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스키샵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초이스스키샵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초이스스키샵

초이스스키샵

175.8261277332908m    16565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설천면 만선1로 114

초이스스키샵은 무주스키장 개장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무주스키장 대표렌탈샵이다. 스키와 관련된 모든 용품을 가장 저렴하게 렌탈 및 구입할 수 있으며 전문강습자격증을 소지한 강사진을 통한 수준 높은 강습도 받을 수 있다. * 개업일 - 1997년 03월 18일 * 무주리조트와 1km 거리, 약 5분 소요

용담향교

용담향교

17.6 Km    26869     2024-09-12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동향면 진성로 1697

용담향교는 용강산 남쪽 기슭의 비탈에 자리 잡고 있다. 용담댐 건설로 인하여 1998년 12월 25일에 지금의 자리로 이건 완공하였다. 용담향교는 고려초에 설립되고 공양왕 3년(1391)에 현령 최자비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그리고 조선 선조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불타고 남은 건물을 그 이듬해에 박지술이 동쪽으로 약간 욺겨 지었고 인조11년(1633)에 현령 오전이 이전 전의 자리에 중건하였다. 그 뒤 현종5년(1664)에 현령 홍석이 개축하였고, 건물은 일제강점기에도 유지되었으나 1950년에 낡아서 무너지게 되었으므로 박병식의 주선으로 보수했으며 1974년에는 대성전의 기와를 갈고 동, 서재를 보수하였다. 용담향교 대성전은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3칸인데 왼쪽은 2칸으로 분리되어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구연서원

17.6 Km    16555     2023-12-05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은하리길 100

구연서원은 1540년에 낙수 신권(1501~1573) 선생이 세운 구연재라는 서당으로 출발하여, 1694년에 신권 선생과 석곡 성팽년 선생(1540~1594)을 배향하는 구연서원으로 발전하였다. 1808년에는 황고 신수이 선생을 추가 배향하였다. 1868년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문루인 관수루와 강당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신권 선생의 사적비와 신권 선생을 위한 산고수장비, 열녀비, 효자비가 많고, 관수루가 사원의 문처럼 서 있다. 관수루는 위천변에 남서향하여 자리 잡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누의 하부는 중앙 기둥 열에 3칸의 문을 달았으며, 배면의 누하주는 심하게 굽은 목재를 사용하였다. 누 상부는 통칸누마루형이고 계자각 난간을 둘렀으며 좌측에 있는 바위를 타고 작은 나무다리로 출입한다. 맞은편에는 요수정이 있으며, 주변에는 수승대 관광지가 있다.

거창 요수정

거창 요수정

17.7 Km    18329     2024-08-05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은하리길 100

요수정은 요수 신권 선생이 풍류를 즐기며 제자를 가르치던 곳으로, 1542년 구연재와 남쪽 척수대 사이에 처음 건립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805년 후손들이 수승대 건너편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상량문에 1800년대 후반에 수리한 기록이 있다. 요수정은 수승대 건너편 솔숲에 부속건물 없이 홀로 세워진 중층의 정자이며,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정면 어칸의 배면에 1칸의 방을 들이고, 나머지는 모두 마루로 구성하였다. 요수정은 자연 암반 위에 바로 세운 건물로 초석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특별히 기단을 조성하지는 않았고, 배면 쪽에 경계의 표시와 굴뚝을 겸하는 낮은 돌담을 쌓았다. 수승대의 경치를 감상하고, 시회와 교육 등을 위해 솔 숲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전통정자 건물로 형태가 매우 아름답다. 산간지역의 기후를 고려하여 정자의 내부에 방을 들이고 있어 이 지역의 건축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스키광장

스키광장

177.25599822589427m    15628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설천면 만선로 60

스키광장은 1층 대규모의 초대형 스키샵과 총 14실의 대형콘도객실, 그리고 순수 통나무로 지어진 복층 펜션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고급 카빙스키 500개와 카빙스키 300개, 스노우보드 300개, 일반 스키복 500벌, 고급 스키복 300벌을 최상의 상태로 준비하여 렌탈하고 있다.

