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Km 2025-09-17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천천면 반월길 4
이임간유허비의 유허비란 선현의 자취가 있는 곳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세가 세운 비를 말한다. 장수이씨의 시조 이임간(1262~1327)의 호는 이헌, 본관은 장천으로 고려 충선왕 때 사람으로 당시 문하시중병장사를 역임하고, 장천부원군에 봉해졌다. 대학자 익재 이제현의 5촌 당숙이었고, 고려 말기의 무신 이을진의 증조할아버지이며, 이씨조선세종대왕 때 대마도와 왜구를 토벌한 이종무의 고조할아버지로 다른 이름은 이직간이다. 이임간은 고려조에 장천부원군(전라북도 장수의 옛 이름)에 봉작되었고, 그의 증손자 이종무의 훈공으로 손자 이을진 역시 장천부원군에 추증되어 습봉하였다. 이 비는 1987년 그의 후손들이 건립한 것으로 천천면 월곡리 국도변에 있다. 장수이씨의 시조 이임간은 이알평(경주이씨의 시조)의 51 세손이며, 그의 손자 이을진은 공민왕 때 정승을 지냈고 순충적덕보조공신에 책록 되어 장천부원군에 봉해졌다. 이로써 후손들은 장수(장천의 현 지명)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7.5Km 2025-11-12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천천면 승마1로 60-31
장수군 천천면 월곡리에 자리한 장수승마장은 16만 6600㎡(5만 500평) 규모에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실내 마장과 실외 마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마방 238실, 관람석 888석을 갖추고 12마리의 승용마가 준비되어 있다. 이곳에서 춘계 전국승마대회, 대통령기 전국승마대회 등 국내외 크고 작은 대회를 개최했다. 또한, 장수승마장에서는 자마 위탁 관리를 실시하고 있다. 비교적 저렴한 위탁사용료로 마필관리와 함께 수시로 승마를 즐길 수 있다. 아울러 가족·부부·주부반 등 승마 강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장수승마체험장에서 장수승마장까지 10㎞ 구간에 설치된 승마전용 길인 승마로드는 잔디로 포장돼 있으며 가로수 길과 쌈지공원, 전망대, 사진 찍기 좋은 곳이 조성돼 있고 이따금 트레킹 코스로도 개방된다. 승마뿐만 아니라 걷기에도 안성맞춤이다.
7.6Km 2025-03-15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가르내길 202-1
산삼 자연휴양림은 산림 내 휴양공간을 조성하여 국민 보건, 휴양 및 정서 함양에 보탬이 되고 다목적 산림 경영으로 공익 기능의 증대와 지역 개발 촉진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푸른 산, 맑은 물, 높은 산과 구름이 조화를 이루는 이 곳은 역사와 문화 대자연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휴양지로 서이나무, 참나무류 등이 주종을 이루는 활엽수림을 우거진 심산 유곡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와 백제의 경계 지점인 깃대봉에서 흘러 내려온 맑은 물에서 물놀이도 함께 즐길 수 있다.
7.6Km 2025-01-14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삼고길 270-3
산속 깊은 곳, 스테이와 카페를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옛날 시골집 분위기의 건물이 포근함을 더해, 첫 방문에도 낯설지 않은 느낌을 받게 한다. 무엇보다 굽이굽이 시골길을 따라 들어가야 만날 수 있기에 자연 속 힐링을 원하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곳이다. 카페는 아담한 규모이며 테이블이 많지는 않다. 산골 꽃 피자와 핸드드립 커피가 시그니처 메뉴이며, 여름철에는 팥빙수를 찾는 손님이 많다. 생방송오늘저녁에 소개된 꽃 피자 맛집으로, 산속에서 피자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히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주차장을 갖추고 있으며 스테이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 이색적 여행 코스를 찾는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하다. ※ 반려동물 동반 가능 (단, 개목줄 착용, 배설물 처리를 위한 비닐봉지 등을 구비한 이용객에 한하여 허용)
8.0Km 2025-09-17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천천면 장자울로 4
1678년(선조 숙종 4년) 장수현감 조종면이 말을 타고 전주 감영을 가는 길에 천천면 장판리 장척의 비탈길을 지날 무렵 말이 꿩 소리에 놀라는 바람에 현감이 말과 함께 소[沼]에 떨어져 죽었다. 이에 수행하였던 통인[通引] 백씨[白氏]는 손가락을 깨물어 벼랑 위의 바위에다 피로 말과 꿩을 그린 다음, 타루[墮淚]라는 글자를 써 놓고, 현감을 따라 투신 순절하였다. 이러한 통인의 의리에 감동하여, 장수 현감 최수형이 1802년에 그 자리에 비석과 비각을 세워 타루비[墮淚碑]라 하였다.
8.1Km 2025-12-15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천천면 오리골길
금강은 한반도 금남호남정맥 전라북도 장수군 신무산(897m)의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호서 지방을 거치며 논산시 강경읍에서부터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도계를 흐르면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392㎞의 강이다. 금강이라는 명칭은 굽이치며 흐르는 물결이 마치 비단결과 같다고 하여 붙여졌으며, 한강, 낙동강에 이은 대한민국 3대 강이다. 물줄기는 무주, 진안, 금산, 영동, 옥천, 보은, 청주, 대전, 세종, 공주, 청양, 논산, 부여, 서천, 익산을 지나 군산만에서 서해로 유입된다. 금강은 국가하천으로 지정되어 있고 주요 지류로는 갑천, 논산천, 미호강이 있으며 금강으로 인해 비옥한 호서평야가 형성되었다. 진안군 유역의 용담댐과 대전광역시 유역의 대청댐이 있고, 하류에는 금강하구둑이 있다. 금강은 대전·충청권의 주요 생활·산업·농업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과거에는 수로 교통이 발달하여 금강 유역을 중심으로 도시가 번성하였다.
