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Km 2024-11-13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1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실학의 대가였던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의 묘소는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정약용유적지 안에 있다. 이곳을 마재마을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경기옛길인 평해3길로 지정될 만큼 정약용 유적지, 실학박물관, 다산생태공원, 그리고 수종사까지 한강길을 따라 역사의 숨결이 담겨있는 곳이다. 정약용선생묘는 1972년 5월4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부인 풍산 홍씨와 함께 합장되었는데 묘소에는 묘비, 상석, 향로석이 마련돼 있다. 다산 정약용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고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이다. 신유사옥 때 전라남도 강진으로 귀양 갔다가 19년 만에 풀려났으며, 유배 생활 동안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 권에 이르는 책을 완성하였다. 정약용 선생은 조선의 개혁을 시도했으나 오랜 유배 생활 끝에 고향인 능내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정약용유적지 내에는 정약용선생묘뿐만 아니라 그의 생가인 여유당, 다산문화관과 다산기념관이 있어 연계해서 둘러볼 수 있다. [정약용문화제]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 기념 인물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실사구시 사상과 인문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온 남양주시의 대표 문화제로서, 1986년부터 매년 지속해서 추진해 오고 있는 역사와 전통을 지닌 경기도 대표 축제다. 남양주에 여행을 오게 된다면 정약용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 코스를 계획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여행이 될 듯하다.
10.2Km 2024-08-09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1
정약용 유적지는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다. 정약용의 5대조부터 뿌리내린 곳으로 그가 나고 자랐으며 말년을 보낸 곳이다. 다산 정약용은 유형, 이익으로 이어지는 실학을 계승했으며 북학파의 사상까지 받아들여 실용지학, 이용후생을 주장하면서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다산은 일생 500여 권이 넘는 저술과 2,700여 수의 시를 남기고, 1836년(헌종 2) 75세의 삶을 일기로 고향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정약용 유적지에는 정약용선생묘(경기도기념물), 생가인 여유당, 사당 문도사, 기념관, 문화관, 문화의 거리가 있다. 기념관에는 정약용의 대표적인 저서들인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의 사본이 전시되어 있으며, 수원 화성의 건축 현장을 재현한 디오라마를 볼 수 있다. 기념관 옆, 문화관에는 총 7점의 미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정약용 선생을 주제로 제작한 [신아지구방], [정약용 정원] 등의 작품이 있다. 사당인 문도사는 선생의 시호를 딴 사당으로 조선 최고의 학자인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웠으며 매년 선생의 기일에 후손들이 모제를 지내고 있다. 정약용유적지 근처에는 팔당호, 야생화 꽃밭, 생태연못, 다산생태공원이 있으며, 정약용 선생이 지인들과 함께 차를 마셨던 [삼정헌]이 있는 수종사가 있다. 1986년 이래 매년 이곳에서 펼쳐지는 정약용 문화제(다산문화제)는 다채로운 시민 행사와 공연으로 정약용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직접 체험하는 시민문화축제로 정착하였다.
10.2Km 2024-09-09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1
다산 유적지에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와 묘, 기념관이 있다.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의 업적과 자취가 전시된 기념관에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발명한 거중기와 농로를 비롯해, 선생의 친필 서찰, 산수도,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총 59종 308여 점의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나라의 부패를 꾸짖던 선생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꼿꼿하고 검소한 그의 생활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생가 여유당, 이백 년 세월의 흐름 앞에 절로 고개 숙여지는 정약용 선생의 묘, 정약용 선생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조명해 보는 문화관이 있다.
10.2Km 2024-10-10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216
1976년 12월 7일 서울 광진구 능동 18(서울 어린이대공원 내)에 조만식 선생의 숭고한 항일정신과 자유 수호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동상이다. 동상은 민복진이 작업을 했으며 동상 좌대의 전면 글씨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 고당조만식선생동상은 조선의 간디라 불리는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실천한 사상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평남 강서 출신으로 오산학교에서 민족교육에 힘쓰다 교장직을 사임하고, 1919년 3.1운동을 주도하다 1년간 옥고를 겪었다. 이후 1920년 조선 물산장려운동회를 조직하여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조선 민립대학 설립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인재 양성에 힘쓰고, 1932년에는 조선일보사 사장으로 취임하여 언론 창달 및 민족 계몽에 앞장섰다. 조만식 선생은 좌·우파가 하나가 되는 신간회가 결성되도록 애썼으며, 광복 후 반탁운동과 민족자주 독립운동의 지도자로서 활동하다가 소련군에 의해 연행된 이후 공개적인 장소에서 선생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조만식 선생은 1970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10.2Km 2024-11-04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동
뚝섬 한강공원에는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시원한 물줄기를 감상할 수 있는 분수와 암벽 등반을 즐길 수 있는 벽천마당이 있다. 여의도 한강공원 수상 분수, 난지 한강공원 거울 분수와 함께 서울 3대 한강 분수공원 명소 중의 한 곳으로, 특히 밤에 보는 야간조명 분수는 화려한 한강대교들과 강남 빌딩 숲들의 조명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공원에 앉아 윈드서핑, 수상 스키, 모터보트 등의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을 감상하며 도심 속 지친 일상을 날려볼 수 있다.
