로 정교하게 조각되었다.생김새는 건장한 남성의 성기가 충분히 발기되어 있는 모양으로 아랫부분에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는 점이 독특하다.500여년전 여장사가 2기의 남근석을 치마에 싸가지고 오다가 무거워서 1기는 창덕리에 버리고 1기는 이곳에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언제 세운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다른 남근석에 비해 매우 섬세하게 조각되어 주목되는 작품이다. (출처 : 순창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보리암(담양)

18.6Km    2024-02-02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월계길 37-17

보리암은 추월산에 자리한 대한 불교 조계종 18교구 본사 백양사의 말사이다. 보리사라고도 불리며 고려 신종 때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창건하였는데 스님이 지리산에 머물 때, 전국의 좋은 땅을 찾기 위해 나무로 세 마리의 매를 만들어 날려 보냈더니 한 마리는 순천 송광사 터에 또 한 마리는 장성 백양사 터에 나머지 한 마리는 추월산 보리암 터에 앉아 이곳에 절을 짓게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선조 40년(1607) 승려 신찬이 중수하였고 그 후 효정 1년(1650) 스님들이 힘을 모아 다시 중수하였다. 보리암은 추월산 등반코스 중 하나로 이곳에서 추월산 정상까지 1.6km 1시간 30분 등반 코스이며 대운전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위로는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고 아래로는 시원하게 펼쳐지는 담양호가 한데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보리암 바로 아래는 조선 선조 때 김덕령 장군의 부인 흥양 이 씨의 순절처로 유명하다. 임진왜란 때 흥양 이 씨는 왜적에게 쫓기자 이곳 절벽에서 몸을 던져 순절하고 현종 6년(1840) 담양 부사 조철영이 흥양 이 씨의 순절을 기리는 비문을 바위에 새겨놓았다. 담양호국민관광 주차장에서 보리암까지는 약 1.9km 거리이다.

월성 산아래 글램핑

월성 산아래 글램핑

18.6Km    2024-07-09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월성안길 16-33

산아래 글램핑은 장성 병풍산 편백숲길에 위치한 곳으로 광주에서 차로 20분 정도 소요된다. 20000㎡의 면적에 글램핑 시설 7동으로 구성돼 있어 캠핑 초보자들도 쉽게 이용이 가능하다. 편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각 동마다 화장실 및 바비큐장과 같은 편의 시설이 잘 준비돼 있어 독립 캠핑을 즐길 수 있다.

포레스트96

포레스트96

18.6Km    2024-04-04

전라남도 화순군 신기중앙길 2

파란 컨테이너를 겹겹이 쌓아 멋진 카페로 만든 포레스트96은 모던하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카페이다. 평일 11시부터 15시까지 브런치 메뉴를 즐길 수 있는데, 직접 만든 수제 소스로 맛을 낸 로제파스타와 신선한 샐러드, 육즙이 가득한 소시지가 잔뜩 들어있는 프렌치토스트 샐러드가 인기메뉴이다. 브런치메뉴 외에도 다양한 커피메뉴와 음료메뉴를 판매하고 있으며, 특히, 과테말라, 콜롬비아, 인도에서 온 커피를 블렌딩 한 스페셜티 원두만 사용하기 때문에 다크 초콜릿의 쌉싸름함과 부드러운 바디감으로 깔끔한 커피를 맛볼 수 있다. 2층은 조용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별도로 마련된 공간으로, 노키즈존으로 운영하고 있다.

세량지

18.6Km    2024-07-11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세량리

미국의 유명한 뉴스 채널 CNN이 [한국에서 가봐야 할 곳 50곳]에 선정할 정도로 빼어난 경치를 간직하고 있다. 또한 화순 8경 중에 제8 경이며 둑을 의미하는 세량제라고도 불린다. 세량지는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1969년 준공되었다.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면 잔잔한 호수에 비친 산벚꽃과 초록의 나무들이 수면 위에 거울에 비추듯 그대로 투영되어 이국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전국의 수많은 사진작가가 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매년 봄 화순을 찾고 있다. 여름이면 세량지를 물들인 짙푸른 녹음을 감상하며 평화로운 물가를 호젓하게 즐기기 적당하고 가을이면 단풍으로 울긋불긋 물든 산과 어울려 그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세량지는 봄부터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까지 계절을 초월해 경치를 즐기며 산책하기 좋은 힐링 장소이다. 세량지로 향하는 길목에 습지원이 있고 둘레길과 세량 누리길이 조성되어 있다.

