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보안사 삼층석탑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괴산 보안사 삼층석탑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괴산 보안사 삼층석탑

괴산 보안사 삼층석탑

8.6 Km    17088     2024-02-01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효근1길 3-8

보안사의 북쪽 담장 옆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1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석탑은 전체높이 325cm로 기단은 네모난 모양에 4개의 돌로 구성돼 있고 탑신은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 1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2, 3층 탑신이 1층에 비해 크게 줄어들고 있다. 기단 면석에는 우주를 모각하였고 탑신에는 전혀 조식이 없고 갑석 위에 1층 탑신을 놓았는데 1층 탑신의 남쪽면 중앙에 12×9cm의 방형 감실을 조식하였다. 충북지역에서 발견된 석탑 가운데에는 이처럼 탑신에 감실을 새긴 예가 드물어 특이한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옥개석은 둔중하여 낙수면이 급하며 1층 옥개받침은 3단이며, 2·3층에서는 2단으로 다소 두껍고 투박하게 새겨져 있으며 각 층이 적절하게 체감되었다. 낙수면은 조금 넓게 내려오며 우동마루가 있고 처마는 단면이 경사지게 치석 되었으며 상단에서 양 끝으로 들리고 있다. 상륜부는 높이가 높고 위로 갑석 형태의 굽형이 조식되어 있는 노반석만 남아 있다. 석탑의 각 부분이 훼손되지 않은 비교적 완전한 모습으로, 탑신부가 균형 있어 안정감을 준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이 3단으로 줄어들고 뭉툭하게 표현된 점이나, 기단이 완전하지 않고 간략하게 표현된 점 등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안사 삼층석탑은 이런 독특한 미술사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0년 8월 보물로 지정되었다.

보안사(괴산)

보안사(괴산)

8.6 Km    14370     2024-07-29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효근1길 3-8

괴산군 청안면에 있는 사찰로 누가 언제 창건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수암사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고종 때 편찬된 <청안군읍지>에는 폐사로 기록되어 있다.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다가 1957년에 절 아래 효재마을 사람들이 부서진 탑재들을 모아 탑을 세우고 불상을 발굴하여 보호각을 세운 뒤 절 이름을 보안사라고 지었다. 현재 건물로는 대웅전과 요사채가 있고, 대웅전 내에 모셔진 석조약사여래좌상이 충청북도 문화재자료로, 삼층석탑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 외 석불입상, 탱화 5점의 유물이 전해지고 있다. 가까운 곳에 청안사마소와 청안향교 등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알 수 있는 곳들이 많이 남아있다.

괴산 보안사 석조약사여래좌상

괴산 보안사 석조약사여래좌상

8.6 Km    14465     2024-08-19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효근1길 3-8

괴산 보안사 석조약사여래좌상은 본래 노천의 석단(石壇)에 모시어 불공을 드리고 있었던 것을 현재 법당을 지어 그 안에 주존불로 봉안하고 있다. 이 불상은 금박(金箔)을 칠하였으나 원형은 잘 남아있다. 머리에는 낮은 육계(肉?)가 있고 미간의 백호(白毫)와 이목구비가 정연하다. 상호(相好)는 살이 쪘으나 목에 돌린 삼도가 양 귀와 잘 어울리어 준엄한 인상을 주고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했으며, 수인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놓고, 왼손은 손바닥을 펴서 복부 앞으로 약간 올렸는데 손바닥에 어떤 물체가 놓였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약병을 올린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으로 보인다.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등뒤로 넘겨졌고, 왼쪽 가슴에서 내려진 옷의 주름은 무릎을 덮었는데 양쪽 발바닥이 그 위로 노출되어 있다. 각부의 수법이 둔중하며 금박이 두터워 더욱 둔한 감을 준다. 결가부좌한 좌고는 117cm이다. <출처: 괴산문화관광 홈페이지>

백운사(괴산)

백운사(괴산)

