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Km 2024-09-09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가람1길 64-8
이 집은 국문학자이며 시조 작가인 가람 이병기 선생이 태어나 살던 곳이다. 조선 말기 선비의 가옥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안채, 사랑채, 헛간, 고방채, 정자 등이 남아 있다. 소박한 안채와 사랑채, 아담한 정자와 연못에서 선비 가옥의 면모를 잘 살필 수 있다. 슬기를 감추고 겉으로 어리석은 체한다는 뜻을 간직한 ‘수우재(守愚齋)’라는 사랑채 이름에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며 평생을 지조 있는 선비로 살아온 그의 풍취가 은은하게 느껴진다. 가람 선생은 우리 한글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여 일찍이 1930년대부터 조선어문연구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1930년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위원과 ‘선어 표준어’ 사정위원이 되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경남도 흥원경찰서로 끌려가 1년간 옥고를 치른 뒤 고향에 내려와 칩거하였다. 한편 해방 후에는 전북대학교,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에서 국문학을 가르쳤다. 주요 저서로 ‘국문학전사’, ‘역대시조선’, ‘가람문선’ 등이 있다. * 이병기선생 생가 탱자나무(전라북도 기념물) * 탱자나무는 낙엽 활엽 소교목으로 4~5월에 꽃이 피고 9~10월에 탱자가 열린다. 호남과 영남지방에 주로 분포하며 강화도가 북한계선이라고 하나 강원도 양양지방에서도 자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탱자나무의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되며 줄기에 가시가 있어 울타리용으로 많이 식재되었다. 이병기선생 생가의 탱자나무는 흉고둘레 60cm, 높이 5m 정도이며, 수형과 수세가 좋은 편이다. 수령을 알 수 있는 기록은 없으나 이병기 선생의 고조부가 이곳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시기를 기준으로 보면 200년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6.8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
소세양신도비는 조선 전기의 문인 소세양(1486~1562)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언겸(彦謙), 호는 양곡(陽谷)·퇴재(退齋)·퇴휴당(退休堂),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소세양신도비는 비석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구성인 기단, 비신, 이수가 잘 갖추어져 있어 비석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며, 조각과 글씨의 서체가 매우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임진왜란 이전 건립되어 현재 익산에 남아 있는 비석 중에서는 조성 시기가 빠른 편이다. 보존 상태가 전반적으로 양호하지만, 기단석의 이수는 파손되어 교체하였다. 현재 진주소씨 익산회종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소세양은 1504년 진사시에 급제했으며 수찬에 재직할 때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의 복위를 건의하여 현릉에 이장하게 했다. 이후 영접사 종사관, 전라도관찰사, 판서, 우찬성 등의 관직을 거쳤다. 윤임 일파의 탄핵을 받아 사직했다가, 조선 명종 즉위 후 다시 기용되어 좌찬성을 지냈고 사직한 뒤에는 고향인 익산에 은거하였다. 소세양은 사후 익산 화암서원에 배향되었고, 문집으로는 양곡집(陽谷集)이 있다.
6.8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익산 고도리 석불입상은 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2구의 석상으로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사다리꼴 모양의 돌기둥에 얼굴, 손, 대좌 등이 표현되어 있다. 이 석불은 200m쯤 거리를 두고 서로 바라보고 서 있는 남녀상이다. 몸은 사다리꼴의 돌기둥으로 굴곡이 없으며, 팔은 표현되지 않고 손이 간신히 배에 나타내었다. 머리에는 4각형의 높은 관(冠) 위에 다시 4각형의 갓을 쓰고 있다. 4각형의 얼굴에는 가는 눈, 짧은 코, 작은 입이 간신히 표현되어 있는데, 토속적인 수호신의 표이다. 도포자락 같은 옷은 특별한 무늬 없이 몇 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대좌(臺座)와 불상을 같은 돌에 새겼는데, 앞면을 약간 깎아 대좌 같은 모양을 만들고 있다. 사다리꼴의 돌기둥 같은 신체나 비사실적인 조각 수법이 마치 분묘(墳墓)의 석인상(石人像)과 비슷하다. 고려 시대에 이르면 신체표현이 지극히 절제된 거대한 석상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이 불상 역시 그러한 작품 중의 하나로 보인다.
