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Km 2024-10-25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석교길 19
충주 이수일 신도비는 충주시 금가면에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 중기의 무신 이수일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로 이수일의 묘소 앞에 자리 잡고 있다. 이수일(1554∼1632)은 선조 16년(1583)에 무과에 급제한 후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 후 밀양부사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냈으며 정유재란 때에는 왜적 격퇴에 공을 세웠다.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당시 반란군을 크게 무찔러 이겨 큰 공을 세웠다. 이 비의 받침과 머릿돌은 화강암으로 만들고 몸체는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받침은 웅장하고 추상적인 형태로 거북 모양을 조각하였으며, 그 위에 4,100여 자의 글자를 새긴 비를 만들어 올렸다. 머릿돌의 앞뒷면에는 각각 2마리의 용을 섬세하게 조각하여 새겼다. 비의 크기는 전체 높이가 420㎝, 비신 높이 243㎝, 비의 폭 97㎝, 비의 두께 27㎝이다. 조선 현종 8년(1667)에 세운 이 비는 이경여가 글을 짓고 김좌명이 글씨를 썼으며, 김수항이 비문을 새겼다. 웅장하고 섬세한 조각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거북 받침돌의 형태가 미술사적 자료와 학술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주변에는 이수일의 묘소와 사당인 충훈사가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18.1Km 2024-09-05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월악로 432
넓은 부지에 아기자기한 정원과 인공폭포, 아늑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커피 박물관 외에도 커피 로스팅 및 바리스타 체험관, 카페, 전망대, 글램핑장, 방갈로, 카라반 펜션을 함께 운영해 볼거리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박물관은 부지 내 모든 시설들을 굽어보는 곳에 위치해있다. 카페에서 입장권을 구매해야 하지만, 음료를 주문하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그라인더 모양새를 한 포토존이 있고 문을 열고 들어서면 커피 모종이 가득한 작은 식물원의 온기가 관람객을 맞는다. 박물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커피를 사랑하는 부부가 15년간 그러모은 커피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펼쳐놓은 만큼, 알차다. 세계 각국에서 모아온 커피 관련 용품과 기구들, 찻잔, 티스푼, 벽걸이 아트 그라인더, 오래된 커피 광고지 등 어느 것 하나 고풍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전시장 내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높이 170cm, 휠의 지름 70.5cm 규모의 초대형 황동 그라인더다. 130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보존 상태가 좋아 여전히 부드럽게 원두를 분쇄할 수 있단다. 커피와 관련된 기본 지식이 적힌 패널을 벽면 곳곳에 설치해 커피를 잘 모르는 여행자의 호기심을 채운다.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 외에 원두 로스팅과 바리스타 체험, 화장품, 비누, 향초, 향수 만들기 체험, 앤티크 부엌에서의 요리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이 가능해 가족단위 나들이객에게 인기다. 각 체험 프로그램은 예약이 필수다. 충주 커피 박물관이 충주시 농업기술센터와 함께 개발한 여우 커피도 맛볼 것! 여주와 우엉을 100도에서 200도로 볶아 커피와 비슷한 맛과 향이 나는 건강차로 당뇨에 좋다.
18.1Km 2024-07-29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월악로 432
충주 커피 박물관 관광농원 야영장은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자리 잡았다 커피 박물관 내에 있어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은 게 특징으로 박물관, 커피숍, 각종 체험 시설이 있다. 산책로 포토존도 캠핑장을 둘러보는 또 다른 재미이다. 캠핑장은 글램핑 5개 동과 카라반 2대를 운영 중으로 글램핑 내부에는 침구류, 소파, TV, 냉장고, 에어컨 등이 있으며, 식기류와 취사도구는 개수대를 이용하면 된다. 카라반 내부에는 글램핑이 갖춘 시설에 개수대, 화장실, 샤워실을 추가로 갖춰져 있다. 글램핑과 카라반 모두 반려동물 출입이 불가능하고 입실은 오후 3시, 퇴실은 익일 오전 11시다.
