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3.1M 2025-03-05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한강 남쪽에 위치한 서울 풍납동 토성은 백제시대 초기에 쌓은 성곽이다. 원래는 둘레가 3.5㎞에 달하는 큰 규모의 토성이었으나, 한강과 맞닿은 서쪽 성벽이 유실되어 지금은 2.1㎞정도만 남아있다. 발굴조사에 의해 성벽 기초부는 너비가 43m, 높이가 11m가 넘는 대규모의 토성으로 확인되었다. 성벽의 축조는 중심부 하단에 뻘흙을 깔아 기초를 다진 후 그 안팎으로 진흙과 모래흙을 다진 판축기법으로 중심 토루(土壘)를 쌓아가며, 일부에 식물유기체를 깔거나 자갈을 이용하여 토루를 보강하는 등 독특한 축성기술을 동원하였다. 1925년 대홍수 때 중국제 청동자루솥, 허리띠장식 등을 비롯하여 상류층이 사용한 중요 유물이 다량 출토되면서 백제 왕성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36년에 조선고적으로 지정된 바 있으며, 1963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도 경당지구 발굴조사를 거치며 한성백제시대 첫 도읍인 하남위례성일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발굴조사가 지속되며 풍납토성이 백제의 최초 도성이었음은 학계의 정설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토성 내부 발굴조사에서 중요 유구들과 수만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중 상수도로 추정되는 토관, 백제 초기 최초의 동서남북대로 유구, 대형 주거지, 백제 최초의 지상식 기와 건물지, 신전 추정 초대형 건물지, ‘大夫’, ‘井’ 자 등이 생겨진 항아리 등 한성백제기 최고 상류층 사용 주요 시설이 확인되어 풍납토성은 백제 초기의 역사정체성을 규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유적으로서 지금까지 발견된 백제시대 최고의 왕성유적이다.
823.9M 2021-03-15
서울특별시 강동구 올림픽로70길 56-6
02-478-6999
일본 정통 라멘으로 많은 미식가들이 찾는 매장이다. 대표메뉴는 라멘이다.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있는 일식전문점이다.
826.2M 2021-03-15
서울특별시 강동구 올림픽로70길 50-7
02-488-6923
다양한 수제요리가 있는 일본 선술집이다. 대표메뉴는 메로구이다.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있는 한식전문점이다.
918.3M 2024-02-16
서울특별시 강동구 성안로3길 27 주문진빌딩
서울특별시 강동구 성내동에 자리한 주문진은 지하철 8호선 강동구청역 2번 출구 성내중학교 인근에 있다. 골목 주택가에 있는 참치 횟집이다. 주차 공간이 협소하다. 다양한 개별 룸이 있어 조용한 미팅에 적합하다. 주문진은 점심, 저녁 가성비 좋은 코스요리로 인가가 높다. 참치 회와 함께 연어, 광어, 우럭, 방어까지 계절에 맞게 다양한 회들이 함께 나온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간장 게장은 비리지 않아 단품으로 주문해도 좋다. 코스요리와 함께 나오는 초밥과 튀김류 메뉴도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 마지막 코스로 지리와 탕이 나오는데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된다. 주변에 몽촌역사관과 올림픽공원이 있어 연계 관광을 할 수 있다.
944.0M 2024-01-11
서울특별시 강동구 구천면로 192 (천호동)
광나루 한강공원에 있는 한강공원 광나루모형비행장은 2016년 6월 개장한 모형비행장이다. 고정익 드론 존(가로 160m, 세로 30m), 레이싱 드론 존, 회전익 드론 존 등 드론을 날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인터넷으로 사전에 예약 후 3시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드론을 날리기 위해서는 사전에 비행 허가를 받고 날려야 하므로, 드론원스톱 민원서비스에서 비행 허가 신청 및 영상 촬영 신청을 하도록 한다. 드론에는 사용자 성명, 연락처를 반드시 부착하고, 안전사고에 대비하여 보험 가입도 필수다. 한강 드론공원 인근에는 광나루자전거공원, 하성운과 함께하는 숲, 영탁 1호 숲, 한강공원 광나루 장미공원, 수영장 등 놀이공원이 많이 있다.
987.4M 2025-01-10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3동 448-49호 (천호동 마을마당 내)
독립운동가로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해공 신익희 선생의 공적을 기려 강동구청 주관으로 천호동에 동상을 건립하였다. 해공 신익희선생은 1894년 경기 광주 출신으로 1910년 한성관립외국어학교 졸업 후, 1912년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 입학하여 유학생 통합단체인 학우회를 조직하고 기관지 학지광을 발간하며 민족정신과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1913년 귀국하여 고향에 동명강습소를 열어 신문화와 개화사상을 보급하였으며, 1919년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 해 일경의 체포령을 피해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내무차장, 국무원비서장, 외무총장 서리, 내무부장 등을 역임하시고 조국의 광복을 맞아 귀국하였다. 귀국 후 민주당 최고위원 및 국회의장을 역임하고 195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다 유세 가던 중 열차에서 뇌내출혈로 서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