익산 고도리 석불입상에는 사랑하는 연인의 이야기가 전설로 되어 전해지고 있다. 불상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음력 12월에 두 불상이 만나 1년 동안의 회포를 풀고 새벽닭 우는소리를 듣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남녀 상이라고 한다. 불상의 목을 보면 무척 짧게 표현되어 있으면서도 어깨와 얼굴이 거의 붙어있는데 이러한 형태가 연인의 전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있다.
6.9Km 2024-09-09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서촌1길 34-3
* 보기 드문 평지 사찰, 남원사 *
우리나라 사찰은 대체로 산속에 위치해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남원사는 보기 드문 평지 사찰이다. 벼 이삭이 익어가는 8월이 어느 날. 장마 뒤끝에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시샘하듯 들녘을 가득 메운 벼들은 빗물에 씻긴 채 물기를 머금고 초록빛이 더욱 짙어져 간다. 시원하게 뚫린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울창한 나무와 숲을 가로질러 난 고불고불한 산길을 지나 노인분들께 물어물어 남원사를 찾아간다. 그러다 더 이상 물어볼 사람이 없어 두리번거릴 때 파란 들판 한 가운데 그림같이 서 있는 사찰이 나타난다. 바로 남원사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남원사는 논두렁 사이에 파랗게 익어가는 벼 이삭 사이로 서 있는 아담한 사찰이다. 그곳에서는 장맛비를 맞아 환하게 피어 올라온 분홍빛 연꽃이 우선 맞이해 준다. 일주문을 거쳐 경내로 들어서면 유난히 아름다운 화단이 또 지친 나그네를 맞아준다. 낮은 꽃밭에는 정겨운 우리 꽃들이 수줍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아마도 이곳에 도착하게 되면 계절 따라 철철이 피는 또 다른 꽃을 만나게 되고, 그 꽃을 보면 부처님의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미륵전을 들어가면 이곳 소박한 시골의 사찰을 닮은 순박한 모습의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이제, 이 부처님께 절을 올리면서 불타의 법문을 듣게 되길 희구해 본다.
* 여산장에 들린 후 마국수 한 그릇으로 여행을 장식하자 *
남원사는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근에서는 매월 1일과 6일 5일장인 여산장이 열린다. 여행길에서 만나는 사람 사는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1일과 6일에 맞춰 길을 떠나 남원사를 거쳐 여산장을 들리는 것도 좋은 여행 일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익산시의 명물 서동마국수 한 그릇으로 주린 배를 채우는 것도 여행의 재미를 키워줄 것이라 할 수 있다.
7.0Km 2024-09-20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화곡1길 53-15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소자파의 묘비다. 1526년(중종 21)에 건립되었으며 진주소씨 익산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비신은 대리석으로 높이 165㎝, 너비 93㎝, 두께 23㎝이다. 화강암으로 된 대석은 가로 136㎝, 세로 98㎝, 높이 73㎝이며, 전면과 후면은 2개의 정사각형 안에 용화문을, 윗부분은 연판문으로 장식하였다. 4각의 받침돌은 국화무늬를 조각하였다. 머릿돌은 앞·뒷면에 연꽃과 구름무늬를 새겨 넣었는데 그 조각이 매우 섬세하고 뛰어나다. 비의 전액은 글씨 크기가 약 10㎝로 김희수(1475~1527)가 썼으며 남곤(1471~1527)의 글이다. 비의 뒷면은 이행(1478~1534)의 글이고, 글씨는 크기가 약 10㎝로 성세창(1487~1548)이 썼다. 비의 모습이 완전하고 비문의 글씨도 선명하며 조각 수법도 우수하다. 또한 비의 건립연대가 중종 21년(1526)으로 익산지역에 전해오는 금석문으로서는 가장 빠른 것이어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7.1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서촌2길 21
063-836-5058
