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플로 호스텔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업플로 호스텔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업플로 호스텔

7.0Km    2024-11-27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56길 18

업플로 호스텔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하고 있다.

가람화랑

7.0Km    2024-11-18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0길 11

가람화랑은 한국 근현대 미술 전문 화랑으로, 근대 미술을 재조명하는 전시를 시작으로 개관하였다. 전문미술인이 경영하는 화랑으로서 형상 미술을 위주로 하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기획전과 초대전을 개최하고 있다. 근현대 미술의 수준 높은 주요 작품들이 전시, 판매되고 있으며, 구상성 짙은 작품들을 쉽게 관람할 수 있다. 대중들의 발길이 쉬운 인사동에 있어 초보 컬렉터들도 작품 감상 및 작품 컬렉션에 관한 자문을 구할 수 있다. 가람화랑은 일반 대중이 쉽게 미술과 문화에 접근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 직장인들과 중산층 컬렉터들이 가장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평범함을 갖고 있다. 또한 대가들과 중진들의 작품을 접해 본 경험이 많이 있는 초보 컬렉터들의 길잡이로서도 더할 나위 없다. 또, 기업의 작품 컨설팅을 비롯하여 컬렉터들의 작품 컬렉션에 관한 자문도 제공한다.

서울 관상감 관천대

서울 관상감 관천대

7.0Km    2024-12-06

서울특별시 종로구 원서동

서울 관상감 관천대는 조선시대 별을 관측하던 곳으로 조선시대 기상대나 천문대인 관상감이 있던 자리에 설치한 것이다. 관측 기구로서 소간의[小簡儀]를 올려놓아 소간의대[小簡儀臺], 또는 별을 관측하는 대라는 뜻으로 첨성대[瞻星臺]라고도 불린다. 세종 16년(1434)에 설치된 서운관의 관측대로서, 서운관은 천문, 지리, 측후, 물시계와 관련된 일을 관장하는 곳이었다. 서운관은 조선 세조 12년(1466)에 관상감, 고종 31년(1894)에 관상소, 1907년에 측후소로 바뀌어 현대식 시설을 갖추기 시작할 때까지 업무를 수행했던 곳이다. 관천대는 다듬은 돌을 높이 4.2m, 가로 2.8m, 세로 2.5m 크기로 만들었고, 그 위에 직사각형의 돌로 난간을 둘러놓았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원래는 대 위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있었다. 경주에 있는 신라의 첨성대, 개성 만월대의 고려 첨성대, 서울 창경궁 내의 관천대와 더불어 우리나라 천문 관측역사의 발전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3·1운동의 정신을 느껴보는 서울 여행

3·1운동의 정신을 느껴보는 서울 여행

7.0Km    2023-08-09

대한 독립 만세! 3.1운동과 관련된 의미있는 역사 속 현장을 따라 걸으며, 서울을 색다르게 여행해보자. 3.1운동 당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그 뜻깊은 장소에서 우리의 소중한 역사를 되새겨보며 독립의 정신을 다시 한번 느껴보는 시간을 갖자.

경운동민병옥가옥

경운동민병옥가옥

7.0Km    2024-08-22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0길 23-9

경운동 민병옥 가옥은 1930년대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개량한옥으로,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건축가 박길용(1898∼1943)이 설계했다고 전한다. 경운동 66-8번지에 있던 정순주 가옥과 같은 평면으로 정순주 가옥은 이 집의 뒤채에 해당한다. 원래 건축주가 두 아들에게 한 채씩 주기 위하여 지은 집으로 네모반듯한 집터 동쪽에 대문이 있고, 앞마당으로 들어가면 남향으로 H자형의 건물이 있다. 중심축에 부엌·대청·건넌방·사랑방이 있고, 부엌의 앞쪽으로 안방, 뒤쪽으로 뒷방이 있다. 반 칸 너비의 툇마루를 두어 동선을 연결하였다. 사랑방의 앞쪽에는 누마루를, 뒤쪽에는 현관마루를 두었다. 건넌방은 상당히 큰 방으로 꾸며 사랑방 구실을 하고, 현관마루와 연결되는 사랑방은 응접실 용도로 사용하도록 설계한 듯하다. 마당 남쪽 담장 밑에는 작은 화단을 가꾸어 놓았다. 현관과 화장실·목욕탕을 내부에 두고 이들을 연결하는 긴 복도를 둔 점과 유리창을 단 점 등 이 시기 개량한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며, 주택의 변천을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현재는 문화유산 보존을 위하여 출입은 불가하고 건물의 외부만 관람 가능하다.

