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M 2025-03-06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김유신길 170-4
이곳은 흥무왕 김유신 장군이 탄생한 곳으로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13 세손이다. 김유신 장군은 만노군 태수(萬弩郡 太守, 만노: 진천의 옛 이름) 김서현(金舒玄) 장군의 아들로 진평왕 17년(595년) 진천읍 상계리 계양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나이 15세 되던 609년(진평왕 31년)에 화랑이 되고 낭비성 싸움에 공을 세워 압량주 군주가 되었다. 선덕여왕 때 상장군(上將軍), 무열왕 7년(660년) 상대등(上大等)이 되어 당군(唐軍)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킨 후 나당연합군의 대총관(大摠管)이 되어 고구려를 정벌(668년)하고 태대각간(太大角干)이 되었으며 한강 이북의 고구려 땅을 다시 찾아 삼국 통일의 대업을 완수하여 흥무대왕으로 추봉 되었다. 지금의 계양(桂陽) 마을 입구에 장군터(태수 관저가 있던 곳)라 불리는 곳에 1983년에 유허비(遺墟碑)를 건립하였으며, 이곳에서 북서 방향 2㎞ 지점에는 태수 관저에서 사용했다는 우물터 연보정(蓮寶井)이 현존하고 있으며, 무술 연습을 했다고 전해오는 투구바위와 치마대가 있다.
39.7M 2023-08-10
진천은 삼국통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낸 김유신 장군의 탄생지가 있는 곳이다. 보탑사의 목탑도 이곳에 오면 한번쯤은 봐야할 유적지고, 국내 유일의 종박물관도 볼만하다.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이 준비되어 있다.
출처 : 머물수록 매력있는 충청
1.4Km 2025-03-18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진천읍 상계리에 있는 김유신탄생지를 들러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위쪽으로 올라가면 산속에 자리하고 있는 조용한 저수지를 만날 수 있는데 이곳이 연곡저수지이다. 연곡저수지는 총 저수량 920톤 정도의 그리 크지 않은 규모로 주변 자연환경이 아늑하고 고요하다. 또한, 연곡저수지를 지나 약 20분 정도 숲길을 걸어가면, 길이 끝나는 곳에 보탑사가 위치해 있는데 이곳에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지었다는 3층 목탑 (통일대탑)이 있어 내부 계단을 통해 3층까지 올라가 주변 경관을 시원하게 둘러볼 수 있다.
1.8Km 2025-03-16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진천군의 만뢰산에서 발원한 맑은 물이 이어지는 10km 정도의 계곡이다. 연곡저수지를 지나 맑은 물이 흐르고 숲이 우거져 있는 계곡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이다. 시원한 계곡바람이 불어와 여름에는 진가를 알 수 있는 곳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흠뻑 느끼기에도 좋다. 여름휴가철 가족단위 관광지로 손색없는 곳이다.
2.1Km 2025-03-21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보련골길 46
연제 안승갑(1887~1951) 고가는 진천군 만뢰산 아래 보련마을의 중심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연제 안승갑 선생은 1934년부터 1942년까지 현 화랑문화학교 자리에 안중근의사의 재종질 등 민족혼이 투철한 선생을 초빙하여 한글, 우리 역사, 민족사상등을 교육하던 만뢰학원을 사비로 설립·운영하였다. 이 고가는 조선시대 전통 가옥구조를 계승하여 1900년대 초에 건축한 ‘ㄱ’ 자형 돌기와 팔작지붕으로 정면 6칸, 측면 2칸 반으로 부분적인 겹집형태로 본채의 구조는 좌측(서쪽)으로부터 반 칸의 뒤주가 부엌에 이어져 있고 안방과 윗방, 대청이 있다. 대청마루는 널찍하고 매 칸마다 여닫이문을 설치하여 상당히 개방적이며, 부엌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크기로 전면 앞마당과는 쌍여닫이 판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문과 광은 본채와 직각으로 배치되어 정면 3칸, 측면 1칸 크기로 각 칸을 사이벽으로 구획하고 간략한 토벽구조로 축조되었으며, 본채와 아래채 사이에는 좌로부터 외양간, 변소, 잿간, 헛간으로 구성된 건물 1동이 자리 잡고 있다.
