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대청계곡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장유대청계곡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장유대청계곡

17.3Km    2024-07-22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 월산로

장유대청계곡은 불모산 자락에 양 갈래로 형성된 6km의 긴 계곡으로 산림이 울창하고, 맑은 물이 폭포를 이루는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장유폭포로도 알려져 있으며, 계곡을 따라 30분 정도 올라가면 장유암이 나오는데 이 암자 내에는 우리나라에 최초로 불법을 전파했다고 전하는 장유회상의 사리탑이 있다. 1984년 장유폭포휴양공원이 조성될 때 다리, 급수시설 두 곳을 만들었다. 산책과 물놀이를 같이 즐길 수 있으며 수려한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계곡 주변으로 형성된 백숙 맛집들로도 유명하다. 용지봉까지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으며 취사나 야영은 할 수 없다.

더운 여름, 김해의 계곡에서 놀아보자

더운 여름, 김해의 계곡에서 놀아보자

17.3Km    2023-08-10

여름에 정말로 좋은 김해의 장유대청계곡과 장척계곡을 소개한다. 여름이면 바다도 좋지만 시원함을 즐기려면 계곡이 좋다. 장유대청계곡은 김해를 대표하는 계곡이라 할 수 있는 이곳은 피서인파가 많이 몰리는 곳이다. 발이 시리도록 찬물에서 노는 것도 좋지만 주변 휴양림 데크 산책을 즐긴다면 청량감을 더욱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명태정가 대청계곡점

명태정가 대청계곡점

17.3Km    2024-07-02

경상남도 김해시 대청계곡길 170-27

김해 물놀이 명소 대청계곡에 있는 명태정가는 생선요리 전문점이다. 계곡과 맞닿아 있어 여름 휴가철 성수기에는 많은 사람이 방문한다. 본관동, 야외 테라스동으로 나누어진 명태정가는 매콤 명태조림이 대표 메뉴로 덜 매운맛, 보통맛, 매운맛 맵기 조절이 가능하다.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의 꽃게탕도 이 집 인기 메뉴이다. 대청계곡 특성상 가족 단위로 많이 방문하기에 어린이 메뉴로 떡갈비도 준비되어 있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반찬 외 추가 반찬은 셀프 바를 이용하면 되고 모든 메뉴 공깃밥은 별도 주문해야 한다. 대청계곡에 사람이 많다면 명태정가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기후변화 테마공원을 가보는 것도 추천한다. 어린이와 교육 프로그램 체험도 하고 물놀이도 할 수 있는 공원이다.

김달진 문학관

김달진 문학관

17.4Km    2024-10-23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소사로59번길 13

고도의 정신주의 시 세계를 열었던 시인이자 승려였으며 한학자이자 교사로 일생을 살아온 월하 김달진 선생의 문학과 불교에 대한 열정을 기념하기 위해 2005년 10월 경상남도 진해구에 김달진 문학관을 개관하여 김달진의 문학적 혼을 알리고 있다. 1995년 4월 김달진의 제자인 경남대학교 교수 신상철이 중심이 되어 김달진 시비를 건립하였다. 1996년부터 경남 시사랑 문화인 협의회를 주축으로 김달진문학제전 위원회를 결성하여 해마다 가을에 경상남도 진해시에서 김달진문학제를 개최하고 있다.

진해소사마을

17.4Km    2024-10-22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소사로59번길 13

진해 소사마을은 시인 김달진의 생가를 비롯해 김달진문학관, 근대사 박물관인 김씨박물관, 박배덕 화백이 직접 운영하는 박배덕 갤러리 등 문화와 예술이 모여있는 장소이다. 2005년에 문을 연 김달진문학관에는 시인의 생전 유품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생가도 복원되어 있다. ‘흑백테레비’와 ‘라듸오’, 타자기, 괘종시계 등 추억 속 물건들을 만날 수 있는 김씨박물관, 70~80년대 구멍가게를 재현한 김씨공작소, 주말에만 여는 스토리텔링박물관 소사주막 등 과거로 추억 여행을 떠나게 하는 볼거리 많은 마을이다. 1900년대 초 일제가 진해 군항을 건설할 때 인근의 주민들이 강제 이주를 당하면서 생겨난 소사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도 전시돼 있다.

