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감자탕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큰손감자탕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큰손감자탕

큰손감자탕

17.4 Km    1     2023-11-14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평창읍 천변길 37

큰손감자탕은 강원 평창군에 위치하고 있다. 감자탕을 전문으로 요리하며 닭볶음탕, 뼈해장국, 설렁탕과 같은 다양한 메뉴도 준비되어 있다. 칼칼하고 진한 맛의 감자탕은 단연코 인기 메뉴이며, 뼈 추가도 가능하다. 넉넉하고 깔끔한 실내 좌석을 보유하고 있어 단체 모임을 하기에도 좋다.

장터옛날통닭

장터옛날통닭

17.4 Km    1     2023-07-02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평창읍 백오로 129

평창군 평창읍에 위치한 바삭하고 담백한 시장표 옛날통닭 맛집이다.

누나네 부대찌개

누나네 부대찌개

17.4 Km    0     2023-09-20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평창읍 백오로 134

평창군 평창읍에 위치한 곳으로 사골육수와 채수로 우려낸 전통 부대찌개가 맛있는 집이다. 매장에 들어서면 ‘쎈 누나가 만든 명품 부대찌개’ 현수막이 눈에 띈다. 오픈 주방으로 ‘쎈 누나’ 사장님이 만들어주는 요리 과정을 엿볼 수 있다. 햄, 떡 등 사리가 풍부하고 칼칼한 국물 맛이 일품인 부대찌개 전문점이다.

강남식당

17.4 Km    2     2023-07-02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평창읍 노성로 126-27
033-332-2751

평창읍내에 자리 잡은 한정식 집이다. 푸짐하게 곱창을 넣고 칼칼한 국물과 함께 끓여낸 곱창전골과 오삼불고기가 이곳의 인기메뉴이다. 제철재료를 사용하는 정갈한 밑반찬과 신선한 쌈야채를 곁들여 먹으면 맛이 더욱 좋다. 가지볶음, 알타리무김치, 돈나무겉절이, 두부계란부침 등 반찬 하나하나에서 주인아주머니의 솜씨가 느껴진다. 평창읍내에 들렸다가 푸짐하고 맛좋은 한정식이 생각나면 들리기 좋은 곳이다. (출처 : 강원도청)

우구정 가옥

17.5 Km    1     2023-07-03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남면 들골안길 127-4

남면 들골안길에 위치한 우구정의 옛집이다. 영서지방의 전형적인 옛 민가로 알려져 있으며, ㅁ자의 형태인 가옥 모양으로 안채와 사랑채, 헛간으로 구성된 집이다. 안채와 건너방, 사랑방의 단촐한 구조로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등록돼 있다.정확한 정보가 없어 언제, 누가 지었는지를 추측할 수 없는 고택이다. 그저 지어진 지 백년에서 삼백년 사이라 추측만 할 뿐 이다. 이 집의 우구정이라는 이름 역시 이 집을 지키고 있던 이가 바로 우구정씨였기 때문에 고택의 이름을 우구정 가옥이라고 지은 전통 시골집이다.

곰이네닭갈비

곰이네닭갈비

17.5 Km    0     2023-10-26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평창읍 백오로 146-8

곰이네 닭갈비는 강원도 평창군에 위치한 닭갈비 전문점이다. 타 업장과는 달리 닭갈비 외에도 삼계탕, 사골육개장, 송이갈비탕, 꼬막비빔밥 등 다양한 식사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실내 좌석이 넓어 단체 이용도 가능하다.

서곡정사석조약사여래입상

17.5 Km    1     2023-07-03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한반도면 용정원길 86-17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용정엔 길 서곡 정사에 위치한 서곡 정사 석조 약사여래 입상. 제작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높고 커다란 육계, 양감이 풍부한 상호, 전체적인으로 균형이 잘 잡힌 불신, u자형을 그리며 흘러내리는 통견 법의와 각선으로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조그만 약사전 안에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약사여래불 상이 서 계신다. 아담한 사이즈이면서도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균형이 잘 잡혀 있어서 멋이 있어 보인다. 크기는 총고 156cm 좌대 고 31.5cm 불상 고, 91cm 불상 두고 22cm 불상 건폭 28cm, 광배 폭 69cm 광배 고 123cm 대좌상 대폭 56cm이다.

치악산자연휴양림

치악산자연휴양림

17.5 Km    64221     2024-05-21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판부면 휴양림길 66

치악산 자연휴양림은 강원 원주시 판부면 휴양림길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자연휴양림이다. 치악산 자연휴양림 숙박시설로는 3인~10인까지 이용 가능한 숙소로 숲속의 집과 숲속 통나무집 17채와 황토연립동 8채가 있다. 모든 숙소에서는 개별 바비큐 사용이 가능하다. 바비큐 용품은 개인 용품을 가져와도 되며 매표소 옆 매점에서 바비큐 용품을 대여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 우천 시에는 황토방 1~8호를 제외한 모든 숙소에서는 바비큐 사용이 금지된다. 치악산 자연휴양림에는 숙박시설 외에도 전망대와 정자, 야생화 단지, 어린이 놀이터와 야영장, 산책로와 등산로가 있어 맑은 공기를 마시며 숲속에서의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 휴양림 주변에는 칠성바위, 거북바위, 벼락바위 등 기암괴석이 능선에 즐비하고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가까이 남대봉에서 멀리 비로봉까지 치악산 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즐길 수 있는 자연휴양림 프로그램으로는 1일 2회 체험할 수 있는 치악산 숲해설 프로그램과 목공예 체험이 있다.

