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리마을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운리마을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운리마을

운리마을

0m    0     2023-11-02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호암로619번길 98

운리마을은 탑동, 본동, 원정 등 3개 동네가 모여 이룬 마을이다. 수령이 6백 년이 넘는 당산 느티나무가 서 있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이 쉬어가기도 하고 국상을 당하면 당산나무 아래 냉수 한잔을 올리고 북향재배를 하며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당산나무 아래 계곡이 만나는 곳에는 용소가 있는데, 단성면 일대에 비가 오지 않을 때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라고 한다. 운리마을은 단속사지로도 유명한데, 마을 사람 46인이 합심하여 서당을 짓고 중국 송나라 주희를 사모하며 학문을 닦았다. 중국 무이산의 무이구곡을 본떠 금계구곡이라하고, 재실 이름을 운곡재라 하였으며 마을 이름을 운리라고 지었다.

유점마을

유점마을

10.0 Km    0     2023-10-11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송하중태길 601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소박한 집들이 이어진 마을로, 산청과 하동의 경계에 자리한 마을이다. 마을이 위치한 이 고개를 산청 사람들은 중태재, 하동 사람들은 갈치재라 부른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공비가 밤에 옥종 방면 양식을 뺏어오다 매복된 군인에게 사살당한 곳이다. 너무 많은 공비가 죽어 시체 썩는 냄새가 사방에 가득했다고 전한다. 자동차도 지날 수 없는 곳이었으나 1998년 송전 시설이 지어지면서 차도가 연결되었다. 소박한 민가들과 함께 임도와 옛길, 숲길을 만날 수 있다.

한빈갈비

한빈갈비

10.3 Km    2     2022-12-06

경상남도 산청군 지리산대로 4058 한빈갈비식육식당

경상남도 산청에 한빈갈비는 암소 전문 소고기 식육식당이다. 식육식당이어서 꽃등심 모둠, 특수부위, 로스구이 구이류는 3종류만 선택이 가능하며, 그 외 육회, 육회비빔밥, 소고기국밥 같은 식사류가 준비되어 있다. 양파절임, 파채, 참기름장, 마늘, 쌈 채소, 샐러드 등이 함께 제공된다. 한빈갈비는 종이 포일 위에서 굽는 방식이다. 소고기 마블링이 좋고 부드러워서 바짝 익혀 먹어도 질기지 않고 육즙도 풍부하다는 평가다. ​가성비 좋고 푸짐한 양 때문에 늘 대기가 있다. 가게 옆으로 널찍한 주차장이 있다. 둔철산 천문대, 별아띠천문대 등이 인접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대각서원

10.5 Km    1006     2023-11-06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대각길 104-21

대각서원은 1610년(광해군 2) 지방 유림의 공의로 하항, 손천우, 김대명, 하응도, 이정, 유종지, 하수일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9년(고종 6)에 훼철되었다가, 1947년 지방 유림에 의하여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각서원은 본당 건물과 동재, 서재, 그리고 문간채로 구성되어 있고, 본당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전후 툇집 형식이며, 정면의 기둥은 배흘림을 둔 두리기둥으로 단면의 크기도 크고 훤칠하다. 가구는 5량 구조로 장식이 잘되어 있다. 양 툇간에는 퇴보를 걸었으며 홑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이다. 서원으로서 전체적인 배치가 무난하며, 부재의 사용이나 적절한 비례의 적용, 그리고 동재의 여러 가지 기술적인 수법 등 조선 후기 건축의 여러 기법을 볼 수가 있어 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서원 담장도 흙 돌담으로 축조기법이 돋보이며 일반 한옥의 담장보다 높이가 높다. 처음에는 각재 하항을 모시기 위한 대각사를 지었다가, 그 뒤에 무송 손천우, 백암 김대명, 영무성 하응도, 모촌 이정, 조계 유종지, 송정 하수일 등 6분의 선현을 추가로 배향하여 현재 7위를 배향하고 있다.