8.6 Km    20848     2024-07-29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로소매2길 125-146 백운사

백운사는 고려 27대 충숙왕(忠肅王) 8년(1321)에 창건되고 조선 영조(1725- 76) 때 폐사(廢寺)된 대흥사(大興寺) 옛터에 1930년 하장우(河長雨) 스님이 초막 4칸을 세우고 ‘백운사’라 이름한 사찰이다. 대흥사의 창건주는 미상이며, 구전에 의하면 이곳에서 기거한 스님들이 힘자랑을 하다가 살인을 했기 때문에 폐사되었다고 한다. 백운사 창건 이후 수차에 걸친 화재로 소실과 중창을 거듭하였는데, 현재까지 대웅전, 요사채 등의 중건이 진행되고 있다. 백운사에는 1941년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이 발견되었으나 1965. 12. 4일 증평에 주둔한 군부대장 金某가 가지고 갔다고 하며, 1952년 철제여래좌상(鐵製如來坐像)이 발견되었으나 1953년 분실하였다고 전한다. 현재 충청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5기의 부도가 사찰 입구에 모셔져 있다. <출처 : 괴산군 문화관광>

괴산 백운사 승탑군

괴산 백운사 승탑군

8.7 Km    15711     2024-07-18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사리로소매2길 125-146

괴산 백운사 승탑군은 모두 5기의 석조승탑을 모아놓은 것이다. 5기의 승탑 중 1955년에 건립한 백운사 2차 중창주인 송운제 스님의 승탑을 제외한 4기의 승탑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이다. 이 승탑들은 조선시대 석종형승탑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중 4기는 방형 혹은 가옥형의 특이한 형식을 갖추고 있어 주목된다. 옥개석에는 기와골 등이 생략되는 등 후기적 양식을 보이고 있으나 합각마루의 용두장식과 상륜부의 보주 등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모두 화강암재로 이루어진 승탑들은 옛 절터에서 1943년경 현재의 위치인 사찰입구로 이전한 것이다. 백운사는 사역에서 출토되는 명문기와로 볼 때 고려시대 대흥사였으며 조선 영조 연간(1725-1776)에 폐사된 후 1930년대 초 하장우 스님이 중창하였으며, 1994년 이후 금당, 관음전, 요사채 등 상당한 규모의 불사가 진행 중이다.

괴산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

괴산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

8.7 Km    14590     2024-07-18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모래재로시동2길 231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은 불신만 남아 있는 것을 불두를 찾고, 왼쪽 팔목의 보수를 제외하면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신체에 비해서 큰 얼굴은 앞으로 숙여져 있으며 옷은 왼쪽 어깨만을 감싸고 있다. 손은 오른손 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끝이 아래를 가리키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배꼽 앞에 놓은 모습이다.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얹어 놓은 앉은 자세는 그 예가 드문 편이다. 평판적이고 굴곡이 없는 네모진 상체, 목에 있는 3개의 주름, 둔감한 옷주름선 등에서 도식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조선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보광산 폐사지에 있던 것을 아래쪽에 새로 지은 보광사 대웅전에 봉안하여 1935년부터 주존불로 모시고 있다.

보광사(괴산)

보광사(괴산)

8.7 Km    20434     2024-07-17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모래재로시동2길 231

보광사는 고려 28대 충혜왕 1년에 창건되고 조선 헌종 때 폐사된 옛 봉학사 터의 아래쪽에 건립한 사찰이다. 1967년 사찰 위쪽에 있는 봉학사지를 답사한 기록에 의하면 봉학사지 5층 석탑 2층 옥개석 사리공에서 조선 세조 때 탑을 보수한 기록문이 나왔다고 하며, 폐사지에서 수습한 암막새에 음각된 당초문이 고려중기 이후로 보이는 것으로 밝혀져 봉학사의 창건과 중수 연대를 가늠하게 하고 있다. <충청북도지(忠淸北道誌)>에 의하면 1925년 폐사지에 권봉주 스님이 초막을 세우고, 김봉삼 스님이 1936년부터 폐사지에 있던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을 아래쪽에 새로 지은 보광사 대웅전에 봉안하여 주존불로 모셨다는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 보광사가 건립된 것으로 짐작된다. 보광사에는 봉학사 폐사지에 있는 5층 석탑과 대웅전에 봉안된 석조여래좌상 등의 문화재가 있다.

