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5마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우포5마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우포5마일

우포5마일

13.0 Km    7962     2023-10-17

경상남도 창녕군 이방면 우포2로 213-7
010-2203-3560

우포늪과 가까운 위치에 있으며, 각 객실이 독립적으로 되어있어 힐링 하기에 좋은 펜션이다. 주로 가족 및 커플 위주의 펜션이다.

광심정

광심정

13.1 Km    17022     2023-10-16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봉촌2길 277

광심정(廣心亭)은 조선 선조 2년(1569) 영산군 길곡리에 칩거하고 있던 용성송씨(龍城宋氏) 문중에서 젊은 사람들이 수학을 목적으로 건립한 정자(亭子)이다. 조선 현종 5년(1664)에 성리학자인 송지일(宋知逸) 선생이 선비들과 더불어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자신의 호를 따라서 광심정으로 편액(扁額)하였으며, 낙동강변의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임진왜란(1592) 때 파손되어 여러 번 고쳐지었다. 건물은 앞면 ·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앞쪽은 마루로 꾸몄고, 뒤쪽에는 방을 두었다.

용안서원

13.3 Km    1849     2023-11-16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내진1길 39-18

밀양 용안서원은 1813년에 별사를 창건하여 문안공 산화 이견간 선생과 성산군 이식 선생을 봉안하였다. 1818년 장소와 건물이 협소하여 현재 위치로 옮기고 용안사라고 편액 하였다. 1870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용안재로 개액하였으며, 1922년부터 설단하여 여은 이사지 선생와 대호군 이중림 선생을 추가로 봉안하고 향사하였다. 1983년에 용안사 옛터에 사우를 중건하고, 재사를 중수하여 위패를 봉안하였다. 용안서원은 강당과 시습재,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5량가이다. 시습재는 강당 오른편에 직각으로 꺾여 배치되어 있으며, 동재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1칸이다. 북측 2칸은 방, 남측 2칸은 대청으로 누마루형식이며 맞배지붕이다. 사당인 용안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이익공계 3량가 맞배지붕이다.

신남서원

13.9 Km    1757     2023-10-05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판정로 125-13

무안면 정곡리에 있는 신남서원은 고려 말기 대마도정벌과, 조선 태조 이성계를 도와 위화도 회군에 공을 세운 정국군 박위와 조선 초기 문신인 소총재 박기 부자를 향사하는 서원이다. 밀성 박씨 정국군파 종중 소유로 종중에서 관리한다. 신남서원은 순조 22년(1822)에 후손인 박성기의 주청으로 밀양 사림의 공론을 모아 창건 하였다. 서원내 사당을 상모사, 강당을 경보당이라 하며, 당시 봉안문과 상향축문은 응교 강세백이 지었다. 이 서원의 주향으로 모셔져 있는 박위장군은 고려 우왕 때 김해부사로서 여러 번 왜구를 격파했고, 우왕 14년에는 경상도도순문사의 직책으로 전선 100여 척을 인솔하여 이종무 이후 대대적으로 대마도를 쳐서 300여 척의 왜선을 불태우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1994년 우리 손으로 네 번째 건조된 잠수함에 이 박위장군의 이름을 빌어 [박위함]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고종 5년(1868)에 내려진 서원 철폐령에 따라 사당은 철거되었으나, 후손들은 서원 강당의 당호를 경보당으로 바꾸고 재실로 삼아 이곳에서 박위 장군을 주향, 박기를 배향으로 향사를 올렸다. 1981년에는 후손들의 발의와 고을 유림들의 호응으로 상모사를 이전대로 중건하였다. 서원의 배치는 사당인 상모사를 중심으로 전면에 신문을 설치하여 신역을 구분하였으며, 사당 밖에는 강당인 경보당이 있다. 경보당은 견치석으로 쌓은 높은 기단 위에 지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 홑처마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평면은 가운데 삼 칸 대청을 두고 그 좌우에 온돌방을 들인 형식이며, 대청 앞은 개방하고, 온돌 앞에는 두 짝의 띠살창이 달려 있다.

공원반점

공원반점

14.2 Km    0     2024-02-21

경상남도 창녕군 창한로 95

창녕 대합면 십이리 저수지 공원 근처에 있는 공원반점은 얼큰한 짬뽕이 일품인 대합면 맛집이다. 공원반점 짬뽕은 특히 오징어가 많이 들어가고 깐 홍합을 사용해서 먹기 편리하다. 간짜장은 면 위에 계란 프라이가 올라가고 짜장은 담백한 맛으로 달거나 느끼하지 않다. 영업시간은 계절별로 다르니 상이하니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식당 앞에 전용 주차장이 있으며 대구 구지나 테크노폴리스에서도 멀지 않고 근처에 십이리 저수지가 인접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 반려동물 동반 불가

설뫼충효테마파크오토캠핑장

설뫼충효테마파크오토캠핑장

14.5 Km    0     2023-11-02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입산로 178

경남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에 위치한 설뫼 충효테마파크는 효와 충, 역사 문화를 공유하며 꽃과 물, 숲이 있는 조경 시설과 테마가 있는 공원으로 놀이형 학습공간이라 할 수 있는 캠핑장이다. 편히 앉아서 쉴 수 있는 정자와 벤치들이 있으며, 마음껏 뛰어놀며 운동을 할 수 있는 체육시설들과 산책로 등을 갖추고 있다. 나무와 물이 풍부한 생태공원으로 모든 시설들이 깔끔하게 잘 가꾸어져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도 준비되어 있어 자녀들이 맘 놓고 뛰어놀 수 있다. 매점, 화장실, 샤워장, 개수대가 있으며, 샤워장 온수는 시간대별로 나온다. 캠핑장은 예약제가 아닌 선착순 입장으로 자리를 정할 수 있다.