의마총

의마총

18.6Km    2023-12-09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송전종방길 222

곡성군 입면 송전리의 논 한가운데에는 말 동상과 함께 둥그런 무덤과 비석이 하나 있다. 이것이 바로 월파 유팽로장군의 애마이자 의마의 말 무덤이다. 임진왜란 때 유팽로 장군은 성균관 학유로 재임하다 낙향하여 곡성, 담양, 순창에서 의병을 모아 양대박, 안영 등과 함께 담양에 모여 고경명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근왕 의병활동 중 왜군을 맞아 싸우다가 1592년 7월 10일 금산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이에 장군의 충마가 장군의 머리를 물고 3백리 밤길을 달려 장군의 생가인 합강리에 나타나 부인에게 건네주고 울부 짖다 죽자 부인 원주 김씨와 마을 사람들이 충마의 갸륵한 뜻을 기리기 위해 마을 앞 송전리에 말 무덤을 만들어 주고 의마총이라 이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옥과면 합강리에는 장군과 부인 원주 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한 정열각이 있다.

산경

산경

18.6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창덕로 353

순창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여행 코스 중 하나로 선택하는 한정식 전문점이다. 한옥 풍 외관에 널찍한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편안하게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전라도 밥상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한정식집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방문하기 좋은 곳이다. 음식이 자극적이지 않고 깔끔하다. 주변에 강천산군립공원, 강천 힐링스파, 순창 삼인대 등의 관광지가 있어 연계 여행하기 좋다.

워킹타우너

워킹타우너

18.7Km    2024-07-31

전라남도 장성군 마흥길 73

워킹타우너는 '시골길을 걷는 도시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 사회에서 한적한 시골 풍경을 보며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반려동물 동반할 수 있으며, 뷰가 좋아 인근 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주차장이 넓어 먼 곳에서도 카페를 방문하기 위해 찾는 손님들도 적지 않다. 3층 루프탑은 노키즈 존으로 지정되어, 조용한 대화를 원하는 이들에게 적합한 공간이다. 넓은 홀에 테이블을 많이 갖추고 있지만, 항상 많은 손님으로 북적인다. 한마음자연학교, 토루생태체험, 비나리마을 등의 체험장이 주변에 있어 연계 관광하기 수월하다. ※ 반려동물 동반 가능(목줄 착용, 배변봉투 지참)

화성식육식당

화성식육식당

18.7Km    2022-04-11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칠충로 162
061-374-2806

화순맛집 화성식육식당은 1975년부터 운영한 식육식당으로 생고기, 머리고기, 편육, 생고기비빔밥, 소머리국밥으로 한국의 전통음식을 맛 볼수 있는 곳이다.

유애서원

18.8Km    2023-10-31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아로 460

유애서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 이신의(1551~1627)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지어졌으며, 삼문 양편에 배롱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핀 아담한 공간이다. 1754년 이신의의 충절을 기려 호남 유림이 건립했다가 1868년 훼철됐다. 이어 1919년 경장각을 짓고 2000년 사우를 마련해 서원으로 성균관에 등록했다. 유애서원의 경장각에는 서적과 석탄금(거문고), 선조가 쓴 당 오언시를 목판에 새겨 찍은 여덟 폭 병풍(인조의 하사품) 등 유품을 보관했으며, 선무원종공신녹권을 비롯한 130여점의 고문서는 광주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석탄 이신의 이신의는 한성에서 태어나 고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형조판서 이원손이며, 어머니는 정종의 현손이다. 일찍 어버이를 여의고 형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도라산 숲속에 서실을 지어 공부하는데 물이 바위를 굽이쳐 흐르는 것을 보고 여울의 탄을 넣어 호를 석탄(石灘)이라 했다. 서경덕의 문하인 초당 허엽과 행촌 민순을 사사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석탄은 의병 300여명을 결집해 고양에서 창의했다. 고향을 지키려는 이 작은 부대는 왜적이 쳐들어오자 혁혁한 공을 세운다. 1596년 서얼 이몽학의 난이 일어나 고을 수령들이 줄줄이 도망해 여러 현이 함락됐다. 이 와중에 석탄은 천안군수 정호인과 8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이어 괴산·임천 군수, 홍주·해주목사를 거쳐 광주목사를 역임하면서 목민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1617년, 영창대군이 참살당한 이후 광해군은 인목대비를 폐하기 위해 문무백관의 의견을 듣는 수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그 부당함을 지적하는 항론을 올린다. 이 일로 이듬해 2월 함경도 회령으로 유배를 간다. 1623년 광해군의 폭정에 서인 일파가 정변을 일으키니 인조반정이다. 석탄은 5년의 귀양을 마치고 형조참의로 조정에 복귀한다. 광주목사에 이어 형조참판에 오른다. 1627년 정묘호란때 석탄은 노구를 이끌고 인조 호종을 위해 강화도로 향했다가 병을 얻어 77세에 수원의 어느 여사에서 숨을 거두었다. 우국일념이라는 한 마디를 남겼다고 한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시호는 문정이다. 고양의 문봉서원, 괴산의 화암서원, 그리고 광주의 유애서원에 제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