도마령

도마령

17.7 Km    30236     2024-07-22

충청북도 영동군 용화면 조동리

도마령은 영동군 황간에서 전북 무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영동 최고봉 민주지산(해발 1,241m) 자락에 있는 해발 800m의 높은 고갯길로 칼을 든 장수가 말을 타고 이곳을 넘었다고 해서 도마령이라 이름 지었고, 답마령이라는 옛 이름도 전해진다. 도마령에 가면 고갯마루 위에 정자 상용정이 있다. 2002년과 2003년 태풍으로 영동군 곳곳이 재해를 입었는데 이때 복구 사업을 하면서 상용정을 세웠다. 상용정은 전통한식의 목조구조의 와가팔각정으로 이익공식 공포로 시공하여 그 웅장함을 더하였다. 목재는 우리나라 소나무를 사용하였으며 화강암 암장 초석에는 우리나라 대표적 국악기인 대금을 형상화하였는데 국악의 고장 영동의 명소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전통양식의 멋스러운 이 팔각정의 풍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시원하고 고개를 오르내리는 도마령 길은 구절양장 춤을 추며 상촌으로 용화로 뻗어 가는데 그 풍경이 조화롭다. 또한 구불구불 굽이진 도로가 드라이브 코스로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다. 영화 <집으로>의 촬영지로 시골 풍경과 정겨운 인심이 가득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곳이다. 비포장도로를 포장해서 2차선 도로가 되었고 구불거리는 도로 주변으로 민주지산의 수려한 풍광이 펼쳐져 눈이 즐겁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민주지산의 숲길에서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노채마을

노채마을

17.8 Km    0     2024-09-11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 337-1

노채 마을은 소백산맥의 여맥(餘脈)을 등지고 금강 상류가 흐르고 있는 산간 지역 마을로서 분지(盆地)와 계단식 농토를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주변 산세가 중국의 노산과 비슷하다고 해 노산 마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노채 마을 동남쪽에는 국사봉(756.6m)이 있고, 동북쪽에는 형제봉(579m)이 있으며, 국사봉의 산줄기가 마을 주변까지 형성되어 있어, 마을 전체가 산에 둘러싸여 있다. 또한 노채 마을이 풍수지리적으로 배의 형국이기 때문에 배가 안정되게 운항할 수 있도록 돛대의 역할을 하는 2개의 짐대를 세웠다고 한다. 노채 마을 입구 오른쪽에 작은 개울이 흐르고 그 건너편에 노산정(魯山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노산정은 20여 년 전에 세워진 것으로 위치상 비보의 기능도 함께 담당하고 있다.

거창 황산마을 옛 담장

거창 황산마을 옛 담장

17.8 Km    29485     2024-05-23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1길 109-5

거창 황산마을은 18세기 중엽에 황고(黃皐) 신수이가 입향하면서 번성한 거창신씨 씨족마을로, 마을의 생성은 16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시대 영조 이후 인물이 연이어 배출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어귀에는 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폭 5m 이상, 높이 15m 이상의 수령 600년에 달하는 고목이 자리하고 있어 마을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이 고목을 안정좌(安亭座)나무라고 부르고 있다. 마을은 대체로 평탄하며 마을 동측에 흐르는 호음천을 중심으로 큰땀과 동촌으로 구분되어 있다. 마을 내 주택들은 대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한말과 일제강점기 지방 반가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며 규모와 형식면에서 월등함을 보여주는 시도민속자료 ‘거창 황산마을 신씨고가’ 등의 지정문화재는 전통마을로서의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마을 전체는 약 50여호로 거의 안채와 사랑채를 갖추고 있으며 이렇게 한 마을 전체가 모두 기와집으로 무리지어 있는 것은 이른바 씨족부농촌으로 소작마을을 별도로 두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의 담장은 대개 토석담으로 담 하부 2~3척 정도는 방형에 가까운 제법 큰 자연석을 사용하여 진흙을 사춤하지 않고 대부분 메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이는 도로보다 높은 대지 내 우수(雨水)를 담 밖으로 자연스럽게 배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자연석으로 메쌓기 한 위에는 하부의 자연석보다 작은 20㎝ 내외의 돌을 담 안팎에 사용하여 진흙과 교대로 쌓아 올렸고 대부분 담장 상부에는 한식기와를 이었으며 또한 근년에 쌓은 담장은 기존 담장과 달리 엇쌓기를 하였다. 마을의 시한당 앞 연못은 일반적인 한국 전통의 연못양식인 방지원도형(方池圓島形)이 아닌 원지방도형(圓池方島形)으로 구성되어 있어 독특하다. 전반적으로 전통고가와 어우러진 활처럼 휘어진 전통 담장길은 매우 고즈넉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다.

