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촌성구랜드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양촌성구랜드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양촌성구랜드

양촌성구랜드

14.9 Km    1     2023-11-10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양촌리

양촌성구랜드는 여름에만 개장하는 물놀이에 특화된 유원지이다. 물놀이장은 성인용과 어린이용으로 분리되어 각자의 필요에 맞게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미끄럼틀이 설치되어 있으며, 어린이들은 구명조끼를 대여하여 더욱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물은 천연 지하수를 끌어올려 수질을 관리하여 활용하기 때문에 매우 시원하다. 포도나무 아래에 설치된 평상에서는 식사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평상은 사전 예약도 가능하며, 예약은전화문의를 통해 가능하다. 양촌성구랜드는 논산, 대전, 금산 방면에서 지방도 697호선을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다. 또한 호남고속도로 지선 양촌하이패스IC와도 가깝다. 주변에는 대둔산도립공원 외에 양촌자연휴양림, 탑정저수지 등이 있다.

자명사(익산)

자명사(익산)

15.0 Km    17733     2024-04-30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용안면 을동길 76-12

자명사는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우슬산에 자리한 작은 산사로 비구니 수행 정진 도량이다. 1943년에 승려 진명이 자명사를 중건하고 1944년 사찰 동쪽 입구에 세운 사적비에 따르면 자명사는 신라 시대인 678년(문무왕 18)에 승려 선설이 창건하였고 당시 이름은 자웅사라고 했다고 전한다. 이후의 연혁은 전하는 것이 없으며, 그 뒤 조선 시대에 용안읍에 사는 권세가 민인재가 자웅사에서 소 우는 소리가 읍내에까지 퍼지는 꿈을 꾸고는 기이하게 생각하여 절의 이름을 자명사로 고쳤다고 한다. 현재 사찰 경내에 신라 시대의 유물이 전하는 것은 없지만 주변에서 발견되는 기와, 토기편 등이 오랜 역사를 지닌 고찰임을 증명하고 있다. 자명사 경내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삼성각과 범종각이 있고, 그 외에 요사채 2동과 쌍사자 석등 등이 있다.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익산시 향토 유적으로 지정된 자명사 대웅전 목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삼성각 안에는 칠성탱화, 독성탱화, 산신탱화 등이 모셔져 있다.

여산동헌

여산동헌

15.1 Km    42445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동헌길 13

이 건물은 3단의 계단식 건물 터 제일 상단부에 들어서 있는데, 조선시대 말기에 건축한 것으로 보인다. 벽과 방의 구조는 근래 일부 개조하여 본 모습은 잃었지만,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추녀와 대청마루에서 한식 목조 건물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다. 여산 동헌은 전국적으로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은, 옛 모습을 간직한 조선시대 지방관청 건물의 하나이다. 『여산 동헌 느티나무』전라북도 기념물 (2002.08.02)이 느티나무의 유래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여산 동헌과 주변에 7주의 대형 느티나무가 집중 분포되어 있음에 따라 동헌의 설치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여산은 전주에 속해 있다가 공양왕 3년(1391) 감무를 두고 낭산과 공촌, 파제 두 부곡의 권농사까지 겸임하였고, 조선 태종 2년(1402)에 여산현이라 하고, 세종 18년(1436)에는 원경왕후의 외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다고 함으로 조선 태종대에서 세종대에 동헌이 설치되는 과정에서 식재되었을 것으로 보여 수령은 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나무의 휴고 둘레는 4.5m, 높이는 22m이다.

여산척화비

15.1 Km    15976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동헌길 13

여산척화비는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동헌 뜰에 있다. 1866년 병인양요 이후 서양 제국이 개항을 요구하는 가운데 1871년 신미양요가 일어나자, 흥선대원군이 서양 제국에 대한 항전 의식을 고양하기 위하여 전국 여러 곳에 세운 석비 중 하나이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흥선대원군이 실각하자 일본공사관의 요구로 철거되었다가 1915년 여산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발굴되어 여산동헌으로 옮겨 세워졌다. 여산척화비의 뒤에는 여산군에서 선정을 베푼 역대 관리들의 선정비 8기가 서 있다. 여산척화비는 화강암의 단면 석비로, 규모는 높이 114㎝, 너비 46㎝, 두께 9㎝이며 정면에 비제를 겸한 비문이 있다.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하는 것이니, 화해를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라고 새겨져 있다. 척화비는 전국 각지에 건립되었으나 남아 있는 척화비는 여산척화비를 비롯해 10여 기로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

