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식당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연화식당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연화식당

연화식당

15.1Km    22497     2023-05-23

충청남도 계룡시 엄사면 연화동길 27
042-841-2677

이집 백숙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뽕잎 장아찌와 과일을 이용해 담근 백김치를 닭백숙과 조화시켰다는 점이다. 상부로 솟구치는 기운을 내려 잡는 뽕잎 장아찌를 황기의 기운과 함께 어울린 뒤 상큼하게 입맛 돋우는 백김치 한 점 먹는다면 백숙에 대한 또 다른 시야를 얻게 될 것이다.

염선재

염선재

15.1Km    25999     2023-06-10

충청남도 계룡시 사계로 5-16

염선재는 김종서 장군의 7대 손이자 사계선생 계배 순천 김씨 정부인의 제각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사계선생이 1631년 8월 3일 타계후 부군의 삼년상을 마치고 1634년 계유년 12월 9일(향년 62세)에 부군의 뒤를 따르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 효와 열의 근본이 되었다. 광무 십년(1906년) 4월 18일 정부인 순천김씨라는 칙명의 교지를 받았다. 고종 19년(1882)에 지은 이 건물은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1987년에는 부패되어 손상된 기둥 밑부분을 절단하고 화강석으로 보강하였다. 염선재는 원래 작은 제각이었으나 1913년에 현재의 건물로 증축되어 조선말 전통 가옥 형태를 잘 보존하여 1990년 9월 27일 지방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었다.

계룡대반점

계룡대반점

15.2Km    0     2024-01-10

충청남도 계룡시 금암2길 11

계룡대반점은 충청남도 계룡시 금암동에 있다. 큰 규모의 중화요릿집으로 현지인들도 자주 찾는 계룡 맛집이다. 외관부터 내부까지 정통 중국집 분위기로 꾸며놓았고 별관이 있어 단체 모임이나 회식도 할 수 있다. 대표 메뉴는 차돌짬뽕이고 이 밖에 굴짬뽕, 짜장면, 매운 간짜장, 해물쟁반짜장, 탕수육, 유린기 등을 맛볼 수 있다. 셀프 코너를 통해 반찬은 추가로 가져다 먹을 수 있고 식전 메뉴로 인원수에 맞춰 나오는 찹쌀 도넛도 별미이다. 계룡 IC에서 가깝고, 인근에 계룡산국립공원이 있어 연계 여행이 손쉽다.

은선폭포

은선폭포

15.2Km    34716     2024-04-24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042-825-3002∼3

은선폭포는 계룡산국립공원 내 동학사계곡의 유일한 폭포이다. 쌀개봉과 관음봉으로 둘러싸여 있는 동학사계곡 상류의 옥처럼 맑은 물이 암벽을 타고 떨어진다. 폭포 앞의 기암절벽은 아름다움의 정수를 보여주고, 멀리 보이는 쌀개봉의 위용이 경이로우며, 이토록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옛날 신선이 숨어 살던 곳이라 해서 은선폭포라는 이름이 붙었다. 물줄기가 떨어지면서 운무가 피어나는 경관이 빼어나게 아름다워서 은선폭포 운무라고 부르며 계룡팔경 중 제7경으로 꼽힌다. 계룡산 정상부 주변에 있어 폭포를 형성할 만큼의 유수량을 일 년 내내 유지할 수 없어 갈수기에는 물이 거의 떨어지지 않는다. 동학사에서 은선폭포로 오르는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현암사(충북)

현암사(충북)

15.2Km    26363     2024-09-02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 대청호반로 151

현암사는 바위 끝에 매달려 있는 듯한 다람절이라는 의미에서 이를 한자화한 현암사(懸岩寺)라는 이름을 같게 되었다. 현암사의 창건시기와 창건주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기록이 없다. 다만 절에 전하는 얘기에 의하면 백제 전지왕 때 달솔해충(達率解忠)의 발원으로 고구려의 스님인 청원선경(淸遠仙境) 대사가 창건했으며, 원효대사가 중창했다고 한다. 현암사는 조선시대의 각종지리서에는 견불사(見佛寺), 혹은 현사(懸寺)로 나와 있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 같은 조선초기의 기록에서는 견불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다가 후기로 들어서면서 현사로 바뀐 것이 지금의 현암사가 되었던 것이다.