18.1Km 2024-05-29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11
충추 탑평리 칠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이다. 현재 남아있는 신라 석탑으로는 가장 높은 석탑으로 크게 높은 토단과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고 통일신라시대 석탑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홍수 등으로 인한 석탑의 붕괴를 막기 위해 높은 토단을 조성한 후 세워진 일반형 석탑으로 탑신에 비해 기단부의 너비가 넓다. 기단은 각부를 몇 장의 돌로 조립하였는데 아래위층 기단이 모두 면석에 탱주 네 개씩을 세워 놓았다. 탑신부 역시 각부를 몇 장의 돌로 구성하였는데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좁아들면서 중첩되었고 옥개석 받침은 각층이 모두 5단으로 되어있다. 상륜부는 2층으로 구성된 노반이 받침대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위에 가운데가 볼록한 원주형 석재가 있고, 앙화석이 꼭대기에 올려져 있다.
18.1Km 2024-09-02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중앙탑길 112-28
충주 박물관은 중원 문화권의 학술 연구과 유물 및 유적 등을 보존하고 각종 특별전 등의 행사를 통해 시민과 함께 하는 박물관 실현을 목적으로 설립된 곳이다. 제1전시관, 제2전시관, 야외전시공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전시관은 충주 미륵대원지, 정토사 홍법국사실상탑 모형, 석불입상 등과 같은 불교 유적을 전시한다. 야외전시유물은 율능리 석불입상, 장성리 삼층석탑, 용탄동 석탑 등의 불교 관련 유물과 각종 묘비, 문안석 등 많은 석조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제2전시관은 충주 지역에서 출토된 자료를 중심으로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시대적 특징을 알아 볼 수 있는 곳으로 금릉동에서 출토된 찍개와 충주 조동리 유적에서 출토된 돌도끼, 그물추, 화살촉 등 선사시대 유물, 삼국·통일신라 시대의 토기, 기와류, 금속 유물을 전시했다. 특히 충주 고구려비와 단양적성비(모형)를 전시하여 충주 지역이 삼국시대 최대 요충지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18.1Km 2024-07-31
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 산정길 21
원명 연병호(1894∼1963)의 부친인 연채우(延采羽)〈延彩羽〉의 집으로, 독립애국지사 연병호가 태어나고 성장한 생가인 동시에 만년에 이곳에서 살다가 생애를 마친 집이다. 연병호는 1894년에 괴산군 도안면 석곡리에서 출생하여, 1919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길림성 북로군정서 참모 겸 서기로서 국권 회복 운동을 하였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 활동을 지원하였으며, 청년외교단 비밀조직 활동으로 검거 투옥되었다. 이후 다시 망명하여 독립 혁명당을 조직하였으며, 1937년 임시정부에서 활약 중 일본 관헌에 체포되어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5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948년 재당선되었다. 현재 정화사업 결과 초가집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주변 담장과 신축 사당이 인접하여 있다. 당초 집 뒤에 있었던 장독대와 옆에 있었던 옛 화장실을 노인들의 증언으로 알 수 있다. 경내에 애국지사를 기리는 비(碑)가 들어서 있다. 당초 있었던 연자방아의 유물이 남아 있다. 형식 및 구조는 정면 3칸·측면 3칸의 토벽 초가집으로 남향하였으며 평면형식은 외통형이다. 이 가옥의 특징은 19세기 가장 보편적인 민가의 형식과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초가집으로 되어 있다. 집의 앞·뒤 공간이 당초의 모습대로 남아 있고, 담장과 출입문의 위치도 목격자들의 증언과 일치하고 있다. 당초의 한옥 모양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19세기 농촌의 민가 양식을 볼 수 있다.
18.1Km 2024-05-13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중앙탑길 112-28
충주 탄금호 무지개길은 왕복 3km의 부유식 다리이며 원래 이름은 탄금호 중계도로이다. 2013년 조정선수권대회 당시 건립된 수변 구조물로 이름 그대로 대회를 중계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로였다. 대회가 없으면 본래 인근 시민들의 산책이나 자전거 도로로 이용됐는데, 야간경관조명이 설치되며 전국적인 명소가 되었다. 소요시간은 약 1시간으로 구간마다 색다른 야경과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조명길이 있어 밤에도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또한 포토존, 문화공연 등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충주 중앙탑공원과도 이어져 있기 때문에 국보 충주 탑평리 칠 층 석탑, 야외 조각 공원을 구경하기에도 좋다.