백지사터

백지사터

15.1 Km    42963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영전길 2-95

백지사터는 병인박해 당시 전라도 여산군의 속읍이었던 고산, 금산, 진산 등의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장소이다. 이곳을 백지사터라고 부르는 이유는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 방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 방법이 얼굴에 물을 뿜고 백지 붙이기를 여러 번 거듭하여 질식사시키는 백지사(白紙死)였기 때문이다. 여산백지사터성지 내에는 순교 성지를 안내하는 표지석이 있으며, 십자가상과 십사처로 조성한 십자가의 길이 있다. 특히 십자가 아래 백지사를 당하던 천주교 신자의 모습을 화강암으로 형상화한 조각이 놓여 있어 병인박해 당시의 비극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삼세오충렬사

15.1 Km    15943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용안면 현내로 468

* 전라북도 기념물 삼세오충열사 *

삼세오충열사는 전북 익산시 용안면 중신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1982년 8월 30일에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삼세오충열사는 3대에 걸쳐 나라를 위해 순절한 해주오씨(海州吳氏) 오충신(五忠臣)의 유적이 모여 있는 곳이다. 원래는 오응정(吳應鼎)과 그의 아들 욱(稶)과 직(稷), 그리고 직의 아들 방언(邦彦)을 배향하여 사충사(四忠祠)라 하였으나 근년에 오응정의 아들 동량(東亮)을 추향하여 오충열사(五忠烈祠)라 부르고 있다. 오응정(1548∼1597)은 전라도 용안현 출신으로 자는 문중(文中), 호는 완월당(翫月堂)이다.

조선 선조 7년(1574년)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에서 치적(治積)을 쌓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순천부사 겸 총 병부 문안사(順天府使兼總兵府問安使) 전라도 우방어사(全羅道右防禦使)가 되어 어모장군(禦侮將軍) 욱, 동량과 더불어 남원성(南原城) 전투에 참전하여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게 되자 화약더미 속에서 세 부자가 장렬하게 순절하였다.

오응정의 차남 오직(1574∼1619)은 광해군 때 도원수(都元帥) 강홍립(康弘立) 막하의 우영천총(右營千摠)으로 요동심하 전투에 출전하였으나 강홍립이 후금군에 항복하자 격분하여 부차(富車)에서 적과 싸우다 온 몸에 화살을 맞고 전사하였다. 그의 아들 방언(1588∼1637)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적과 싸우다 인조대에 삼전도 굴욕을 당하자 남한강에 투신자살하였다. 이를 기리기 위해 조선 숙종 7년(1681)에 충열사를 세웠다.

* 해주오씨(海州吳氏) 오충신(五忠臣)의 유적

관리 사무소를 지나면 광장입구에는 정문인 충신문이 있다. 충신문을 지나 올림픽기념 숲을 걷다보면 외삼문인 복절문에 이르고 복절문 좌측에는 기념관인 영국관이 있다. 내삼문인 장의문을 지나면 본사우인 삼세오충열사에 이른다. 여기에는 중앙에 오응정, 좌측에 동량과 욱, 우측에 직과 방언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삼세오충열사의 현판은 여산 권갑석 선생이 쓰셨다. 삼세오충열사를 나와 우측으로 가면 신도비와 오응정의 묘가 있고 정려각이 있다. 최근에는 모충제를 건립하였다. 충신문의 우측으로 가면 오충신의 묘와 오응운, 오응태, 오하몽, 오석근, 오식 등 직계선조의 묘가 있고 오영우, 오사고, 오희, 오사만, 오영수 등을 모신 삼신단이 있다.

지장정사(논산)

15.1 Km    21596     2023-03-13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화곡안길 103

* 실천하는 불교, 지장정사 *

지장정사(地藏精舍)는 1980년 6월 주지 덕산 창법스님이 계룡산에서 1,000일 기도를 마치신 후 이곳 노성면 화곡리 옛 절터가 있었다는 마을에 자리를 잡고 불사를 시작하였다. 현재의 대웅전(大雄殿)의 부처님이 모셔진 상단부가 바로 초기의 지장암(地藏庵)의 대웅전으로 약 10여평 정도였다. 1995년에는 영산전(천불전)을 조성하였으며 1997년 선재어린이집을 개원하였다. 2002년에는 극락전과 연화대(납골당)를 중창하였다. 2005년부터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으며,2006년에 사회복지법인 지장원을 설립하고 2008년 노인 전문 요양원인 공주효센터를 개원하여 복지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 나눔과 실천을 배우는 체험, 지장정사 산사체험 *