2.1Km 2025-03-28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보련골길 40-4
예로부터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토지가 비옥하여 산물이 풍부하고, 인심이 후덕한 살기 좋은 고장, 진천에 위치한 우리 마을은 아름다운 연곡저수지와 계곡, 그리고 호두나무와 밤나무로 어우러져 있는 작은 마을로 효자효부가 많아 조선시대부터 효자마을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불리고 있다. 마을 뒤편으로는 진천에서 제일 높고 경관이 수려한 만뢰산(611.7m)이 위치하고 있어 항상 등산객들로 붐비고 있으며 또한,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한 김유신 장군의 탄생지와 남북통일 기원탑인 보탑사가 마을 인근에 있어 화랑도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 그래서 더욱 유명한 마을이다. 충·효·예의 화랑정신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연곡 저수지와 계곡, 호두와 감나무로 어우러져 있는 작은 마을 화랑촌은 효자효부가 많아 조선시대부터 효자마을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그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또한,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한 김유신 장군의 탄생지와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동양 최고의 목조건물인 보탑사가 마을 인근에 있어 화랑도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마을이다. 마을 뒤로는 진천에서 제일 높아 서해바다가 보인다는 만뢰산(611.7m)이 위치하고 있어 항상 등산객들로 붐빈다.
2.1Km 2025-03-17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보련골길 40-4
‘보배로운 연꽃’이라는 뜻의 보련마을은 연꽃을 물 위에 띄워 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아름답고 깨끗한 청정 자연마을이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마을 입구부터 연들이 심어져 있고, 마을 전체가 연꽃보존마을로 지정되어 있어 7월이면 보련마을에는 연꽃이 만개한다. 마을 뒤쪽으로는 진천에서 제일 높고 경관이 수려한 만뢰산(611.7m)이 솟아 있으며, 산 정상에 있는 만노산성은 병자호란 때 유창국과 조감이 의병을 모아 청군에게 항전하여 승리를 거둔 곳이라고 전한다. 또한, 보련계곡을 따라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여름철에 반딧불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환경을 자랑한다.
2.6Km 2025-03-19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금사로 252-106
문수암은 진천의 미륵산 중턱에 구불구불 이어진 길 끝에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체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사찰이다. 근처에 천안과 진천을 오가는 국도가 조성되어 있어 쉽게 만성사에 갈 수 있다. 문수암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미륵산에 자락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조계종 6 교구 마곡의 말사이다. 새로 세울 당시 이름은 만성사였으나, 1992년에 조계종으로 종파가 바뀌면서 사찰명이 문수암으로 바뀌었다. 만성사라는 사찰명은 수많은 사람이 성인이 되기를 축원한다는 의미로 명명된 것이라 한다. 이곳 산봉우리에서 석불입상이 발견되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만성사가 창건되게 되었다. 석불은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최소한 고려 초에 사찰이 경영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고, 이 사찰이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석불만이 자리를 지키며 일반인의 예불 대상으로 계속되었다. 1960년대에 외롭게 산을 지키고 있던 불상이 인연이 되어 석불인 지암리 석조여래 입상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새롭게 사찰을 조성했다. 정면 2간, 측면 1 간이었던 작은 법당을 새롭게 중창하여 사찰의 면모를 새롭게 갖추었다.
2.9Km 2025-03-17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
서한순 효자문은 진천군 사석리 민가의 낮은 언덕 위에 조성되어 있다. 이 효자문은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직 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효성으로 일생을 마친 서한순의 효행을 길이 후세에 기리기 위해 1971년 6월 6일에 건립한 효자 정문이다. 서한순 효자문은 목재를 이용한 기와집 형태로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지방의 유림의 건의로 효자문을 세우도록 건의하였으나 조선조 말엽의 혼란과 외세 침략으로 정려(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던 일)되지 못하다가 1971년에서야 지방 유림이 당시의 감사, 현감 등의 표창장을 자료로 효자 정문을 세우게 되었다.
3.1Km 2024-11-20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김유신길 641
충북 진천군 진천읍의 보탑사는 아홉 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져 연꽃이 피어난 듯 아름다운 모습의 연곡리에 자리하고 있다. 연곡리 절터는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에 이르는 큰 절터로만 전해 왔는데, 그 중심에 삼국 시대 목탑 건축의 전통을 잇는 삼 층 목탑을 세움으로써 새롭게 되살아났다. 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범종각과 법고각이 나란히 멋스러움을 뽐내고 그 안쪽으로는 이곳에서 자랑하는 목탑이 자리하고 있으며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진천 연곡리 석비가 있다. 보탑사가 주목받는 이유는 신라시대 황룡사 구층 목탑을 모델로 한 삼 층 목탑 양식이기 때문이다. 상륜부를 제외한 목탑 높이가 42.73m이며 목탑을 떠받치는 기둥만 29개에 이른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걸어서 내부를 오르내릴 수 있는 목탑이라는 점도 특별하다. 못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목재를 끼워서 맞추는 전통 방식을 고수했다. 1층에 사방불, 2층에 경전, 3층에 미륵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신라시대 이후 사라진 목탑을 재현했다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