모던화랑

모던화랑

7.0Km    2024-08-29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0길 4

모던화랑은 원로 중진 작가 작품을 전문으로 전시하고 판매하는 화랑이다. 인사동에서만 현재까지 20년째 문을 열고 있는 곳으로, 예술성 좋고 지명도 높은 국내 유명작가의 작품을 엄선하여, 매출, 매입 업무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이곳에는 서양화, 판화, 조각 등이 있으며,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일부 작품도 볼 수 있다. 작품가격과 문의 사항은 전화로 하면 안내받을 수 있다. 모던화랑은 작품성 좋은 작품들을 보다 차원 높은 문화생활 저변 확대라는 차원에서 작품가격을 현실적으로 조정하고, 많은 분이 즐거운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통다원

전통다원

7.0Km    2025-03-15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0길 11-4
02-730-6305

처마 끝 은은한 풍경소리와 한옥의 예스러움이 마치 산사를 찾은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전통다원은 15종의 우리나라 전통차를 맛볼 수 있어 이미 많은 내·외국인들에게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운치 있는 한옥에 자리한 전통다원은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은은한 차 향기와 함께 전통 음악이 흘러나와 온몸을 감싸 앉고 무엇보다 미닫이문을 열면 툇마루와 함께 바로 정원이 내다보이는 방 안이 매력 포인트이다. 비가 오는 날 빗소리와 함께 잔잔히 흐르는 국악 소리는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독립선언문 배부 터

독립선언문 배부 터

7.0Km    2024-11-13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457

서울 종로구에 있는 운현궁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독립선언문 배부 터’라고 적힌 작은 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1919년 3·1 운동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검토하고 배부했던 위치다. 지금도 표지석 앞에 민족대표 33인과 위안부 피해자 여성들의 이름을 기록한 돌이 자리해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한다. 3.1 독립선언문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보성인쇄소에서 찍어낸 후 신축 중이던 천도교 대교당 마당(현재의 배부 터 바로 옆)에 갈무리해 두었다가 종교계, 학생 대표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는 길옆에 자리해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1919년 봄의 자긍심을 느끼고 되돌아볼 수 있는 특별하고도 소중한 장소라 하겠다.

우리강산

우리강산

7.0Km    2025-04-09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성대로12길 6 (방이동)
02-415-7131

방이동 먹자골목 내에 위치한 우리강산은 참숯으로 구워 낸 고깃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코스메뉴부터 단품메뉴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코스메뉴는 총 5가지로, 모든 고기는 국내산 한우 1++만이 제공된다. 모든 코스메뉴에는 꽃등심이 제공되며, A코스는 꽃등심 스페셜, B코스는 한우양념, C코스는 안심살, 패밀리코스는 안심이 함께 제공된다. VIP코스는 국내산 한우 1++ 특수 부위로만 구성되어 있다. 이외에도 국내산 돼지양념갈비, 돼지생목살 등의 메뉴도 있으며, 곰탕, 수제갈비탕 , 육회비빔밥 등 식사메뉴도 준비되어 있다.

성재 이시영선생 동상

성재 이시영선생 동상

7.0Km    2025-04-21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1가 100-115

성재이시영선생동상은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몸을 바치신 김구선생동상과 함께 남산공원 백범광장 내에 세워져 있다. 성재 이시영 선생은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전 재산을 바쳐 투신한 명문가의 다섯째 아들로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냈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당시, 형 건영, 석영, 철영, 회영, 동생 호영과 함께 6형제가 전 재산을 바쳐 독립운동에 투신한 명문가 출신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선생은 일찍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1910년 일제에 의하여 국권이 피탈 당하자 형제, 가족과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을 진흥하고 수많은 독립군을 양성하여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1919년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법무총장, 재무총장으로 재직하며 1945년 해방 시까지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켰다. 광복 후 환국하여 신흥무관학교의 건학이념을 계승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1947년 성재학원 신흥대학(현 경희대)을 설립하였다. 1948년 7월 제헌국회에서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독재 정권에 항의하며 1951년 5월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부통령직을 사임하였으며, 1953년 피난지인 부산 동래에서 서거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