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조은펜션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참조은펜션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참조은펜션

참조은펜션

15.8Km    2021-05-27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산청대로1212번길 112-5
010-9459-4603

참 조은 펜션은 원목으로 이루어져 자연 친화적이며 깔끔하고 모던한 복층 객실이 준비되어 있다. 단체 펜션에 알맞은 넓은 주차장과 여러 가지 즐길 거리들이 있으며 펜션 바로 뒤에는 시원한 계곡이 있다.

충익사(의령)

15.8Km    2024-10-30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 1

충익사는 임진왜란(1592)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켰던 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와 장수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1972년부터 해마다 곽재우 추모행사를 거행하고 있으며 1978년 이곳에 사당을 마련하였다. 사당은 충익사당, 기념관, 충의각, 내삼문, 외삼문 등 9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념관에는 보물 [망우당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공포와 장식이 화려한 충의각에는 곽재우와 17명의 장수들에게 사후에 내린 관직명이 보관되어 있다. 이밖에 도 기념물인 모과나무가 자리 잡고 있으며 높이 27m에 이르는 충혼탑이 있다. ※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 곽재우 장군은 명종 7년(1552)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서 출생하였는데, 문무에 뛰어났으나 관직 없이 초야에서 지냈다. 선조 25년(1592) 4월 13일 왜병이 침입하여 서울로 진격해 오자 나라를 지키는 일을 관군에게만 맡길 수 없다고 분연히 일어나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왜병의 침공을 막았다. 장군은 홍의에 백마를 타고 휘하에 17명의 장수와 수천 의병을 거느리면서 정암진, 기강, 현풍, 창녕, 화왕산성, 진주성 등의 전투에서 실로 신출귀몰하는 전략, 전술로 적을 크게 무찌르고 백전백승함으로써 왜병의 전라도 진격을 저지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진주 목사를 지냈고, 한성부 우윤, 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장군은 사후에 병조판서 겸 지의금사에 추증되었다.

충익사 의병탑

15.8Km    2024-06-14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 1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홍의장군 곽재우(1552~1617)와 휘하에 있던 17명의 장수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탑으로, 1972년 4월 22일 의령군 남산 기슭의 남산천변에 의령군민들의 성금으로 건립한 것이다. 탑의 높이는 27m이며, 탑 중앙 부분의 둥근 고리 18개는 곽재우와 17장령을 상징하고, 고리를 지탱시키는 양쪽의 팔자 형태 기둥은 횃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고리 중간에 한글로 의병탑이라 적혀 있으며, 탑명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휘호이다. 탑의 하단 양쪽에 말을 타고 전투를 지휘하는 곽재우장군의 모습과 의병들의 전투 장면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의병탑 옆으로는 곽재우와 열일곱 장수의 위패를 봉안하는 충익사가 있는데, 사당은 1978년 12월에 건립되었으며, 사당, 기념관, 충의각, 충현정, 충의문, 홍의문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의병탑 근처에는 남산체육공원과 의령군의 명물인 의령구름다리, 의령천수변공원이 있다.

읍청정 (산청)

읍청정 (산청)

15.9Km    2023-01-26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강누리

산청 읍청정은 경남 산청군 단성면 강누리에 자리 잡고 있다. 2000년 8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안동 권씨 33세손 권두희 선생이 조상의 얼을 받들고 고을의 번영과 화목을 바라면서 일제강점기인 1917~1919년에 지은 정자다. 정자는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인 팔작지붕이며, 건물의 양옆에 누마루를 구성하였다. 방문 살과 창호의 처리에 있어서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정자다. 읍청전 내부에는 3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태암서원

태암서원

16.0Km    2024-09-26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 덕암로5길 5-2

태암서원은 담양 전씨 문원공 전조생과 그의 후손 전자수를 추모하기 위해 유림과 후손들이 세운 서원이다. 1789년(정조 13년)에 유림과 담양전씨 후손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1868년(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해체되었다가 다시 세웠다. 전조생은 고려시대의 문신이자 학자로 학문과 문장에 뛰어났던 분이다. 고려 찬성검의부사로 있을 때 충혜왕으로부터 왕자 2인을 부탁받고 정학에 힘썼으며 이어 공조전서를 지내기도 하였다.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였을 때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신하의 도리를 지키며 두문동에 들어간 72현 가운데 한 분이다. 또 함께 배향된 전자수는 문원공 조생의 손으로 일찍이 벼슬에 나가 광정대부첨의평사 겸 진현관대제학으로 지냈다. 경내의 건물로는 별묘와 강당 등이 있다. 별묘는 영정을 모신 곳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강당은 유생을 교육하고 유림들이 모임을 갖던 장소이다. 앞면 6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가운데 3칸에 마루를 두고 양 옆에는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매년 음력 2월 말 정일(丁日)과 10월 10일의 춘추 2회에 걸쳐 유림에 의한 향사가 봉행된다.