18.1Km 2024-08-16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원평리
충주 원평리 삼층석탑은 충주시 신니면 원평리 마을 가운데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원평리 석조 여래입상과 나란히 놓여 있다. 6세기 전반기인 신라 법흥왕 때 창건한 선조사라는 유명한 사찰이 있었던 곳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병자호란 때 소실된 것으로 구전되고 있다. 이곳 마을 이름은 미륵댕이로, 예부터 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석탑에 네모꼴의 자연석 위에 기단을 조성하였고 기단의 남북 면석에 우주를 표현하였다. 기단 면에는 세발 향로와 우주가 표현되었고 1층 탑신에는 네 면에 사자상으로 여겨지는 동물상이 큼직하게 새겨져 있다.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3단이며 추녀의 모습이 단아하고 상륜부에는 노반만 남아 있으며 3층 옥개석은 현재 없다. 1층 탑신 가운데에는 뒷발을 딛고 선 사자 모양이 양각되어 있고 기단부의 남북면 중앙에는 높이 60cm 크기의 세 발 향로를 양각하였다.이 석탑은 옥개석의 낙수면 전각의 경쾌함과 탑신의 단아함 등에서 볼 때 신라 석탑 양식을 따른 고려 시대의 뛰어난 석탑으로 기단 면석에 부조한 향로와 탑신에 사자의 형상으로 여겨지는 조식은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양식이다.
18.1Km 2024-06-14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원평리 108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은 충주시 신니면의 원평리 사지에 있는 석불이다. 원평리 삼층석탑과 같은 곳에 있어 함께 볼 수 있다.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의 불상은 8각형의 넓은 갓을 쓰고 서 있으며 전체적으로 대석, 불신, 개석의 3석으로 조성된 거대한 석불이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 묶음이 있으며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양감이 잘 표현된 어깨와 당당한 하체, 양어깨를 감싸고 있는 묵중한 옷은 불상의 격을 높여 주고 있다. 불상 앞에는 복련대 앙련좌를 올려놓은 예배석을 볼 수 있으며, 석불의 얼굴은 네모나고, 위엄 있지만 인상은 원만하고 턱 아래에는 이중턱을 표현하여 후덕함을 강조하였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고 양쪽 귀는 길어 어깨에 닿아있는 모습이다. 마을 가운데 있으며 출입할 수 있는 길이 좁은 편이고 울타리로 주위가 둘러 쳐져 있다. 이 석불은 고려 시대 경기와 충청지방 일대에서 유행하던 석불 입상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조각 수법이 뛰어나서 당시를 대표하는 불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18.2Km 2024-06-18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선당길 192
충주 고불선원 소조여래좌상은 충주시 신니면 선당리 고불 선원에 단독으로 모셔져 있는 불상이다. 양손을 일부 보수한 것을 제외하면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특이하게 얼굴에 철분이 덮였으며, 몸체보다 큰 머리는 각이 있고 살이 찐 편이다. 머리카락은 구멍이 나 있는 정수리로 말려 올라간 모습이다. 미간 사이에 백호라는 부처님의 털을 상징하는 보석을 최근 삽입하였으며 부처의 손가락 부분은 최근에 보수되어 원래의 손 모양을 추정하기 어려우나, 왼손은 왼 무릎 위에 하늘을 향해 있으며 오른손은 오른 무릎을 감싸고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 양어깨를 모두 덮고 있으며 U자형 깃으로 정면을 장식하고 있다. 불상은 고려 시대에 유행한 작은 불상 양식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시대 충청도 북부지역에서 유행한 목조불상의 양식과 유사한 머리 부분의 모양, 입가의 엷은 미소, 법의의 주름 표현 양식은 불상의 제작 시기와 제작 장소를 알려준다. 불상의 제작과 관련된 기록과 원래 장식물은 유실되었지만 고려 시대의 유행을 유추할 수 있는 불교 양식과 희귀한 자료만으로도 불상 연구에 미치는 가치가 크다. 전체적으로 단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조그맣고 아담한 선원에 모셔져 있으며 불상 뒤쪽의 탱화가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