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Km 2024-02-07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시장길 90
삼오식당은 창녕 향토 음식으로 유명한 수구레 국밥 맛집으로 전통 시장 근처에 있다. 수구레는 소의 가죽에서 떼어낸 쫄깃한 지방육으로 특수부위 전문점에서만 맛볼 수 있다. 아침 일찍 문을 열고 해가 지면 문을 닫는 삼오식당은 수구레 국밥 외에 수구레 국수, 선지 국수, 선지 국밥, 수구레 볶음이 있다. 수구레 국밥은 얼큰한 국물에 수구레, 선지, 콩나물, 대파 등이 푸짐하게 들어 있어 어느 정도 건져 먹은 후 밥을 말아야 할 만큼 양이 많다. 기본 찬으로 다진 마늘, 다친 청양고추, 깍두기, 김치, 양파 장아찌가 나온다. 삼오식당 바로 앞에는 매달 3일, 8일 5일장이 열려 날짜에 맞춰 방문한다면 창녕 전통 시장도 구경할 수 있다.
7.1Km 2024-07-17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창녕시장길 66
창녕읍의 상설시장이자 5일장이 서는 곳으로 평상시에는 주차장으로 사용되지만 3일, 8일이 되면 어김없이 전통 시장으로 변신한다. 고추, 마늘, 양파 등 각종 채소류와 제철 과일 그리고 꼬막, 조개, 새우 등의 신선한 해산물, 잉어, 가물치, 미꾸라지 등 민물고기를 판매하는 어물전도 즐비하다. 건조식품, 가전용품, 약재, 떡 등 판매하는 품목도 다양하고 직접 꾸민 가판도 가지각색이지만 전통시장답게 인심은 여전히 정겹다. 장날 빠지면 섭섭한 먹거리도 다양하지만 그중 1박 2일 촬영 중 이수근이 먹었다는 수구레 국밥은 여전히 인기가 많아 꼭 한번 먹어봐야 할 메뉴이다.
7.1Km 2024-06-12
경상남도 창녕군 이방면 옥야길 2-7
1956년부터 이어져온 이방시장은 창녕군 이방면에 위치한 5일장으로 보통 이방장으로 불린다. 평상시에는 주차장으로 사용되다가 장날이면 이방시장으로 변한다. 시장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다양한 채소와 과일, 의류와 먹거리들이 있고 해산물을 판매하는 어물전도 있다. 또, 수구레 원조 국밥집이 있어 수구레 국밥을 먹기 위해 이방시장을 찾는 관광객들도 많다. 가까운 곳에 우포늪이 있어 여행 중 둘러봐도 좋은 시장이다. 특산품으로 마늘, 양파, 단감, 배가 유명하고, 향토 음식으로 수구레 국밥, 한우고기, 메기매운탕, 잉어찜, 붕어찜 등을 즐길 수 있다.
7.1Km 2024-06-12
경상남도 창녕군 이방면 옥야길 1
055-532-5075
[중소벤처기업부 2019년도 '백년가게'로 선정] 이방식당은 1977년 이방시장의 전통 먹거리인 수구레를 국밥과 국수로 팔았던 것을 시작으로, 국물 맛을 더욱 진하게 개선하여 더욱 맛있는 수구레 국밥을 대표 메뉴로 이어가고 있다. 수구레는 소의 껍질과 쇠고기 사이의 아교질을 일컫는 부위를 말하며,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만큼 일품인데, 이방식당에선 수구레국밥 뿐만 아니라 수구레국수, 연탄석쇠불고기, 사골돼지국밥, 수구레양념볶음 등의 메뉴도 판매하고 있다. ‘음식은 문화이고 나눔이다’라는 선대 창업주의 영업방침에 따라 지역사회에 경로잔치를 열기도하고, 불우이웃에게 식사를 제공하며 나누는 삶을 실천중이다.
7.1Km 2024-06-19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향교길 54
향교는 유교의 옛 성현을 받들면서, 지역 사회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미풍양속을 장려할 목적으로 설립된 전통시대의 지방 교육기관이다. 창녕향교의 건립 연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 효종 원년에 한 차례 중건되었으며,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했다고 한다. 1987년에 동재와 서재를 복원함으로써 현재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향교의 공간은 교육과 제례의 두 영역으로 나뉜다. 유생이 학문을 연마하는 명륜당과 일상생활을 하는 동·서재는 교육 기능을 담당하고, 공자와 저명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과 동·서무는 제례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창녕항교는 교육 공간을 앞쪽에, 제례 공간을 뒤쪽에 두는 전학후묘 양식으로 건물을 배치했고, 급한 경사지에 위치하여 향교의 권위적 성격이 잘 나타나 있다. 정면 출입구에는 원래 유생들의 여가 및 여름철 학습 공간으로 사용되던 누각이 있어야 하나, 지금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추한문이라는 솟을대문만이 서 있다. 소장 전적으로는 창녕지방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창녕향교직원임록], [창녕유림노유안], [향교수미교구절목] 등이 있다.
