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Km 2024-04-08
충청북도 충주시 충원대로 55 커피단월
커피단월은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있다. 3층 건물로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외관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하기 좋다. 1층과 3층에는 테라스가 있고, 1층 테라스는 반려동물과 함께 입장할 수 있다. 대표 메뉴는 아메리카노이며, 카페라테, 청귤 차, 버터 커피, 카푸치노 등 여러 가지 음료가 준비되어 있고 인절미 크림 크루아상, 앙버터 등 각종 디저트도 맛볼 수 있다. 충주 IC에서 가깝고, 인근에 호암지 생태공원, 국립충주기상과학관, 성서동 젊음의 거리가 있다. ※ 반려동물 동반 가능(목줄, 배변봉투 지참)
14.9Km 2024-08-26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중앙로홍문2길 14
천주교 연풍성지는 조선 정조 15년(1791) 신해교난 이후 연풍 땅에 은거하여 신앙을 지켜가던 교인 추순옥, 이윤일, 김병숙, 김말당, 김마루 등이 순조 1년(1801) 신유교난 때 처형당한 자리로, 1974년부터 천주교회에서 성역화한 곳이다. 성지 내에는 연풍향청 건물과 높이 8.5m의 십자가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한국천주교 103 성인의 한 사람인 루까 황석두의 입상과 묘가 있다. 순조 13년(1813) 연풍현 병방골에서 태어난 황석두 성인은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후 일생을 종교에 헌신하다 병인박해 때 다블뤼주교, 오메트르신부, 위앵신부, 장주기 회장과 함께 충청도 갈매못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다고 한다. 성지 왼쪽에는 순교현양비를 세웠으며, 문 앞에는 처형석을 유물로 전시하고 있다. 성지에 있는 연풍향청은 향청 이후 헌병주재소, 경찰지서 등으로 쓰이던 건물이었으나, 천주교회에서 구입하여 연풍 공소의 예배소로 사용하고 있다.
14.9Km 2023-08-10
천주교 연풍성지는 조선 정조(正祖) 15년(1791) 신해교난(辛亥敎難) 이후 연풍땅에 은거하여 신앙을 지켜가던 교인 추순옥(秋順玉), 이윤일(李尹一), 김병숙, 金말당, 金마루 등이 순조(純祖) 1년(1801) 신유교난(辛酉敎難) 때 처형당한 자리에 1974년부터 천주교회에서 성역화한 곳이다
15.0Km 2024-05-23
충청북도 충주시 충원대로 201 단호사
충주 단호사는 한국불교 태고종의 말사로 조선 후기 숙종 때 중건한 사찰이다. 중건 당시 ‘약사’라 하였고, 1954년 단호사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3칸의 맞배집인 대웅전과 약사전, 용왕전, 요사채 등이 있다. 약사전 내에는 1976년 보물로 지정된 철불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11세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으로 고려 시대 철불의 귀중한 유품이며, 지역적인 유파성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외에도 충주 단호사 삼층석탑, 충청북도 유형문화재인 관세음보살좌상, 미륵불입상 등 다양한 문화재를 만나 볼 수 있다. 단호사에서는 매월 첫째와 셋째 일요일, 초하루와 보름 때에 정기 법회가 열리고 있다.