8.5Km 2025-04-30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덕유월성로 567
이 사찰은 신라 헌강왕 3년(877) 심광대사(深光大師)가 창건한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末寺)이다. 조선조에 들어와 폐사된 절을 세종31년(1449) 원경(圓瓊)스님이 중창한 이후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쳤다. 순조 34년(1834)불의의 화재로 화엄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전소되었으며, 고종 23년(1886) 강용월(姜龍月)대사가 중수한 후 많은 불제자를 배출하였다. 1950년 6.25 한국전쟁 당시 산신각과 창고만 남기고 전체 건물 및 화엄경판 81권 3,284판과 법망경 2권 각판 68매까지 모두 소실되었다. 화엄경판은 설파 상언대사(雪坡 尙彦大師)가 감수(監修)하여 만든 것으로 문화재급의 가치가 있는 유명한 것이었다는데 소실되고 말았으니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후 1959년 해운(海雲)스님이 화엄전을, 1966년에 극락전을 복원하여 지난날의 모습을 되찾아 수행 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6.25 한국전쟁 이전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일주문까지 19동이었고, 주변에 비로암. 봉황대를 비롯한 13개의 소속암자가 있었으니 그 규모에 있어 해인사에 버금가는 큰 수행도량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함양군 문화관광)
9.4Km 2025-09-17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계북면 양악길 119
정인승선생은 본관은 동래(東萊), 호는 건재(健齋)이다. 1897년 계북면 양악에서 출생하여, 1925부터 1935년까지 고창 고보에서 조선어와 영어를 가르쳤다.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에 대항하여 우리 고유문화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한글 연구를 택하고 이에 관심을 가지게 된 선생은 이후 연희전문학교에서 위당 정인보 선생에게 영향을 받으며 본격적인 한글 연구에 힘을 쏟았다. 졸업 후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하며 ‘한글지’의 발행을 주관하고 한글 맞춤법 통일안,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등 우리말 체계화를 위한 핵심적인 연구들에 참여하였으며, 1942년 10월부터 해방 때까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8.15 해방 후에는 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해방 후에는 우리말 ‘큰사전’ 편찬 작업을 완수하고 평생을 한글 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고,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으며, 1997년 유허비가 건립되었다.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에 건재 정희승기념관이 있으며, 기념관은 전시관과 선생의 동상, 정자, 유허비, 건재사라는 이름의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념관에 인접한 토옥동 계곡과 노목, 산죽의 밀림을 간직한 덕유산의 등산길에는 1년 4계절 수많은 등산객이 내원하는 곳으로 아이들과 청소년의 교육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9.5Km 2025-12-03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천천면 봉황대길 2
063-350-2688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의 송탄천이 합류하여 물줄기를 따라 가면, 주변에 많은 전설을 간직한 채 자리 잡은 신기마을이 있고, 강 건너편에 수 백길 기암괴석으로 된 암벽이 나란히 하늘로 치솟아 있다. 이곳을 봉황대 형제 바위라 한다. 400여 년 전 임진왜란을 예언했다는 겸암 유운룡 선생이 천하의 경승이라고 찬미했다는 곳이다. 아득한 옛날 두 바위 형제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밤에만 조금씩 커가고 있었다. 그런데 두 바위는 천 길을 먼저 크면 서울의 주봉이 된다고 믿고 다투어 커갔다 한다. 어느 날 앞으로 백일만 더 크면 천 길을 커서 이곳이 서울이 된다는 뿌듯한 희망을 안고 밤으로만 우뚝 솟아올랐다 하며, 백 일째 되는 마지막 날 밤, 이 밤만 새우면 다 큰다는 생각으로 두 바위 형제는 열심히 커 가고 있는데 이 마을에 사는 젊은 아낙이 이른 새벽 우물에 물 길러 나오다가 무럭무럭 크고 있는 바위를 보고 '어머나! 저 바위가 크고 있네!' 하고 손으로 가리키며 소리를 지르자 두 바위 형제는 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크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 채 그 자리에 우뚝 서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뒤 하늘에서는 조금만 더 크면 이룰 소원을, 막바지에 좌절된 형제바위를 안타까이 여기고 봉황을 날려 보내서 바위틈에 둥지를 틀고 형제 바위를 위로하며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9.5Km 2025-03-11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계북면 양악길 156-12
장수군 계북면에 있는 석탑이다. 양악리에서 물을 따라 계곡으로 오르면 토옥동 입구에 계단식으로 된 논이 있는데, 원래 석탑은 논 가운데 있었다. 높이가 2m로 소규모이며 화강암으로 만들었고, 현재 토옥동 입구의 용연정 옆으로 옮겨졌다. 규모가 크지 않은 점으로 보아 불교가 들어오던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몇 차례 옮겨 재건하는 과정에서 탑재가 손실되고 파손도 심하지만 원형의 특징을 살필 수 있다. 탑의 구조는 방형의 지대석 위에 그보다 폭이 좁은 방형대석을 올려놓고 다시 그 위에 방형의 탑신과 옥개석을 놓아 3층으로 처리하였다. 현재 탑의 상륜부는 대부분 유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