* 담장 - 토담길이 약 1,200m의 돌담, 하부가 돌담 구조인 토석담
* 마을형성 - 600년전 형성
* 문화재 - 거창 대정리 신씨고가(경상남도 민속자료) 등 3건

황산전통한옥마을

황산전통한옥마을

17.8 Km    35190     2023-06-14

경상남도 거창군 황산1길 109-5 대정리신씨고가

황산전통한옥마을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위치한 전통한옥마을로 수승대국민관광단지 건너편에 있다. 1540년(조선 중종35년)에 요수 신권 선생이 이곳에 은거하며 1540년 '구연재'를 세우고 후학들을 양성했던 이후로 거창 신씨의 집성촌 마을이 되었다. 이 '구연재'는 1573년 신권선생이 죽자 사림에서 '구연서원'으로 개칭 하고, 석곡 성팽년과 함께 배향하였다. 이후 황산마을은 18세기 중엽 조선 영조 때 노론계 학자인 황고 신수이 선생이 입향을 하면서 번성하게 되었다. 이곳 황산전통한옥마을의 가옥들은 대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건립된 건축물로 대한제국 말기와 일본 강점기 시대의 지방 반가의 전통 한옥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남아 있는 한옥은 약 50여 호로 안채와 사랑채를 갖추고 있고, 모두 기와집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씨족 부농촌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의 담장은 제법 큰 자연석을 이용한 토석담으로 약 1.2Km에 걸친 활처럼 휘어진 전통 담장길은 전통고가와 잘 어우러져 매우 고즈넉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마을에 들어서면 입구에 높이 15m, 수령 600년에 이르는 '안정좌'나무라 부르는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 중앙에는 "거창 황산리 신씨고가"가 자리 잡고 있는데, 1927년 옛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은 건물로 '원학고가'라고도 부른다. 이 가옥은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채,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솟을대문, 후문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특히 사랑채는 궁궐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장식물로 꾸며져 있어 당시 큰 지주였던 집주인의 재력을 엿볼 수 있다. 안채는 많이 개수되어 전통한옥의 격식에서는 많이 벗어난 모습을 보여 준다.수승대국민관광단지에 깨끗한 민박과, 호텔 등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지만, 이곳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한 황산전통한옥마을에서 옛 조상들의 주거생활을 체험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거창은 오래전부터 산이 높고 물이 맑은 고장으로 이름난 곳이다. 낮에는 시원한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밤에는 황산마을에서 전통한옥체험을 한다면 여름 휴가철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일 것이다. 황산전통한옥마을은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에서 가깝고, 인근에 송계사계곡, 거창조각공원, 금원산자연휴양림, 월성계곡, 거창박물관, 화계사, 쌍계사계곡 등의 관광지가 있다.

거창 황산리 신씨고가

거창 황산리 신씨고가

17.8 Km    26635     2024-08-01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1길 109-5

조선 연산군 7년(1501)에 요수 신권이 이곳에 들어와 산 이 후, 이 마을은 거창 신씨의 집성촌으로 번창해 왔다.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이 집은 1927년 신도성이 건립한 근대기 주택으로 원학고가라고도 부른다. 당시 이 집의 주인은 큰 지주였다고 하는데, 이 집은 그러한 집주인의 경제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모두 경남 지방의 일반적인 주택 양식인 홑집 대신에 겹집의 팔작지붕으로 지어 집주인의 부와 권위를 드러내고 있으며, 사랑채는 궁궐이나 절에서 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장식물로 꾸몄다. 잘 다듬은 커다란 돌로 쌓은 받침돌과 기둥을 받친 주춧돌 위에 설치한 기둥 자리 등은 조선 중기 이전에는 벼슬이 높은 양반 집안에서도 보기 힘든 모습이다. 그 밖에 안채와 그 건물을 둘러싼 크고 화려하게 지은 부속건물들도 집주인의 경제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안채의 늘어난 방 수, 좁아진 대청, 집안에 들어선 화장실 등은 전통의 격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20세기 초 실용성을 중시하던 가옥의 변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1920년대에 지어진 이 가옥은 격식의 해체, 실용성의 증가, 심화된 경제적 계층화 등 복합적인 사회 현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