15.0Km 2024-06-14
충청북도 충주시 충원대로 201
충주 단호사 삼층석탑은 충주시의 사찰 단호사 대웅전 앞뜰에 자리한 석탑이다. 단호사는 달래 강정원길 인근의 민가에 자리한 곳으로 산속이 아닌 평지에 자리한 사찰이다. 조선 후기 숙종 때 약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사찰이며 1954년 단호사로 개칭하였다. 이곳에 있는 삼층 석탑은 현재의 자리가 원래의 터로 보인다. 1층 기단 위에 탑신부가 놓여 있다.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는데, 일부가 부서져 있다. 1층 몸돌은 제법 높으며 4층 몸돌 일부로 보이는 석재가 놓여 있어 5층 탑이었을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각 지붕돌은 두껍고 투박한 모습으로 경사면이 급하게 처리되었고, 밑면에는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충주 지방의 탑들이 대부분 산 위에 놓여 있는데 이 탑은 평지에 놓여 있어 색다르다. 규모는 작으나 격식을 갖춘 안정감 있는 석탑으로, 1층 기단과 지붕돌의 모습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세운 탑으로 추측된다. 단호사에는 삼층석탑 외에도 불상 등 다양한 불교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15.0Km 2024-08-26
충청북도 충주시 충원대로 201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은 충주시에 있는 단호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철불좌상이다. 단호사는 창건 연대를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때 중건하여 약사로 불리였으며 1954년에 단호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곳은 마을 가운데 평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사찰은 작으나 절 입구에 크고 웅장한 느티나무가 자리해 있고 경내에는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양의 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이곳에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이 있고, 단호사의 현 주지가 1945년 이 자리에 불상이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절을 이룩한 점으로 단호사 철불은 원래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원체 짙게 개금불사되어 오랫동안 철불인지 모른 채 지내오다가 1968년도에 철불로 밝혀졌다. 나발의 머리 위에는 큼직한 육계가 있고 양미간의 백호공에는 새로 만들어 끼운 백호가 있으며 두 눈과 코, 입술 등이 정제되고 균형 잡혀있다. 양쪽 귀는 길게 늘어지고 목에는 삼도가 돌려져서 위엄이 있어 보이며 상호가 원만하여 한층 근엄한 인상을 준다. 얼굴 부분의 세부 표현기법은 고려 시대 불상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15.0Km 2023-08-08
괴산군 연풍면은 조령산을 경계로 경북 문경과 접해 있다. 조선시대 단원 김홍도가 현감으로 재직했던 곳이기도 하다. 신풍전통한지마을은 한지의 재료가 되는 닥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을 갖춘 곳으로 전통한지 만들기 체험에 도전해볼 수 있다. 연풍리 마애불과 수옥폭포, 조령산자연휴양림 등 조령산 자락의 명소들을 함께 둘러보는 여정이다.
15.0Km 2024-06-14
충청북도 충주시 충열1길 6
어제 달천 충렬사비는 조선시대의 명장 임경업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다. 임경업은 1633년 명나라의 반란군을 토벌하고 병자호란 때 청나라의 공격으로부터 백마산성을 수비한 조선 인조 때의 명장이다. 1618년 무과에 급제하여 1633년 명나라의 반란군을 토벌한 공으로 명나라 황제로부터 총병의 관직을 받았다. 병자호란 때에는 백마산성을 수비 하며 청군의 진격을 둔화시키고자 하였다. 이후 철저하게 친명배금의 노선을 견지하다가 청나라에 포로가 되었고 심기원의 옥사에 연루되어 본국에 송환되었다가 옥중에서 생을 마감했다. 신도비는 현재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경내의 사당 오른쪽에 완산 이씨 정렬비와 같이 나란히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 비석의 앞면에는 ‘어제달천충렬사비(御製達川忠烈祠碑)’라는 제목이 전각 되어 있다. 자헌대부 예조판서 겸 직제학 이병모가 글씨를 쓰고, 전서는 왕의 명령을 받아 보국숭록대부 이조판서 윤동섬이 썼다. 숙종 때 임경업에게 충민이란 시호를 내렸고, 영조 때 그의 사당에 충렬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후 정조 때 임경업의 기리는 정문과 비석을 세웠다. 충렬사와 함께 둘러보기 좋으며 우리 역사를 알아보기 좋은 곳이다.
15.0Km 2024-08-19
충청북도 충주시 충열1길 6 임충민공충렬사
충민공 임경업(1594∼1646)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숙종 23년(1679)에 사당을 세웠고, 1706년에 장군에게 충민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영조 3년(1727)에는 사당 이름을 충렬사라 했다. 임경업 장군은 선조 27년(1594) 충주에서 태어나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때 큰 공을 세웠다. 특히 병자호란 때 백마산성과 의주성을 다시 쌓아 국방을 강화하는 등 나라에 이바지한 바가 컸다. 명나라를 숭상하던 장군은 인조 30년(1642) 명나라가 청나라에게 위협을 받게 되자 명군과 협력해 청에 대항하고자 했으나 계획이 탄로 나 청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청나라는 장군에게 여러 제의를 하면서 포섭하려 했으나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후 1646년 국내의 ‘심기원의 모반 사건’에 억울하게 연관되어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고 피살되었다. 현재 충렬사에는 장군이 사용했던 유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사당 앞 왼쪽에는 장군 부인의 곧은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부인완산이씨 정렬비’가 있다.
15.1Km 2024-06-10
충청북도 충주시 유주막로 248
정심사는 대림산 중턱 기슭에 위치한 사찰이다. 건립연대는 추정하기 어렵지만 고려 후기에는 월은사, 조선시대에는 달암사, 호암사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는 개운사로 명명되었다가 지금은 정심사로 개칭하였다. 전설과 구전에 의하면 정심사는 임경업 장군이 유년 시절부터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라고 한다. 시설은 1978년에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범종각, 산신각 및 요사채 2동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