7.1Km 2024-12-05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석빙고는 추운 겨울에 얼음을 채취하여 더운 여름까지 보관하여 사용한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얼음 창고이다. 빙고 우측에 남아있는 비석에 의하면 [숭정기원후재임술이월초일일여사월초십일필]이라 새겨져 있어, 조선 영조 18년(1742) 현감 신서 등이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길이 13.05m, 폭 4.65m, 높이 4.75m의 규모이며, 구조 양식과 장빙의 풍속 등으로 봤을 때 조선시대 건축한 것으로 추정한다. 창녕 석빙고는 봉토가 거의 완전하며, 외부의 모양은 마치 거대한 고분처럼 보이고 뒤에 흐르는 개천과 직각이 되게 남북으로 구축했다. 빙실의 입구는 남쪽에 설치했는데, 좌우에 장대석을 옆으로 건너지르며 쌓아 올려서 천정을 구성하였으며 천정에는 외부로 통하는 환기공이 두 곳 있다. 벽은 잡석으로 쌓았으나 평평한 방벽이 되게 표면을 치석했다. 이러한 구조 양식은 석빙고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경주, 안동의 석빙고와 동일하고 규모에 있어서는 창녕 석빙고가 약간 작다.
7.2Km 2025-03-19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159
창녕읍에 자리한 수변공원으로 주민들이 즐겨 산책하는 코스다. 과거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만들어졌던 명덕저수지를 현대적으로 공원화시켰다. 걷기 좋은 나무 데크길은 물론 저수지에 다양한 수생식물을 심어 계절마다 다채로운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저수지 가운데로 아치형의 디자인이 돋보이는 구름다리가 놓였고, 그 양쪽으로 울타리를 설치해 안전하게 수변 경치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구름다리 건너 팔각정에선 잠시 걸음을 쉬어가며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좋다. 이처럼 낮에도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어주는 명덕 생태 수변공원은 밤이 되면 색다른 매력을 펼쳐 보인다. 구름다리에 알록달록한 조명을 설치해 로맨틱한 야경을 선사하는 것. 아름다운 야경이 저수지에 비쳐 일렁이는 모습도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7.5Km 2024-09-05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34
만옥정공원은 창녕공원이라고도 불리는 공원으로, 면적 1만㎡의 작은 공원이지만 지정문화재와 봄철 벚꽃이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유명하다. 약 250년 전에 만옥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봄마다 명창 대회와 그네뛰기 대회가 열렸다고 전해진다. 화왕산으로 가는 등산로가 옆으로 나 있다. 공원 뒤쪽 언덕 위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인 국보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가 있는데, 561년(진흥왕 22)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며 원래 창녕읍 화왕산록에 있던 것을 1924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공원에는 조선 후기의 관아 건물인 창녕객사(경상남도 유형문화재),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퇴천삼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창녕 척화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등의 다양한 문화재가 있다.
7.5Km 2023-08-09
창녕은 가야와 신라의 유적이 남아 있는 문화유산의 고장이다. 가야시대의 고분군으로 알려진 교동, 송현동고분군에서는 인골이 수습되어 가야시대의 순장된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기도 했고, 국보로 지정된 신라 진흥왕이 세운 척경비와 술정리 동삼층석탑, 조선시대의 석빙고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문화유산을 만난다.
7.5Km 2024-10-22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신라 진흥왕 때 세워진 것으로 원래 화왕산 기슭에 있던 것이 소풍 나온 학생에게 발견되어 알려졌으며 1924년 지금의 만옥정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흔히 순수비로 통칭하나 북한산, 황초령, 마운령에 있는 순수비처럼 순수관경이란 말이 없고 왕이 새 점령지를 다스리는 내용과 이에 관련된 사람들이 열거되어 있어 척경비라 한다.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는 개석이나 대석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 암석을 이용했으며 삼국시대 비문의 일반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다. 한 면을 간 다음 바깥면 비석의 형상에 따라 음각의 줄을 돌렸는데, 오른쪽 상부는 암석이 경사면을 이루고 있는 관계로 1행씩 낮추어 계단식으로 글을 적었다. 비문은 27행으로 한 행의 자수는 일정하지 않아 끝 행은 3자뿐인 것도 있으나, 26자의 행이 가장 많고, 후반부는 위에서 2행마다 1자식 낮추어 적혀 있다. 비문 전반부는 마모되어 자획이 불분명한 점이 있으나, 후반부는 선명하여 판독이 가능하다. 비문의 내용은 순수의 연월(신사년 2월), 사적, 수행원의 3부분으로 되어있고, 인물의 기록 순서는 속부, 인명, 직관, 직위를 표기하여 삼국시대 신라비문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다. 서체는 해서체이며 글자 간격은 4㎝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