여산시장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옛날부터 여산시장은 생필품의 보고와도 같은 장이었다. 여산장에서는 강경에서 유입된 생선류, 건어물류, 포목상, 일상잡화류 등과 연료용 화목장작 등 나무시장이 열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에는 채소류, 의류, 생활용품 기타 잡화 등으로 장이 형성되고 있으며 계절에 따라 마늘, 고추 등이 주상품을 이루고 있다. 1970년 이후 일일생활권이 대도시에 편중되면서 장세가 극히 약화되었으며, 유통산업의 개방과 농촌인구의 격감이 이루어진 1980년대 이르러 서서히 퇴조하게 되었다. 지금도 전통을 이어 5일장이 운영되고 있지만 겨우 명맥만 유지되고 있는 상태이다. 전통시장의 맛을 느꼈다면 인근 관광지를 거쳐 여행의 재미를 더하는 것도 좋다. 특히 익산시는 백제문화의 정취가 살아있는 관광지가 많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하는 역사 체험 여행으로 좋은 장소이다. 여산장 인근에는 보기 드문 평지 사찰인 남원사가 있으며, 농촌 체험을 할 수 있는 두여마을 관광농원이 있다. 남원사와 함께 두여마을을 거친다면 역사와 농촌 체험의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7.2Km 2024-10-11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전북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에 있는 천주교 순교 성지이다. 이곳은 호남의 관문으로 일찍이 천주교가 전래되어 수많은 신앙 공동체와 순교자들을 배출하였다. 병인박해가 일어났을 당시에 금산, 진산, 고산에서 잡혀 온 신자들이 순교한 곳이며 기록상으로만 22명이 순교했다. ‘여산 순교 성지’라고 쓰인 대형 돌판이 있으며 그 안쪽으로 백지사 기념비가 서 있다. 순교자들의 무덤은 천호산 기슭 천호 공소 부근에 자리하고 있다. (출처 : 익산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7.2Km 2024-09-24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용기길 66
두여 정보화마을은 맑은 시냇물이 흐르며 넓고 시원한 들판을 바라보면 누구나가 살고 싶어 하는 훈훈한 인심의 마을이다. 호남의 최초 관문인 익산시 여산면은 마한, 백제시대 여래비리국으로 출발하여 조선시대 여산현, 여산도호부 등을 거쳐 1914년 3월에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또한 지역 특성상 천호산과 용화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지역으로 예로부터 신비한 효능을 지닌 황토흙의 넓은 평야지대에서 참외, 메론, 양파, 딸기 등 품질 좋은 농축산물들이 생산되고 있다. 이곳은 여산동헌, 이병기선생생가, 여산향교 대성전, 남원사 미륵전, 문수사 대웅전, 백지사터, 현재는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은 호남 유일의 자연동굴인 천호동굴(천연기념물 177호), 대원군척화비, 천주교성지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7.2Km 2024-10-16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함열읍 와리2길 8
063-862-2900
함열시장은 이조말 금성마을 날근터에 시장이 개설되었고, 그 후 함열역 부근에 형성되다가 일제 때 현 위치에서 본격적으로 발달하였다. 1950~1970년경까지 강경 웅포 등의 물류가 유입되어 성시를 이루웠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시내버스가 1975년경부터 운행되면서 인근 익산시에 상권이 편중되면서 함열장은 약화되어 현재는 채소류, 의류, 잡화류, 생선류, 과일류 등으로 5일장이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7.3Km 2024-09-27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백지사터는 여산 동헌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대원군 집정 때인 1866년 병인박해가 계속 진행되어 대학살이 감행되는 동안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한 곳이다. 얼굴에 물을 뿜고 백지 붙이기를 여러 번 거듭하여 질식사시키는 방법으로 일명 ‘도모지사(塗貌紙死)’라고도 하며, 쇄국 정책의 분노와 증오에 양심과 신앙 자유가 질식한 곳이다. 옛 동헌 뜰에는 박해 사실을 증명하듯이 대원군의 척화비가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