괴산 봉학사지 오층석탑

괴산 봉학사지 오층석탑

8.7 Km    14626     2024-07-18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모래재로시동2길 231

봉학사지 5층석탑은 고려시기에 건립된 석탑이다. 이 석탑은 기단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채, 평평한 돌 위로 5층의 탑신이 올려져 있다. 4매의 지대석 위에 세워진 석탑은 초층 탑신만이 2매의 돌로 되어 있고, 각층의 옥개석과 탑신은 모두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다. 1층 몸돌은 큰 편이고, 2층 몸돌에서 급격히 낮아지다가 5층까지는 비슷한 크기를 유지한다. 각층 지붕돌은 두꺼운 편이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상륜부에는 복발과 보륜이 남아있고, 옥개석에는 5단 받침과 2단의 탑신괴임을 조각하였다. 이 탑은 현재 사담리 보광사 뒤편 옛 절터에 있는데, 1966년 이 석탑의 2층 옥개석 사리공에서 발견된 청동합에 들어있던 청동불상에서 ‘鳳鶴山 鳳鶴寺’라 쓰여진 시주문이 발견되었다.

꽃동네제빵소(꽃구움)

꽃동네제빵소(꽃구움)

8.8 Km    1     2024-01-04

충청북도 음성군 원중로1119번길 42 꽃동네학교

‘꽃동네제빵소’는 2001년 장애 학생의 교육을 위하여 개교한 꽃동네학교에서 장애 학생들의 직업 훈련과 자립을 위하여 세워진 꽃동네학교 학교기업(2012 개관: 제과제빵분야)과 연계한 지역주민사업체로 음성군 관광기념품 사업을 신청하여 2021년 음성군 관광두레 주민사업체로 선정되었다. ‘꽃동네제빵소’는 HACCP 시설을 갖추어 60여 종의 제과제빵 제품을 생산하며 꽃동네학교 교사, 재학생, 졸업생, 꽃동네학교 학교기업에 취업하여 근무 중인 근로자(꽃동네학교 졸업생)로 구성되었다. 구성원 간의 활발한 협의를 거쳐 ‘꽃구움’이라는 브랜드명을 개발하였으며 꽃같이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는 제품을 기획하였다. ‘꽃구움’의 대표 상품으로는 당일 로스팅한 신선한 원두로 제작한 드립커피(12g)와 꽃향기가 가득한 원두커피(250g), 무방부제, 무유화제, 무색소 건강한 재료로 만든 쿠키가 있다.

진천 이영남 묘소

진천 이영남 묘소

8.9 Km    17577     2024-07-23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

진천 이영남 묘소는 임진왜란시 7년 전쟁을 마무리 짓는 최후의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함께 순국한 임란충신 가리포 첨사 겸 조방장 양성 이영남(1563~1598) 장군이 잠드신 유서 깊은 곳이다. 이영남 장군은 1566년 2월 13일 진천군 덕산면 기전리에서 태어났으며, 선조 17년(1577)에 별시무과 병과에 급제하여 선조 25년(1592) 율포권관을 시작으로 임진왜란 때 원균의 막하 장수로써 소비포권관, 강계부판관 등을 역임하였다. 경상우수사 원균이 왜군에 의해 동래성이 함락된 후 도망가려 하자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원병을 청하여 연합함대를 결성하게 되었고, 그 후 옥포·사천포해전, 한산대첩 등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였다. 선조 31년(1598)에 가리포첨사로 이순신 장군과 함께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였다. 장군의 노복이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인 진천 기전리에 묻었으며, 선조 38년(1605)에 절충장군 선무원종일등공신으로 녹훈되었다. 이영남 장군 묘소가 조선시대 묘소의 일반적 형태로 최근에 새로 조성하였으나, 조선 중기 최대의 국난이었던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해전을 통해 나라의 위태로움을 구한 장군의 위업을 기리기 위하여 지정하게 되었다. 묘소는 원형의 봉분으로 직경 약 600㎝, 높이 약 240㎝로써 둘레를 십이지신상의 호석으로 조성하였다. 묘소 앞쪽에 상석 및 계체석, 정면 좌·우측으로는 문인석과 망주석이 각각 1기씩 있으며, 우측에 이영남 장군 사적비가 1983년에 세워졌다. 이 석물들의 상태는 량호하나 근래에 건립·조성된 것이다. 좌측으로 말무덤 <애마총>이 자리하고 있다. 이영남 장군 묘소 상단으로는 장군의 부모 <이사종, 광주 진씨> 묘소 <쌍분> 각 1기 및 묘비와 조부 <이극인>의 묘소 및 묘비 1기가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