진주목공예전수관

진주목공예전수관

16.0Km    2024-10-01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광제산로 367

진주시청에서 직접 운영하는 시민들의 목공 체험 및 교육기관이다. 오랜 전통을 이어 온 "소목"을 주제로 진주시만의 특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예로부터 진주 지역은 지리산과 가까운 곳이라 좋은 목재를 이용한 다양한 활동을 한 곳인데 특히, 소목에서 뛰어난 장인들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전수관이 위치한 명석면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목공예 명장이 다수 거주하고 있으며 진주 전통 목공예가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진주는 예로부터 상, 장, 농 등의 가구 또는 나전칠기로 유명하여 궁궐에서 사용하는 함이나 장 같은 가구류를 만들어 진상하였다. 다른 지역과는 다른 커리큘럼을 구성해 취미로서의 목공뿐 아니라 전문가로 나아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는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진주공예창작지원센터

진주공예창작지원센터

16.0Km    2023-10-27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광제산로 367

진주공예창작지원센터는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진주시의 지원을 받아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조성 중이다.
진주시 명석면 옛 명석초등학교 자리에 위치한 진주목공예전수관 (진주시가 직영하는 목공예문화공간)의 일부 공간을 진주공예인협회에서 대여받아 조성하고 있다. 목공예 기반시설이 이미 마련된 진주목공예전수관의 시설을 이용하고 활용도가 낮은 공간에 섬유공예 기반시설을 신설하여 목공예와 섬유공예를 시작으로 전통공예와 다양한 현대공예가 한자리에서 펼쳐질 수 있는 융복합 공예 지원센터로, 공예의 다양한 분야들이 융합되어 새로운 공예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신안정사

신안정사

16.0Km    2023-10-11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강누리 745

신안정사는 경남 산청군 단성면 강누리에 자리 잡고 있다. 중종 35년(1538년)에 중국 신안에 있는 주자의 사당을 본받아 창건했다. 중국 송나라 때 유학자인 주자와 우암 송시열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명나라 황제 숭정제가 쓴 비례부동이라는 글씨가 있으며, 많은 서적이 있다. 부속 건물로 수정궁이 있다. 고종 9년(1872)에 중수하였으나, 영정을 모셨던 영당은 대원군 집권 시 소실되어 초석만 남아있었지만, 2006년 복원하였다.

목계서원

목계서원

16.2Km    2024-09-26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석대로525번길 40-13

목계서원은 조선 숙종 때 사림이 김담(金湛)과 이조(李晁)를 두능서원(杜陵書院)에서 봉 향하다가 서원이 훼철되자 1778년(정조 2)에 유림들이 목계서원을 지어 다시 봉향 하였다. 그 뒤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해 철폐된 것을 1883년(고종 20)에 강당을 중수하였으며, 1983년에 완전히 복원되었다. 이 서원을 ‘목계정사(牧溪精舍)’로도 부르는 것은 훼철을 피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현재 편액은 목계정사(牧溪精舍)이고 건물 한 채인 재실만 있다.

배산서원

16.4Km    2024-06-18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배양길 16

도천서원에 모시고 있던 청향당 이원과 죽각 이광우를 따로 모시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이원(1501∼1568)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며, 조식·이황 선생과 학문의 뜻을 같이 하였으며, 명종 1년(1546)에는 나라에서 벼슬을 내렸으나 거절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배산서원은 조선 영조 47년(1771)에 덕연사만 세워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철거되었다. 그 뒤 1919년에 새로 지어 배산서당이라 하였다. 서원 안에는 문묘, 도동사, 강당이 있고, 문묘는 앞면 3칸·옆면 1칸 반 규모로 공자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도동사는 앞면 3칸·옆면 1칸 반 크기의 건물로 청향당 이원·퇴계 이황·남명·죽각 이광우 등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강당은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안에는 중국 학자인 강유위가 쓴 현판과 백범 김구·성재 이시영·우천 조완구·백암 박은식 선생의 배산서당 낙성축문 현판을 보관하고 있다. 매년 3월 상해일(上亥日)에 유림들이 모여 춘향(春享)을 모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