동산서당

14.5 Km    1897     2023-11-13

경상남도 창녕군 이방면 이방로 565-5

창녕 동산서당은 사간 노선경, 이조참판 노극홍, 월촌 노세후, 이조참의 노해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829년 창건했다. 사액은 받지 못했으며, 1868년 고종 때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그후 1923년, 후손과 사림들이 그 유허지에 집을 세워 동산서당이라 이름 붙였다. 동산서당의 건물로는 재성재, 고경당, 유의문, 구인루가 있다. 동산서당은 실용성과 경제성을 중시한 근대기에 건축된 서원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당시 다양하게 발전하던 한옥의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근대기 서원이라는 점에서 건립연대는 오래되지 않았으나, 학술적 연구대상으로 보존가치가 있다. 동산서당 소장 문화재로는 광산노씨세보, 한강연원록, 동산서당 소장책판, 창녕 동산서당 강당(이상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등이 있다.

금호재

14.5 Km    19215     2024-01-26

경상남도 창녕군 대합면 대동길 33

금호재는 조선 중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금헌 이장곤 선생의 제사를 지내는 건물이다. 이장곤 선생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죽은 뒤 창녕의 영암서원에서 제사를 모셨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영암서원이 사라졌다. 원래 금호재는 용흥사의 부속건물이었는데, 1966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짓고 이장곤 선생의 제사 건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금호재 건물은 느티나무를 사용했으며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옆에서 보면 여덟 팔자 모양의 팔작지붕과 대청, 온돌방시설을 갖추고 있다. 방의 출입문은 기능적인 면과 장식적인 면 모두를 갖춰 실용성이 돋보인다. 용흥사가 1695년까지 있던 것과 연꽃무늬의 공포와 망와에는 병오년 9월 11일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어 적어도 17세기 후반의 건물로 추정된다. 금호재에서 북동쪽으로 1㎞ 정도 떨어진 야산 기슭에는 이장곤 선생의 묘소와 함께 창녕 대동리 금헌 묘석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이 있다.

기강서원

14.7 Km    877     2023-12-05

경상남도 의령군 지정면 오천리

기강서원은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식성군 이운용(1562~1610) 장군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유림과 후손들이 건립한 서원이다. 장군의 묘소는 원래 고향인 경북 청도군 법귀산에 안장되었으나, 인조 8년(1630년) 장자인 이엄(평택 현감)이 의령군 지정면 오천리 산 30-1로 이장하였다. 이에 경남지역 유림에서는 장군의 묘소 앞에 서원을 건립하기로 합의하고 정재를 모아 1950년 4월 통영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충열사 앞에 이운용의 기적비를 세웠다. 서원 건립은 6.25 전쟁으로 지연되었다가 1959년 방후손, 이기환이 유림과 상의하여 식성군유적보존회를 결성하고, 기강서원 건립에 착수하였다. 이때 정부에서 윤보선 대통령과 백낙준 참의원의장, 장면 국무총리, 곽상훈 민의원의장 등 삼부 요인을 비롯한 저명인사의 거국적인 의연금이 답지하였고, 경남지사 이중헌과 교육감 이윤근 등의 주도하에 원활한 재정 지원이 이루어져 서원이 건립되었다.

백산 안희제 생가

백산 안희제 생가

14.8 Km    20901     2024-04-29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입산로2길 37

독립운동의 선봉장 백산 안희제 선생의 생가는 의령군 부림면에 있다.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 2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안채는 팔작지붕 기와 건물로, 정면 6칸, 측면 2칸의 구조로 왼쪽에서부터 마루, 방, 대청 2칸, 방, 부엌의 순으로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남향으로 난 1칸 마루가 사랑채의 역할을 한다. 전후 툇간이 발달하여 겹집 형식으로 발전하여 기능이 다양한 방이 필요하지만, 별동으로 만들지 않고 한 건물 안에서 처리한 조선 후기 주택의 특징을 보인다. 백산 안희제 선생은 1885년 부림면 입산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창남학교를 창설하고 1908년 의신학교를 창설, 1909년 동래구명학교 건립, 대구교남학교 건립 등으로 신학문 보급에 힘썼다. 27세에 만주에서 대동청년단을 조직하고, 소련으로 망명하여 독립순보를 간행하였다. 30세에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독립운동 자본금을 마련하였으며, 기미 육영회를 조직하고 1926년 언론창달을 위해 시대일보를 인수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구금되었고, 1943년 만주대종교단 사건으로 구금되었다가 출옥 4시간 만인 1943년 9월 2일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