노산성

노산성

17.5 Km    1     2023-07-03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평창읍 평창중앙로 158-8

이 산성은 노산성(魯山城)이라 불려지고 있는데, 초축 연대를 알 수 있는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성내에서 통일신라기의 유물이 수습된 것을 고려할 때 이미 그 시기에 축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고려, 조선시대의 유물도 다수 수습되는 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이 시대까지 계속 개수되면서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산성은 평창의 진산(鎭山)인 노산(魯山)에 위치하고 있다.
산성은 평창강이 굴곡하는 곳에 우뚝 솟은 해발 419m의 노산에 쌓았는데,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을 뿐만 아니라 북쪽은 절벽이거나 매우 가파른 곳이어서 천험(天險)의 지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산성은 조선 선조 초에 군수 김광복(金光福)이 쌓은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권두문(權斗文) 군수가 지사함(智士涵), 우응민(禹應民), 이인노(李仁怒) 등과 함께 백성을 거느리고 왜군과 싸웠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고적조(古跡條)에는 노산성(魯山城)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석축주일천삼백육십사척고사척내유일정금반퇴락(石築周一千三百六十四尺高四尺內有一井今半頹落)라고 되어있다.
성의 둘레는 517m이며, 현존성벽의 높이는 1.3m 전후이다. 성벽은 북쪽의 절벽부분을 제외한 곳에만 축조되었는데, 능선의 바로 아래 부분을 삭토(削土)하고그 바깥쪽에 성벽을 구축함으로써 성벽을 따라 편편한 내환도(內環道)를 만들었다. 이러한 방식은 홍천 대미산성(大彌山城)의 축조법과 같은 방식이다.
노산성은 산복식 산성으로 북쪽이 가장 높고 남쪽이 낮은 지형을 하고 있다. 산성의 둘레는 북벽이 천험의 자연 지형에 축성하지 않은 부분을 제외하고 실제 쌓은 총 길이는 약 517m정도이다. 서벽은 약 115m 정도인데 그 중 성벽이 가장 잘 남아 있는 부분은 길이 8.2m, 높이 5.3m이다. 사용된 돌은 편마암으로 품자 형태로 면석쌓기를 하였다. 사용된 돌의크기는 58(길이)×12(높이), 47×13, 34×14㎝정도이며, 뒷채움은 돌로 채웠다.
서벽 부분의 산 정상에는 성역화 계단을 만드는 과정에서 원형을 많이 훼손하였다. 서벽의 일부도 산 정상에 오르는 시멘트 계단을 만드는 과정에서 파괴되었다. 계단을사이에 두고 석축의 기단부 일부가 남아 있는데, 43(길이)×14(높이)×28(깊이)㎝, 34×20×35㎝, 36×13×35㎝ 정도의 돌을 사용하였다. 서벽에서 남벽으로 회절하는 부분에는 치와 망대를 설치하였을 것으로 보이나 대부분이 훼손되어 정확한 축성 형태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남벽의 길이는 약 334m인데 산 사면의 일부를 깎아내어 산성 내에 폭 6m정도의 회곽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편축을 하였는데 높이는 약 2.6m정도 남아 있다. 남벽의 성곽은 대부분 붕괴되었다.
동벽의 길이는 약 122m이며, 역시회곽도를 만들었다. 동벽도 대부분 붕괴되었다. 성내 시설로는 산 정상 부근에 우물지가 한 곳 있는데 규모가 7.7(동서)×8.5(남북)m이며, 깊이는 약 2m이다.
노산성에서 수습되는 유물은 토기편과 와편들인데 특히 와편은 읍내에서 산성으로 올라가는 진입로 부근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다. 수습된 토기편은 대체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시대에 걸친 것으로 판단된다.
수습된 기와편들은 모두 조각들이며 완형은 없지만 숫키와편보다 암키와편이 더 많다. 문양은 초문, 격자문, 사선문 등 조선시대 것으로 보이는 와편들이 다수를 차지하나 수지문과 선문, 무문의 와편들도 끼여 있다.
기와편 측면의 와도흔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 있으나 무문와편 중 1점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나있다. 와편의 문양으로 보아 노성산성은 적어도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축조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후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걸쳐 몇 번의 개축 과정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노산성은 적어도 통일신라시대에는 이미 축조된 산성으로, 둘레 517m인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어 있는 상태이나 임진왜란 때 권두문 군수가 백성을 거느리고 왜군과 싸웠던 유서 깊은 곳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제천향교

제천향교

17.6 Km    16764     2023-12-27

충청북도 제천시 칠성로 117

1389년(공양왕 1)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590년(선조 23)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퇴폐되었으며, 그 뒤 1907년 의병장 이강년(李康䄵)이 왜군과 교전 중 소진되었다. 1909년 대성전이 중건된 것을 시작으로 1922년에 명륜당, 1980년에 동재(東齋), 1981년에 서재(西齋) 등을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명륜당, 각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동재와 서재, 제기고(祭器庫), 내신문(內神門), 외신문(外神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 철(十哲), 송조 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지방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설 명륜학원(明倫學院)을 운영하고 있다.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