10.2Km 2023-08-09
봄이 오는 길목, 남한강변에 있는 갤러리에서 따뜻한 감성을 느껴보자. 친근한 작품들이 자리한 야외 갤러리와 양평 예술가들의 작품들로 꾸며지는 전시실에선 한 걸음 쉬어가기 좋다. 음악과 뮤지컬이 흐르는 미술관은 예술의 향기가 가득 흐른다.
10.2Km 2024-10-02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216
조선 제27대 왕이자 마지막 왕인 순종의 황후 순명효황후의 능이었던 옛 ‘유강원’ 터에 남아 있던 왕릉 석조각들이다. 순명효황후는 민태호의 딸로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나 순종이 임금이 되기 전 1904년에 사망하여 유강원에 묘소를 마련하였다. 그 후 순종이 세상을 떠난 1926년에 지금의 유릉에 옮겨와 함께 모셔졌으며 순종의 계비였던 순정효황후가 사망하자 이 또한 함께 모셔졌다. 순명효황후의 능을 마련하였던 유강원 터에는 능 주위에 세웠던 20여 기의 석조물이 남아있다. 석등을 비롯하여 문인석과 말, 양, 호랑이 등 동물을 조각한 것 등 매우 뛰어난 조각 솜씨를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조선말 왕실의 석조각으로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
10.2Km 2024-09-26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216
독립운동가, 교육자, 언론인, 정치가이자 민족지도자로 활동한 고하 송진우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서울어린이대공원 내(정문과 서문 사이 위치)에 있다.고하 선생은 3.1운동을 배후 주동하여 옥고를 치루었고 1921년 동아일보 사장 취임 후 20여년 간 신문을 통하여 일제 암흑기에 국내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민족 민주 민생 민문주의를 구국의 기본사상으로 삼아 언론 교육 산업 문화활동을 통하여 독립을 위한 민족의 힘과 얼을 고취하였다.해방 직전 일제의 정권 인수제의를 거절하였고 광복 후 한국민주당을 창당하여 동아일보 사장으로서 민주건국과 신탁통치 반대에 진력하던 중 한현우 등의 총탄에 서울 원서동 자택에서 서거하였다.
* 규격 - 좌대면적 9㎡, 좌대높이 3.9m, 동상높이 3.6m
* 건립자 - 송진우선생동상건립위원회(1983.09.23. 건립)
10.2Km 2024-08-23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216
일제 강점기 시절 교육자이자 애국 계몽가인 남강 이승훈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어린이대공원 내 남문과 동문 사이 위치에 있다. 서울 오산 중·고등학교를 설립한 남강 이승훈의 공로를 표창하고 시은을 보답하기 위해 동교 관계자와 졸업생들이 이승훈 선생의 동상 건립을 위해 동상 건설 준비회를 조직하고 기부금을 모집하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하사금과 각계 성금 1,500만 원으로 민복진 조각가에 의해 1974년 10월 3일에 완공되었다. 남강 이승훈 선생(1864~1930)은 정주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40대에 큰 부자가 되었다. 일본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1907년 재산을 털어 오산학교를 세우고 인재를 기르는 데 힘썼고 독립운동에 몸 바쳐 1922년부터 세 차례 수년간의 옥고를 겪었다. 출옥 후 기독교 신앙에 몰입하여 복음 전도와 복지 운동, 민립대학 설립 추진, 언론 창달 등에 힘을 쏟았다. 평생을 말보다 실천을 앞세우는 교육 운동에 헌신한 그는 내 유해를 땅에 묻지 말고 골격표본으로 만들어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쓰게 하라 유언하고 눈을 감았다. 1962년 이승훈 선생에게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10.2Km 2023-12-05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216
1973년 어린이대공원 내(동문 인근 위치)에 건립한 동산이다.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에서 육탄으로 적의 진지를 공격해 승리로 이끌었던 강승우 소위와 오규봉 일병, 안영권 일병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이들 3용사는 국군 제9사단 제30연대 예하 제1중대 제1소대 소속으로 1952년 10월 철원평야 일대 중부 전선의 전략 요충지인 백마고지에서 TNT와 박격포탄, 수류탄 등을 휴대하고 육탄으로 돌진하여 적의 기관총 특화점을 격파한 후 장렬히 산화함으로써 고지를 탈환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정부에서는 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려 1953년 7월 1일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하였고 강승우 소위는 중위로, 오규봉·안영권 일병은 하사로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