지장정사 템플스테이는 풀냄새 그윽한 농촌의 소박한 사찰에서 차명상, 발우공양, 108배 정진, 참부처만나기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섬세한 사찰예절과 상식에 대한 강의로 시작하여 발우공양, 108배 정진, 차 명상을 통한 쉬우면서도 의미 있는 시간을 준비하였다. 또한 딸기따기, 밤줍기, 방울토마토 따기, 채소밭 체험, 야생화 숲길 걷기등 농촌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 지장정사는 “나눔, 실천이 곧 불성이다” 라는 덕산 큰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하여 나눔운동으로 회향을 하고 있다.

국수무료급식 봉사, 독거노인돕기등의 봉사활동으로 회향식을 진행한다. 사찰체험뿐만 아니라 나눔과 봉사에 참여하고자 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봉사체험프로그램도 준비하였다. 지장정사는 해마다 경로잔치를 베풀며, 계절 따라 40여만 마리의 물고기를 방생하며,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봉사하며, 국수를 삶아 시장상인들과 나누며, 눈이오나 비가 오나 일요법회를 봉행하며, 스님들의 밤낮 없는 염불수행으로, 법원스님의 주옥같은 법문으로, 덕산 큰스님의 끊임없는 천일기도 정진으로, 지장정사 불자들의 불심으로 이루어내고 있는 대작 불사이다.

여산장 (1, 6일)

여산장 (1, 6일)

15.1 Km    9873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서촌2길 21
063-836-5058

여산시장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옛날부터 여산시장은 생필품의 보고와도 같은 장이었다. 여산장에서는 강경에서 유입된 생선류, 건어물류, 포목상, 일상잡화류 등과 연료용 화목장작 등 나무시장이 열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에는 채소류, 의류, 생활용품 기타 잡화 등으로 장이 형성되고 있으며 계절에 따라 마늘, 고추 등이 주상품을 이루고 있다. 1970년 이후 일일생활권이 대도시에 편중되면서 장세가 극히 약화되었으며, 유통산업의 개방과 농촌인구의 격감이 이루어진 1980년대 이르러 서서히 퇴조하게 되었다. 지금도 전통을 이어 5일장이 운영되고 있지만 겨우 명맥만 유지되고 있는 상태이다. 전통시장의 맛을 느꼈다면 인근 관광지를 거쳐 여행의 재미를 더하는 것도 좋다. 특히 익산시는 백제문화의 정취가 살아있는 관광지가 많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하는 역사 체험 여행으로 좋은 장소이다. 여산장 인근에는 보기 드문 평지 사찰인 남원사가 있으며, 농촌 체험을 할 수 있는 두여마을 관광농원이 있다. 남원사와 함께 두여마을을 거친다면 역사와 농촌 체험의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부여 청마산성

15.2 Km    21120     2023-01-11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 백제산성 중 가장 큰 산성, 부여 청마산성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陵山里)에 있는 백제 때 산성. 부여 능산리 명월산에 있는 백제 산성으로, 당시 수도였던 사비를 방어하기 위하여 쌓았다. 골짜기를 성 안에 두고 산 능선을 따라 돌로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전반적으로 성벽이 많이 무너져 있으나, 서쪽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계곡의 물이 흐르는 서쪽 성벽에 수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방어를 목적으로 쌓은 성이라 남문이 없다. 현재 성안에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높이 쌓은 망대와 각시우물이라 전하는 우물터, 경룡사터, 의열사터와 건물터가 남아있다.

* 청마산성의 의의 *

백제산성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성으로, 석성산성·성흥산성·증산성과 함께 부여를 보호하기 위한 외곽 방어시설로서 의미가 크다.

계룡산신도내주초석석재

15.3 Km    22116     2023-12-06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

계룡산신도내주초석석재는 충청남도 계룡시 신도안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이다. 신도안면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후, 천도 후보지로 정했던 지역이다. 궁궐을 짓기 위해 1년여간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목재와 석재 등을 운반하다가, 신도안이 국토 남쪽에 치우치고 교통과 물 공급이 불편하며 풍수상 고려 개경과 유사하여 신 왕조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중단되었다. 이때 대궐터에 주춧돌로 쓰려고 가져다 놓은 주초석 약 115개가 남아 전해지고 있다. 1976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하고 있으며 현재 일부가 군사시설보호구역 안에 들어가 있어 전체를 관람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