정취암

정취암

10.5 Km    26273     2024-05-10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둔철산로 675-87

대성산의 기암절벽에 자리한 정취암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정취암 탱화가 유명한 사찰로, 상서로운 기운이 가히 금강에 버금간다하여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일컬었다. 신라 신문왕 6년 동해에서 아미타불이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비추니, 한 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또 한 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다고 하며, 이때 의상대사께서 두 줄기 서광을 쫓아 금강산에는 원통암을 세우고 대성산에는 정취사를 창건하였다. 정취암은 고려 공민왕 때 중수하고 조선 효종 때 소실되었다가, 봉성당 치헌선사가 중건하면서 관음상을 조성하였다. 1987년 도영당은 원통보전공사를 완공하고 대웅전을 개칭하여 석가모니 본존불과 관세음 보살상, 대세지보살상을 봉안하였다. 1995년에 응진정에 16나한상과 탱화를 봉안하고, 1996년 산신각을 중수하여 산신탱화를 봉안하였으며, 탱화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인근에 둔철생태공원과 선유동계곡 등 아름다운 자연관광지가 있는 지역이다.

대원사계곡길

대원사계곡길

10.5 Km    0     2023-10-16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대원사길 588

지리산국립공원 중에서 산청군의 대원사 계곡은 길고 맑기로 유명하다. 공원 입구 주차장에서 바로 시작하는 길은 완만하게 이어진다. 경치가 좋은 곳마다 쉴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 두어 느긋하게 걷기 좋다. 주변 경치를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대원사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까지 2.2km이다. 여기서 유평마을까지는 1.3km을 더 가면 된다. 되돌아갈 때는 같은 길을 이용해도 되고 기존의 도로를 따라 내려와도 된다. 시간은 여유 있게 3시간이면 된다.

남명 조식선생의 흔적을 따라서

남명 조식선생의 흔적을 따라서

10.5 Km    2726     2023-08-10

산청은 남명 조식선생의 유적이 남아 있는 고장이다. 남명 조식은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학파의 쌍두마차로 철저하게 재야에 묻혀 살다간 선비다. 남명 조식 선생이 학문에 힘썼던 산천재,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덕천서원, 세심정, 기념관 등 남명과 남명학파에 대한 알아볼 수 있는 답사처다. 산청은 매화로도 유명한 고장이다. 단속사지의 정당매, 산천재의 남명매를 비롯해 이른 봄이면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매화를 만나러 가는 여정도 빼놓을 수 없다.

산청지막계곡캠핑장

산청지막계곡캠핑장

10.6 Km    2     2023-06-27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왕등재로 307

산청 지막계곡캠핑장은 경남 산청에 위치한 아름다운 오토캠핑장으로,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전망이 좋은 편이다. 계곡을 경계로 사이트가 나눠져 있으며, 사이트를 잇는 빨간 구름다리는 이동통로인 동시에 산청 지막계곡캠핑장의 상징물이다. 신설 캠핑장으로서 편의 시설의 깨끗함은 물론 샤워장 및 개수대의 온수 사용과 파쇄석이 아닌 천연 강자갈을 사용한 60여 개의 사이트는, 여유 있고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어 캠퍼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오염되지 않은 맑고 시원한 계곡물은 아이들에게 자연 속 놀이터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주변 관광지로 동의보감촌, 생초국제조각공원 등이 있다.

사람과바다 래프팅

사람과바다 래프팅

10.7 Km    23182     2023-08-02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웅석봉로86번길 9-5
055-974-2000

‘경호강’은 최근 떠오르는 중부권 이남의 래프팅 명소이며, 국내에서 ‘동강’과 ‘내린천’을 제외하면 래프팅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지리산 자락과 별다른 오염권이 없어 쏘가리와 꺽지가 사철 잡힐 정도로 수질은 양호하고 길게 흐르는 풍경도 다양하다. 수량은 국내에선 강수량이 많은 지역으로서 짧고 긴 급류가 다양하며 급류 중간 수상 이벤트를 할 수 있는 넓고 잔잔한 구간도 형성된다. 장마철 수량은 내린천보다 좋으며 급류는 한국 최고라 자부한다.

봉산서원(산청)

11.0 Km    162     2023-11-17

경상남도 산청군 생비량면 지리산대로4119번길 37-20

산청 봉산서원은 흔히 어은정사라고도 부르는데 오국헌 선생(1599~1672)이 강학하였던 서원이다. 오국헌 선생은 승훈랑과 호조좌랑에 추증되었으며, 저서에는 [사서해의], [역계해의], [유후귀감], [어은유고]가 있다. 1654년(효종 5) 창건 당시에는 봉산사라 불렀지만, 1658년(효종 9) 송시열이 어은 두 글자를 하사한 것을 계기로 어은정사로 칭하게 되었고 현재 봉산서원의 현판과 어은정사 현판이 나란히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