금강보행교

15.2Km    0     2024-05-13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세종시의 랜드마크인 금강보행교는 국내 최초로 복층 일면 강관트러스교로 지어졌으며,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도시미관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금강보행교는 환상의 시간여행이라는 설계 개념으로, 세종의 환상형 도시구조를 형상화한 독창적인 디자인이며 교량상부 (폭 12m)는 보행편의를 위한 휴게 및 편의시설과 다양한 이벤트, 놀이 체험시설이 가득한 녹지 보행공간으로 조성했고, 교량하부(폭 7m)에는 쾌적한 자전거 전용도로를 설치하여 보행자 안전을 보장하고 자전거 이용자들에게도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솔반

솔반

15.2Km    0     2024-06-21

충청남도 공주시 마티고개로 60

솔반은 20년 동안 쿠킹클래스를 운영한 어머니와 요리전공을 한 딸이 함께 운영하는 퓨전한정식 전문점이다. 어머니의 20년 요리 노하우를 바탕으로 질 좋고 다양한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식당의 전망도 좋고, 넓은 잔디밭도 있기 때문에 부모님과의 식사장소, 연인과의 데이트 장소 등으로 제격이다. 또, 아이들 백일잔치, 부모님 환갑잔치, 피로연 등의 이벤트 공간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 단, 예약제로 운영하기 때문에 예약은 필수이다. 단체예약의 경우 미리 예약하면 홀 전체를 이용할 수 있다. 주말의 경우 가게 특성상 90분만 이용할 수 있다.

단재 신채호선생생가지

15.2Km    17173     2024-05-22

대전광역시 중구 단재로229번길 47

단재 신채호선생 생가지는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이 태어나 8세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신채호 선생은 이곳 도리미 마을에서 신광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충북 청주로 이사를 하였다. 19세 때 성균관에 입학하여 26세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고, 1905년 을사늑약 후 일제의 식민통치에 맞서 언론을 통한 민중계몽운동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언론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항일비밀단체인 신민회 사건에 연루되어 1910년에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독립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1928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57세 되던 해인 1936년 2월 21일 옥사하였다. 1992년 여름, 선생의 생가를 발굴 조사하고 주민들의 고증을 토대로 선생의 생가를 초가집으로 복원하였으며 신채호의 동상도 설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에 1991년 7월 10일 대전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금강자연휴양림(금강수목원,산림박물관)

금강자연휴양림(금강수목원,산림박물관)

15.3Km    124266     2024-03-11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산림박물관길 110
041-850-2686, 2690

공주시에서 대전방향으로 강변을 따라오다가 청벽대교를 건너기 전 오른쪽으로는 유유히 흐르는 금강을 바라보면서 잠시 달리다 보면 오른쪽에 붉은 아치 모양의 불티교가 보인다. 이 불티교를 건너면 이렇게 넓은 자연휴양림이 있을까 싶을 만큼 규모도 크고 잘 정돈된 금강자연휴양림이 모습을 드러낸다. 청벽에 가로막혀 나룻배를 타고 드나들어야 했던 오지 마을인 이곳에 1994년 충남산림환경 연구소가 이전하면서 주변의 잘 보존된 울창한 숲을 금강자연휴양림으로 지정하였고, 1997년 10월에는 산림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금강자연휴양림은 첫인상부터 여느 휴양림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울창한 숲 속의 산책로를 떠올리게 하는 휴양림이라기보다는 잘 정비된 도로 위에 산림박물관, 수목원, 온실, 연못 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산재해 있어 테마파크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심원충신정려현판

이심원충신정려현판

15.3Km    27411     2023-05-18

충청남도 계룡시 금암1길 7

조선 성종 때의 문신이자 태종의 둘째아들인 효령대군의 증손자인 이심원의 충절을 기리고 있는 정려문에 내린 현판이다. 이심원은 김종직의 문인으로, 성질이 엄정하고 학문과 의술에 정통하였다. 성종 9년(1478) 주계부정에 제수된 후 성종 18년(1487)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정의대부에 임명되었다. 고모부인 임사홍 부자의 간사한 사실을 알고 성종임금에게 임사홍을 중요한 자리에 쓰지 말 것을 다섯차례나 상소로 올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로 인해 연산군 10년(1504) 갑자사화 때 임사홍의 모함으로 두 아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중종 14년(1519) 조광조 ·정광필 등의 상소로 죄를 면하고, 주계군으로 증직되었다. 이후 홍록대부로 추증되어 그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문이 세워졌다. 그의 이러한 행적을『명신록』, 『삼강행실』, 『국고보감』등의 책에 기록하여 학문과 충절을 돋보이도록 하였다. 저서로는 『성광유고』가 있다. 금암동에 있는 주계군 정려는 정면 2간, 측면 1간의 규모이며 철책으로 보호되고 있다. 기단은 막돌을 사용하여 1단을 구축하였으며 그 위에 원형의 주초석을 놓고 원주를 세웠다. 4면은 홍살로 처리하였으며 하방과 중방을 시설하였다. 가구양식은 도리식을 이용했으며, 처마는 겹처마이고, 측면의 박공널 밑에는 방풍판을 설치하여 정려를 보호하고 있다. 정려의 내부에는 명정 현판과 함께 중수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