성흥사(진해)

17.4Km    2024-09-12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대장로 273

신라흥덕왕 8년 (833년)에 무염국사가 왜구를 물리친 것을 기념하여 지은 대사찰이었다. 당시에 승려 500여명이 머물렀던 큰 규모의 절이었으나 1109년 무렵 화재로 소실된 뒤에 대장동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1668년 화재로 다시 절을 구천동으로 옮겼다가 1789년에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게 되었다. 대웅전은 중창 당시의 모습으로 건재해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2호로 지정되었다. 고종 27년 (1890년) 화주스님이 그린 섬세한 필치의 무염국사의 영정과 대불상, 나한상, 나한종관상, 제석상 등과 당간지주가 있고 사찰의 서남쪽 200m 지점에는 조선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도군 등이 있다. 성흥사 옆으로 우거진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에 맑은 물이 흘러 여름 피서객들에게 시원한 휴식처가 되고 있으며 계곡 입구에는 넓은 주차공간과 오리백숙, 닭백숙 등을 하는 토속음식점들이 있어 계곡을 찾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함안 주리사지 사자석탑

함안 주리사지 사자석탑

17.4Km    2024-10-11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함안대로 105-2

함안 주리사지 사자석탑은 함성중학교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원래 여항면 주서리 주리사터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면사무소로 이전하였다가, 8.15 광복 후 다시 함성중학교 교정에 옮겨온 것으로, 적지 않는 수난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석탑이다. 수차례에 걸쳐 설치 장소가 이전되면서, 기단부의 4사자와 2층, 3층의 옥개석과 옥신석, 그리고 상륜부(相輪部)의 노반(露盤)만이 잔존하고 그 밖의 부재는 모두 망실되었다. 기단에 네 마리의 사자를 배치한 것이 일반 석탑과는 다른 독특한 모습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전남 구례 화엄사의 4사자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전국을 망라해도 몇 곳에 불과하다. 바닥돌 위에 얹힌 지붕모양의 돌 위로 네 마리의 사자를 올리고 그 위로 5층으로 보이는 탑신을 쌓았는데, 탑신의 몸돌 하나가 없는 상태이다. 3층 혹은 5층일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의 정확한 모습은 알 수 없으나, 구례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 회양 금장암지사사자삼층석탑, 제천 빈신사지사사자석탑 등 비슷한 양식의 탑과 비교해 볼 때, 네 마리의 사자가 포함된 기단부가 있었을 거라고 추측된다. 사자는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등을 맞댄 채 앞을 보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조각은 단순하나 각 부의 형태가 잘 드러나 있다. 탑신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이 표현되고 지붕돌은 네 귀퉁이에 치켜올림이 있다. 기단부에 사자상을 배치한 경우는 드문 경우로, 원형을 간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남아있는 탑재의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 용지봉 자연휴양림

국립 용지봉 자연휴양림

17.4Km    2024-10-11

경상남도 김해시 대청계곡길 170-36 (대청동)

국립 용지봉 자연휴양림은 경상남도 김해에 위치한 자연휴양림이다. 서부산, 창원과 가까이 있어 위치가 좋은 것이 장점이다. 대청계곡 시작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변에 음식점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드비치골프클럽

드비치골프클럽

17.4Km    2024-08-13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거제북로 1573

드비치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의 골퍼들이 즐길 수 있는 종합 해양 골프 리조트를 만들어 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은 거제도에 최고의 골프클럽을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국내 최초로 3Bay Link Course를 만들었으며, 코스는 물론 다양한 부대시설, 품격 있는 서비스까지 언제나 최고만을 고집한다. 드비치의 클럽하우스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과 같다. 자연의 흐름과 바다의 물결과 어울리는 선의 미학이 흐르며 바다의 기와 자연의 기를 받아들이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가진 골프클럽은 찾기 어렵다. 매년 수십만 명의 골퍼 순례자들이 찾아가는 골프의 성지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류스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골프클럽이다.

고려동유적지

고려동유적지

17.4Km    2024-10-18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2길 53

고려동유적지는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 선생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거처로 정한 곳이며, 이후 대대로 그 후손들이 살아온 곳이다. 이오 선생은 이곳에 담장을 쌓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을 하였다. 이오는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았다. 또 아들에게도 새 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이며, 자기가 죽은 뒤라도 자신의 위패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자손들은 19대 600여 년 동안 이곳에서 선조의 유산을 소중히 가꾸면서 살았다. 뿐만 아니라 벼슬보다는 자녀의 훈육에 전념하여 학덕과 절의로 이름 있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이에 고려동(高麗洞)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 오고 있다.